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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솔로몬의 명판결 (왕상3:16-2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2-17 13:53 조회 |4,864회

본문

솔로몬의 명판결

[왕상3:16-28] 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17/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18/ 나의 해산한 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19/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20/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매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23/ 왕이 가로되 이는 말하기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저는 말하기를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는도다 하고 24/ 또 가로되 칼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칼을 왕의 앞으로 가져온지라 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26/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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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지난 말씀의 개관]
지난 시간에는 솔로몬이 하나님께 일천번제를 드리고 그 결과 하나님으로부터 지혜를 받아서 모든 영광과 부를 누리게 되었다는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은 지금 우리가 예수로 인한 성령을 받게 되면 솔로몬의 지혜를 능가하게 되어 많은 사람들이 우리들의 지혜의 말을 듣고자 먼 곳에서 오게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고 얻게 된 것은 썩어질 이 세상의 영광이었지만, 우리가 성령을 받게 되면 영원히 썩지 아니할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으면 솔로몬이 받은 영광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과거 기록 나와 무슨 상관?]
오늘 말씀은 솔로몬이 하나님께로부터 지혜를 받은 이후에 보여준 명 판결 장면입니다. 너무나 유명한 말씀이라서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도 성경에서 보여주는 하나의 사건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솔로몬의 명 판결이 지금의 나와 무슨 상관이 있는 지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적인 사건은 그것을 통하여 영적 세상을 우리에게 보여 주기 위한 수단이지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 판결만으로 이해한다면...
생각해 보면 지금까지 우리는 이 기사를 그냥 솔로몬의 지혜로운 판결로만 이해를 하려고 했습니다. 이 사건에서 무슨 영적인 의미가 있을 필요가 있는가? 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것의 영적인의미를 알지 못하면 과거의 한 지혜자가 지혜로운 판단을 했구나 하고 역사서적이나 위인전 읽듯이 읽고 지나가는 수 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지혜자의 지혜를 배운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이 정도의 지혜는 우리가 이미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이 지혜의 실용성 문제도 생각해 보면 실제로 적용할 수도 없다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 말씀의 영적 의미에 관해서 살펴 보고자 합니다. 
 
[개요]
오늘 이야기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한 집에 두 창기가 있었는데, 둘 다 비슷한 시기에 아이를 낳았습니다. 그러다가 한 여인이 자다가 아이를 깔아 뭉개는 바람에 아이가 죽게 됩니다. 그 여인은 죽은 아이를 다른 여자의 아이와 슬쩍 바꿔치기 합니다. 바꿔치기 당한 여인이 아침에 아이를 보니 죽은 아이고, 또한 자신의 아이가 아닌 것을 알고 내 놓으라고 하나, 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솔로몬 앞으로 와서 두 여인이 진술을 하는데 한결 같이 산 자식이 자기 자식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에 솔로몬은 두 여인이 다투는 소리를 듣고, 산 아이를 둘로 나누어서 균등히 분할하라고 합니다. 이때 산 아이의 참 어미는 그렇게 아이를 죽일 수가 없다고 하고 그 아이를 주라고 합니다. 하지만 다른 여인은 둘로 나누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이제 그 아이를 둘로 나누지 말라고 한 어미에게 주라 그가 그의 참 어미라고 판결을 내립니다. 이에 백성들은 왕을 두려워했는데 그가 하늘로부터 지혜를 받는 것을 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방향]
말씀 드린 대로 오늘 이 이야기는 한낱 과거의 어떤 지혜로운 이야기가 아니라, 우리에게 주는 영적의미가 있기 때문에 그것에 관해서 함께 살펴 보는 시간이 되도록 합니다. 
 
2. 본문해설
 
2.1 창기의 해산 (왕상2:16-18) 
16/ 때에 창기 두 계집이 왕에게 와서 그 앞에 서며 17/ 한 계집은 말하되 내 주여 나와 이 계집이 한 집에서 사는데 내가 저와 함께 집에 있으며 아이를 낳았더니 18/ 나의 해산한 지 삼일에 이 계집도 해산하고 우리가 함께 있었고 우리 둘 외에는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나이다
 
[내용- 상징성]
이야기는 한 집에 사는 두 창기가 아이를 삼일차이로 낳는 일로 시작을 합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렇게 아이를 낳는 것을 그냥 아이 낳는 것으로 이해를 한다면 여기에서 무슨 영적 상징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성경의 이야기에서 그 상징성을 발견하지 못하는 이유는 성경 전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성경을 전체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분들은 이런 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로만 들리지 않습니다. 
 
[낳는 문제]
성경은 예수에 관한 증거이고 예수 믿는 사람들에게 주는 생명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이 이야기는 과거의 한 사건이 아니라, 인류역사상 계속될 인간의 본질에 관한 말씀입니다. 
이제 자유교회에 나오시는 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그냥 단순하게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예수를 낳는 것입니다. 내가 말씀으로 잉태되어 예수를 낳게 되면 그 예수로 인하여 내가 구원을 받게 됩니다. 
우리는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씨인 예수의 말씀을 받아서 예수를 출산해야 될 여자들입니다. 
 
-제자들의 경우
제자들의 경우도 예수를 만나서 3년 반 동안 따라 다니면서 말씀을 듣고 옛사람이 처리 받음으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신 후 제자들은 예수를 해산하게 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16:21]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이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이런 맥락에서 사도바울은 [딤전 2:15] 그러나 여자들이 만일 정절로써 믿음과 사랑과 거룩함에 거하면 그 해산함으로 구원을 얻으리라
 
그러므로 성경에서 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은 예수 믿는 자가 말씀으로 예수의 생명을 잉태하고 낳는 것을 영적으로 상징하고 있습니다. 
 
[창녀 둘]
여기서 창녀란 일차적으로 청량리에서 볼 수 있는 그런 창녀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시하는 영적 의미는 간음하는 자 즉 우리의 남편이신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 우상 신을 섬기는 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떠나 온 죄인인 우리는 다른 씨를 받는 자들이기 때문에 간음하는 자들이라고 살펴 본 바가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두 창기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 이야기는 영적인 의미에서 예수 믿는 자들이 말씀으로 아이를 낳은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 믿고 거듭나서 구원을 받았다는 두 죄인들의 모습을 이 이야기가 그리고 있습니다. 
 
2.2 죽은 아들과 산 아들(왕상 3:19-22)
19/ 그런데 밤에 저 계집이 그 아들 위에 누우므로 그 아들이 죽으니 20/ 저가 밤중에 일어나서 계집종 나의 잠든 사이에 내 아들을 내 곁에서 가져다가 자기의 품에 누이고 자기의 죽은 아들을 내 품에 뉘었나이다 21/ 미명에 내가 내 아들을 젖 먹이려고 일어나 본즉 죽었기로 내가 아침에 자세히 보니 내가 낳은 아들이 아니더이다 하매 22/ 다른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산 것은 내 아들이요 죽은 것은 네 아들이라 하고 이 계집은 이르되 아니라 죽은 것이 네 아들이요 산 것이 내 아들이라 하매 왕 앞에서 그와 같이 쟁론하는지라
 
[내용]
한 여자가 밤에 자다가 자기 아들을 깔고 자서 죽으매 몰래 아들을 바꿔치기 했고, 자신의 아들을 바꿔치기 당한 여인이 아침에 일어나 그 사실을 알고 상대방 여자에게 말했으나 듣지 않아서 솔로몬에게 까지 왔습니다. 
 
-아들
이 이야기에서 등장하는 아이가 여자일 법도 한데 아들입니다. 여기서 아들이란 호적상의 아들이 아니라, 말씀에 의해서 낳게 된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성경에서 아들이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합니다. 이렇게 말씀에 의해서 아들인 그리스도를 낳은 사람은 새생명을 가지게 됩니다. 이것을 놓고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두 종류의 여자]
여기서는 두 종류의 여자가 나옵니다. 하나는 아들을 죽인 자이고 또 하나는 산 아들을 가진 자입니다.
 
- 아들을 죽인 여자
여기서 밤에 아들을 깔아 죽인 여자는 모르는 사이에 그렇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두움에 있을 때는 말씀을 분별하지 못해 어떤 것이 복음이고 어떤 것이 율법이요 윤리도덕인지 구분할 수가 없습니다. 그는 윤리도덕을 복음이라고 믿고 있고 그것을 마음 속에 받아 들이게 됩니다. 그래서 결국은 그가 낳는 아들은 인간의 씨를 받은 음란한 자식 곧 죽은 자식을 낳게 됩니다. 이것이 자식을 밤에 깔아 죽였다는 표현의 영적 의미입니다. 
 
- 산 아들을 가진 여인
이에 반하여 산 아들을 가진 여인은 올바른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서 참다운 그리스도를 해산한 신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복음을 제대로 받아 들여서 참다운 생명을 가진 자들을 말합니다. 더 쉽게 말한다면 금요 철야, 수요예배에 열심으로 참석하고 말씀으로 양육 받는 분들이 현재나 장차 아들을 낳게 되는데 이들이 바로 산 아들을 가진 자들입니다. 
 
[바꿔치기…]
이제 죽은 아들을 가진 여인은 자신이 낳지 않은 여인의 아이를 가로챕니다. 윤리 도덕을 가르치는 교회, 율법적인 교회에서 낳는 아이는 백발백중 죽은 아이입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자신이 정통이요 진리의 말씀이 있는 곳이고 자신들이 예수 제대로 믿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것이 바로 죽은 예수를 가지고 있으면서 산 예수가 자신의 것이라고 바꿔 치기 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의도적으로 바꿔 치기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만, 결과적으로 바꿔치기를 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들의 윤리 도덕적인 예수가 옳다고 주장하면, 당연히 복음의 참예수를 그르다고 주장을 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죽은 예수를 살았다고 말하는 것이고, 산 예수를 죽었다고 말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이를 바꿔치기 하는 영적인 의미입니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3 솔로몬의 판결(왕상 3:25-28)
25/ 왕이 이르되 산 아들을 둘에 나눠 반은 이에게 주고 반은 저에게 주라 26/ 그 산 아들의 어미되는 계집이 그 아들을 위하여 마음이 불붙는 것 같아서 왕께 아뢰어 가로되 청컨대 내 주여 산 아들을 저에게 주시고 아무쪼록 죽이지 마옵소서 하되 한 계집은 말하기를 내 것도 되게 말고 네 것도 되게 말고 나누게 하라 하는지라 27/ 왕이 대답하여 가로되 산 아들을 저 계집에게 주고 결코 죽이지 말라 저가 그 어미니라 하매 28/ 온 이스라엘이 왕의 심리하여 판결함을 듣고 왕을 두려워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지혜가 저의 속에 있어 판결함을 봄이더라
 
[내용]
솔로몬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산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합니다. 원 어머니는 아이를 그렇게 죽게 할 수 없다고 했으나 다른 여인은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합니다. 솔로몬은 아이를 살리려는 자가 참 어미임을 판결하게 되고, 이를 본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지혜가 솔로몬에게 있음을 알고 두려워하였습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자연재해로 인명피해가 많았던 쓰나미에 한 아이가 살아 남았는데 그 아이의 부모라고 여러 가족이 나타나 서로 자신들의 아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솔로몬의 판결대로 한다면 그 아이를 여러 조각을 내라고 하겠지만, 그런 지혜로운 판결은 이미 이 시대에서 통하지도 않습니다. 지금은 어떻게 할까요? 유전자 검사를 기다린다고 합니다. 
 
[생명의 균등분배?]
솔로몬이 산 생명을 둘로 나누라고 한 것의 상징은 그 두 어미 중 누가 산 생명을 볼 수 있는 자인가?를 보기 위함입니다. 한 어미는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했는데 그것은 그가 그렇게 악독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눈이 멀었기 때문에 생명을 생명으로 보지 못해서 하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하는 행동이 생명을 둘로 나누어 말살하는 것임을 미처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진정 참다운 복음에 의해서 예수(아들)를 낳지 않으면 참생명을 볼 수 있는 눈이 없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들을 세상적인 시각으로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이 곧 균등분배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 다윗과 우리아
예를 들어서 다윗과 우리아를 볼 때 우리아는 충성된 군인입니다. 그는 자신의 아내도 빼앗기고 그것도 모자라서 다윗의 계략으로 암몬과의 전쟁터로 나가 죽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하나님의 허락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생명을 산 생명으로 보았고 우리아는 죽은 생명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산 생명을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것을 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래서 속으로 우리아를 불쌍히 여깁니다. 그리고 다윗이 죽고 우리아가 결과적으로 살아야 합당하다고 생각합니다. 생명을 볼 수 있는 하나님과 그것을 보지 못하는 우리 인간의 모습인 것이고, 우리 인간은 어떤 것이 산 생명인지 죽은 생명인지 알지 못하니, 그저 모든 생명을 숫자상으로 균등하게 취급하고자 합니다. 그렇게 보지 못하니까 죽은 생명인 우리아를 살리고 산 생명이었던 다윗을 죽였으면 하는 잘못을 범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생명을 둘로 나누게 하라는 말의 영적의미입니다.
 
- 똑같이 사랑해 달라
제가 여러분들을 볼 때 참 말씀을 듣고 생명이 자라는 사람들을 더욱 사랑하고 귀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일부 세상에 속한 사람들은 목사님이 열 사람이면 열 사람 동일하게 사랑해야지, 같은 사람인데 누구는 무시하고 누구는 사랑한다고 하느냐? 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오직 세상에 속한 눈으로 보는 자들이고, 생명의 시각으로 사람을 보지 못하는 장님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서는 미워하고 야곱은 사랑하셨습니다.
 
아무튼 아이를 둘로 나누라고 한 이 어미의 모습은 곧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끔찍한 일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을 볼 수 있는 자]
한편 말씀을 제대로 받아서 아들(예수)을 출산하여 참 생명을 가진 자는 생명을 알아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 생명을 소중히 여겨서 살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참 어미가 아이의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차라리 상대 어미에게 주라고 한 것은 그녀가 생명을 볼 수 있는 거듭난 자라는 것을 증거합니다. 
 
[그냥 드러난다]
솔로몬이 지혜를 받아서 판결능력이 생겼다는 것은 성령을 받을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참 어미인 여인도 결국 자신 안에 아들(예수)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령을 받은 자입니다. 그렇게 거듭난 자는 거듭난 자를 알아 보게 됩니다. 이것이 솔로몬의 명 판결의 요체입니다.
현 시대에 솔로몬의 지혜가 임한 사람들에게는 즉 성령이 임한 사람들에게는 어떤 사람이 무슨 말을 하고 행동을 하는 것을 보면 이미 생명을 아는 자인지 아닌 자인지 알게 됩니다. 
 
  3. 맺는 말
 
이 두 여인은 한 집에 살았습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내(집) 안에 있는 두 사람을 말합니다. 나는 먼저는 죽은 아들을 낳은 여인이지만, 그런 믿음생활에서 회개하고 참 예수를 만나면 산 아들을 낳는 여인으로 변하게 됩니다.. 
 
여러분들 모두, 자신을 철저히 살펴서 제대로 된 말씀을 받아 산 아들 예수를 낳은 자가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솔로몬과 같이 지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서 생명을 볼 수 있는 눈과 판단을 얻으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덕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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