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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이렇게 기도하라 - 주기도문1 (마6:9-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4-09-16 22:05 조회 |4,205회

본문

이렇게 기도하라

[마6:9-13]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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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암기하고 있는 주기도문]
주님께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기도내용입니다. 주기도문이라고 해서 우리 모두가 암기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공부 삼아 영어로 암기하고, 신학교에서는 헬라어로 암기하라고 합니다. 주기도문 찬송이 있고, 모임이나 매 예배가 끝날 때 어김없이 주기도문을 암송합니다. 과연 이 정도면 주님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하고 또한 항상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는 셈입니다.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대해서 더 이상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변화가 도통 없는데...]
몇 십 년에 걸쳐서 주님의 명령대로 열심히 주기도문을 외웠는데 무엇이 달라 졌습니까? 달라지기는 뭐가 달라집니까? 그저 습관적으로 주문 외우듯이 외우고 있다는 것 밖에는 달라진 것이 없습니다. 결국 주기도문을 지금과 같이 외우고 노래로 만들고 예배시간이 끝날 때마다 암송을 한다고 해도 우리에게는 아무런 변화가 없습니다. 지나온 세월이 그것을 증거합니다.

[방향]
그렇다면 예수님은 무슨 목적을 가지고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을까요? 그리고 과연 주기도문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이것에 대해서 앞으로 말씀 드리겠습니다.

2. 본문 설명

2.1 이렇게 기도하라 (마6:9)
9/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이 나오게 된 배경]
주기도문 본문을 들어가기 전에 먼저 이 주기도문을 주시게 된 배경에 관해서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시기 바로 전에 기도에 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마6:5-8] 5/ 또 너희가 기도할 때에 외식하는 자와 같이 되지 말라 저희는 사람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거리 어귀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저희는 자기 상을 이미 받았느니라 6/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7/ 또 기도할 때에 이방인과 같이 중언부언하지 말라 저희는 말을 많이 하여야 들으실 줄 생각하느니라 8/ 그러므로 저희를 본받지 말라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예수님은 이 말씀에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는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와 이방인들이 하는 중언부언의 기도를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와 이방인의 기도는 어떤 것일까요?
 
  [보이려는 기도와 은밀한 기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은밀한 골방에서 기도하라는 말씀은 단순한 장소의 문제를 지적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말씀을 강해하는 시간이 아니니 결론만 말씀 드린다면, 자신 안에 하나님의 임한 상태에서 하는 기도가 은밀한 곳에서 하는 기도이고,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하는 기도가 남에게 보이려고 하는 기도입니다.

[이방인의 기도]
이방인의 기도는 하나님이 이미 알고 계신 내용을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이방인이 중언부언 하는 기도인데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말씀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마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결국 이방인의 기도는 먹을 것과 입을 것과 마실 것을 달라는 것인데 이런 것은 이미 기도하는 자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하나님이 알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러니까 그런 것을 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곧 중언부언하는 기도요 이방인의 기도이니, 너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내용]
자 이렇게 보면 예수님은 남에게 보이기 위한 기도를 하지 말고 은밀한 곳에서 기도를 하고, 이방인처럼 중언부언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신 그 기도 내용은 하나님과 하나 되기를 원하는 기도, 또 다른 표현으로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는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기도문의 내용은 바로 그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구할까?]
그런데 우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지 않았나요? 주기도문을 매번 외우는 것을 보아도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지 않았습니까? 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받기를 진정 원합니다. 그런데 무슨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30-40년 동안 잘 기도해 왔고 지금도 잘 하고 있는데...
그러나 잘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하고 있는 기도도 잘 하는 것이었다면 이미 자신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문제는 그렇게 입술로 따라 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주기도문은 기도의 형식을 우리에게 알려 주기 위함도 아니고, 암기하라고 주신 것도 아닙니다. 단지 그렇게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으로 변해서 그 나라를 놓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관해서 알아야...]
하나님의 나라 그것이 자신의 기도제목이 되려면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알아야 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에는 관심이 없고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에 관심을 가지고 기도합니다. 이들의 관심사는 먹을 것 입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자신의 믿음생활의 주기도제목이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서 제대로 알게 된 분들은 그것이 기도제목이 될 수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에게 임하는 것이 최우선의 기도제목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주기도문을 하는 분들입니다.

지금 자신의 기도 내용을 검토해 보시기 바랍니다.
우선 자신의 삶에서 하나님 나라가 자신에게 임하기를 소원하는 마음이 있는가?
하나님 나라가 도대체 무엇인지 알기는 하는가?
알고 있다면 어떤 과정을 통해서 자신에게 임하는가?
  이것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 하나님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없고, 그런 상태에서 아무리 주기도문을 외워도 형식적 외식적 기도가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요즈음 교회 홈페이지를 보면 강청하는 과부의 심정으로 기도한다고 하고, 예수의 재림을 소망하며 기도한다고 하고, 또 하루 속히 거듭난 자가 되기를 소망한다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이 분들의 인생에 있어서 가장 큰 관심사는 하나님 나라가 자신 안에 임하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분들은 삶 자체가 주기도문을 하는 삶입니다.
 
[말씀에 의해서...]
이 분들은 어떻게 이렇게 기도하는 사람이 되었을까요? 전에는 기도하면 오직 은사 달라, 먹을 것 달라, 입을 것 달라고 하던 그분들이 주된 기도제목이 왜 바뀌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말씀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체험해서 하나님 나라가 더욱더 그들에게 확실해 졌기 때문에 그것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에서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눅18:1)"
이 과부가 하는 기도가 바로 주기도문입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의 비유에 대한 말씀은 홈페이지 '말씀'란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2 하늘

이제 그동안 암기하고, 또 암기하면서도 내용을 알지 못했던 주기도문이 과연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에게 임함을 말하고 있는지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여기서 기도하는 사람은 우리 각자 자신입니다. 그래서 우리 입으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계신 곳이 하늘]
성경에서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을 하늘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하늘은 저 푸른 창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 속을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이 임하시면 우리 자신이 하늘이 됩니다. 그리고 마음 속에 임하게 되는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임하는 임마누엘 성령을 말합니다. 이와는 반대로 처음에 우리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했기 때문에 선악과를 먹었고 그 결과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계시지 않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이런 사람을 하늘과 대비되는 개념으로 땅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이 없는 마음이 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은 영으로 거듭난 자를 말하고 땅은 거듭나지 못한 육으로 난 자를 말합니다.
[고전15-47-49] 47/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 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저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저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49/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우리 인간은 아담의 범죄 이후로 땅에 속한 자가 되었는데, 이제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늘에 속한 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 안에는 하나님의 영이 거하기 때문에 그 사람이 곧 하늘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가 자신에게 임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래서 주님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이 내 안에 임하는 것을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기도한다고 그것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그런 기도와 소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이미 하나님 나라에 대해서 명확한 개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고 그들은 주님이 결코 내어 쫓지 아니할 것입니다(요6:37). 하나님 나라를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씀은 곧 임마누엘 성령을 소원하는 기도입니다.
이런 기도를 하게 되면 중언부언하지 않고 제대로 된 기도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2.3 우리 아버지

[육으로 난 생명]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는 육으로 난 생명을 가지고 옵니다. 그 생명으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지 못합니다. 물론 부를 수는 있지만 그것은 입술로만 그런 것이고, 진정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려면 하늘로부터 다시 나야 합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입니다(요3:6)

히브리서 기자는 그 위대한 모세도 하나님의 집에서 사환이었지 아들이 아니었다고 예수그리스도와 대비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히3:5-6] 5/ 또한 모세는 장래의 말할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사환으로 충성하였고 6/ 그리스도는 그의 집 맡은 아들로 충성하였으니 우리가 소망의 담대함과 자랑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의 집이라

모세도 하나님과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맺지 못했습니다. 주인과 종의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는 관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으려면...]
[롬8:14-15] 14/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내가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할 수 있으려면, 말씀으로 다시 나야합니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되면 하나님께로서 난 자이고 명실공히 하나님의 아들입니다. 이런 사람만이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물론 거듭나기 전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른다고 벌금(?) 물리지는 않으시겠지만, 그러나 참다운 아들로 거듭나야 아버지로 부를 수 있습니다.
 
제가 거듭나기 훨씬 전에 주님는 저를 보고 "사랑하는 내 아들" 이라고 하셨습니다. 거기서 그쳤으면 좋은데 이어서 주님은 "너는 아직 교만하다"고 하셨습니다. 그래도 저는 그때 무척 감격스러웠습니다. 사실 당시는 아직 아들로 거듭나지도 않았는데 미리 보시고 아들로 불러 주신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에 토를 다신 것입니다. '아직 교만하다'고...
  교만하다는 말은 아직 더 자라나야 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와같이 실상 우리 모두는 미리보면 하나님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나 아직 교만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대적하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 아버지의 내용]
기도할 때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진정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남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감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주님이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신 '우리 아버지'라는 단어도 곧 하나님 나라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주기도문 한 줄 한 줄이 모두 하나님의 나라를 말하고 있고, 그것을 소망하는 기도가 주기도문입니다.

  3. 맺는 말

하늘이란 하나님이 계신 곳으로 내 안에 하나님이 임하면 내가 하늘이 됩니다. 이런 사람이 거듭난 자이고 하나님 나라가 임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도 거듭나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사람만이 그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런 기도를 할 수 있으려면, 하나님 나라를 자신의 인생 전체와 바꾸어도 아깝지 않을 소망을 가져야 그런 기도가 나옵니다. 이런 사람들의 주된 기도 내용이 은사를 받는 것이나, 먹을 것이나, 입을 것이 되지 않을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그리고 실질적으로 이런 주기도문을 할 수 있는 사람들은 말씀을 제대로 알고 깨우친 사람이나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를 만나서 공관복음 단계의 믿음을 시작한 사람들이나 할 수 있는 기도입니다. 왜냐하면 이 단계에 들어서야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이고, 그 나라가 어떻게 자신에게 임하는지 등에 대해서 깨닫게 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주기도문을 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는 기도를 하라고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기도문으로 기도하는 사람, 그리고 그것이 이루어진 사람들로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자유교회
정 덕 영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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