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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옛 계명과 새 계명 (7-요일2:7-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3-03 21:38 조회 |5,664회

본문

옛 계명과 새 계명

[요일 2:7-11]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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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예수를 믿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나오고 예배에 참석하고 믿음생활을 합니다. 그리고 믿는 것이 이것 말고 또 무엇이 있을 수 있겠는가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이런 생활이 끝나지 않았을 때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고 또한 그렇게 믿게 됩니다. 그러나 믿는다는 것은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예수는 그렇게 해서 믿어지지 않습니다. 

  예수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예수 믿는다고 생각하는 그런 긴 시절을 보낸 다음에야 비로소 우리 앞에 나타나시는 분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지금까지 믿어 왔던 그 예수가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것은 모세였습니다. 이때서야 비로소 지금까지는 오직 참 예수를 믿기 위한 기초작업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까지의 예수를 예수로, 이제 이후의 예수를 참 예수라고 구분할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 둘은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 지금까지의 예수는 우리에게 구원을 주지 못했기 때문에, 구원을 주는 참 예수와는 필히 구분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참 예수를 믿을 수 없습니다. 제대로 믿기 위해서는 예수를 잘못 믿는 기간을 필요로 합니다. 그 기간이 끝난 다음에야 참 예수를 믿을 수 있습니다. 

  요한이 여기서 말하는 옛 계명과 새 계명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요한은 자신의 이 말씀이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또한 다음 절에서는 새 계명이라고 합니다. 과연 요한의 말씀은 새 계명일까요? 아니면 옛 계명일까요?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 된 것이라는 의미와 참 빛이 벌써 비친다는 의미를 함께 보시겠습니다. 

옛 계명과 새 계명 

[요일 2:7]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여기 사랑하는 자들이란 지금 우리와 같이 예수를 믿고 교회에 나오고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들에게 지금 요한은 자신의 마음 속에 가지고 있는 예수의 생명을 전달하기 위해서, 즉 이 말씀으로 듣는 자의 마음 속에 생명이 잉태되고 그 생명을 우리가 낳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전하는 것입니다. 

  요한이 전하는 이 말씀은 교인들이 이전에 들었던 말씀과 다른 것인가 하면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같은 말씀이라고 합니다. 많은 성경 말씀이 있지만 구약과 신약 성경의 전체 내용은 예수 믿고 구원 받으라는 말입니다. 예수와 믿음과 구원을 말합니다. 지금 요한일서에서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서 하나님과 하나되자,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귀자는 말을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요한의 말은 교인들이 이미 들은 옛 계명입니다. 

  한편 요한은 다음 절에서 다시 새 계명을 쓴다고 합니다. 혼동이 있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요한의 말씀은 옛 계명이기도 한 동시에 새 계명입니다. 요한의 말씀이 옛 계명인 이유는 그가 전하는 말씀이 이미 구약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있던 내용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그 말씀 안에 있는 생명이 제대로 드러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왔습니다. 이제 요한은 예수에 의해서 말씀과 하나된 자로서 옛 계명에서 감추었던 생명을 드러내어 교인들에게 전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옛 계명에서 감추어졌던 생명을 드러내어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새 계명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같은 것입니다. 
 
[요 5:46]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옛 계명은 율법이고 새 계명은 복음입니다. 그리고 이 둘은 공히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그럼 요한은 어떤 근거와 어떤 권위로 요한은 새 계명을 전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습니까? 이전의 선지자들도 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말씀을 전했는데 그들은 옛 계명을 전한 것이고 지금 요한은 새 계명을 전하는 것일까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말씀을 전했으면서도 그들이 말씀과 하나되지 못한 채로 전했습니다. 그들이 전한 것은 옛 계명입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에는 생명이 드러나지 않고 감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자신이 말씀과 하나되어서 그 생명을 가진 상태에서 전하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새 계명입니다. 이 새 계명이 비로소 사람들을 예수의 생명으로 잉태하게 하고, 그들도 예수의 생명을 낳을 수 있게 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새 계명이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는 필요조건은 한 사람의 인격이 필요합니다. 오직 그 인격만이 새 계명을 자신 안에 담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 9:17] 새 포도주를 낡은 가죽 부대에 넣지 아니하나니 그렇게 하면 부대가 터져 포도주도 쏟아지고 부대도 버리게 됨이라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넣어야 둘이 다 보전되느니라

  옛사람, 즉 육에 속한 사람 안에는 옛 계명이 담기고, 새사람, 즉 영에 속한 사람에게는 새 계명이 담깁니다. 따라서 같은 성경 말씀을 전하지만 그것을 옛 계명으로 전하는 사람들이 있고, 그것을 새 계명으로 전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한은 이와 같이 새 계명을 담은 인격의 자격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옛 계명은 말씀의 율법적 의미를 말하고, 새 계명은 복음을 말합니다. 옛 계명인 율법은 말씀과 그것을 읽는 인격이 분리되어 있는 상태이고, 복음은 말씀과 그것을 읽는 인격이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합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기존에 예수를 믿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때 들은 말씀은 옛 계명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제대로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고 예수와 하나되어 생명을 인격을 통하여 들은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새 계명을 듣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우리가 익히 읽고 들었던 말씀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들으니, 그것이 곧 새 계명입니다. 이제 이 말씀을 듣고 따라 나서는 자는 예수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계명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요한은 새 계명을 쓰는데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새 계명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합니다. 이 말씀은 이 세상에서 성육신 하신 예수 안에 처음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예수는 말씀에 의해서 진리인 존재로 우리와 함께 이 세상에 계셨습니다. 이것은 새 계명이 그 분에게 참되다는 것의 의미입니다. 즉 영원한 진리인 말씀이 육신을 입은 사람 안에 거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에게만 가능한 것이 아니라 이 말씀을 듣는 너희에게도 참되다고 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들도 진리의 길이 열려 있다는 소망 의 말씀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도 예수의 생명을 받아서 그 생명으로 삶을 살 수 있다는 영광스러운 초청입니다.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런 제목의 책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들은 무슨 일을 할 때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하고 해야 한다고 합니다. 사실 이렇게 예수의 행동을 제대로 따라 하는 사람은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것도 한계가 있고 따라 한다고 해도 자신의 본질은 전혀 변하지 않습니다. 언제까지 예수를 따라 할 수 있을까요? 
  자, 그런데 이 말씀이 적용되지 않는 유일한 한 사람이 있으니, 바로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그리고 예수는 생명입니다. 

[요 14:6]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새 계명인 말씀을 듣고 예수의 생명을 받으면 우리는 새 계명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곧 새 계명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생명을 소유하게 되면 예수와 하나되고, 예수의 삶을 살게 됩니다. 이때는 "예수라면 어떻게 할 것인가?" 묻지 않아도 예수의 삶이 흘러 나오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새 계명을 통하여 예수의 생명을 받으면 예수의 모든 영광을 함께 받게 됩니다. 지금 요한의 말은 우리에게도 예수의 삶을 살 수 있다는 소망을 말해 줍니다. 배워서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그 분의 생명과 삶을 송두리째 받아 내는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 믿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광입니다.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췸이니라 

[요일 2: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새 계명은 어떤 사람이 쓸 수 있을까요? 앞서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말씀을 가진 예수님과 그에 속한 예수의 말씀과 생명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새 계명을 쓰는 이유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서 비췸이라고 합니다.
  참 빛은 예수님입니다. 

[요1:9-11] 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10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1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어두움이 지나간 것은 참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오셨기 때문입니다. 참 빛이 오기 전에는 너도 나도 빛이라고 말씀을 전했지만 그것은 제대로 된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 말씀은 죄사함을 말하지만 여전히 죄를 짓게 되는 효력 없는 말씀입니다. 예수를 몇 십 년 믿어도 자신에게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그런 식으로 예수를 믿고 있었습니다. 어두움에서 예수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예수님이 참 빛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참 빛과 그에 속한 사람들로 인하여 새 계명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이 참 빛으로 우리가 조명을 받고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우리의 모든 죄가 깨끗해 집니다. 
  지금 우리의 마음 속에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비추고 있습니까? 이 말씀이 들리면 참 빛의 비춤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맺는 말

  요한은 자신 안에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말하는 옛 계명을 새 계명으로 전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이 말씀을 잘 받으면 우리도 예수의 생명을 우리도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예수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그동안 우리는 어두움 속에서 예수를 믿었습니다. 예수를 믿으나마나였습니다. 그러나 이제 참 빛이 이미 비추고 있습니다. 새 계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듣고 따라 나서면 진리에 도달하고 예수의 생명을 얻게 됩니다. 
  이제 참 빛을 따라 나서기 바랍니다. 

정 덕 영
목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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