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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죄를 사하는 권세 (막2:1-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3-24 23:31 조회 |4,612회

본문

죄를 사하는 권세

[막 2:1-11] 1/ 수 일 후에 예수께서 다시 가버나움에 들어가시니 집에 계신 소문이 들린지라 2/ 많은 사람이 모여서 문 앞에라도 용신할 수 없게 되었는데 예수께서 저희에게 도를 말씀하시더니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b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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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성경의 기록내용은 그 자체로 영적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영적 상징을 제대로 읽어내고 볼 수 있을 때 우리의 비진리에 입각한 잘못된 시각을 교정 받게 됩니다. 성경을 상고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그런데도 어떤 사람들은 진리는 쉬운 것인데 그렇게 힘들여 해석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느냐? 합니다. 실로 진리는 단순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진리를 보는 우리 눈이 심하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이 왜곡된 눈과 싸워야 하는 것입니다.
본문도 예수님이 말씀하신 내용 이외에 우리가 추가로 이해를 해야 할 것은 그 장면입니다. 예수님이 그 장면을 통하여 영적 세상의 일을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의 상징성을 놓치게 되면 이 사건은 예수님이 중풍병자를 고치신 능력을 보여 준 것 밖에는 다른 의미를 찾을 수가 없게 됩니다. 이제 이 장면의 상징성과 예수님의 말씀의 연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뜻이 무엇인지 살펴 보겠습니다.

[개요]
오늘 말씀은 예수님이 계신 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 능력과 기사를 보고자 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때 그들에게 말씀을 전파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중풍병에 걸린 한 사람이 친구 4명의 도움으로 예수가 있는 집안으로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로 인하여 입구가 막혀있자 지붕을 뚫고 예수 앞으로 내렸습니다. 이들을 보고 있던 예수는 중풍병자를 보고 네 죄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곳에 있던 서기관들은 참람하도다 어찌 하나님 이외에 죄를 사할 수 있다고 하는가? 생각했습니다. 이들의 마음을 읽은 예수님은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과 네 상을 가지고 가라는 말 중에 어느 것이 쉽겠느냐? 그러나 인자에게 죄 사하는 권세가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서 그랬다고 하시면서 이제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가라고 하시니, 중풍병자가 일어나 걸음으로 그곳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다 놀라는 모습입니다.

[방향]
오늘 말씀으로는 첫째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를 고치셨는데 이들의 믿음이 무엇인지 한번 말씀 드리고 둘째로는 예수님의 죄 사하는 권세에 관해서 말씀 드립니다

2. 본문해설

2.1 믿음을 보시고...(막2:3-5)<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 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믿음이란?]
예수님은 많은 무리에 둘러싸여 그들 때문에 다른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중풍병자를 메고 온 네 사람은 지붕을 뚫고 중풍병자를 내려 예수가 있는 집안으로 들여 보냈습니다. 이때 예수님은 이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하셨는데 과연 예수님이 이들에게서 본 믿음이란 무엇이었을까요? 과연 이 중풍병자와 친구들의 믿음은 무엇이었을까요? 그리고 중풍병자를 고치시면서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시는데 중풍병과 죄사함의 관계가 무엇일까요?

- 일반적 생각
어떤 분은 이 믿음을 말할 때, 중풍병자와 친구들이 지붕을 파손한 일로 집 주인에게 변상할 각오도 불사하는 그런 갈급함이 그들의 믿음의 실체라고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런 식의 믿음은 인간에게서 나는 믿음이요 열심이지, 예수님이 주시고자 하는 믿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는 그런 열심이 그의 중풍병을 고치게 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보신 믿음은 그들의 행동을 믿음으로 인정한 것이 아니라, 그 장면을 영적 의미로 해석하여 믿음을 설명하고 그리고 그 결과 죄사함을 주신 것입니다. 조금 더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중풍병자의 영적 의미
중풍병자란 하나님과의 교통이 없고, 하나님을 알지도 못해서 그 분의 명령 앞에 한 치도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중풍병자는 죄인을 상징합니다. 중풍병을 고치는 예수님의 행동은 죄인을 고쳐서 죄 사함을 주고 의로운 사람으로 변화시키는 구원 사역을 말하는 것입니다.

- 이 장면의 상징성
예수님은 집 안에 계십니다. 그리고 그 집을 에워싸고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습니다. 이 그림은 참다운 복음이고 구원의 주체이신 예수님이 율법에 속한 무리들에게 둘러 싸여 있는 모습입니다. 단단한 율법의 껍질 속에 계신 복음이신 예수님이십니다.
그런데 이 중풍병자는 자신 스스로는 움직이지 못하지만 4명의 도움을 받아 예수님이 계신 집의 지붕을 뚫고 예수 앞으로 내려가게 됩니다. 이것은 죄인이 율법의 연단으로 상징되는 무리와 지붕을 뚫고 결국 예수와 한 집에서 하나되는 장면입니다. 예수님은 이들의 행동과 이 장면을 구원이 이르는 길에 대해서 설명하는 기회로 삼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전하고자 하시는 뜻은 죄인 된 우리가 네 사람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집 안에 예수를 성령으로 영접하게 되면, 여기의 모습에서와 같이 예수와 하나가 되고 그것이 예수와 자신이 한 집에서 하나되었으니 이것이 곧 죄사함이자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삭개오의 집에 들어 가셔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눅19:9)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과 삭개오가 한 집에서 하나된 그림을 통하여 구원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계신 것입니다.

- 믿음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 일행의 믿음을 보시고 죄사함을 주셨는데, 이들의 믿음이란 그들의 인간적인 노력을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연단을 통과하여 예수 앞에까지 나와서 하나 되게 된 과정 전체를 그들의 믿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믿음 자체는 죄사함이요 구원입니다.
이런 당연한 이치의 말씀을 우리는 예수가 중풍병자의 노력에 감동하여 죄사함을 주고, 병을 고쳐 준 것으로 이해를 하지만, 그것은 예수를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중풍과 죄사함]
흔히 우리는 질병의 원인을 죄로 돌립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성경에서도 유대인들이 날 때부터 소경 된 자를 놓고 예수에게 이 자가 이렇게 태어난 것은 자신의 죄때문이냐?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이냐?고 묻습니다.그에 대해 예수님은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그에게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말씀하십니다.(요9: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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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의 질문을 생각해 보면 소경 아닌 사람들은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 되고, 중풍에 걸리지 않으면 죄인이 아니라는 말이 됩니다. 우리 죄인들에게 사람에 따라서 중풍이 나타나는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만의 특별한 죄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일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런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그런 질병을 통하여 나타내기 위하심입니다.

중풍이 죄와 상관이 없다면 왜 예수님은 여기서 중풍을 고치시면서 너의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님은 죄인으로 비유된 중풍병자가 예수로 인하여 죄사함을 받는 것을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경우]
우리 대부분은 예수님을 생각할 때 육신의 예수만을 생각합니다. 지금 이 성경말씀에도 예수님이 계시지만, 성경의 외형의 뜻 즉 윤리와 도덕의 뜻에 의해서 복음의 참 뜻이 가리워져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참 뜻에 접근하지 못하게 되고, 접근하지 못하면 중풍병을 고침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듣는 말씀, 이 안에 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 예수는 윤리도덕으로 인해 겹겹이 쌓여 있는 여러분 자신의 마음으로 말미암아 접근이 불가능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을 고치실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되돌아 가는 일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를 만나지 못하면 그냥 중풍병자 생활 하다가 죽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을 이렇게 허비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2.2 죄를 사하는 권세 (막2:6-10)
6/ 어떤 서기관들이 거기 앉아서 마음에 의논하기를 7/ 이 사람이 어찌 이렇게 말하는가 참람하도다 오직 하나님 한 분 외에는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8/ 저희가 속으로 이렇게 의논하는 줄을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마음에 의논하느냐 9/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는 말과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걸어가라 하는 말이 어느 것이 쉽겠느냐 10/ 그러나 인자가 땅에서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는 줄을 너희로 알게 하려 하노라 하시고 중풍병자에게 말씀하시되

[죄를 사하는 권세]
예수님이 중풍병자에게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자, 서기관들이 마음 속으로 하나님 이외에 죄를 사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이 자가 참람한 말을 하는구나! 하나님을 모독하는구나!하고 생각 했습니다.
물론 지금의 우리나 유수한 신학자들은 예수님이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을 동격으로 취급을 하니, 그 죄사함의 권세는 하나님과 예수님만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사람이 나타나서 '나에게 죄를 사하는 권세가 있다' 하면 '참람하도다 그 참 희안한 이단이 나타났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보면 죄사하는 권세가 제자들에게도 주어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했던 일을 그들도 할 것이고 이보다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신 일이란 죄에 빠진 세상 사람들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그 일을 제자들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구원의 일을 하시고 십자가에 돌아가셨지만 제자들은 그 구원의 일을 하고도 육신적으로 계속 살아 남아서 구원 받은 자들은 또한 장성한 자의 길로 인도할 수 있기에 더 큰 일도 할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요 14:12]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를 믿는 자는 나의 하는 일을 저도 할 것이요 또한 이보다 큰 것도 하리니 이는 내가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십자가 사건 이후에 부활하셔서 제자들에게 죄사함의 권세를 주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요20:21-23] 21/ 예수께서 또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2/ 이 말씀을 하시고 저희를 향하사 숨을 내쉬며 가라사대 성령을 받으라 23/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질 것이요 뉘 죄든지 그대로 두면 그대로 있으리라 하시니라

성령을 받은 제자들에게도 죄사함의 권세가 있는데 이것은 그들이 스스로 그런 것이 아니고, 그들안에 성령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의 인도함 아래 다른 사람들을 인도하여 예수께로 인도하고 예수와 하나 되게 합니다. 이것을 죄사함의 권세라고 합니다. 지금 이 장면에서 보면 중풍병자를 데리고 지붕을 뚫고 내렸던 네 사람이 그런 죄사함의 일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최종적으로 죄사함을 받았다고 하셨지만 그 모든 과정은 그 네 사람이 이미 그런 길로 인도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만일 이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그대로 놔 두었다면 그 중풍병자가 그대로 있다가 죽을 수 밖에 없지만, 그를 이끌어 예수께로 인도하니 병고침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너희가 뉘 죄든지 사하면 사하여 질 것이라고 한 것은 '너희가 예수로 오는 길을 제대로 알고 있기 때문에 죄인들을 인도하면 제대로 죄사함을 받을 수 있는 그런 능력을 가졌다'는 의미입니다.

이렇게 보면 죄사함의 권세는 예수 이래로 거듭난 자들에게 계속 이어져 내려 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에서 보면 베드로, 요한, 바울 등이 그런 사람들이고, 지금 우리 주변에도 있습니다.

[죄사함 권세의 실체]
우리가 죄사함의 권세를 가졌다면 참람하다하고 생각하는 것은 죄사함의 권세를 그냥 자신의 마음에 맞는 사람에게 '너 죄사함 받았어' 하는 식으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를 사하는 권세는 예수님과 같이 십자가를 지고 상대방을 위하여 피를 흘리며 죽는 권세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죽는 권세가 죄사함의 권세입니다.

[요10:17-18]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사할 수 있는 근거는 십자가에 죽으심입니다. 그것이 권세입니다.
우리들에게도 성령이 임하게 되면 죄사함의 권세를 가지게 되고, 영적 중풍병자들을 고침 받게 하기 위하여 그들의 옛사람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가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거듭난 자들이 져야 할 십자가이며, 이렇게 할 때 자신의 죄사함의 권세가 바로 행사되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쉽겠느냐?]
예수님은 이 상황에서 중풍병자에게 네 상을 들고 일어나 걸어라 했으면 서기관들의 책망과 비난을 받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말이 쉽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일부러 자신(인자)에게 죄사함의 권세가 있다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반발을 마다 않고 죄사함을 받았다는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
물론 예수께서 중풍병자에게 일어나 상을 들고 가라고 해도 이 병고침의 상징이 죄사함의 뜻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죄 사함의 문제로 말씀하심으로 중풍병자를 고침이 단순한 신유가 아니라, 죄인을 구원하시는 의미라는 것을 확인해 주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의 병고 침에만 집착되어 있는 우리 시선의 방향을 예수에 의한 죄사함과 구원으로 틀어 주는 귀한 말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2.3 예수의 능력 (막2:11-12)
11/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 네 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12/ 그가 일어나 곧 상을 가지고 모든 사람 앞에서 나가거늘 저희가 다 놀라 영광을 하나님께 돌리며 가로되 우리가 이런 일을 도무지 보지 못하였다 하더라
[본문 내용]
이제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에게 네 상을 들고 집으로 가라 하시니, 그가 일어나서 상을 가지고 나가니 거기 있던 사람들이 그 기적에 놀라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능력의 예수]
앞서 말씀 드렸지만, 예수님의 참 능력은 이런 중풍병자를 일으키는 그런 능력이 아닙니다. 예수의 능력은 죄인들- 중풍병자들, 소경들, 귀머거리들을 바로 세우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신 그것이 참 능력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예수를 그런 육신적인 능력의 주로만 생각을 해왔고, 그것은 우리가 말씀에 대해서 제대로 알지를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수 시대 당시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칭찬한 이유]
예수님은 이 중풍병자에게 네 죄사함을 받았고, 구원 얻을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신 이유는 그 장면의 상징성을 보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상징에 의하면 그는 온전한 죄사함을 받아 예수님과 하나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이들은 중풍병자가 고침을 받을 것을 놓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지만, 이 장면을 통하여 하나님은 예수의 구원과 그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는 모습을 보여 주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우리 또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되려면, 우리가 예수로 인한 죄사함을 받아서 몸전체를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그것입니다.
3. 맺는 말

성경 전체는 우리가 구원 받는 구도, 즉 죄사함 받는 구도에 관해서 처음부터 끝까지 말해주고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 앞에는 예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무리 때문에 이 말씀을 만나지 못하고 뒤돌아 가지 마시고 그것을 뚫고 안으로 들어오십시오. 말씀의 실체를 만나시기 바랍니다. 물론 중풍병자 스스로는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도와주는 4사람을 상징적으로 보면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4사람은 믿음의 성장과정이고 요한의 단계에 이르면 최종적으로 예수와 하나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죄인으로 태어나서 이 4 단계를 거쳐서 예수께로 인도되어 죄사함을 받습니다.
여러분의 몸을 말씀에 눈을 뜬 4 사람에게 맡기십시오. 그래서 죄사함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삶을 사시기를 축원합니다.

정덕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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