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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주기도문3 (마6:9-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4-10-01 00:00 조회 |3,926회

본문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마6:9-13]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10/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1. 들어가는 말
 
[나라가 바뀌면 양식도 바뀜]
우리가 여행을 하다 보면 그 지방에 따라서 음식이 다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라도 음식이 다르고 경상도 음식이 다르고 또한 제주도 음식이 다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내에서의 음식변화이기 때문에 별 무리 없이 적응할 수 있습니다. 
  이제 해외 여행을 하게 되어 다른 나라에 가면 우리가 먹던 음식과는 전혀 다른 음식을 접하게 됩니다. 나라가 달라지니까 음식도 따라 바뀌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과 우리에게 임하는 하나님나라에서의 양식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 있을 때는 육신의 먹을 것을 먹고 살지만 이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들은 나라가 바뀌었기 때문에 육신의 양식만을 먹고 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양식을 먹게 되어 있는데 그것은 곧 영생하는 양식인 말씀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하나님의 나라로 소속을 옮긴 자들은 육신을 유지하기 위하여 먹는 육의 양식 이외에 또 다른 양식을 먹어야 하는데 그것이 곧 말씀입니다. 
 
주기도문의 오늘 내용은 양식이 다른 면에서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나라의 차이를 조명하고 있습니다. 같이 한번 살펴 보시겠습니다.
 
2. 본문 설명
2.1 일용할 양식(마6:11) 
11/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식사기도]
쉽게 읽으면 그야말로 우리가 일상생활에 필요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그렇습니다. 오늘날도 먹지 못해서 죽는 사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그런데도 우리에게 복을 주시어 삼시 세끼의 양식을 먹게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함이 마땅할 것입니다. 자연히 우리는 이 주기도문의 말씀을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그런 하나님과 연관하여 생각하게 됩니다. 
 
제 경험입니다만, 식사기도와 연관하여 한번은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목사님이 되기 이전의 이야기입니다.
  내가 기도하고 먹는 것하고 안하고 먹는 것하고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나님이 내가 밥상 앞에 놓고 잠시 기도한다고 크게 영광 받는 것도 아닐 테고... 괜히 불신자들 앞에서 믿음 좋다고 보이기 위한 행위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점잖은 자리에서 이야기 하다가 식사가 나오면 서로들 '먹읍시다' 하면서 숟가락을 드는데 나 혼자 기도하고 있으면 다른 사람들이 썰렁해 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속으로 '식사기도로부터 자유로워지자 주님께서 당연히 인정을 해 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정을 마음에 품고 주님께 이렇게 여쭈어 보았습니다.
'이런 기도 안 해도 되지요. 남들이 뭐라고 그러고 또 어색한 때가 많아요' 
  '그래 알았다.'
  저는 주님이 이렇게 하실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단호하게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언제나 식사기도를 하라.' 
그러면서 주님은 한 두 번에 걸쳐서 이것을 시행하는지 않는지 보시는 것이었습니다.
한번은 점심 때 하디스 햄버거 집에 내려가서 베이콘 치즈버거를 주문해서 자리로 가지고 왔습니다. 버거를 막 입으로 가져 가려는 순간에 '식사기도'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그러나 주위 테이블들을 둘러 보니 젊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햄버거 같은 패스트푸드를 놓고 일용할 양식을 주셔서 감사하다는 기도하기가 어색한 것 같아서 그냥 먹었습니다. 일단 먹고 난 다음에는 기도의 때가 지나버려서 고민은 없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혹시 주님이 기도하라는 것을 무시하고 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에 영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인 것을 어떻게 하겠습니까? 
하디스에서 회사로 올라 와 열심히 근무하던 중, 상사로부터 사소한 일로 몹시 자존심 상하는 소리를 들어야 했습니다. 그럴 일이 아닌데 그날 따라 상사가 이상했습니다. 저는 그때서야 '아, 아까 주님께서 식사 기도를 하라고 하신 것인데 묵살했기 때문이었구나!'하고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그 뒤로는 물론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충실하게 식사기도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 쉬운 식사기도 마저도 빼 놓지 않고 하기도 힘이 듭니다. 한번은 서서 먹는 부페음식 자리에 초청을 받아 갔을 때 식사기도 안 한 것으로 주님이 기뻐하지 않으셨습니다. 먹고 나서 심한 복통이 나서 회개했던 기억도 있습니다. 
 
아무튼 이런 체험들은 과연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육의 양식을 뜻하는 것으로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끼치고 있습니다. 즉 일용할 양식이 우리가 매일 먹는 육의 양식을 말하는 것처럼 생각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비록 식사전 기도 문제를 놓고 그런 체험을 저에게 주셨다고 해서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이 그런 육의 양식을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이 물질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을 말 해주고자 함이 아니라, 우리가 속한 세상을 옮기는 길을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의 일용할 양식을 육의 양식으로 생각한다면 결국 성경말씀을 이 물질 세계에 상관된 계명으로 변경시키는 것입니다. 주님이 원치 않는 바입니다. 
 
[일용할 양식의 참 뜻]
여기서 예수님이 구하라고 한 일용할 양식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의 양식인 말씀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양식을 먹어야 살아가고 일을 할 수 있듯이, 우리의 영도 양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그 영의 양식은 예수의 살로 표현되는 말씀입니다. 
개역성경에서 '일용할'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는 '에피우시온'이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전치사 '에피'와 동사 '에이미'가 결합된 것으로 '온전한'또는 
'위에서 오는' 이라는 의미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런 번역은 이 단어가 성경에서 마태복음 누가복음의 주기도문 이외에 다른 용례가 없기 때문에 논란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용할'이라는 뜻보다 '온전한'으로 번역되는 것이 더 합당합니다. 이것은 이 글 전체의 흐름을 접하고 나면 더욱 더 선명해 질 것입니다. 
 
[예수를 임금 삼으려...]
온전한 양식 또는 위에서 오는 양식을 좀더 이해하기 위하여 요한복음 6장의 전반부를 잠시 살펴 보겠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기사입니다. 예수님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인 사건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기적을 행하신 예수를 보고 참으로 세상에 오실 선지자라 하면서 그를 억지로 임금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홀로 산으로 떠나가셨습니다. 유대인들은 예수님이 5000명의 먹을 것을 일거에 해결하는 것을 보고 이 분이야말로 참 선지자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한 이 분이 있다면 유대백성이 굶어 죽을 일이 전혀 없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만일 예수님이 이와같이 사람들에게 육신의 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오셨다면 이들을 피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목적으로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에 피하셨던 것입니다. 
 
이런 유대인들의 모습은 곧 우리가 예수를 보는 시각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예수를 왕으로 섬기면 밥 걱정없이 배불리 먹을 수 있고, 병도 다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지금 주기도문도 육의 양식으로 생각한다는 자체가 예수께서 육의 양식을 해결하러 오신 분으로 알고 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유대인들을 피해갔던 것처럼 피해 가실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그런 신앙이 좋고 나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믿음은 이제는 올바른 믿음으로 자라나야 한다는 조명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 바로 믿자는 말씀입니다. 
 
[썩는 양식과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
[요6:26] 26/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본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27/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하라 이 양식은 인자가 너희에게 주리니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나중에 자신을 찾는 무리들을 만나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입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찾은 것은 육신의 양식을 제공하기 때문에 찾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말씀하십니다. 결국 예수님은 이 무리들이 찾고 있는 것은 썩는 양식이고, 자신이 주는 것은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육의 양식보다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 중요하니 그것을 찾아 일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로써 주기도문에서 구하라는 일용할 양식은 당연히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육신의 양식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일용할' 이라는 단어도 '영생하도록 있는'이라는 뜻이며, 이것은 곧 '온전한' 또는 '위로부터 오는' 의미에 해당됩니다.
 
[양식이신 예수의 말씀]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을 하늘에서 온 떡이라 하십니다. 
  즉 예수님 자신이 온전한 양식, 위로부터 오는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입니다. 그리고 이 예수님의 본질은 말씀입니다. 곧 말씀이 양식이며, 이것을 위해서 기도하고 일하라고 하십니다. 
왜 그렇게 하라고 하실까요? 
그런 양식을 먹고 사는 자들은 이 세상에서 나와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 영생을 얻은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 자가 되라 또는 그것을 소원하라는 말씀이십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양식이 바뀌면 나라가 바뀝니다. 
육신의 양식만 먹고 사는 사람은 이 세상 나라의 백성입니다. 말씀의 양식을 먹고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나라가 다르니까 양식도 다릅니다.
 
[광야에서의 만나/ 가나안 땅의 소산]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나와 광야에서 무엇을 먹었는가 하면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 만나는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자 만나가 그치고 이후로는 그 땅의 소산을 먹었습니다. 
[수 5:12] 그 땅 소산을 먹은 다음 날에 만나가 그쳤으니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는 만나를 얻지 못하였고 그 해에 가나안 땅의 열매를 먹었더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 있을 때와 가나안 땅에 도달했을 때의 양식이 달랐습니다. 
 
- 만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주시는 만나를 먹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늘의 만나를 먹고도 죽었습니다(요6:49). 
이것은 우리의 다음과 같은 모습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 기도하여 육신의 먹을 것을 해결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가 기도하여 하나님이 허락하신 육신의 양식을 먹는다해도 나중에는 결국 죽습니다. 이것이 만나를 먹고도 죽는 모습입니다. 만나인 육신의 양식에는 영생이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것을 요한복음에서 "썩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 그 땅의 소산
가나안 땅은 좋은 땅이신 예수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 가는 것이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제 이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 즉, 예수그리스도 안에 들어간 사람은 예수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양식을 먹게 됩니다. 이것이 그 땅의 소산입니다. 이것이 온전한 양식이고, 하늘에서 내리는 양식입니다. 예수님은 이 양식을 요한복음에서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이라고 하십니다.
 
[정리하는 말]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말씀은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상징인 가나안에 들어가서 그 땅의 소산을 먹을 수 있도록 해 달라는 기도인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인도 음식을 먹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이 기도대로 응답을 해 주신다면 여러분은 언젠가 인도로 이민가는 수속을 밟고 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여러분이 온전한 양식을 먹기를 원하고 하나님께 간절히 소원하신다면, 머지 않아 하나님 나라로 옮겨 주실 것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을 통하여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2.2 오늘날
 
이제 오늘날이라는 의미에 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자 '온전한 양식'을 위해서 언제 기도하라고 하셨습니까? 
오늘날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오늘날’이라는 의미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오늘이 아닙니다.
  성경의 번역은 '오늘'과 '오늘날'을 교차해서 쓰고 있습니다. 이 글에서도 이 둘을 구분없이 사용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오늘날은 이 세상과 저 세상이 갈라지는 분기점으로서의 오늘입니다. 
 
  [분기점으로서의 오늘]
- 구약에서
[신29:12-13] 12/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언약에 참예하며 또 너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오늘날 네게 향하여 하시는 맹세에 참예하여 13/ 여호와께서 이왕에 네게 말씀하신 대로 또 네 열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대로 오늘날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시려 함이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과 언약하신 말씀을 살펴보면, 오늘이라는 말은 구원에 관련된 어떤 특정한 날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이라는 시점은 너를 세워 자기 백성을 삼으시고 자기는 친히 네 하나님이 되는 중요한 시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때는 언제입니까?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야 비로소 온전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입성을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이때가 바로 오늘입니다. 가나안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그 날이 오늘날입니다. 다시 말해서 광야와 가나안,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는 날이 오늘입니다. 
 
-신약에서 
[눅19:8-9]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삭개오가 구원을 받은 그 시점이 바로 오늘입니다. 
[눅 23:43]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니라
오늘은 구원이 이루어지는 결정적인 때, 즉 비구원과 구원의 분기점이 되는 때를 말합니다. 
  오늘은 광야 생활과 가나안 생활, 세상과 하나님의 나라가 갈라지는 때를 말합니다. 
 
[오늘날 이전- 힘든 광야생활]
오늘날 이전까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과 광야에서 큰 기적을 보았어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아직 광야 생활을 한다는 것은 오늘날에 주어지는 온전한 양식인 말씀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말씀이 들린다는 것은 곧 온전한 양식을 먹는다는 것이고 그것이 곧 그에게 있어서 오늘날인 것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오늘날의 기회를 말씀에 귀를 막음으로써 그냥 그렇게 흘려 버립니다. 
 
[신29:3-4] 3/ 곧 그 큰 시험과 이적과 큰 기사를 네가 목도하였느니라4/ 그러나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는 오늘날까지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사도바울도 로마서에서 마음이 완악하게 된 자들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롬11:8-10] 8/ 기록된 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9/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10/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 우리의 경우
이것은 곧 우리의 모습입니다. 많은 분들이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체험을 했습니다. 사업이 위태 위태할 때 회생케 해 주셨고, 가족들이 병원에 입원해서 힘들고 막막한 세월을 보냈을 때 주님의 은혜로 무사히 지낼 수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오던 날 중에서 하루도 하나님의 은혜와 기적이 아닌 일들이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아직 오늘날까지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하나님께 허락을 받지 못해서 말씀을 거부하고 있습니다. 성경에서의 표현이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마음을 닫고 귀를 막고 있는 것입니다. 마음이 완악해 진 것이고,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가진 것입니다. 그래서 등은 굽고 항상 힘들고 어려운 광야 생활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기회의 날들 - 오늘]
[히 3:15]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노하심을 격동할 때와 같이 너희 마음을 강퍅케 하지 말라 하였으니
 
히브리서 기자는 오늘날 너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거든 마음을 강퍅하게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수시로 여러분 앞에 놓이게 될 것입니다. 이 말씀이 들리게 되면 여러분은 온전한 양식을 취하게 되는 것이고 가나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아직까지 귀가 막히고 눈이 가린 모습이고 그래서 광야생활을 더 해야 합니다.
 
'오늘'이란 '말씀을 접하는 그 모든 기회의 날들'을 말합니다.
  이런 기회의 날들 오늘에 말씀이 들리게 되면, 그 사람은 이제 온전한 양식,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먹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는 하나님 나라로 이민(?)을 가게 되는 것입니다. 
 
3. 맺는 말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는 기도는 오늘이라는 기회의 날들이 닥칠 때 온전한 양식인 말씀을 듣고 받을 수 있는 자가 되게 해 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새 양식을 받을 수 있는 자는 속한 나라가 하나님 나라로 바뀌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 모두가 이런 하나님의 나라의 온전한 양식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변화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유교회
정 덕 영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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