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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8:9-14]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작성일 |10-10-10 15:48 조회 |5,715회

본문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눅 18:9-14]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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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그 동안 말씀을 통하여 예수 믿으러 교회에 나오는 것은 헌금하여 형제를 도와주고, 이북에 쌀을 보내 주는 운동에 동참하며 예수를 전도하기 위해서 나오는 것이 주 목적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교회에 나오는 참 목적은 오직 개개인 자신이 고침을 받아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고, 남은 인생 예수의 사랑의 생명으로 살기 위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며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의 선한 일에 매몰되어 하나님과 분리된 자신을 드러내고 고치시는 분입니다.

반면 우리는 이런 단순하고 명확한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또는 알기를 원치 않아서 일부러 외면합니다. 그리고는 갖은 구실을 다 붙여서 예수를 위해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믿지만 고침을 받지 못하고 예수를 위하여 일만하다가 한 믿음의 인생을 마치는 신자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무릎치며 읽는 성경 3’에서 이런 식으로 믿는 사람들의 예수는 “일 시키는 예수”라고 표현한 바가 있습니다.
이런 예수는 이름만 예수지 본질상 율법의 모세입니다. 따라서 예수를 이런 식을 믿고 섬기는 것은 아직 자신이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의 신앙이 자신이 무엇을 해서 하나님께 드리고 그에 대한 보상으로 천국도 받고, 복도 받으려는 기복신앙입니다. 이런 사람에게 구원은 없습니다. 율법에는 구원이 없기 때문입니다.

물론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어떤 형태로든 일을 합니다. 우리를 고치는 예수가 있는 이 교회에서도 다른 교회들과 마찬가지로 전도하고, 성경공부하고, 구제하고, 기도하고 찬양하고 금식하고 다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일 시키는 예수와 우리를 고치는 예수는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외형상으로는 차이를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 삶 속에서 자신을 고치는 주님의 손길을 보고 그로 인하여 고침을 받게 하는 교회와 그 모든 일 속에서 주님의 고침의 손길을 알지도 못하고 지나치는 교회가 있습니다. 이 두 부류의 교회가 시간이 갈수록 차이가 날 것은 두말할 것도 없습니다. 고침이 없는 교회는 주일날 나와서 강대상에서 구제의 쌀을 나누자는 말씀을 듣고 열심을 내어서 나눕니다, 그저 세상의 방식대로 일하고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상급을 받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그 일을 통하여 고침을 받아야 함을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 지 못합니다. 그러나 죄인이 무슨 일을 한들 하나님께서 받으시겠습니까? 오직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은 자신이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나와서 예수 믿겠다는 고백을 함으로 의인된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살아 있을 때 의롭다 함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죽은 다음에 들어가지” 하는 사람은 속는 것이고 그때는 이미 늦습니다. 우리는 기필코 인생 길에서 예수에 의해 고침을 받고 원수와 화해해야 합니다 (눅 12:58).

  따라서 예수를 믿는 것은 예수를 위해서 일하기 위함이 아니라,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고 의롭게 되기 위함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는 것, 이것이 예수 믿는 모든 것입니다. 오늘 말씀도 이런 측면에서 보도록 하겠습니다.

개요

누가복음 17장 후반부터 지금까지는 주님이 우리를 다 고치고 옛사람의 주검을 보게 되었을 때, 우리 안에 오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 오는 것에 관해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니 그 고침과 죽음의 과정에서 낙심하지 말고 기도할 것을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로 말씀하셨고, 이어서 오늘은 이렇게 고침을 받는 과정에서 어떤 자가 되어야 결국 그 나라에 들어 갈 수 있는가를 말씀하십니다. 즉, 자기를 의롭다 하고 남을 멸시하는 바리새인과 자신의 가슴을 치며 오직 하나님께 자신을 불쌍히 여겨 달라는 세리를 비교하며,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자, 이 말씀을 통해서 자기를 높이는 자는 누구이고 낮추는 자는 누구인지 그리고 어떻게 하면 우리를 낮추어서 높임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해서 말씀 드립니다.

2. 본문강해

2.1 자기를 의롭다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 (눅 18:9-12)

9/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10/ 두 사람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가니 하나는 바리새인이요 하나는 세리라11/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가로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12/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

우리 중에 이런 사람은 없습니다. 즉, 우리 자신은 남을 멸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선하고 착하고, 사리 분별이 있고, 남을 존중하고, 배려하고 남들에게 악을 행하지 않는다는 바탕 생각이 있습니다. 혹, 그런 일을 한다는 지적을 받았을 때도 생각해 보면 자신은 어쩔 수 없이 그랬고, 그래야 마땅한 것이고 그래서 또한 선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스스로 생각하기에 선합니다. 왜냐하면 선하게 살아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고 그런 선의식이 오늘날 우리를 살게 하는 원동력입니다. 이런 기본생각이 있기에 여기 등장하는 바리새인은 교만하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로서 지금의 ‘나’와는 판이한 종류의 사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결국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을 드러내서 고칠 기회를 상실하게 됩니다.

그러나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바리새인은 이런 사람입니다.
그는 성전에서 기도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남의 물건을 훔치지 않았고, 불의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는 세리와 같이 동족에게 세금을 착취하여 로마에 바치는 일을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일주일에 두 번 하나님을 위하여 금식하고, 모든 소득의 십일조를 드립니다.” 바리새인은 그런 일을 하고 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들은 이와 같이 경건한 삶을 살았습니다. 어디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금 우리로 말하자면 교회 와서 마음 속으로 “주님, 오늘은 예식이 겹치는데 우선 교회에 나와서 이렇게 예배를 드립니다.” “없는 중에도 십일조는 꼬박꼬박 최우선적으로 드렸고, 또한 주님께서 감동을 주실 때 삼일 금식을 연달아 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습니다.” “저는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있다고, 제 딸을 제 근무처에 특별 채용하지 않았으며, 구제했고, 자선 사업에도 열심을 내었습니다.” 하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의 기도내용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요? 없습니다. 혹시 있다면 바리새인의 열심에 우리가 쫓아 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 중에 바리새인처럼 신앙적 열심을 보이는 사람은 지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해서든지 십일조를 내지 않으려 하고, 구제도, 기도도, 금식도 적당히 하면서 틈틈이 교회도 빠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선을 추구하는 그들의 열심을 우리들은 쫓아가지 못합니다. 그런 바리새인에게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너는 의롭다 함을 받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이 이 말을 들을 정도니 그들에 미치지 못하는 우리들에게 주님이 무슨 말씀을 하실지는 듣지 않아도 뻔합니다.

사실 우리 모두는 바리새인과 같은 선을 추구합니다. 교회에 다니지 않았을 때도 도적질(토색), 불의,간음하지 않았고 세리처럼 없는 자를 착취하지도 않았습니다. 교회에 나와서는 그 위에 더해서 십일조도 하고, 금식도 합니다. 이처럼 모든 인생은 선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바리새인 한 사람을 놓고 그가 의롭다 함을 받지 못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이 바리새인은 종교인과 비 종교인, 즉 인류 전체를 대표하는 한 모델입니다. 이렇게 인생은 본질적으로 선을 추구하게 되는데 여기에는 커다란 함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추구하고 행한 선을 기반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멸시하고, 급기야는 자기가 한대로 하지 않으면 압제하게 됩니다. 이런 압제가 극대화 된 것이 싸움입니다. 이것이 나라와 나라 사이에 발전이 되면 전쟁이 되며,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이 세상의 모습입니다. 선을 행했는데 그것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악이 함께 하여 악이 표출되고 그래서 악한 세상이 된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 옳다함에 지금까지의 인생을 살아 왔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악한 세상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제가 이런 말을 하면 어떤 사람들은 “그렇다면 도적질 하라는 말이냐?,” “불의하라는 말이냐?’, 또는 “간음해도 괜찮다는 말이냐?”하고 항변합니다. 아닙니다. 그렇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한다면 이 세상에서 제대로 된 삶을 유지할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 옳다함의 선을 추구하는 삶을 살았다고 하나님께서 그런 사람들을 의롭다 하지도 않고 또한 하나님의 나라를 주지도 않습니다. 세상에서의 선한 삶을 사는 것과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동일시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어쨌거나 이 세상에서의 선 추구는 필연적으로 상대를 판단하고 멸시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 말고 다른 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의 선 추구는 예수님의 심판의 대상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의 현재 모습입니다. 이런 우리가 지금 여기 바리새인으로 대표되고 있습니다.

2.2 세리는 죄인 (눅 18:13)

13/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가로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

지금까지 살펴 본 바리새인이란, 자기가 무엇을 할 수 있다는 생각, 자기 잘난 생각에 이렇게도 하고 저렇게도 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의 문제는 아직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해서 그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고 오직 자신의 옳다 함으로 선도 행하고 하나님도 예수도 믿어 주는 것입니다. 지금 선포되는 말씀을 듣고 주님을 의지하고 주님과 동행해야지 하며 행동을 똑같이 따라 한다거나, 그렇게 하고 있다고 말을 한다고 해도 실제적으로 예수님과 동행함이 없다면 자신 안에 있는 교만이 아직 죽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옳다함에 의해 움직일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자기 옳다함의 삶에서 지친 사람은 진정 하나님께 기도 하고 순종하여 고침 받기를 원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진리를 대적하는 자신의 모든 이론과 옳다함을 내려놓고 주님의 인도함을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이들에게는 주님의 말씀에 어떤 이유나, 논리나, 따짐과 반항과 원망이 없습니다. 그는 여기 나오는 세리처럼 가슴을 치며 고백할 것입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때 세리가 무엇을 안다고 했는데 그렇지 않다거나, 세금을 착취하고 백성을 괴롭힌 것 등을 일일이 나열한다면 아직 교만한 것입니다. 그것은 사치이고, 아직 덜 지쳤기 때문입니다. 그저, 주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 고백만이 저절로 나와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고백 또한 따라 하려는 사람이 있다면 아직 조금 기다리시기 바랍니다. 그냥 저절로 나올 때까지...

여기서 세리는 세금을 걷는 자로 당시 사람들의 원성을 사고 그들로부터 분리된 자였습니다. 죄인도, 창녀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을 자기 옳다함으로 살다가 지쳐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회개한 자들의 상징입니다. 이들이 의롭다 함을 받는 자들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의롭다 하심을 입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자들은 세상에서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로 인하여 지치고 곤하여 회개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세상 선을 하나님의 선으로 착각하여 혼동하지 말고, 명확히 구분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3 높이는 자 낮아지고, 낮추는 자 높아지리라 (눅 18:14)

1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 갔느니라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하시니라

이 말씀에서 우리는 선을 행하는 바리새인이 아니라, 죄를 회개하는 세리 즉 죄인이어야 함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세리, 죄인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문제는 자신이 죄인인데 죄인인 줄 모르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삶 속에서 의인인 예수그리스도 를 만나야 합니다. 그러면 그 의인에 의해서 죄인인 자신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인의 인도함을 받는 상황에서는 천 년을 따라다녀도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 수 없습니다. 오직 의인을 만나야 자신이 어디가 문제인지를 알게 되고, 이때 세상에 지친 사람은 그런 모습을 고치고자 주님을 따르게 됩니다. 제자들의 경우,의인이신 주님에 의해서 자신이 죄인임이 드러나고,점차 죄성이 분리되어 나가는 3년 반이 자신의 죄인됨을 고백하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죄인 됨의 고백이 완성되었을 때에 십자가 사건은 일어나는 것이고, 비로소 죄 사함을 받고 의롭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자신의 옳다함을 버리고 주님의 인도함 앞에 자신을 낮추고 순종한 결과이고, 그 결과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 입니다. 이것이 높아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난 사람은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길로 인도함을 받습니다. 이 과정이 주님께서 우리를 능동적으로 낮추시는 과정이고, 이전의 표현으로는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과 노아 때 물 심판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서 같이 신앙 생활하는 성도들을 주님께서 한 분 한 분을 소중히 여기시고 진리의 길로, 심판을 통과하는 낮은 자리로 인도하고 계십니다. 아마 다른 곳 같았으면 견디기 힘든 그런 환경과 상황인데도 오직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이 길이 진리의 길이기 때문에 여러분 스스로의 판단으로 잘 견디어 나가는 것입 니다. 견디고, 또 견디려고 애쓰는 여러분을 볼 때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이런 과정을 거쳐서 우리는 영적으로 세리와 죄인의 자리로 가게 되는 것이고 그로 인하여 의롭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의 친구가 있는 하나님의 나라에 가게 됩니다. 이렇게 낮아져서 높아지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죄인, 이것은 어떤 개개인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생의 믿음의 성장 과정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바리새인으로 시작하여, 예수를 만나면 죄인으로 낮춤 받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영광을 보게 됩니다. 흔히들 예수를 기독교의 교주 정도로 생각하거나, 또는 예수가 모든 종교의 가르침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만, 전부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예수는 모든 인류에게 진리입니다. 그리고 다른 종교에 있다고 하는 예수는 예수가 아니라, 율법이며 사람이 만든 세상 선을 진리의 예수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3. 맺음 말

정리하자면, 자신을 높이는 자는 자기 옳다함으로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 없이 사는 자입니다. 이런 자는 겸손한 행동을 하고 선행을 한다 하여도 또는 무슨 옳은 일을 하여도 그 모든 것이 자신을 높이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저 바깥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반면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서 온전히 순종하여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자리에까지 가면, 그는 이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그리고 낮은 자리로 가는 것, 교만하지 않은 것, 그 길은 우리가 홀로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오직 주님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내어 맡기고, 주님께서 되었다 했을 그때에, 눈을 떠 보면 그곳이 곧 천국일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환경에서 역사하시는 주님께 자신을 맡길 수 있습니까? 그럼 예수 제대로 믿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곧 높임을 받을 것입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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