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출생하지 않은 자가 더욱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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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9-01-19 13:46 조회 |1,932회본문
출생하지 않은 자가 더욱 낫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전도서 이 말씀은 세상 악과 학대로 인한 인생무상과 염세주의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만 같이 보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생명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3개 절은 우리가 새생명을 받아 구원 받는 점진적 과정을 말합니다.
1절은 우리가 구원받지 못해서 힘든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2절은 구원은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지에 관해서 말하고
3절은 드디어 구원을 받은 자가 어떤 자인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1절의 사람보다, 2절의 사람이 낫고,
2절의 사람보다 3절의 사람이 더 낫습니다.
2. 학대자와 위로자
1절은 우리가 율법 아래서 자기 힘으로 힘들게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학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자신 안에 있는 옛사람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거반 죽어가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자신이 자신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자신이 학대자이면서도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학대받는 자입니다.
학대자의 손에 권세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옛사람을 이길 수 없고
그로부터 벗어나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3.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낫다
2절은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 것에 관해서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 자'는 자신 안에 옛사람이 살아 있는 우리를 말합니다.
(다른 측면에서 그런 우리는 '새생명이 없는 죽은 자'입니다.)
반면 '죽은 자'는 그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우리를 말합니다.
(그는 다른 측면에서 이런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산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은 죽은 자는, 그와 함께 새생명으로 사는 산 자가 되는데,
그러나 예수와 함께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산 자는 새생명이 없는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 16: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말씀은 자기 율법 아래의 옛생명을 살리는 '산 자'는 새 생명을 잃을 것이고
예수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죽은 자'는 새 생명을 찾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4. 나지 않은 자가 더 낫다
그러므로 이 둘이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영적 전쟁이 있을 때이고
아직 평화가 임하지 않을 때입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죽고 다시나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출생하지 아니한 자', '나지 아니 한 자'라고 말합니다.
'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이 세상에 없는 자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때 그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그래서 예수는 그가 그 '나지 않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데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난 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자가 아닙니다. 나지 아니 한 자입니다.
5. 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이왕 이 귀한 한 평생을 우리 주셨으니,
어설프게 예수 믿는데 허비할 것이 아니라,
[전 4:1-3]
1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보았도다
오호라 학대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저희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2 그러므로 나는 살아 있는 산 자보다 죽은 지 오랜 죽은 자를 복되다 하였으며
3 이 둘보다도 출생하지 아니하여 해 아래서 행하는 악을 보지 못한 자가
더욱 낫다 하였노라
1. 일반
그럼에도 성경이 이런 것을 말한다는 것이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고민하는 분들은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기 원할 것입니다. 그런 분들만 같이 보십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여전히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보이지 않는 생명이 우리에게 오는 과정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선 이 3개 절은 우리가 새생명을 받아 구원 받는 점진적 과정을 말합니다.
1절은 우리가 구원받지 못해서 힘든 상황을 말하는 것이고
2절은 구원은 어떻게 받게 되는 것인지에 관해서 말하고
3절은 드디어 구원을 받은 자가 어떤 자인지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1절의 사람보다, 2절의 사람이 낫고,
2절의 사람보다 3절의 사람이 더 낫습니다.
2. 학대자와 위로자
1절은 우리가 율법 아래서 자기 힘으로 힘들게 구원받으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말합니다. 학대를 받는다는 것은 자신이 자신 안에 있는 옛사람이 지킬 수 없는
율법을 지키라고 하면서 거반 죽어가게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자신이 자신에게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게 하는 것'이며
이것은 결국 자신이 학대자이면서도 동시에 눈물을 흘리는 학대받는 자입니다.
학대자의 손에 권세가 있다는 것은 우리가 우리 안의 옛사람을 이길 수 없고
그로부터 벗어나서 행할 수 없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위로가 없다는 의미는 그들에게는 구원 받은 자에게 임하는 위로자,
즉, 성령이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3. 산 자보다 죽은 자가 낫다
2절은 그런 우리가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 것에 관해서 말합니다.
이 2절의 말씀에 해당되는 사람들은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서 구원을 향하여 그의 인도함을 받는 우리들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그런 우리는 '새생명이 없는 죽은 자'입니다.)
반면 '죽은 자'는 그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혀 죽은 우리를 말합니다.
(그는 다른 측면에서 이런 우리는 '새 생명을 받은 산 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예수와 함께 죽은 죽은 자는, 그와 함께 새생명으로 사는 산 자가 되는데,
그러나 예수와 함께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산 자는 새생명이 없는 죽은 자입니다.
그러므로 죽은 자가 산 자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마 16: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이 말씀은 자기 율법 아래의 옛생명을 살리는 '산 자'는 새 생명을 잃을 것이고
예수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죽는 '죽은 자'는 새 생명을 찾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전도자가 말하는 대로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즉은 자'가
그렇지 않은 '산 자'보다 낫다고 하는 것입니다.
4. 나지 않은 자가 더 낫다
3절 말씀은 이 둘 보다 아예 나지 않는 자가 악을 보지
않음으로 더욱 낫다고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산 자와 죽은 자는 2절에서 말한 자들로서,
우리 안에서 자신의 옛사람이 '산 자'와 옛사람이 '죽은 자'를 지칭합니다.
이 둘은 우리가 예수의 인도함을 받아 십자가로 가는 과정에서
서로 치열하게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둘이 있다는 것은 우리 안에서 영적 전쟁이 있을 때이고
아직 평화가 임하지 않을 때입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산 자가 십자가에 죽은 자가 되어서 새생명을
받는 것입니다. 이렇게 죽은 자가 죽고 다시 나서 부활생명을 받으면
이제 우리의 소속은 이 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속하게 됩니다. 이런 사람은 하나님과 동행하다가 십자가에서 죽고 거듭나 휴거되어서
이 세상에 없게 된 에녹과 같은 사람이고,
예수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살았지만 이 세상에 속하지 않은
이 세상에 없는 분이었던 것과 같습니다.
전도자는 이렇게 죽고 다시나서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사람들은
'출생하지 아니한 자', '나지 아니 한 자'라고 말합니다.
'나지 아니한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속한 이 세상에 없는 자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를 팔때 그를 두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6:24]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유다가 악한 일을 했기 때문에 출생하지 않으면
그 짓을 못했을 것이라는의미가 아닙니다.
십자가를 바로 눈 앞에 두고 예수를 배반하여 판 유다는
'나지 않은 사람'이 되는 그 마지막 순간에서 포기한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는 그가 그 '나지 않은 사람'이 되지 못한 것데 대한
안타까움을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자신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죽고 다시 난 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태어나 있는 자가 아닙니다. 나지 아니 한 자입니다.
이런 자들은 자신들 안에서 더 이상 악을 보지 않습니다.
주기도문에서 처럼, 다만 악의 세상에서 죽음으로 거기서
구함을 받은 자들입니다.
5. 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하나님께 이왕 이 귀한 한 평생을 우리 주셨으니,
어설프게 예수 믿는데 허비할 것이 아니라,
제대로 믿어서 '나지 않은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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