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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눅 12:13-2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4-11-13 11:07 조회 |4,518회

본문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

[눅12:13-21]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16/ 또 비유로 저희에게 일러 가라사대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18/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 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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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예수란 누구인가?]
저는 수요일 성경공부 시간에 자주 '예수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합니다. 예수는 누구이며 그 예수가 나에게 무엇을 해 주실 분인가? 묻는 것입니다. 이 질문이 쉬운 것 같지만 매우 어려운 질문이며, 이 질문에 대한 올바른 답을 자신의 삶의 체험으로부터 고백할 수 있다면 삶 속에서 제대로 예수를 만난 분일 것입니다. 예수는 내 삶 속에 오셔서 나의 옛사람을 드러내서 치료하고 내 안에 성령으로 임하셔서 나를 새로운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이 일을 나에게 이루시는 분이 참 예수입니다.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가 누구인가? 물으면 위와 같은 대답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냥 무조건 예수 믿는다든지 곰곰이 생각해 보니 다른 것을 이룰 목적으로 예수를 믿는다든지 하는 것은 잘못된 예수 우상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살펴 볼 말씀은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성경과는 전혀 다른 예수를 믿고 있었다는 것을 알게 해 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으로 자신의 믿음의 여정을 바로 잡는 기회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개요]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예수께 부탁을 합니다. 형이 재산을 독식하려고 하니, 그것을 나와 나누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람아 누가 나를 재판장으로 세웠고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면서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는 말을 하십니다.
이어서 예수님은 한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한 부자가 밭에 소출이 많아서 창고를 넓혀서 곡식을 쌓아두고 평안히 먹고 마시자고 스스로 생각했으나,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여 네 영혼을 오늘 부르면 네가 예비한 것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 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놓고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리라고 하십니다.

[생각할 점]
본문은 얼핏 보기에 두 별개의 사건인 것처럼 보입니다. 첫째는 그의 형과 유업의 문제로 예수의 판결을 구하는 어떤 사람의 기사와, 둘째는 잘 아는 대로 한 어리석은 부자의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실은 이 두 사건은 '그리고' 라는 접속사로 연결이 되어 있는 한 가지 내용입니다. 나중에 나오는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형과 유업을 나누기를 원하는 그 사건을 설명하는 내용입니다. 다시 말해서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유업을 혼자 독차지 하려는 형에게서 자신의 몫을 나누게 해 달라는 동생에게 주는 비유입니다. 결국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유업을 받지 못한 동생을 빗대어 하는 말씀입니다.
이 말을 언뜻 이해하기 힘든 것은 동생은 재물을 많이 가진 부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유업을 독차지한 형이 이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를 들어야 마땅하다는 생각에서입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과연 정당히 유산을 형과 나누려 하는 것이 어떻게 탐심이 될 수 있으며, 예수님은 왜 유업을 받지 못하는 그를 어리석은 부자에 비유했는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해설

2.1 무리가 생각하는 예수 (눅12:13-14)
13/ 무리 중에 한 사람이 이르되 선생님 내 형을 명하여 유업을 나와 나누게 하소서 하니 14/ 이르시되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자로 세웠느냐 하시고

[방해가 되는 무리]
성경에서 예수 주위의 무리가 많이 나오는데 이들이 항상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예수가 지나갈 때 소경이 소리칠 때 예수께 가까이 가려 할 때 잠잠하라고 외쳐서 접근을 막는 자들이 무리이고, 중풍병자가 예수께 접근하려는데 무리에 밀려 접근하지 못해 지붕을 뚫고서야 예수를 접하게 되었던 것등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으려면 이 무리의 장벽을 뚫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무리는 예수 주위에 있으면서 다른 사람들이 예수께 접근하는데 방해가 되는 그런 존재들입니다.

이 무리는 결국 지금 예수 믿겠다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예수 믿겠다고 따라 나섰지만 예수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는 없이 무엇을 얻을까 하고 주변에서 맴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자기식 예수를 남에게 설명하고 전하니까, 오히려 이런 사람들이 예수를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그 분을 만나지 못하게 하는 일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마치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에게 전혀 엉뚱한 길을 가르쳐 줌으로 그가 제대로 된 길을 가지 못하게 하는 방해꾼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모습입니다.

[무리의 예수]
많은 교회에서 예수에 관해서 전하지만 참 예수를 전하는 교회는 많지 않습니다. 참 예수를 전하지 못하면 그들은 예수를 만날 수 있는 길목에 버티고 서서 다른 사람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 '무리' 역할을 자신도 모르게 하게 됩니다.
[마 23:13]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는 천국 문을 사람들 앞에서 닫고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려 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하게 하는도다

'무리'가 생각하는 예수는 그저 우리 교회에 와서 열심히 충성하고 성경공부하고 봉사하라 그러면 천국 간다는 식입니다. 자신이 다니는 교회는 그렇지 않다고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단지 자신이 그것을 모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참 예수는 우리의 옛사람을 드러내서 십자가로 데려가서 못을 박습니다. 예수는 우리의 충성봉사를 바라고 그렇게 하면 천국 보내 주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런 것의 문제점을 드러내고 자신의 영광을 위해서 그런 일을 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라고 하십니다. 당연히 우리 자유교회에서는 그렇게 자기식으로 자기의로 일하는 자들은 기를 펴지 못합니다. 이때 회개하면 올바른 믿음의 길로 갈 수 있을 텐데 옛사람의 종노릇을 하여 성질 내게 되면 자신이 가고 싶은 길을 갈 수 밖에 없습니다.

  [동생이 생각하는 예수]
이 무리에서 나온 한 사람, 즉 동생이 예수님을 찾아 무엇을 해 주기 바랐습니다. 이것은 이 동생으로 대표되는 무리가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 줍니다. 동생은 예수에게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나와서 해결 받기를 원했는데 그것은 형이 독식하고 있는 재산을 나누어 받기를 원했습니다. 이 동생은 자신이 금전적으로 압박을 받고 있고, 어려운 생활을 하고 있는데 예수가 나서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것은 무리와 동생만이 예수를 생각하는 방식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예수를 이런 식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복을 주셔서 높은 자리에 않게 하시고, 부자 되게 하시고, 질병을 고쳐 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생에게 "누가 나를 너희의 재판장이나 물건 나누는 사람으로 세웠느냐?"고 하십니다. 예수님은 그렇게 너희 재물을 확보해 주고, 더 많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나는 왜 예수를 믿나?]
그럼 나는 왜 예수를 찾고 예수를 믿고 있는가요? 내가 예수를 찾는 이유가 이 어떤 동생의 경우와는 다르던가요? 자기가 세상 재물을 얻는데 예수의 축복이 필요하고, 자신이 세상적으로 어울려서 놀러 가는데 안전 운전해서 갔다 올 수 있게 해 주는 그런 예수를 바라십니까? 그런 사람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실 것입니다.

" 이 사람아 누가 나를 너희 놀고 먹는데 도움 줄 사람으로 세웠느냐? " 우선 급한 것이 먹고 사는 것 그리고 노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인정해 주는 사람이 구미에 맞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과 어울려 한 두 해 신앙 생활해서는 그 허점을 알지 못할 것입니다. 한 10년 20년 그곳에서 생활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영혼의 만족이 없고 배부름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라고 다 같은 예수가 아닙니다.

2.2 예수님이 보시는 탐심(눅12:15)
15/ 저희에게 이르시되 삼가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사람의 생명이 그 소유의 넉넉한 데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고

[내용]
예수님은 유업을 형과 나누게 해 달라는 이 동생에게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이 동생은 실상 형에게 재산을 빼앗긴 자입니다. 그리고 그가 유산을 나누는 것은 어떤 면으로 보면 당연한 요구이고, 우리라도 그렇게 할 것입니다.
우리의 눈에는 탐심을 가진 자가 형이면 형이었지 동생이 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 예수님은 동생에게 탐심을 물리치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탐심은 재물을 가지려는 마음 자체가 탐심일까요? 예수님은 우리의 물질적 무소유를 원하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탐심의 정의]
예수님이 보시는 탐심의 관점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자신에게 와서 형의 재산을 나누어 받게 해 달라는 이것이 탐심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시 말해서 예수를 믿되 그 예수로 인하여 물질 축복을 받고 무난하게 놀러 다니는 것을 바라는 것을 탐심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동생이 형과 유업을 나누고자 하는 그 자체가 탐심이 아닙니다. 이 내용은 예수님은 우리에게 재물에 대해서 관심을 갖지 말라는 교훈을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런 식의 교훈은 성경 어디에도 없습니다. 우리의 착각일 뿐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 얼마든지 탐심으로 믿을 수 있습니다. 아니 거의 대부분 그렇게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그 예수가 자기의 물질을 채워줄 예수로 알고 있고 그래서 예수를 믿는 것이 탐심이라고 하십니다. 이런 사람들은 자기가 예수님께 의지하고 기도하기 때문에 예수의 영광을 위하는 것같이 생각되지만, 실상은 예수께 기도하여 자기 원하는 것을 성취하려는 탐심입니다.
[골 3:5] 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탐심이 곧 우상숭배가 되는 이유가 예수를 믿되 생명을 주는 분으로 믿지 못하고 세상 것을 주시는 분으로 믿고 있으니 이것이 우상예수이고 우상숭배입니다.

그럼 어느 것이 탐심이 아닐까요?

그것은 예수를 제대로 믿는 사람이 예수로 인한 탐심이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으로 자신의 옛사람을 드러내서 고치고 새생명을 받는 과정에 있는 사람들이 그런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예수님께 때로는 형의 재산을 나누어 받도록 해 달라고 해도 그것은 탐심이 아닙니다. 예수를 제대로 알고 믿음의 길은 가는 사람들은 주님께 자신의 필요한 바를 구할 수 있고 그것은 탐심이 아닙니다.

[생명이 소유의 넉넉함에 있지 않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하여 옛사람을 처리하고 새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동생은 예수로부터 생명을 구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소유의 넉넉함을 구했습니다. 예수를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아직 예수가 누군지 모르는 초보자이며 이들은 소유의 넉넉함을 위해서 생명이신 예수를 간과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생명 주러 오신 예수를 물질 축복 주러 오신 예수로 착각하고 따라 다니는 모습이 모든 탐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2.3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자(눅12:21) 0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내용]
예수님은 재산을 나누어 받지 못한 동생에게 한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밭에 소출이 많은 한 부자가 많은 곡식을 둘 창고를 늘리며 생각하기를 앞으로 잘 먹고 즐기면서 인생을 살 수 있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오늘 밤 그의 영혼을 부른다면 그의 재산이 누구 것이 되겠느냐?하셨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예수님은 재물 쌓는 데만 급급하고 하나님께 부요 하지 못한 자가 그렇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 앞에 나온 동생]
어쨌거나 동생은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예수 앞에 나왔습니다. 비록 책망을 받았지만 그는 그로써 자신의 믿음을 생각하고 고칠 기회를 가졌습니다. 그러나 형은 그냥 재물을 가지고는 예수 앞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도 모르고 고침을 받을 기회도 없었습니다. 참으로 예수 믿기를 원하는 자들은 말씀의 조명을 받을 때 잘못된 길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렇지 않고 말씀은 말씀 나는 나 하면서 흘려 보내게 되면 계속에서 어둠 속에서 있게 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문제를 가지고 목사님 앞으로 나오는 자가 현명한 자입니다. 비록 책망을 받더라도 자신이 회개할 기회와 고칠 기회를 부여 받게 되는 것입니다.

[어리석은 부자의 교훈]
여기서 재물을 단순하게 물질적 재물로만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이 동생은 재산을 나누어 받지 못해서 재산이 없는 상태인데 예수님은 그를 소출이 많은 부자라고 비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동생은 예수를 믿으면서 생명을 주는 예수를 믿지 못하고 세상의 물질축복을 주는 예수로 믿고 있는 자입니다. 이가 바로 생명보다는 자기를 위하여 이 세상의 재물을 쌓기 위해서 예수를 믿는 자요, 곧 탐심을 가진 자요, 어리석은 부자입니다.

예수님은 어리석은 부자의 교훈을 통하여 우리에게 세상 것보다 생명이 우선하고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우리는 과연 세상 것과 생명 중에서 어느 것을 중요시하고 있습니까? 만일 우리가 예수 믿으면서 최종적으로 이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어리석은 부자요, 탐심을 가진 자입니다. 그렇게 해서 자신의 재물을 많이 쌓아 놓을 수 있다 한들 그것이 어찌 생명보다 귀할 수 있겠습니까?
이들이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생명에는 관심이 없는 하나님께 부요치 못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믿을 때 재물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믿지 생명을 얻기 위해서 믿는 사람들은 지극히 드믑니다. 물론 자신들은 이미 생명을 얻었고 영생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행동하는 것을 보면 동생과 같습니다. 이것은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생명이 잘못된 것임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생명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그 과정을 우리도 개별적으로 거쳐서야 만이 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무슨 어떤 목적으로 믿는지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3. 맺는 말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러 오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를 통해서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항상 이 점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미 생명을 받았고 구원도 받았다고 생각한다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생명을 받은 사람의 행동은 이 동생과 같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탐심이란 예수를 생명을 주는 분으로 알고 따르지 못하고 세상 것을 주는 예수로 알고 있는 것이 탐심입니다. 이것이 다른 예수를 믿는 것이고 곧 우상숭배입니다.
또한 예수를 통해서 세상 것을 취득하려는 자들은 비유에서와 같이 자신을 위하여 재물을 쌓아둔 자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곧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들입니다.
우리 모두 예수를 생명 주시는 분으로 바로 알고 믿어서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자들이 되십시다.

자유교회
정 덕 영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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