제목 |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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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5-04-01 03:27 조회 |5,538회본문
[눅 11:29-32]
29 무리가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이 세대는 악한 세대라 표적을 구하되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나니 30 요나가 니느웨 사람들에게 표적이 됨과
같이 인자도 이 세대에 그러하리라 31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가 솔로몬의 지혜로운 말을 들으려고 땅 끝에서
왔음이어니와 솔로몬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 32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느니라
1. 들어가는 말
이 말씀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먼저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예수에 의해서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모든 인생들은 하나의 예외도 없이 자기 옛생명을
살리고자 예수를 부인하고 예수를 저주하게 됩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예수를 배척했던 것은 바로 이런 이유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자기 십자가의 과정은 구원을 받기 위한 필연적 과정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유대인들에게 그들을 십자가로 인도하는
예수를 배척하면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니 순종하고 따라야
산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막 8:34]
무리와 제자들을 불러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 믿지 않는 유대인
유대인들이 표적을 구하는 것은 기적을 보이라는 것인데 아무리
그들에게 기적을 보인다고 해도 그들은 믿지 않을 것을 아십니다.
믿는다는 것은 그들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혀야만이 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적을 보고 믿어 준다고 해서 그것이 믿는 것이 아닙니다.
3. 요나의 표적이란?
그럼에도 예수께서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보이겠다고 하는데
요나의 표적은 삼일 삼야를 큰 물고기 뱃속을 통과한 요나에 의한
니느웨 백성의 회개 즉, 구원입니다.
이것의 실체는 예수에 의해서 그 분과 연합하여 우리 옛사람이
십자가의 죽음을 통과해야 하고 그로 인하여 우리가 회개하고
구원 받는 이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과도 연합하여 십자가로 가기를 원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들의 구원이 될 것이고, 예수는 구원자로서 누구에게나
구원을 베풀기를 원하시니까...
만일 이들이 예수를 따라 나서서 각자의 십자가를 통과한다면
예수께서 그들에게 요나의 표적을 보인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인도 아래 요나의 표적을 체험하는 자들은
더 이상 기적과 표적을 바라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미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 되었으니 그 하나님에 대한
다른 표적과 기적을 보이라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예수가 그들에게 보이려는 요나의 표적,
즉 그들을 구원하려는 예수를 거부하고, 그저 기적이나 표적을
보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4. 솔로몬 보다 큰 자, 요나보다 큰 자
예수님은 남방여왕과 니느웨 백성을 들어서 이들을 책망합니다.
남방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얻기 위해서 땅 끝에서 왔고
니느웨 백성은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했다고 하면서
그들이 심판 때 너희를 정죄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남방여왕이 솔로몬에게서 지혜를 얻은 것, 니느웨 백성이 요나의
전도로 회개한 것은 같은 영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데, 공히 예수와
연합하여 그들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고 거듭나고 구원 받은 것을
상징합니다.
상징이 아닌 실제에 있어서는 남방여왕과 니느웨인의 회개는 구원을
이루어 줄 실체인 예수가 오기 이전이니, 그들은 그림자 십자가와
그림자 회개/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이 상황을 지금 우리의 경우로 말씀드리자면,
남방여왕이 지혜를 얻은 것이나, 니느웨 백성이 회개한 것의 상징은
지금 율법적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 중에 모든 어려움을 무릅쓰고
열심을 내어 주님을 따라 나섬으로 때때로 하늘로서 지혜의
응답을 받거나 또는 회개를 함으로써 일시적으로 마음의 깨끗해짐을
받는 것을 말합니다.
이들은 이 복음 밖, 율법 아래서 구원을 얻기 위해서
모든 열심과 정성을 다합니다.
근본적으로 이들이 복음의 예수를 믿는다고 믿는데
그것이 율법 아래서 믿게 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이렇습니다.
지금 모든 사람들이 예수 믿는 방식이기도 한데,
이천 년전의 예수를 자신의 생각 안으로 끌어 들여서
믿는 것이 율법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이천 년전의 예수를 자신의 생각 안으로 끌어 들여서
믿는 것이 율법적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관념과 생각속으로만이 아닌
'사람'으로 만나야 합니다.
'사람'으로 만나야 합니다.
예수는 한 알의 밀알로 이천년 전에 이 땅에 왔고
많은 밀알을 생산해 내고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승천한 그 예수를 만날 수는 없고 이제 이 땅에선
많은 밀알을 생산해 내고 승천하셨습니다.
우리는 승천한 그 예수를 만날 수는 없고 이제 이 땅에선
그 예수께서 산출해 낸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사도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데 있어서 이런 한 사도를 만나 구원의 길로
인도함 받아야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오직 이천년 전의 그 밀알만 바라보고 믿고 있으니
그 밀알이 지금 우리 마음 속에 생명 주는 씨앗이 되지 못합니다.
오직 생각과 관념 속의 씨앗으로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긴 세월 예수를 믿어 왔어도 실체가 없이
관념 속에만 있는 귀신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관념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참 예수가
인도하는 자기 부인이나 자기 십자가가 무엇인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의 길로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또한 인도자라 칭하는 사람들도 그 길로 인도하지도 않습니다.
피차 모르기 때문에...
그들 중에는 참 예수가 오기 이전의 남방여왕 같이,
회개한 니느웨 같이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회개한 니느웨 같이 하나님께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들은 아직 사람 예수를 만나지 못했으니
참다운 구원을 얻지 못했습니다.
이제 예수는 실체로서 유대인들 앞에. 그리고 지금 우리 앞에 서 계십니다.
남방여왕과 니느웨 백성이 그림자 구원을 놓고도 모든 열심을 내었는데
그들보다 더 큰 실체 예수를 자신들 앞에, 그리고 우리 앞에 두고 있으니
더 큰 열심을 내어야 하지 않겠느냐는 말씀이십니다.
5. 맺는 말
우선 예수를 제대로 믿으려면
참다운 생명의 말씀을 가진 한 사람을 만나야 할 것이며,
그 말씀은 우리를 각자의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로 인도함으로
각자에게 요나의 표적을 보일 것입니다.
이때 이 실체의 과정을 소중히 여기고 자기 십자가의 모든 어려운 상황을
겪고 견디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후 우리는 참다운 구원을 볼 것입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2015. 4. 2 편집
댓글목록
shama님의 댓글
shama 작성일늘 한결같은 생명의 씨뿌림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