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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16-요일 3: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6-10 00:10 조회 |4,013회

본문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 3:1-3] 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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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많은 명령을 접하게 됩니다.
  "이웃을 사랑하라", "판단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등등...
    우리는 그동안 그렇게 해 왔습니다. 아니면 적어도 그렇게 하려고 노력을 해왔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으로서 주님의 명령에 따르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방식으로 예수를 믿은 것의 결과는 그리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여전히 허무하고 부족하고, 예수 믿는 것이 무엇인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고, 여전히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여 방황하고 있는 우리 자신을 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 믿는 것이 운명이려니...'하고 체험하고 있을 즈음에 우리는 자유교회의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그동안의 문제가 무엇이었을까요? 우리가 주님께 순종을 한다고는 했지만 그것이 과연 올바른 순종이었는지를 살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순종을 했는지에 따라서 진리와 비 진리가 갈리고, 복음과 율법이 갈라지게 됩니다. 비 진리와 율법은 우리가 지금까지 해 온대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고 이런 것을 좋아하시겠지 하면서 자기 스스로 주님이 기뻐하실 듯한 일들을 행하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와 복음은 말씀이신 살아계신 예수를 만나서 그 분의 실질적인 인도함을 받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의 말대로 기름 부음의 가르침을 받는 것입니다. 바로 이 차이입니다. 그리고 이 차이는 살아계신 예수를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만이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주님의 뜻을 행했고 행한다는 명분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실질적으로 살아계신 주님의 말씀을 지금 듣고 따라 나서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를 사랑할 수 잇는 사람, 판단하지 않는 사람,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하고, 판단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는 사람이 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우리의 행위를 사사건건 이렇게 해라 저렇게 해라 간섭하신다면 우리에게 창조의 목적을 다 이루었다고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너희 맘대로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에게서 사랑의 삶, 예수의 삶이 흘러나오게 될 때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우리에게 비로소 이루어진 것입니다. 아직 우리 자신이 이런 사람이 되지 못했다면 아직 우리는 온전히 하나님의 손길에 의해서 창조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지금 우리에게 그 창조를 완성하기 위해서 인도하게 계십니다.
 
  본문 말씀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도 우리 존재의 변화를 통하여 성취되는 말씀으로 읽기 원합니다.
  우선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큰 사랑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고, 세상이 이런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지금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고,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안다고 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는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한다고 말합니다.
  이 말씀의 의미를 함께 보겠습니다.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요일 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니라

  요한은 교인들에게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주셔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일컬음 얻게 하셨는가 생각하라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교회 나와서 예수를 마음 속으로 영접한다고 말하면 하나님의 자녀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고 단순하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 때는 긴 세월 율법 아래서 예수 믿다가 지쳐서 회개하고 참 예수의 생명으로 잉태 되었을 때부터입니다. 물론 해산을 해야 하나님의 자녀로서 완성되는 것이지만 여기서 요한은 잉태시점부터 하나님의 자녀라고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신 것을 어떠한 사랑으로 표현합니다. 따라서 어떤 사랑이란 어떤 극진한 사랑이라는 의미라기 보다는 아버지와 아들 간의 생명으로 하나된 사랑을 말합니다.
  예컨대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주인과 종의 관계인 상태에서 주인 종을 아무리 극진하게 사랑한다 한들, 거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아버지와 아들 관계를 가지게 된다면 그 자체가 곧 지고(至高)의 사랑입니다. 율법 아래서 예수를 믿을 때,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는 주인과 종의 관계이고, 복음 아래서는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입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의 생명의 씨를 받아 잉태한 자들로서 하나님과 온전한 부자지간의 관계를 형성하는 과정 중에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가 받고 있는 말씀과 생명은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소중하고 따라서 세상의 모든 것을 팔아서라도 소유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사랑을 얻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세상에서는 그에 상응한 반응을 보이게 됩니다. 그것은 그런 우리를 이상하게 보고 반대하는 것입니다. 하기야 이상할 것도 없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곧 이 세상으로부터 휴거 되어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악착같이 붙잡아 일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회유도 하고 핍박도 하고 아무튼 할 수 있는 것을 다합니다.

  그들은 오직 그 교회만 말고 다른 교회에 나가라고 합니다. 그러면 자신도 함께 그 교회에 나가겠다고 합니다. 이런 듣고 있던 옆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은 이렇게 맞장구를 칩니다.
  "아니, 아무 교회나 나가면 되지 그 교회에만 하나님이 있다는 것이냐?"
  무지하니까 자신이 무슨 말을 어떻게 하는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긴 세월 예수를 믿었지만, 예수가 누군지, 구원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자녀가 어떻게 되는지를 모르기 때문에 세상 편을 드는 것입니다. 같은 예수 믿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람들을 만나면 마음이 참담해 질 뿐입니다.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몰라

[요일 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인데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을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 주님이 나타난 바 되면 우리는 그와 같을 줄 아는데 이는 그가 게신 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에 대한 기존 이해는 예수께서 구름 타고 재림할 때, 그때는 예수를 제대로 알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이 말하는 뜻은 우리의 이해와는 전혀 다릅니다.

  요한이 말하는 하나님의 자녀는 이런 사람입니다. 즉 긴 세월 율법 아래서 예수 믿던 사람이 그런 믿음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했을 때 말씀이신 참 예수를 만나서 자신 안에 예수의 생명이 잉태되었을 때를 맞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때의 하나님의 자녀는 아직 온전하지 않습니다. 잉태된 생명이 아직 세상 밖에 나오지 않은 때이기 때문에, 장래에 어떨 것인지는 아직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예수로 잉태된 생명이 해산의 때를 맞게 되면 우리는 그와 같이 될 것입니다. 예수의 말씀으로 잉태되었으니 그로 인하여 해산하게 되는 생명은 예수의 생명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들로 거듭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죄인에서 의인 예수와 같은 생명을 가진 자로 다시 나게 되는 것입니다. 이로써 하나님과 우리 사이가 더 이상 주인과 종 사이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성립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어떠한 사랑'입니다.

  또한 그의 계신 대로 본다는 의미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 여러 가지 선입견과 고정관념을 가지고 보게 됩니다. 그가 있는 그대로를 보는 것이 아니라, 기존 눈이 대상을 변형시켜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주님을 볼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옳다함의 눈으로 봅니다. 이것이 주님을 계신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왜곡된 시각으로 보는 것입니다. 죄인이고, 비 진리의 시각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는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의 옳다 하는 눈이 뽑히면 주님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습니다. 옳은 눈이 뽑히려면 기름 부음에 순종하여 그 안에 거하는 과정을 겪어야 합니다. 이렇게 눈이 고침을 받게 되면, 이제 주님을 볼 때 있는 그대로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가 주님이 우리 안에 나타나실 때이고 강림하실 때입니다. 주님과 하나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때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처럼 마음이 청결해 져서 하나님을 볼 때입니다.
    사도 바울도 같은 맥락에서 이와 같이 말합니다.
 
[고전 13: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예수와 하나 되어, 예수의 생명으로 , 예수의 삶을 살게 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자녀로 부름 받은 우리의 미래입니다.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요일3:3]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를 깨끗하게 하느니라

  주 안에서 이와 같이 주와 하나되어 주님과 같이 되는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주님의 깨끗하심 같이 자신을 깨끗게 한다고 합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는 결국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자신에게 나타내고 강림할 소망을 가지고 그 과정에서의 연단을 잘 견디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느 사람은 말하기를 이 교회 교인들은 정말 어려운 상황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잘 견디는 것이 참으로 놀랍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주를 본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그리고 그것을 이루려면 연단의 과정을 통과해야 하는 것 등을 명확히 압니다. 그래서 그것을 견딜 수 있는 힘이 있는 것입니다.
 
  이어서 요한은 주를 대면하여 볼 소망을 가진 자는 주님의 깨끗하심 같이 자신을 깨끗하게 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 말씀을 명령으로 생각하고 스스로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 스스로의 노력으로 깨끗하게 될 수 없습니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주님의 깨끗함이 무엇인지를 모릅니다. 주님의 깨끗함은 우리가 눈으로 보지 못하고 생각 못했던 것들입니다. 어찌 그것을 알아서 스스로 깨끗하게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에게는 없는 주님의 속성입니다. 따라서 주님의 깨끗함을 알려면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알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은 오직 살아 계신 주님의 이끌림을 받고 그리고 그에 순종함으로써 가능합니다. 그러면 주님의 깨끗함을 비롯하여 겸손, 온유, 사랑 이 모든 것들이 우리 것이 됩니다. 이것이 주님의 깨끗하심 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할 유일한 길입니다. 오직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면 주님이 우리에게 나타나실 때 그분의 깨끗함은 우리의 깨끗함이 됩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주님에 이끌려 고침을 받으면 받은 만큼, 주님의 깨끗함과 청결함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온전히 고침을 받고 우리 안에 주님이 임하면 그때 깨끗함과 청결함을 소유하게 됩니다. 결국 우리를 깨끗하게 하기 위해서는 주님 안에 거하여 따라 나서고, 깨끗하신 주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요한은 이러한 깨끗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맺는 말

  하나님이 주신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서 만들어 주심이 우리에게 베푸시는 한없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길을 가지 시작하면 세상은 우리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세상이 알지 못하는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칭함을 받을 때는 예수의 생명을 잉태했을 때입니다. 해산을 하면 주님과 같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 될 것이고, 그때는 주님을 대면하여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런 소망을 가진 자들은 주님께 순종하여 따라 나서게 됩니다. 이런 순종이 종국적으로 주님의 깨끗하심 같이 우리를 깨끗하게 할 것입니다.
 
  우리를 인도하는 기름 부음에 순종하여 주님의 깨끗하심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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