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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제 그 안에 거하라 (15-요일2:2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5-30 14:38 조회 |3,973회

본문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요일 2:28]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
 
  우리 인생들은 생명이신 하나님을 떠나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래서 이리도 힘들고 지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앞을 보지 못해서 부딪히고 싸우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삶을 삽니다. 이런 우리의 모습을 보고 성경은 흑암 중에 거하는 백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이 더 큰 문제입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의 영적 실상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어둠 가운데 있는 우리를 인도하여 광명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십니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오직 예수를 꼭 잡고 바짝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래야 종국적으로 빛의 세상에 도달해서 해와 같이 빛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함께 살펴 본 요한일서의 내용을 간추린다면 이런 흐름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요한은 만질 수 없었던 태초부터 있던 생명의 말씀을 자신 안에 받았고 그래서 그 말씀을 손을 만지고 주목하여 본 바 되었다고 합니다. 이제 요한은 자신이 받은 그 생명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나는 이미 새 생명 받았고 죄사함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더 이상 생명의 말씀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에 요한은 빛에는 어둠이 조금도 없다는 전제를 먼저 합니다.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지만 여전히 죄짓고 회개하는 상태가 반복된다면 그것은 죄사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깨우침을 줍니다. 그것은 빛에도 어둠이 섞여 있다는 모순적인 말이고, 그런 말을 한다는 자체가 자신이 이미 어둠에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이제, 요한 또는 생명의 말씀을 가진 자들을 통해서, 참 빛이 비추고 있으니, 그 빛을 따라 나서 참다운 죄사함을 받을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어 요한은 아비, 청년, 아이들에게 차례로 말합니다. 결국 이 말의 내용은 어둠에 있는 자들이 빛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주의하고 물리쳐야 할 적그리스도와 악한 자에 관해서 계시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빛에 도달하는 과정에서 다른 어떤 가르침을 받을 필요가 없고 오직 자신 안에 있는 기름부음을 따라 나서라고 합니다. 이 기름부음을 따라서 순종하는 것은 곧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다시 교인들을 향해서 오늘 말씀을 전합니다. 
  "주 안에 거하라 그러면 주께서 나타내신 바가 되면 담대함을 얻고, 그의 강림하실 때에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의로우심을 알면 의를 행하는 자마다 그분에게서 난 줄을 알 것이다."
  이 내용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그 안에 거하라 
 
[요일 2: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여기서 요한은 아이, 청년 아비의 구분 없이 보편적으로 모든 교인들에게 말합니다. 
  그 안에 거하라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간단히 말해서 오직 기름부음의 인도함에 순종하고 따라 나서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곧 생명의 세상으로 인도하는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것이고, 그 결과로 생명의 세상, 빛의 세상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그 안에 거하라는 말은 어둠에서 빛으로 나가는 과정에서의 순간순간을 말합니다. 이렇게 매 순간 기름부음의 인도함에 따라 나서다 보면 온전히 주 안에 거하는 때가 옵니다. 그때는 자나 깨나 항상 주 안에 거하는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기름부음의 인도함이란 무엇일까요? 기름부음은 지금 나에게 아무 말씀도 하지 않고 있는데..."
  이런 의문이 있으면 그동안 예수를 믿었지만 지금 있는 위치는 어둠입니다. 왜냐하면 빛이신 예수를 만나서 어둠 속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들에게는 이 말씀이 매우 듣기 힘들 것입니다. 아무튼 우리에게 주님의 인도함을 받는 체험이 있어야 영적 어둠에서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주님을 따라 나오는 과정이 곧 주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지난 금요일 이집사님이 간증을 해 주셨습니다. 나름대로 긴 세월 동안 주님의 인도함에도 꿈쩍하지 않고 있다가 이제서야 주님을 따라 나서는 것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그동안 따라 나서지 못했던 이유는 하나님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과 원망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 생각들을 버리니까 주님께 순종할 수 있고 어둠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진실되고 깨끗한 마음으로 주님을 대해야 다른 곳으로 가지 않고 온전히 따라 나설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지금 요한이 말하는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나타나신 바 될 때 담대함 
 
[요일 2: 28]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개역성경의 번역은 조금은 애매합니다. 영어 번역본과 헬라어 원본에 가까운 번역을 참조하면 다음과 같은 의미입니다. 표준 새번역에서 인용합니다. 
 
  [요일 2:28] 그러므로 자녀 된 이 여러분, 그리스도 안에 머물러 있으십시오. 그렇게 해야 그가 나타나실 때에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게 될 것이며, 그가 오실 때에 그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름부음에 순종하고 따라 나서면, 그 결과 주가 나타나실 때 우리가 담대함을 가지고 되고, 그가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 주의 나타나심
 
  주의 나타나심에 관해서 먼저 말씀 드립니다. 나타나심과 나타내심은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흔히 무엇이 나타났다 하면 그것을 우리 외부의 어떤 것으로 생각합니다. 지금 이 말씀도 "나타나실 때에..." 라는 말씀을 재림 때 우주적으로 구름 타고 오시는 것을 연상합니다. 그래서 지금 순종하고 주님 안에 거하면 재림 시에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혼인 잔치를 할 것이라는 틀에서 이 말씀을 읽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모든 말씀이 그렇지만, 성경 말씀은 우리의 외부인 이 우주나 지구의 종말에 관한 환상이나 계시가 아닙니다. 오직 우리 내면에 예수의 생명이 오는 과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즉 안에 예수 생명이 잉태되고 그것이 자라서 열매를 맺는 이 모든 과정에 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주의 나타나심은 우리 내면에 나타나시는 것을 말합니다. 
 
  주님의 나타나심(헬:화네로 phaneroo)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기름부음을 따라 순종하면 그의 열매로 온전히 주 안에 거하게 됩니다. 이것은 주님과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고, 이때 주님은 우리 안에 나타나십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나타내시고, 우리는 주님을 세상에 나타내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에서도 주님의 나타나심(헬:엠화니조 emphanizo) 에 관한 말씀이 있습니다. 나타낸다는 말의 헬라어 단어는 다르지만 '나타낸다', '드러낸다', '보인다', '계시한다'는 의미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요 14:22-23] 22 가룟인 아닌 유다가 가로되 주여 어찌하여 자기를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아니하려 하시나이까 2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예수께서 십자가 사건을 앞두고 제자들에게 다시 오겠다고 하니까, 유다가 어찌 우리에게는 나타내시고 세상에게는 하지 않으시렵니까 라고 질문을 합니다. 이 말로써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재림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예수님은 자신을 따라 나서서 3년 반 동안의 연단과 훈련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임하십니다. 이렇게 예수를 따라 나서는 것이 기름 부음의 가르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거하라는 요한의 권면도 이것을 두고 하는 말입니다. 
 
이런 과정을 잘 거치면 예수가 개별적으로 그들 안에 나타내시는 것이고, 당연히 세상 사람들에는 나타내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거처는 바로 제자들의 안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맥락에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갈 1:15-16]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실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바울은 지금 자신이 다메섹에서 예수를 만나 쓰러졌을 그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때 바울은 참다운 회개를 하여 참 예수를 만나게 된 때입니다. 바울은 이후 아라비아로 가서 삼 년 동안 기름부음을 따라 순종했고, 그 결과 자신 안에 아들 예수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놓고 바울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셔 아들 예수를 자신 안에 나타내시기(헬:아포칼룹토 apokalupto)를 기뻐하실 때"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기름부음을 받고 그를 따라 나선 사람은 그 결과로 주께서 그에게 나타나시게 됩니다. 그와 주님의 하나됨을 말합니다. 
 
  우리도 자유교회에 처음 왔을 때 영적 다메섹 체험을 했습니다. 이때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들 예수를 나타내기를 기뻐하실 때입니다. 이제 우리도 기름부음에 따라 나섬으로 주 안에 거하게 되면 아들 예수가 우리 안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주에 이끌린 삶의 과정을 잘 거치고 나면 예수 그리스도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나타나게 됩니다. 이것이 여기서 말하는 주의 나타나심입니다. 
  주의 나타나심은 개별적인 것으로 그 사람과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됨을 말합니다. 
 
+ 담대함
 
  주 안에 거하면 주께서 나타나실 때, 이때 담대함을 얻는다고 합니다. 
담대함이란 거리낌이 없는 관계를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직원은 회사 사장을 두려움을 바탕에 깔고 대하게 되지만, 사장 아들은 담대하게 대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율법 아래에 있을 때는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대하지만,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담대함을 가지게 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가 우리 안에 나타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에 의해 고침을 받아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가 우리 안에 나타났을 때, 우리가 두려워 떨고 멀리하고 싶어지면 예수는 나타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주님을 담대한 마음으로 대할 수 있도록 주님과 한 마음이 되어 가는 과정을 거치고 있습니다. 
 
  지금 주님은 우리 주변에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간섭하십니다. 지금 우리 곁에 바짝 붙어서, 우리와 마음을 부딪히고 있습니다. 이때 우리의 마음을 주님의 마음에 적응시키고, 고쳐나가야 결국 주님의 마음과 하나되고 주께서 우리에게 나타나실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주님의 마음을 모릅니다. 어떤 것이 주님의 마음입니까? 
  우리 주변에 주님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생명을 받고 그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들입니다. 요한 베드로 바울이 그런 사람들이고, 지금 이 시대에도 참 복음의 말씀과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과 마음을 맞추는 것이 곧 주님의 마음과 하나되는 것입니다. 
 
[고전 2:14-16] 14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16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울은 자신이 주의 마음을 알고 그 마음을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또한 우리는 바울과 같은 사람들의 가르침과 인도함을 받아 마음을 고침으로 우리 또한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품어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가지게 되면, 우리는 당연히 주 앞에서 담대함을 얻게 됩니다. 같은 하나님의 아들의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제자들로 말하면 예수와 함께 한 3년 반이란 세월은 혼나고 부딪히며 주님과 한마음이 되는 과정이었고, 자기의 옳다함을 버리고 주님의 옳다함에 맞추고 변화시키는 과정이었습니다. 알고 보면 다 무식하고 몰라서 자기 옳다고 주장을 했던 것이고, 흑암 속에서 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랬던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거친 그들은 이제 주님을 보아도 주님의 마음을 가지게 되었기 때문에, 두렵지 않고 담대함으로 함께 거할 수 있었습니다. 주님과 하나가 된 것입니다. 
 
강림하실 때 부끄럽지 않음 
 
[요일 2:28] 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주 안에 거하면 그로 인하여 주님이 강림하실 때, 부끄럽지 않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주 안에 거한다는 것은 곧 예수에 이끌린 삶에 순종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주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주의 강림하심을 사람들은 우주적, 가시적 재림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강림도 앞은 나타나심과 같이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은 사람들의 마음 속에 강림하심입니다. 
 
+ 강림
 
  우선 여기서 말하는 강림이라는 원어 단어는 "파루시아 parousia" 입니다. 강림 또는 임재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우리에게 가장 익숙한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다음 말씀입니다. 
 
[살전4:15-17] 15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17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이것이 바로 휴거라고 말하는 장면이고, 휴거는 예수께서 구름 타고 하늘에서 강림하실 때 땅에 있는 자들이 하늘로 끌려 올라간다고 하는 그 휴거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강림(헬:파루시아)는 주 안에 신실하게 거한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예수님의 임재입니다. 이것은 곧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 진 것이고, 우리가 예수와 하나된 것이기 때문에 예수가 우리 안에 강림하였다 또는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임재하신다는 그 의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강림이란 우리가 예수를 만나고 예수의 인도함에 순종하고 그 안에 거하게 되면, 결국 그 결과로 예수가 우리 안에 임하심이 강림하심입니다. 이것은 곧 예수가 우리에게 나타나심이고, 임재하심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 것이고, 내가 예수의 영을 가지게 되었으니,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때입니다. 
 
+ 부끄럽지 않게...
 
  이 말씀은 앞에서 살펴 본 담대함을 얻는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강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란, 예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야 주께서 우리에게 강림하실 수 있습니다. 부끄러움이 있으면 우리가 두려워서 주님을 피하여 숨게 되고, 따라서 주님은 우리에게 강림하실 수가 없습니다. 
 
[창3:10]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
 
  부끄럽지 않은 자로 변하는 과정은 위에 말씀 드린 나타나심의 과정과 동일합니다. 이 과정 중에서 우리는 주님이 보시기에 합당치 않은 부분들이 드러나면 우리 밖으로 그것들을 내 보내어야 합니다. 그래야 마지막 때에 우리들은 주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지 않고, 또한 부끄러움을 당치 않을 것입니다. 
 
  여기서 합당치 않은 부분들은 내 보낸다는 의미는 결국 자신 안에 있는 세상에 대한 집착이나, 혈기, 근심 등을 주님이 드러내실 때 그것을 버리려는 의지적 결단과 행동을 말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를 받게 됩니다. 주님이 우리 안에 강림하실 때에 부끄럽지 않게 하기 위함이란 우리가 주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되었을 때 주님은 우리 안에 강림하십니다. 
 
     부끄럽지 않게는 수치를 보이지 않게...라는 뜻과 같습니다. 
 
[계3: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여기서 흰옷을 사 입는 것이 실질적으로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주 안에 거하고 이런 주님께 순종하고 따라 나서는 것이 흰옷을 사 입는 것입니다.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는 것도, 주 안에 거하는 것이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바르는 것도 그 결과 보게 되는 것도 주 안에 거하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주 안에서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주가 강림하시게 됩니다.
 
  요한이 달리 주 안에 거하라고 부탁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예수님의 이런 본질에 익숙하지 않으면, 예수께서 하시는 일이 무척 기분 나쁘고 자존심이 상하기 때문입니다. 때로는 우리는 자존심을 내려 놓고 울면서 따라 나서야 합니다. 정말로 억울한데도 주님은 우리 자신을 꺾고 따라 나서라고 하십니다. 그때는 뭐 타당한 논리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는 과정입니다(마 10:38). 
 
  주님은 우리를 고치려는 의도를 가지시고 그렇게 이끄시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또한 주 안에 거하는 과정이고, 이런 과정을 지나고 난 다음에는 주님은 더 이상 우리에게서 책망할 것을 찾지 않으십니다. 
 
맺는 말
 
  우리는 주 안에 거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음 속에서 우리를 인도하는 기름부음에 따라 믿음생활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어떻게 주님 뜻을 알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알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있는 모든 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런 인도함을 지금까지 체험한 바가 없다면 아직 자신은 어둠 속에 있는 것입니다. 이제 그 인도함을 찾고 따라 나서면 그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결국 주님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주님과 하나 되는 것은 우리 마음에 주님의 마음이 나타나고, 주님이 강림하시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는 주님 앞에 담대하고, 부끄럽지 않은 사람으로 변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지금 주 안에 거하고 순종함으로 이루어 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주 안에 거하십시오. 그래서 주님이 나타나실 때 담대함을 가질 수 있고 또한 강림하실 때 부끄러움이 없는 자들이 되십시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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