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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 18:35-4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4-02 15:48 조회 |4,465회

본문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 18:35-43]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36/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38/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39/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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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솔로몬의 지혜]
우리가 솔로몬과 일천번제를 살펴 보았을 때,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다 드리자 하나님이 나타나서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줄꼬?' 이렇게 물었던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그때 솔로몬이 구한 것은 부귀영화도 아니고, 원수의 목숨도 아니고, 장수도 아니고, 오직 많은 백성들을 재판하기 위한 지혜를 구했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것을 구했고 그로 말미암아 그는 지혜는 말할 것도 없고, 구하지 않은 부귀영화를 더해 준 것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때 이후 하나님이 나에게 나타나서 '무엇을 해 줄꼬?' 하신다면 '틀림없이 지혜를 구해야지...' 하는 마음을 먹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모든 인생 문제의 유일한 해결책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동안 하나님이 나타나서 '네가 네게 무엇을 해 줄꼬?' 하고 묻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데 하나님이 영 나타나지 않으셔서 문제였습니다.

[예수의 질문]
그러나 이제 오늘 이 말씀을 통해서 여러분은 그 하나님의 그 질문을 받을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님이 소경에게 하시는 이 말씀입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과연 여러분은 이 질문에 "지혜요" 라고 대답할 준비가 되었는지 한번 살펴 보시기 바랍니다.만일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혜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혹 지혜 말고 달리 더 급한 구할 것이 있어서 그것을 구한다면 솔로몬의 영광을 받을 수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솔로몬이 구한 지혜는 곧 예수에 의해서 얻게 될 성령 즉 하나님의 나라를 상징한다고 알아 본 바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지금 이 세상의 어느 것보다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고 있는지 살펴 볼 일입니다.

[개요]
예수님이 이제 때가 되어서 갈릴리에서 사역을 하시다가, 이제 때가 되어서 이스라엘 종교의 심장부인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가기 전에 여리고성을 지나가야 하는데 이때 길에서 구걸하던 한 소경이 사람들이 지나감을 듣고 무슨 일이 벌어졌느냐? 묻자 예수가 지나간다고 하니, 즉시 소리쳐서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겨달라고 합니다.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잠잠하라고 하니, 저가 더욱 더 큰 소리를 질러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합니다. 이에 예수께서 듣고 저를 데려 오라고 해서 묻는 말이 네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하십니다. 소경은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라고 답을 합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듣고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하니,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예수를 좇는 장면입니다.

[방향]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예수 앞에 나오게 되는데 넘고 겪어야 될 과정과, 그 예수께 바라는 것이 무엇이어야 하는가 하는 문제를 함께 살펴 보도록 합니다.

2. 본문해설

2.1 더욱 심히 소리질러...(눅18:34-39)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36/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 37/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38/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39/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소경이라는 인식]
예수님이 소경을 고친 사건은 그냥 그렇게 한 기적을 일으킨 역사적 일만이 아닙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영적 가르침이 있습니다. 여기서 소경이란 영적 세상을 보지 못하고 오직 눈에 보이는 세상만 보고 판단하는 자들을 소경이라고 합니다. 이들은 오직 세상적인 선과 악의 판단만을 가지고 있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생명의 세상이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과 중첩되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그 소경들은 자신들이 보는 옳고 그름의 세상만을 보는 것이고,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또 다른 세상을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 소경인지 모르는 소경
그런데도 이 영적 소경들은 자신들이 소경인줄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분명히 이 세상을 볼 수 있고 그래서 운전도 잘하고 또한 길을 잘 찾아서 지금 교회까지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완벽한 소경입니다. 왜냐하면 자기가 보지 못하는 생명의 세상이 따로 있다는 것 조차 알지 못하고 그 세상에 관심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 보이는 세상을 움직이는 실체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세상인데도 말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들 보고 이런 의미에서 너희가 소경이라고 하니, 그들은 우리가 무슨 소경인가? 하며 인정하지 않습니다 (요9:40).

[여리고의 소경]
영적인 의미에서 이 여리고 소경은 자신이 소경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사람은 자신이 보는 이 육신의 세상이 다가 아니고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것을 보기를 간구하는 사람입니다.

-마음이 허전, 허무한 인생
이런 사람은, 우리가 태어나서 열심히 살고 또 돈도 있고 하지만 아무래도 마음이 허무하고 허전해서 내가 보는 이 세상 이외에 다른 숨겨진 세상이 있을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 알 수 없고 볼 수도 없어 곤고한 상태의 사람을 뜻합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이 소경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어제 어느 집사님이 물질적으로 아주 풍요로우신 어떤 여자분을 만나게 되었는데 그분과 대화를 나누는 도중 그분에게서 삶의 만족이 없고 허탈함을 느끼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분이라는 것을 깨달은 집사님은 “무릎치며 읽는 성경”을 선물로 드리고 긴 시간 대화를 나누었다고 합니다.현재 자신의 삶에서 만족을 못 느끼고 무엇인가 갈급해 하는 그런 사람들이 자신이 소경일 수 있겠다는 인식을 조금씩 가지게 되는 사람입니다.

[더욱 심히 소리질리...]
본문에서 여리고의 소경은 예수가 자신의 소경 됨을 고칠 수 있으리라는 생각에 큰 소리로 예수를 불러 관심을 끌고자 했습니다. 당연합니다. 병을 고치고자 하면 병을 고쳐 줄 의사를 일대일로 만나야 합니다. 그래서 소경은 눈을 뜨고자 하는 마음이 매우 간절하였으므로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그런 소경의 모습을 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은 시끄럽다고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잠잠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말대로 잠잠하면 그들은 조용해서 좋을지 모르지만, 자신은 평생을 소경으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럴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남들이 뭐라고 하던지 개의치 않고 더욱 심히 소리질러 예수를 불렀습니다.

-갈급함의 문제
결국 이 소경은 예수 앞으로 나와서 고침을 받습니다. 소경은 예수님만이 자신의 눈을 고쳐주실 유일한 분이라는 것을 확실히 알았고, 소경된 자신을 고치기 원했던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 갈급함이 그를 모든 어려움을 뚫고 예수님 앞으로 나올 수 있게 한 것 입니다. "에이 눈 떠도 그만, 못 떠도 그만이다. 그냥 이렇게 살지..."하는 것은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 고치고자 하는 마음이 조금 있다가도 주위 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한다고 그냥 조용할 수 밖에 없다면 그냥 그렇게 소경으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원해서 소경의 삶을 사는 것이고, 자신이 눈을 뜨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으면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공평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주시기 때문입니다.

- 수요공부 - 갈급함의 문제
우리도 말씀이신 예수를 만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이 보지 못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거나, 또는 안다고 할지라도 갈급함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냥 이대로 살지...하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수요일 성경공부에 나오려면 여러 가지 장애요인이 있습니다. 회사일, 집안에서 애들 뒷바라지 하는 것, 말씀을 안다는 교만한 마음...등등 이런 것들이 성경공부에 나오지 못하도록 자신을 방해합니다. 목사님이 그 분들에게 그런 것을 무릎 쓰고 나오라는 말은 무의미합니다. 왔다가는 또 돌아가고, 와서도 졸기 때문입니다. 오직 자기 자신들에게 보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어야 나올 수 있습니다. 갈급함이 크면 클 수록 주변의 방해 환경에 굴하지 않고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나오게 되면 이 소경처럼 고침을 받게 됩니다.

-상담의 기회
자신의 영적인 갈급함이 있는 분들은 목사님께로 와서 신앙문제를 솔직하게 드러냅니다. 그들은 살고자 해서 상담을 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영적 조명을 받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어떤 분들은 ‘목사님과 상담하려면 다른 분들이 먼저 상담하고 있어서 그냥 돌아 갈 때가 많다’는 말을 하십니다. 그러나 상담의 자리는 어느 특정한 사람을 위해서 비워 둘 수는 없는 것입니다. 그 자리는 갈급한 자들의 차지가 되는 것입니다. 진정 자신이 갈급했다면 기다린다든지 아니면 다른 때 더 좋은 시간을 찾아서 상담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그냥 환경 탓 상황 탓을 하고 있습니다. 그대로 아직 살만 하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진정 고침을 받고자 하는 인식이 있다면 주변의 장애물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이 여리고 소경이 시끄럽다는 주변 사람들을 무시하고 예수를 찾았던 것처럼...

2.2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18:40-41)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예수의 질문]
예수님은 그 소경을 보고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 묻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이 질문이 허망한 것 같습니까? 소경이 당연히 눈 뜨기를 원하지 뭐 다른 것을 원하겠어 하고 편안히 생각한다면 오산입니다. 앞서 말씀 드린대로 소경이 자신의 생활에 익숙해서 그냥 돈을 원하고 옷을 원하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경이 눈을 뜨면 구걸할 필요도 없고 자신이 보고 걷고 뛰고 자기 인생 스스로 살 수가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소경에게는 눈 뜨는 것이 모든 육신의 문제를 일시에 해결하는 길입니다.

- 영적문제
이것은 영적인 세상에서는 더욱 더 극명하게 드러나는데, 우선 자신이 소경인줄 모르는 경우가 있고, 또한 자신이 눈을 뜨고자 하는 갈급함이 없이 그저 예수 만나서 물질적인 축복이나 받아 보고 끝내자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그러나 이런 모든 것들은 영적인 눈을 뜨게 되면 육신적인 문제들도 함께 해결됩니다.예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먹을 것 마실 것을 너희에게 더 할 것이라고 합니다.

[지혜-눈뜨는 것]
이 소경은 악착같이 눈을 떠서 보이지 않는 영적 세상을 보기를 원했고, 그래서 예수가 무엇을 해 줄까? 물었을 때 다른 모든 것을 우선해서 눈뜨기를 원했습니다. 이것은 서두에 말씀드린대로 솔로몬이 지혜를 구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솔로몬이 지혜를 구해서 부귀영화를 더불어 받은 것과 같이 이 소경도 눈을 뜸으로 모든 것을 해결합니다.

우리가 눈을 뜬다는 것은 성령을 받아서 영적인 세상을 본다는 것입니다. 보이는 이 육신의 세상 뿐만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 세상을 보고 그 세상에서 남은 인생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여러분들은 자신의 인생의 본질적인 문제를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고, 구걸하며 사는 인생에서 어느 것이 옳은지 그른지 자기 스스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사람이 변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눈 뜬 자들]

여러분들이 많은 곳에서 긴세월 신앙생활을 해 왔지만, 참다운 말씀으로 눈을 뜨게 되면 주변의 사람들과 말하게 될 때 담대함, 명료함, 자신감 있는 태도를 보이게 됩니다. 그로 인하여 여러분의 주변 사람들이 놀랄 것입니다. 이것이 영적인 세상에 눈을 뜬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공통된 모습입니다. 여러분들이 그동안 고등학교, 대학교, 그리고 석,박사 논문을 연구하고 썼다 할지라도, 말씀에 의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눈을 가지게 된 지금과 비교하면, 그때가 정말 무지했다는 것을 아시게 될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은 진리의 말씀과 비교할 대상이 되지 않습니다.
 
  [무엇을 구하십니까?]
여러분은 지금 예수님께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그냥 아무 것도 바라는 것이 없이 그냥 습관적으로 교회만 왔다 갔다 하시는지...
아니면 십일조 많이 하게 해달라고 물질을 구하십니까?
아니면 보이지 않는 영적 세상을 보기를 원한다고 하십니까?
여리고 소경의 가장 갈급한 문제는 눈을 뜨는 것이었고, 그래서 그것을 예수님께 구했습니다. 말씀 드린대로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2.3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눅18:42-43)
42/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좇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예수님의 말씀에서 이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육신의 눈만을 가진 죄인들이 예수에 의해서 영적인 세상을 보게 되는 구원에 관해서 말씀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소경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소경의 믿음]
예수가 모든 병을 고칠 수 있다는 믿음은 진정한 믿음이 아닙니다. 이것은 우리 눈에 보이는 이적을 믿는 것이고, 인간에게서 나는 신뢰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믿음은 예수의 영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 그것을 믿음이라고 합니다. 이 소경은 보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었고 그래서 장애물을 뛰어 넘어 남들이 뭐라고 해도 자신은 눈을 떠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눈 뜨는 것이 소원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 소경의 믿음은 바로 그런 삶에 있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영원한 세상을 보고자 하는 갈급한 마음의 삶이 있었기에 모든 역경을 넘어서 예수께로 올 수 있었고, 그로 인하여 새로운 세상을 볼 수 있는 구원의 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볼 때 이 소경이 예수 앞으로 나오려는 그 갈급한 삶은 곧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는 것 그 삶에 해당되고, 소경이 눈을 뜬 것은 솔로몬이 곧 지혜를 받은 것과 합치됩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에서 과부가 자신의 원수를 갚아 달라고 밤낮 재판관을 찾아가는 그런 삶을 말합니다. 그 결과로 예수와 하나되어 죄사함을 받는 것이고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우연이 아닌 만남]
이것은 단순하게 소경이 우연히 지나가는 예수를 만나게 되어서 눈을 뜨게 된 것이 아닙니다. 이 소경에게는 눈을 뜨고자 하는 간절한 삶이 있었기 때문에 예수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요4:5절이하에 예수님이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가시고자 할 때 사마리아에 일부러 들러서 우물가의 여인을 만나 그의 인생의 문제를 일거에 해결해 주시는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만나면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가 일시에 해결되는데, 우리의 갈급한 삶이 그 예수를 만나게 합니다.

[영광 돌린다]
소경의 믿음은 결국 하나님 나라를 구하고 사모해서 그것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삶이 곧 이 소경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 믿음의 결과로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고, 이렇게 구원을 얻은 자는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 소경이 고침을 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이 모습은 우리가 새로운 세상에 들어가 그리스도의 영과 하나되어 자신의 삶 자체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3. 맺는 말

소경은 보지 못하던 세상에 간절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이 삶으로 드러나서 장애물을 뛰어 넘게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 앞으로 왔고 그리하여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구원 받기를 원하고, 죄사함 받기를 원하고, 영적 세상을 보기를 원합니까?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그것을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사람에게는 절대 그 세상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보기를 원해서 이 자리에 왔다면, 그런 삶을 보이십시오. 그러면 그 삶을 보고 예수님은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하시면서 눈을 뜨게 해 주실 것입니다.

몸은 교회에 나오지만 틈만 있으면 여기만 하나님이 있냐? 딴 곳에도 있다.
하면서 고침 받기를 원치 않는 심령은 절대 고침 받지 못합니다. 아무튼 자신이 보지 못해서 여기 저기서 구걸하는 인생이 좋은 사람들은 그런 인생을 얻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고 그런 인생을 청산하고자 하면 그런 삶을 보일 것입니다.

영적인 세상에 눈을 떠서 구걸하는 인생을 그치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이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덕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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