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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참 구원의 과정 (3/4): 불의한 증인이 알지 못하는 일로 힐문하며...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5-08-07 09:57 조회 |2,557회

본문


[시 35:11-13] 
11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12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13 나는 저희가 병 들었을 때에 굵은 베옷을 입으며 금식하여 
내 영혼을 괴롭게 하였더니 내 기도가 내 품으로 돌아왔도다

1. 들어가는 말 

이전 글에서는 율법적 믿음을 가진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에 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율법적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를 복음의 길로, 
구원의 길로 인도하실 때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어 그 일을 이루십니다. 
이렇게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는  일은 예수와 현 시대에 
예수의 생명을 받아 한 생명에 안에 있는 '사람들' 이외에는 
다른 어떤 이들도 할 수 없습니다. 

예수가 우리를 복음으로 인도하는 길은
나의 옛사람(귀신들린 나, 죄의 나)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이며(갈 2:20), 
예수께서 나를 고치는 고침의 기간으로서 
내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부인하여 예수를 
따르는 과정입니다(마 16:24). 

2. 고침의 과정

이때에 예수님은 '귀신들린 나'를 '귀신'으로부터 분리하고, 
'죄의 노예인 나'를 '죄'로 부터 분리하는 일이 진행됩니다. 

이 중요한 시기에 나는 예수 편을 들어 주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나의 현 주인인 귀신의 속임수에 넘어가 귀신 편을 들어 
주어 자신을 그의 처소로 내어 주게 됩니다.  

예수는 내가 속은 부분을 지적하고 말씀으로 조명합니다. 
금방 깨닫는 때도 있지만 십자가에 다가갈 수록 
내 안의 귀신은 더욱 교묘하게 숨어 들어가 나를 속여
내가 예수를 대적하게 만듭니다. 

이런 고침은 한 두번으로 그치는 것이 아닙니다.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3년 반에 걸쳐서 그랬고 
그 전쟁이 십자가에서 비로소 끝났습니다.   

이 과정은 '죄의 나'가 '죄 없는 나'로 거듭나는 과정입니다. 
 
3.  불의한 예수 

죄의 종인 나를 죄로부터 분리해 나갈 때, 
나의 눈에 예수가 나를 사사건건 책망하는 자요, 
해하려는 자요, 급기야는 죽이려는 자로 보이게 됩니다. 

당연합니다. 옛사람인 내가 볼 때  그렇게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나에게 불의한 예수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그 자신의 안의 귀신의 사주를 받아서,
물론 속아서 모르지만, 자신들을 구원하려는 예수를 
죽였습니다.  

4. 알지 못하는 우리

우리가 알면 죄의 종노릇을 하지 않겠지요. 
죄가 제시하는 타당한 이유와 선을 하나님의 것으로 
알고 동의해서 죄의 종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 결과, 죄의 종도 그 나름대로 선에 의지했고 
자신은 선하게 행동했다는 그릇된 생각에 잡혀 있게 됩니다. 
우리를 대변하는 성경의 바리새인들을 생각해 보면 됩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와서 이렇게 우리가 속아서 선한 행동이라고 
한 악한 행동, 죄의 행동들을 지적하여 그 행동 속에서 악을 
제거하게 하십니다.  

여기서 한가지 말씀드리자면, 죄인은 항상 죄를 짓습니다. 
그래서 뭐 새삼 죄의 행동을 지적 받는다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렇게 지적을 받는 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고치기 위해서 모든 상황을 조성하여 
우리가 넘어질 때 그때 지적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비로소 자신이 죄를 짓는 죄인이라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경우 알지 못하는 우리는 
"황당하다", 
"내 의도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악하다고 한다" 
이렇게 생각하게 됩니다. 
이럴 경우 우리는 더욱 더 예수의 지적에 심한 반발을 보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의도하지 않았다고 내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죄의 생명을 가졌기에 모든 움직임이 죄의 행동입니다. 

내가 인생 의도적으로 선하게 살고, 예수 잘 믿으며 살려고 해도, 
결과적으로 공허하고 알맹이 없는 인생으로, 그리고 헛깨비 믿음의 
소유자로 살다 죽는 것을 봅니다. 
이것은 나의 의도와 상관없이 헛깨비인 귀신을 나의 주인으로 
섬기고 살았다는 산 증거입니다. 
귀신을 섬겼기에 귀신의 열매인 헛된 것을 추수하는 것입니다. 

결국 지금 숨 쉬고 있는 나는, 내가 아닌 귀신에 잡힌 나입니다. 
그러니, 내 의도가 선했으니 내 행동도 선하다는 착각을 이 순간 
버려야 합니다. 

5. 불의한 증인이 알지 못하는 일로 힐문하며...

자, 이런 배경 지식을 가지면 본문 다윗의 고백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시 35:11-12]
11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내가 알지 못하는 일로 내게 힐문하며
12 내게 선을 악으로 갚아 나의 영혼을 외롭게 하나

다윗이 그리스도에 의해서 강한 약탈자(귀신)으로부터 구원을 
받는 과정에서의 고백입니다. 
그의 눈에는 자신을 지적하는 예수 그리스도가 불의한 증인으로 
보입니다. 그 불의한 증인이 일어나서 자신이 알지 못하고 의도하지 
않았던 일을 가지고, 
"너 이것 잘못했다." 
"이때 이런 악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 않았느냐?" 
이렇게 힐문하는 것으로 인식하게 됩니다. 
나는 의도하지 않았고 그런 생각조차 없었다는 항변인 셈입니다. 

더욱이 다윗은 
'예수 그리스도가(불의한 증인이) 내(다윗)가 악한 일을 했다고 하는데 
나는 모든 일에 선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고 행했을 뿐이다. 
그런데 나 보고 악을 행했다고?선을 악으로 갚는구만... 
아! 황당하고 어이 없구나! 누가 이 외로운 내 영혼을 이해하랴'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십시오.
구제, 봉사, 십일조, 기도, 금식 등을 죽기 살기로 했는데 
예수가 와서 너희들 그것 사람에게 보이려고 한 것이야, 
하나님이 받지 않으신다고 했을 때 그들의 반응을 기억하십시오.
그들은 예수를 배척하고 죽였습니다. 
그리고 바리새인들은 지금 내 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믿는다면 이런 일들을 겪게 될텐데 
그때 바리새인의 길을 가지 않도록 기도하십시오.   

너무 길어지기 때문에 다음 편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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