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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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3-04-27 20:07 조회 |3,632회본문
1.
하나님을 열심히 섬기던 욥에게
사단의 말을 들은 하나님은 욥을 시험하도록 허락하십니다.
창졸지간에 욥의 모든 재산이 소실되고, 자식들도 한 날에 죽고,
그리고 악창이 나서 기왓장으로 몸을 긁는 처참한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욥의 아내가 그의 그런 모습을 보고 참다 못해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Curse God and Die!)"고 합니다.
2.
욥기는 욥의 율법적 믿음을 참된 믿음으로 바꾸어 주는 과정을
우리에게 계시하고 있습니다.
욥이 처음에 가졌던 믿음은 율법적 믿음입니다.
즉, 하나님이 복을 주어서 더더욱 하나님을 열심히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단이 욥을 참소할 때,
욥이 까닭없이 하나님을 경외하리이까?
그의 재산과 자식을 울타리로 두르고 보호해 주어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사실 이것이 욥의 믿음이라면 하나님의 입장으로서는
기뻐하실 수 없는 믿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런 믿음은 욥에게
하나님보다 재산과 자식과 자신의 건강이 더 중요하다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남녀간의 관계에 있어도 여자가 남자를 돈이 많기에
사랑한다고 하면 남자는 기분이 무척 나쁠 것입니다.
왜냐하면 여자가 자신보다 돈을 더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인 우리도 그럴진대 하나님을 그런 식으로 대한다면
하나님께서 당연히 기뻐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을 때,
이런 믿음의 패턴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한번 조금만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렇지 않고 어떻게 믿을 수나 있는지를...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알거나 모르거나 그렇게 복 주시는 하나님으로 믿게 됩니다.
알지 못하던 세대에는 그렇게 믿는 것을 허물치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모두가 예수를 믿어야 합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런 기복신앙적으로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참된 믿음의 길을 따라 나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예수를 믿고 믿음을 쌓았다고는 하지만,
그것은 예수의 믿음이 아니라, 고난을 받은 초창기 욥의 믿음에 불과한 것입니다.
3.
그러나 이 예수의 믿음은 우리가 이 세상에 속해 있으면서
얻을 수 있는 믿음이 아닙니다.
이 믿음은 그래서 예수와 함께 나 개인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고
부활한 후에야 얻을 수 있습니다.
이때 받는 믿음은 예수의 믿음이고, 이 믿음을 가지면 더 이상 하나님을 믿을 때
예수를 믿을 때 기복적으로 믿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하나되어서 하나님의 마음으로 남은 인생을 살기 때문입니다.
4.
우리가 이런 율법적 믿음에서 예수의 믿음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꼭 거쳐야 할 한 최종단계가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욥의 아내가
하고자 하는 그 말을 하게 되는 죽음의 상황을 겪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은 항상 거래에 입각한 믿음,
하나님과 흥정하는 율법적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가
예수를 믿는다고 하지만 예수의 믿음을 보지도 못하고 죽게 됩니다.
그럼 욥의 아내가 말하는 이런 상황이 어떤 상황이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예수께 기대하는 모든 것,
그 최종의 것을 받지 못한 상태에 이르른 때를 말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따르는 것은 우리가 바라는 것을
얻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바라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 나라를 가 본적도 없으니, 알 수도 없습니다
입으로야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한다고 기도하지만,
사실은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우리의 지식으로 알 수 없는 영역 밖이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우리는 모든 정성을 다해서 좋은 것을 주실 줄로 믿고
예수를 따르고 믿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대로 그리고 성경의 기록대로 그 좋은 것을 주십니다.
그러나 여기서 하나 알아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5.
무슨 의미로 이 말씀을 드리는가 하면 이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서다 보면,
세상 것을 버리고 좋은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면서
모든 정성을 다하고, 아픔과 괴로움의 모든 순간을 감내해 가면서
따라 가게 됩니다.
그런데도 때가 되면 주님은 내가 원하는 것을 주지도 않고,
또 자신은 그런 것을 주는 분이 아니라고 말씀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좋은 것은 주지 않고 있으니 우리는 견디고 또 견디다가 최종적으로
계산을 합니다.
"내가 지금까지 예수를 왜 따라 나선 것인가?"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한다면 예수를 왜 믿는 것이야?"
이런 판단이 서면 이제 그동안 따라 나섰던 예수에 대해서
원한이 맺히게 됩니다.
"내 한 인생 예수 따른다고 하다가 망쳤다."
심히 분한 마음과 원망이 생깁니다.
이때는 교회에다 욕을 하고 떠나가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깁니다.
욥의 아내가 한 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의 그때 상황입니다.
6.
마태복음 16장에서 3년 반동안 예수를 모든 것을 버리고 따랐던
베드로를 위시한 제자들에게 "이때부터"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베드로에게는 이 말이 청천벽력같은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자신의 모든 인생을 투자해서 예수를 따랐는데
죽어버리면 닭 쫒던 개 신세가 되어 버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예수를 책망하며 죽으면 안된다고 합니다.
예수를 사랑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예수 죽으면 그동안 자신이 투자했던 시간과
인생 전체가 물거품이 되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좋은 것을 얻을 줄 알고 전 인생을 투자하여 따랐는데
얻는 것은 아무 것도 없으니, 이 세상에서의 죽음과 같은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나는 죽어야 하니 너에게 좋은 것 못주고 죽어서 미안하다"는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사단아 물러가라"고 책망을 하십니다.
이 말을 들은 베드로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그 당시 베드로의 마음 속에는 여러가지 생각이 떠 올랐을 것입니다.
욥의 아내의 말도 이때 베드로가 할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상황에서 분을 삭히고
내가 못된 자에게 속았다며 예수를 떠나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욕하고 죽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바로 자신의 옛사람에게 속아서 그간 힘들게 예수를
따랐던 것을 무효화 시키고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죽음을 통과한 후에 임하는 것이니,
우리가 아는 것은 죽음까지 밖에 모르기에 예수를 따라서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기껏 예수를 따라 나섰다가 죽기 싫어서 예수를 등지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서 죽어야 부활의 예수를 영접할 수 있고 하나님의 나라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이때가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는다 (갈2:20)" 그 바울의
말씀이 나에게 응할 때입니다.
[계 14:13]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기록하라
자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가라사대 그러하다 저희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저희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는 말과
주 안에서 죽는다는 말의 뜻을 잘 이해하고
주 안에서 죽고 하나님의 나라로 부활하여
남은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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