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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보지 못하고 믿는 자 (요20:24-2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1-14 10:56 조회 |4,926회

본문

보지 못하고 믿는 자

[요20:24-29]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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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이중적 의미]
성경에서 말하는 단어들은 그냥 우리가 사전에서 찾아 내는 그런 단순한 의미가 아닙니다. 그 의미를 넘어서 깊은 다른 뜻이 있습니다. 사전에 나오는 의미로 단순히 어떤 특징을 비유해서 그 단어를 차용했을 뿐입니다. 예를 들면 사전에서 죽은 자라는 말은 시체가 되었다는 의미인데, 성경에서 말하는 죽은 자란 영혼이 하나님에 대하여 죽은 것 같이 반응을 보이지 않는 자들을 놓고 즉 죄인을 놓고 죽은 자라고 합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그것도 빵의 누룩이 아니라, 사람의 교훈을 의미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단어 그대로의 뜻으로 이해한다면 전혀 엉뚱한 결과를 초래할 수 밖에 없습니다.
본문에 나오는 믿음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믿는다는 말이 나오니까 우리는 너도 나도 예수에 대한 신뢰를 믿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큰 믿음, 작은 믿음이라는 말이 성경에 나오면 그것이 믿음의 강도(强度)인 것으로 생각하고 의심 없이 믿는 것이 좋은 믿음, 큰 믿음이라며 스스로 굳게 믿어 보려고 합니다. 또한 “믿씁니다!” “믿씁니다!”하고 굳은 믿음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그런 믿음이 아닙니다. 결론부터 말한다면 성령이 나에게 와서 나와 하나된 상태가 믿음을 소유하게 된 것입니다. 성경은 이 믿음을 말하고 있고,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을 복되다고 합니다..

[개요]
오늘 말씀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났을 때 도마는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제자들에게 예수 부활의 소식을 전해 들은 도마는 직접 만져보고 손가락을 옆구리에 넣어 보기 전에는 믿지 못하겠다고 합니다. 여드레를 지나서 도마를 포함한 제자들이 집 안에 있을 때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그리고 도마에게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하셨습니다. 도마는 예수를 만져본 후 비로소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 이다” 라고 고백을 합니다.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라고 하십니다.

[살필 점]
첫째, 예수님과 도마와의 대화 내용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와 도마의 대화가 어쩐지 서로 핀트가 맞지 않는 느낌을 받습니다. 도마는 예수를 만져 보아야 믿겠다고 했고 예수님은 나를 만져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고 했습니다. 도마는 예수를 만진 다음에, 믿는다는 고백을 합니다. 예수가 자신의 구세주이고 하나님이라는 말이 그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네가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되다” 하십니다. 이 말씀의 뜻을 살펴 보겠습니다.

둘째,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 과연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흔히 우리는 이 부분을 의심 많은 도마라는 내용으로 이해를 해서 도마와 같이 하지 말고, 못 보아도 무조건 믿자는 권면을 많이 합니다. 또한 우리는 육신의 예수를 보지 못하고 믿기 때문에 우리가 바로 복된 자라는 아전인수식 생각을 합니다.
과연 보지 못하고 믿는 자란 누구일까요?

2. 본문해설

2.1 확인하고 믿는 믿음 (요20:24-25)
24/ 열두 제자 중에 하나인 디두모라 하는 도마는 예수 오셨을 때에 함께 있지 아니한지라 25/ 다른 제자들이 그에게 이르되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 하니 도마가 가로되 내가 그 손의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하니라

[보아야 믿겠다?]
예수를 전하다 보면 가끔 이런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천국과 지옥이 정말 있어? 가 보았느냐? 보여 주면 믿겠다."
천국과 지옥을 자신에게 보여 줄 때까지 자기가 살고 싶은 대로 살겠다는 사람이고 지금까지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이 바로 도마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도마는 이렇게 증거를 보아야 부활을 믿겠다는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으로부터 도마가 책망 받은 것을 아는 우리는 "그냥 믿지 증거는 무슨 필요가 있느냐? 그냥 믿어요"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의 부활을 그냥 믿습니다. 그냥 믿어집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들이 당시 도마보다 낫다고 생각합니다.

아무튼 도마는 주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자신의 손가락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않겠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고 만져 보고서야 믿을 수 있겠다는 고백입니다.

2.2 만지는 것의 뜻(요20:26-27)
26/ 여드레를 지나서 제자들이 다시 집 안에 있을 때에 도마도 함께 있고 문들이 닫혔는데 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하시고 27/ 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8일후에 도마와 제자들이 함께 있는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는 도마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만져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

[도마와 우리의 이해]
우리는 이 말씀을 예수가 부활 한 것을 손으로 만져 보고 난 후에 믿으라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과연 도마는 예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정말 나의 구원자 이시고 하나님이시군요"
예수를 만져보고는 부활도 믿고, 그 분이 구원자이고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자 그렇다면 예수님은 도마에게 그래 이제야 믿는구나 너는 이제 나를 믿는 자가 되었다 해야 말씀의 흐름이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런데 도마가 그런 고백을 하니 예수님께서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는 복 되 도다” 하시는 것을 보면 도마와 우리의 이해는 어딘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도마와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
우리는 대부분 내 안에서 일어나는 예수에 관한 신뢰를 믿음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도마와 같이 만져 보고 자신 안에 생기는 확신을 믿음이라고 하지만, 그러나 이런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믿음이야 제자들은 늘 가지고 있었습니다. 물 위를 걸으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을 먹이시는 기적, 풍랑을 잔잔케 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믿음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저의 경우도 마찬가지로 주님을 처음 만나서 병 고침의 기적을 체험하고 예수가 살아있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매주일 교회 뒷자리에 앉아서 끝날 때까지 딴 생각하다가 쫓기듯 집으로 돌아가던 생활을 청산하고, 교회 맨 앞자리에 앉아 손들고 기도하고 찬양하며 예수님께 감사하는 모습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이 저의 믿음의 모습이었습니다. 그 당시 저는 누가 뭐래도 예수를 믿지 않을 수 없었고, 주위 사람들도 또한 저를 변화된 사람으로 생각을 했습니다. 제가 이렇게 주님께 열심을 내 게 된 것은 주님의 기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때 만일 주님이 저에게 "너는 나를 믿느냐?" 하셨다면, 저는 주저 없이 "주는 그리스도요 하나님이요, 전능자요, 나의 모든 것이요, 모든 것의 모든 것이라"고 고백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은 시간이 지나면 퇴색되게 되어 있고 결국 잊어 버리게 됩니다. 물론 그런 체험을 참다운 믿음을 받을 수 있는 기회로 삼는다면 나름대로 유익할 것입니다. 그러나 기적을 보고 마음 속에서 생기는 믿음은 예수가 주고자 하는 참 믿음이 아닙니다.

[참 믿음]
예수를 믿을 수 있으려면 그 예수와 하나가 되어야 비로소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경우, 예수를 직접 만나서 3년 반이나 따라 다니면서 행하는 기적을 눈으로 보고 믿는다고 시인을 했지만, 결정적인 순간에 모두 다 예수를 배반하고 도망갔습니다.
제자들이 그 정도니 예수 옷자락도 못 만지고 믿는 우리야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
예수의 육신을 만져 본 제자들이나, 예수를 만져 보지 못한 우리들도 모두 똑같이 그리스도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게 될 때 비로소 예수 믿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를 보고, 만지게 됩니다. 영적인 의미에서...
성경에서 제자들이 예수를 모두 보고 만졌다는 표현은 육적인 의미 이상입니다. 즉, 자신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처리되고 그리스도의 영을 받은 자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예를 들어 요한1서에서 요한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일 1:1-2]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언뜻 생각하기에 사도 요한이 예수의 육신적인 몸을 보고 만진 바라는 의미로 생각되지만 아닙니다. 물론 요한은 예수의 몸을 보고 만졌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뜻은 옛사람을 처리하여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된 자신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뜻]
여기서 예수님이 도마에게 하신 말씀의 참 의미는 이런 것입니다.
"너는 나를 보고 만져서 나와 하나가 되어 믿는 자가 되라'
도마하고 우리들은 이 말씀을 "네가 부활한 나를 만졌으니 이제는 제발 좀 나를 믿어다오"라는 식으로 이해를 합니다. 예수님의 말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과의 대화가 다음과 같이 엇갈리는 것입니다.

2.3 보지 못하고 믿는 자 (요20:28-29)
28/ 도마가 대답하여 가로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29/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하시니라

[내용]
도마는 과연 예수의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고 다음과 같이 신앙고백을 합니다.
"정말 나의 구원자 이시고 하나님이시군요."
그러나 예수님은 기껏 하라는 대로 해서 믿어진다는 신앙고백을 한 도마에게 엉뚱하게 이렇게 말합니다.
"네가 나를 만져 본고로 믿느냐? 나를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
이것은 결국 도마와 같이 만져보고 믿는 믿음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앞서 말씀 드렸듯이 예수가 생각하는 믿음과 도마가 생각했던 믿음의 차이를 확인해 주시는 장면입니다.

[보고 믿는 자]
예수님께서 손을 만져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라고 하신 말씀은 나와 하나되어야 나를 믿을 수 있고 그러한 믿음을 가진 자가 되어라라는 뜻이었으나, 도마는 그것을 그냥 육신적으로 만져 보고 옆구리에 손을 넣는 것으로 이해를 했습니다.
여기서 "보고 만진다"는 것은 예수님과 영적인 하나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져보고 기적을 보고 증거를 받는 것으로 이해를 한 도마에게 예수님은 그런 기적을 보고 믿는 믿음은 복이 없는 믿음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
여기서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이란 보고 믿는 자들에 대비되는 말씀입니다. 보지 못한다고 해서 문자적으로 눈으로 예수를 보지 못했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도마와 같이 보고 믿겠다는 '율법적 믿음'과 그 반대인 '복음적 믿음'을 대비시키기 위해서 '보고 믿는 자'와 '보지 못하고 믿는 자'를 대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보지 못한다는 것이 무엇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냐? 라고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됩니다.

[복된 그들]
성경에서 아브라함에게 복을 약속을 했고, 산상수훈에서 심령이 가난한자 애통한자, 마음이 청결한 자등등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은 복을 약속하셨는데, 그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한결같이 한 사건을 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생명이 온전히 나에게 전해져서 예수를 보고 만져 의인이 되었을 때, 그때를 놓고 복 받았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입니다.

3. 맺는말

우리는 예수 믿을 때 좀 더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뭐가 뭔지 모르고 그저 내가 예수를 믿어 주기만 하면 천국에 가고 복도 받는다고 생각 하지만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대충 예수 믿어 주기도 힘이 드는데, 여기서는 죽었다가 부활한 예수의 몸을 만지고 나서 생기는 믿음마저도 복되지 않다고 합니다. 그렇다고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말씀을 잘 듣고 예수를 만나서 자신의 옛사람을 처리함 받으면 됩니다. 이 일은 예수님이 이루어 주시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힘든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순종하고 따라 나서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이 길을 가셔서 예수님이 주시는 '보지 못하고 믿는 믿음'을 소유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유교회
정 덕 영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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