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베드로의 믿음(1/2):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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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5-05-16 15:05 조회 |3,267회본문
[마 16:21-24]
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 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가르치시니
22 베드로가 예수를 붙들고 간하여 가로되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에게 미치지 아니하리이다
23 예수께서 돌이키시며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 하시고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1. 생각할 점
예수께서 이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 고난을 받고 죽으시고
삼일 만에 부활할 것이라고 하시니, 3년 반 동안 자신의 모든 재산과
세상 삶의 터전을 버리고 따라 나섰던 베드로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말씀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이 편으로 불러 세워 잡고 책망(헬: 에피티마오) 합니다.
이 책망한다는 단어는 예수께서 제자들을 책망할 때 쓰이는 단어인데
지금 제자 베드로가 도리어 예수를 책망합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그랬을까요.
이에 예수님은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 하시면서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않고 사람을 일을 생각하는 자라,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하십니다.
우리는 이런 내용을 읽고 어떻게 생각합니까?
베드로가 정말 세상 것에 빠져서 예수가 죽어서 많은 백성을 구해야 하는데
사단의 사주를 받아서 그것을 말렸구나.
무지한 자요, 아직도 정신 못차린 자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는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나는 그렇게 하지 말아야지... 하면서
그렇게 생각 속으로 정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일은 내가 하나님께 무엇을 양보해서 희생해서
예를 들어 헌금하고, 교회 봉사하고, 전도하고 하는 것을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이렇게 교회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중 대부분은 이렇게 예수 믿다가 끝납니다.
현 믿음에서 문제는 없는 것일까요?
아니면 있는데 그것 자체를 모르는 것일까요?
2. 당시 베드로의 영적 위치
성경에서의 어떤 일의 순서는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특히 예수께서 제자들을 이끌고 구원의 길을 가는 과정에서는
그 순서는 곧 영적 성장 현재 모습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을 믿는 많은 유대교인들 중에 예수를 만났습니다.
이때 베드로는 예수를 만난 것 자체로 다른 유대인들과 달리
영적으로 큰 성장을 보였는데, 그것은 다른 이들은 구원을 시작도
못했는데 베드로에게는 그 구원이 시작되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지금 베드로는 그 구원자 예수를 따라 삼년 반이라는 세월동안
지적과 책망과 고침을 받아 왔고, 이제 그것은 끝과 완성인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있을 때입니다.
베드로가 처음 예수를 따라 나설 때 하고 비교한다면
지금의 베드로는 3년 반 동안 예수에 의해서 영적으로 자라난 생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생명의 성장에 있어서 큰 차이가 있습니다.
지금의 베드로의 영적 생명은 잉태된 생명이 해산을
바로 앞두고 있을 때의 시점이며,
이제 십자가의 때를 통과하면 그 잉태된 생명이 해산을 밎게 되고,
이 해산이 곧 베드로가 거듭난 새 생명을 얻는 것이고,
그것이 또한 그의 구원입니다.
아무튼 이때에 베드로는 우리 눈에 보기에 무지한 일을 했습니다.
과연 베드로를 그렇게 무지하고 멍청하다고 보는 우리 눈은 옳은 것일까요?
우리는 베드로처럼 예수를 만나지 못했고,
또한 그 분을 삼년 반 동안 따라 다니면서 고침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런 과정을 다 거친 베드로를 판단하고 있으니,
이 얼마나 황당한 일이겠습니까?
3. 당시 베드로의 마음
지금이야 우리는 성경의 해답을 보고 베드로가 예수가 세상 왕으로
등극하면 좌에 우에 앉아서 큰 권세를 누리려는 마음에 예수가 죽는 것을
말렸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것이 우리가 베드로를 판단하는 근거가 되는 것이고...
물론 베드로는 그런 세상적 욕심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하지만, 당시 베드로의 입장에서 보면
그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의 육신적 소욕을 가지고
그랬다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오직, 모든 정성을 다해서 예수를 섬기고
위하는 것 밖에 다른 것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가 죽는다고 하니까 진심으로 정말 진심으로
죽으면 안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시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영적 생명의 한계입니다.
아직 다 자라지 못했다는 것을 말하고, 베드로는
자신이 지금 가지고 있는 아직 어린, 이 생명의 영역 밖으로는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오직 그의 이런 예수를 향한 행동에는
극한의 진심만이 담겨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베드로의 진심에 예수께서
"사단아 내 뒤로 물러가라"는 말씀을 하시니,
당시 베드로에게는 예수가 죽는다는 것 보다
이 말씀이 더 충격적이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속으로 뭐라고 생각했을까요?
'나의 진심과 정성을 알아주지 못할 망정
뭐 사단아 물러가라? 이게 나에게 지금 할 말이냐?'
'예수 맞어?' 하면서 속으로 부글부글 끓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베드로의 마음이 베드로의 옛사람이고
그렇게 자기 옳다함을 예수 앞에 주장하는 그 옛사람은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어야 합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정리하여 생각해 보면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사단아 물러가라고
하신 것은 베드로가 의도적인 세상적인 생각으로 예수를 죽지 말라고 했다거나
또는 위선적인 마음으로 그랬기 때문에 책망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아직 어린 생명인 그를 키우기 위해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 경우 '사단아 물러가라'는 베드로의 생명을 성장시키는
생명의 말씀으로 작용하게 됩니다.
4. 우리의 경우
우리의 경우, 자신의 믿음이 지금 이 베드로와 같은 위치나
그 근방에 와 있다면, 지금 이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 지 알 것입니다.
하지만 아직 저쪽에 있어 예수를 따라 나서지도 못한 사람들은
지금 이 이야기가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감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쨋가나 우리도 예수를 만나서 그에 의해서 베드로가 갔던
이런 구원의 과정을 거쳐야 구원 받을 것 아니겠습니까?
다음 칼럼에서는
무엇이 하나님의 일이고 무엇이 사람의 일인지와
생명의 말씀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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