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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나를 번거롭게하니...(눅 18: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작성일 |10-09-20 19:24 조회 |5,970회

본문

 

나를 번거롭게 하니...

[눅 18:1-8]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 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1. 들어가는 말

무릎치며 읽는 성경 1권의 주된 내용이 성경 배열 순서에 따른 믿음의 성장과정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성경의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의 배열순서가 편의상 그렇게 배열된 것이 아니라, 우리의 믿음과 새 생명이 자라나는 과정에 입각하여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말씀 드렸습니다.
성경 전체가 그러하니, 그 성경 각권 안에 있는 내용 또한 위 장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배열되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7장에서는 20절 이하에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함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나라가 임하기 위해서는 노아의 홍수 때와 같은 물의 심판, 소돔과 고모라 때와 같은 불과 유황의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 심판의 때가 자신에게 지나야 자신은 데려감을 당하는 자, 즉 휴거를 받는 자로 고침을 받게 되고, 그렇게 해야 자신의 옳다함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예수 그리스도이신 독수리의 영접을 받게 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 안에 임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어지는 내용이 누가복음 18장의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의 내용입니다. 얼핏 보면 17장에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최후의 심판 때의 내용이고, 18장은 평상시 신앙생활 할 때 낙심하지 말고 기도해야 한다는 내용으로 이해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18장의 이 내용은 위의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과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우선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나중에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하심으로 평상시의 신앙생활 할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심판의 때 낙심하지 않고 기도해야 한다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평상시의 신앙생활 자체가 알고 보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심판의 때인데 우리는 그것을 잘 인지하지 못하고 별개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아무튼, 이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 이전에 또는 임할 때에 우리가 어떤 모습을 보여야 할 것인가에 관해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 심판의 때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것을 말씀하십니다.

비유는 어떤 도시에 재판관과 과부가 있었는데 이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합니다. 그런데 과부가 자신에 대한 원한을 갚아 달라고 하니, 자신이 그렇게 무서울 것이 없는 사람이나 이 과부가 기도를 끊이지 않고 하니 원한을 빨리 갚아 주어야 하겠다고 마음 먹는 비유를 들어 주시면서, 하물며 성도들이 기도하는 것을 빨리 들어 주시지 않겠느냐 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면서 또 이해하지 못할 말씀을 하십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심판을 받을 때 우리가 기도를 포기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될 이유에 관해서 말씀 드리고, 다음 시간에는 인자의 오심과 믿음의 발견을 중심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2. 본문강해

2.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 (눅 18:1-2)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

말씀 드린 대로 여기서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또는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기 위해서는 노아의 때와 같이 물의 심판, 소돔과 고모라의 때와 같이 불과 유황의 심판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 더러운 악을 제거하고 비진리적 생각과 사고를 태워버리는 과정이기 때문에 필수적인 과정입니다.

이것을 성경에서는 다른 말로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과정이라고 합니다. 우리자신이 세상 생각과 세상의 비진리적 옳다함, 거짓 아비 마귀의 옳다함에 잡혀 있기 때문에 우리자신이 곧 옛사람입니다. 이런 옛사람은 예수에 의해서 심판으로 드러나고 고침을 받아야 한다고 하니, 정말 죽기보다 더 싫은 것이 바로 이 예수에 의한 십자가 죽음입니다. 그래서 그 옛사람의 시각으로 보면 “예수가 나를 정말 죽이려고 해” “주님이 무서워..”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상황을 맞이한 사람은 그 주님을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선 주님이 드러내시는 것이 자신의 눈에 볼 때도 과연 고쳐야 하고, 버려야 할 것을 드러내시는 것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싫어하고 되고 싶지 않은 자신을 보게 해서 고치겠다는데 그것을 끝까지 붙잡고 있으려고 할 이유가 없는 것입니다. 주님의 인도함에 따라 포기하고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결단과 현명한 선택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실, 주님이 나를 죽이려고 한다는 그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가 과연 성경이 말하는 구원자 예수요 바로 자신을 구원할 유일한 분을 만났다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들은 이런 예수가 있는지 조차 알지 못하고 그저 자신에게 먹을 것 입을 것, 성경의 깨달음을 주는 예수로만 알고 있으니 그것이 그들의 불행인 것입니다. 그런 우상 예수는 자신을 구원할 수가 없습니다.

이제 예수님은 이 하나님의 나라기 임하기 전의 심판의 때에 우리가 어떤 마음과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지금 이 심판의 한 복판에 서 있는데,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고 처음에 잡은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서 그리스도에 참예한 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이 우리를 향한 소원이십니다.

이제 비유에 들어가서 한 재판관에 대한 묘사가 있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합니다. 얼핏 듣기에는 천하에 망나니 같은 재판관이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재판관은 예수그리스도의 비유로 등장하는 자입니다. 이 말씀은 수요일에 여러 차례 살펴 본 내용이므로 간단하게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 두려워한다는 말에는 또한 부정적인 의미가 있는데 아직 거듭나지 못해서 하나님과 자신이 주인과 종의 관계이기 때문에 주인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거듭나면 하나님과 자신의 관계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딤후 1:7]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계 21:8]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물론 성경에서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라는 말씀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의미입니다.
  
[고후 7:1] 그런즉 사랑하는 자들아 이 약속을 가진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
[골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따라서 두려워한다는 의미는 그 문맥에 따라서 해석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은 사람에게 의존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면 그저 사람의 인정을 받으려고 온갖 수단과 방법을 다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삶 전체가 사람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이고, 사람들의 말과 인기를 신주단지처럼 모시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길게 기도하고, 구제할 때 마을 어귀에서 나팔을 불고, 사람들 앞에서 인기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목숨을 바치는 자들입니다. 이들은 사람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종 노릇을 하는 위선자들입니다.
 
[마 6:16] 금식할 때에 너희는 외식하는 자들과 같이 슬픈 기색을 내지 말라 저희는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려고 얼굴을 흉하게 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여의도 순복음 교회의 불 집사라는 분이 찬양테이프를 취입하려면 5백 만원이 필요한데, 3백만 원을 모아 놓은 상태에서 주님께 열심히 기도했다고 합니다. 주님 2백을 마련하게 해주셔서 테이프를 만들고 그것으로 열심히 전도하게 해 주십시오... 몇 일을 기도했더니 네 가진 것을 먼저 헌금하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차일 피일 미루다가 주님께서 계속 감동을 주시기에 어쩔 수 없이 헌금을 하고자 마음을 먹었는데, 자신은 전 재산을 드리는 것이지만 교회가 크다 보니, 누가 알아주는 사람도 없고, 그 금액을 누가 했는지 표시도 나지 않아서 안타까웠다고 솔직하게 고백하는 간증을 들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을 무시하지 않고 존중하고 사람에 목매달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 분뿐 아니라, 우리 모두의 마음 속에는 이렇게 사람에게 의존적인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은 없습니다.
어느 분은 형제와 화목 하라고 했다고 해서, 그 형제에게 모든 것을 걸고, 의지하려고 하다가 주님의 아픈 깨우침을 받고야 깨닫게 되는 것을 보기도 합니다. 이 모든 것들이 다, 육신의 예수에 의지하는 것을 포함하여, 하나님의 나라가 우리 안에 임하기 전에 고침을 받아야 할 부분입니다.

따라서 이 재판관은 이런 과정을 다 거친 하늘의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자는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거듭난 자이고, 또한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을 믿고 따르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서 지금 이 심판의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고, 이제 머지 않아 이런 예수의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2.2 한 과부와 그의 원수 (눅 18:3)

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도시는 이 세상의 비유이고, 한 과부는 예수 믿는 자, 즉 아직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맞이하지 못하여 거듭나지 못한 예수 믿는 자를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만, 이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긴다고 해서 물리적 구제만을 말하는 것으로 착각하면 오해입니다. 고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아직 만나지 못한 거듭나지 못한 자, 과부도 또한 그리스도를 남편으로 만나지 못하여 거듭나지 못한 자입니다. 이들을 불쌍히 여길 수 있으려면, 이들을 볼 수 있는 영안이 있어야 하고, 또한 이런 영적 눈을 가질 수 있으려면, 자신이 거듭나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야 합니다. 그래서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기라는 이 말씀도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는 말씀이 아니라, 먼저 내가 말씀으로 인하여 고침을 받게 되면 자연히 고아와 과부를 불쌍히 여길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과부의 원수가 누구일까요? 이 비유 중에서 아주 핵심입니다. 과부의 원수는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아니, 자신 안에서 자신을 붙잡고 있는 자기보다 더 큰 귀신, 사단, 마귀가 바로 자신의 원수입니다.
우리는 이 원수의 정체를 알지도 못했고, 이제 말씀을 듣고서야 비로소 내 일생일대의 원수는 나의 외부가 아니라, 내 안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사실을 알아도 그가 우리를 잡고 흔들고 우리 인생을 비참한 지경으로 끌고 가는데도 속수무책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우리보다 큰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입니다. 불과 유황의 심판이란, 그렇게 원수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끌려 다니는 우리에게 정신차리라고 우리를 일깨워 주는 말씀입니다. 정말 우리는 이것을 몰라서 우리 인생을 망치는 것이니, 우리의 원수를 알게 하고 그 원수를 물리쳐 줄 수 있는 분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 안에서 고침을 받아야 하고, 심판을 받아야 할 생각이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지적을 받았을 때, 원한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이것은 자신이 의도적으로 원한을 품는다기 보다는 그렇게 살아왔으니,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당연한 반응이고 자신은 그런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렇게 원한을 품게 되면, 자신을 지적한 그 사람에게 계속 걸려 넘어지고 어떻게 해서든지 복수하고 원한을 갚으려고 하게 됩니다. 어떤 분도 조장에게서 어떤 지적을 받고, 그 조장에게 원한이 생겼는데 자신은 그것도 몰랐습니다. 그런데, 조장이 그래서 그때 원망이 들어간 것 아니냐고 몇 일 뒤에 말하니까, 자기도 그때 뭔가 이상했었는데, 그것이 그런 것인 줄을 몰랐다고 하면서 그때서야 귀신의 포로가 되어서 자신도 모르게 행동하는 자신을 지적해 준 그 조장에게 감사함을 표시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여러분을 그냥 지적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원수의 지체로서 악의 병기로 실컷 쓰임을 받고 여러분은 그 댓가로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나 바깥 어두운 곳에서 영원히 지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인생은 그냥 살다 죽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든 어떤 형태로든지 우리는 이 세상 삶에 대한 열매가, 그 결과가 우리에게 있기 마련인 것입니다. 지금 지적 받았을 때, 자신도 알게 모르게 으르렁대는 것 잘 생각하셔서, 그런 자신의 원수의 종 노릇 하는 것에서 벗어나고, 아프지만 기쁜 마음으로 지적 받고 심판 받고, 고침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 과부는 이 모든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이럴 때마다 재판관이신 주님께 나아가서, 주님 더욱 더 철저히 자신을 고쳐 달라고, 더 지적하고 드러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지금, 우리 중에도 고침을 받기 싫어서 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여기 비유에 등장하는 과부처럼, 어떻게 해서든지 고침을 받으려고 기도하고 주님께 나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느 사람의 미래가 풍성할 것인지는 말할 것도 없습니다.

2.3 얼마 동안 듣지 않다가...(눅 18:4-5)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재판관이 얼마 동안 듣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가 귀신의 종 노릇하면서 사는 그 인생이 금방 고쳐지지 않는다는 것을 뜻합니다. 단번에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는 것이 아닙니다. 이렇게 드러나고 저렇게 드러나고 이렇게 저렇게 숨는 우리 안의 그 옛사람의 궤계를 주님의 드러내심에 우리가 알고 다시 속지 않으려면 얼마 동안의 그런 심판의 세월이 필요한 것입니다. 제자들의 경우에는 3년 반과 40일이 걸렸고 우리도 그와 유사한 기간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들은 단번에 무슨 일이 일어날 것을 기대했다가 낙심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과부는 재판관을 번거롭게 했습니다. 주님을 번거롭게 하는 우리는 어떤 우리여야 할 까요? 그것은 자신이 고침을 받을 때, 드러나는 한 두 가지로 힘들다고 저쪽 한 켠에서 쉬고 있는 사람은 주님을 한가롭게 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를 뭐 고쳐 줄려고 하세요. 저는 이렇게 살다가 주님의 영광의 빛에서 멀어진 자로 영원히 남겠습니다. 그러니 그 시간에 딴 사람이나 고치세요. 이런 자가 주님을 한가하게 하는 자입니다.

그런 반면에 하나가 드러나고 고침을 받으면, 주님 제가 모르는 또 다른 부분도 드러내 고쳐 주시옵소서.... 잘 견디고 낙심하지 않고, 정말 귀신에 잡힌 이런 생활 버리기를 원합니다. 이것이 바로 주님을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이런 사람을 빨리 고칠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낙망하지 않고 끝까지 기도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은 심판의 때에 이와 같이 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고침의 손길을 알고, 고침 받기를 소원하는 삶으로 낙망하지 않고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래야 속히 고침을 받는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제가 봐도 열심히 고침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을 고치지, 성질 내고 저쪽에 도망가 있는 사람은 고칠 방법이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 주겠다는 말씀의 참 뜻입니다.

이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다 보니까 초창기에 어떤 교인 하나가 저의 이런 해석을 놓고 지금 말씀이 역접이네 순접이네 하면서 문자적인 이해를 가지고 저와 대립되었던 기억을 합니다. 저는 제가 지금 드리는 이 말씀이 너무나 명확하고, 아무런 막힘이 없는데 들을 귀와 눈이 없는 사람에게는 이 말씀이 그렇게도 어렵게 들리는 모양입니다. 그런 것은 그들의 책임입니다.

3. 맺는 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낙망하지 말고 끝까지 과부와 같이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도 재판관과 같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그런 하나님 나라에 속한 자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원수는 다른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 있는 귀신, 사단, 마귀입니다. 이들 드러내어 보여주고 그를 처분하게 하시는 분이 바로 말씀이신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려면, 이 예수그리스도를 따라 나서야 하고, 그가 하시는 일에 동조하고 고침에 순종하는 자세가 바로 그를 번거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시고 주님은 우리를 속히 그리고 남들보다 빨리 고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는 것입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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