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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의한 청지기1 -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눅16:1-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6-02 22:04 조회 |3,782회

본문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눅 16:]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7/ 또 다른 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8/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
1. 들어가는 말

이 말씀은 무릎치며 읽는 성경2에서 다룬 내용입니다. 그 책의 내용 중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말씀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책의 내용보다 좀 더 자세하게 이 말씀을 살펴 볼 것입니다. 책의 내용으로 완전히 이해가 되지 않으신 분들은 이 말씀과 병행하여 읽으시면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거쳐야 할 구렁텅이]
믿음 생활을 한다는 것은 곧 생명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만나게 되는 구렁텅이가 있는데, 이 구렁텅이에 빠지면 성장이 멈추게 되고 시험에 들고 방황하게 됩니다. 자라지 않고 한 곳에 머무는 것은 곧 생명의 세상에서 도태되는 것이고 그것은 곧 죽음입니다. 이 구렁텅이는 믿음이 자라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겪어야 될 한 과정이기 때문에 누구나 거쳐야 합니다. 문제는 그곳에서 얼마간을 머무르고 있느냐에 따라서 빨리 자라고 늦게 자라고 자라지 못하고 그렇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6개월이 될지 1년이 될지 아니면 평생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단지 자신이 그런 구렁텅이에 빠져 있다는 깨우침이 있으면 그때는 나올 수 있게 됩니다.

[개요] 
이 내용은 한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그에게 보던 일을 셈하라고 하니 이 친구는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다고 하여 약삭 바르게 주인에게 빚진 자를 불러다가 자기 멋대로 빚을 깍아 줍니다. 기름 백 말을 50말로 밀 백석을 80석으로... 그러면 이들이 자신을 영접해 줄 것으로 계산해서입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주인은 이 청지기가 지혜롭게 행했다고 칭찬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물론 이 말씀에서 이 불의한 청지기를 칭찬한 주인이 이해가 되지 않는 문제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서는 전반부의 내용-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라는 의미부터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해설
2.1 주인의 소유 허비한다는 말 (눅16:1)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비유가 상징하는 것들...]
비유에서 부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말합니다. 그리고 청지기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나 또는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자를 말합니다. 물론 이것은 일차적으로 목회자나 말씀을 가르치는 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교회에서 배우거나 예수를 믿는 사람들 모두가 자신이 배운 말씀을 남에게 전하는 입장이기 때문에 불의한 청지기는 예수 믿는 모든 사람들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불의한 청지기와 선한 청지기]
비유에 나오는 청지기는 8절의 옳지 않은 일을 했기 때문에 불의한 청지기라고 흔히들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선한 청지기도 나옵니다.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 선한 청지기는 베드로와 같이 복음의 세상으로 거듭난 청지기들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비유에 등장하는 청지기는 불의한 청지기로서 선한 청지기와 대비되는 청지기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볼 때 불의한 청지기는 아직 거듭나지 못하고 율법적으로 예수를 믿는 자들을 상징합니다. 뒤에 나오지만 실제로 이 불의한 청지기가 불의한 방법으로 빚을 삭감해 주는데,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인본주의적인 방법으로 죄를 사해주는 주는 것으로써 그가 율법의 청지기임을 알 수 있습니다.

[율법을 맡은 청지기의 제대로 된 역할]
하나님의 명령인 율법은 우리가 그것을 어떻게 해서든지 지켜야 하고 지키지 못했을 때는 회개를 해야 합니다. 이렇게 철저하게 또한 반복적으로 회개를 깊이 하게 되다 보면 진정으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참다운 회개를 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입니다.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넘쳤나니

자 이렇게 보았을 때, 율법을 맡은 청지기들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그것은 율법을 철저히 일점일획도 변개함 없이 자기도 지키고 또 남들에게도 지키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해야 그 율법에 의해서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명령을 지킬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을 마음 속 깊은 곳에서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있으니, 이 말씀대로 이웃을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해야 합니다. 사랑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사랑하지 못한 행동 하나, 하나에 대해서 철저히 회개해야 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을 살도록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는 청지기가 잘 하는 청지기입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
비유에서 보면 이 청지기는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 관해서 함께 생각해 봅니다. 주인의 소유를 허비했다는 말은 이런 뜻입니다. 율법의 말씀을 맡아서 전하는 자는 말씀을 아주 철저히 적용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인에게 빚진 자들이 늘어나고 주인의 빚 재산도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많은 빚을 지게 해야 하는 것인데 그것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재물을 허비하는 것입니다.

-범칙금
한번은 세미나 할 곳을 알아 본다고 한 수련원을 찾아가는 길이었습니다. 찾아 가는 길에 운전 하시는 분이 자신의 앞차를 따라서 한적한 길을 가다가 중앙선을 넘어서 유턴을 했습니다. 그런데 전방에서 보고 있던 경찰이 앞차를 세우고 우리 차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죄목은 중앙선 침범에 벌금은 6만원에 벌점도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법대로 하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이 경찰 분은 운전하신 분이 초보자라 몰라서 그랬다는 것을 인정해 주었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중앙선 침범해서 유턴하면 안 된다고 경고를 하고는 3만원 짜리 범칙금 용지를 발부하는 것이었습니다. 자, 이 상황을 보면 이 경찰은 주인인 국가의 소유를 허비하는 것입니다. 입법자인 국가의 입장에서 보면 철저하게 법을 적용시켜서 6만원 짜리 딱지를 끊어야 하는데 봐 주어서 3만원 짜리 끊었으니 주인의 재산 3만원을 허비한 것입니다.

- 고르반
이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막7:10-13] 10/ 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고 또 아비나 어미를 훼방하는 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였거늘11/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12/ 제 아비나 어미에게 다시 아무 것이라도 하여 드리기를 허하지 아니하여13/ 너희의 전한 유전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폐하며 또 이같은 일을 많이 행하느니라 하시고

하나님은 유대인들에게 하나님도 공경하고 부모도 공경하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고 나면 부모에게 드릴 것이 없는 경우, 이들은 하나님께 드렸으니 아니면 드릴 것이니 부모에게는 드릴 필요가 없다는 자신들의 타협계명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말씀 하시는 것은 하나님도 공경하고 부모도 공경하라는 그것을 누가 자신들 마음대로 고치라고 했느냐?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력화 시키는 조처다라는 것입니다. 올바른 율법의 청지기라면, 하나님께 드렸는데 부모에게 드릴 것이 없다면 어떤 방법을 통해서라도 드려야 하는 것이고 그렇지 못할 경우 철저히 회개를 했어야 합니다. 아무튼 이런 모습이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는 모습입니다.

-우리의 경우도 마찬가지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면 이것을 아주 철저하게 전하고 사람들에게 적용을 해야 합니다. 이웃을 조금이라도 사랑하지 못하면, 지적해서 하나님의 명령을 그렇게 우습게 알고 지켜서 되겠느냐? 그것이 죄 된 것임을 지적해 주고 철저하게 회개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이 주인에게 계속해서 재산을 늘리는 것이고 그것이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지 않는 청지기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있어?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돼. 하나님이 네 마음을 다 아셔.' 이렇게 해서 은근슬쩍 율법적용을 느슨하게 하는 이 모습이 주인의 소유를 허비하는 것입니다.

2.2 보던 일을 셈하라 (눅16:2)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보던 일을 셈하라]
이렇게 율법을 적당히 가르치고 자신도 그렇게 지키며 신앙 생활하는 사람에게 복음을 접할 경우가 생깁니다. 이 복음은 지금 여러분이 듣는 이 말씀입니다. 율법 아래 있던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복음의 말씀을 듣게 되면, 복음의 합리성과 이치성에 마음을 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말씀이 옳다 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당연히 이들은 지금까지 율법에 따라 해 왔던 행동들을 복음에 따른 행동으로 바꾸려 하게 됩니다. 이것이 보던 일을 셈하라는 의미입니다. 물론 하나님이 직접 그에게 보던 일 또는 하던 일을 셈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단지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참다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보인 반응이니까, 보던 일을 셈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들리는 것입니다. 이런 모습의 예는 무릎치며 읽는 성경2에서는 유대교와 기독교를 예로 들었습니다 .유대교는 율법 아래 있는 모습이고, 기독교는 복음을 들어서 유대교와는 다르다고 하면서 다른 행동을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둘 다 불의한 청지기에 불과합니다. 또 다른 예를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인천에서 교회를 다니시던 분들이 말씀을 듣고 우리 교회로 옮겨서 신앙생활 하지만 아직은 참다운 복음의 세상에 들어가지 못한 분들이 이 경우에 해당될 것입니다. 이들은 인천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보던 일을 셈하라는 말을 듣고 이곳으로 오신 분들입니다. 물론 이렇게 우리 교회에 오신 분들은 잘 견디면 참 복음의 능력으로 참다운 하나님의 나라로 갈 것입니다.

2.3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지 부끄럽구나 (눅16:3)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땅을 판다는 뜻]
여기서 땅을 판다는 뜻은 율법을 열심히 지킨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빌어 먹는다는 것은 율법에서 열심히 하여 탕자처럼 지쳐 쓰러져 하나님께 회개하고 은혜를 구하여 하나님께 빌어 먹는다는 뜻입니다. 이 청지기는 참된 탕자체험이 없어서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는 것이 부끄럽고 쑥스럽습니다. 그래서 은혜 아래 있지도 못합니다. 그런데 말씀은 들어서 아는 것은 목사님 머리 꼭대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적 열심도 식어 버렸거나, 아니면 다른 방향으로 틀어 버렸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모습이고, 이것이 처음에 말씀 드린 구렁텅이에 빠진 모습입니다. 복음을 접하면 복음마저도 율법적으로 행하여야 할 무엇으로 생각하고 행동을 하려고 하는 모습이 바로 이런 우리 본성을 드러냅니다.

복음의 한 가지 특성은 우리에게 무엇을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어라. 사람이 변하면 사랑하게 된다. 하나님의 마음이 임하게 되면 감동으로 헌금하고 봉사하게 된다. 이런 말씀에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새로운 해석이다. 정말 복음이다' 하고 따라 나섭니다. 그래서 자신이 기존에 율법적으로 하던 행동들이라고 생각했던 일들을 그만 두게 됩니다. 율법 아래서 열심을 내는 것이 가뜩이나 힘들던 차에 복음이라는 말씀이 나타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다 내게로 오라'고 하니까, 얼씨구나 하면서 헌금도 줄이고, 식당 봉사도 제끼고, 주일 예배시간도 가끔 빠지는 것이 자유자의 모습인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천만의 말씀입니다. 여러분이 제대로 복음을 만났다면 그 예수님은 여러분에게 더욱 더 열심히 율법을 지키라고 하실 것입니다. 새벽기도 안 나오던 사람 나오게 하시고, 헌금 찔끔 찔끔 하던 분들에게 소중하고 귀하게 모아둔 돈 다 헌금하라고 하십니다. 이런 체험이 없으면 자신은 아직 예수를 만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닙니다. 착각하지 마십시오.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여기서 예수님은 율법을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물론 율법을 완전케 하신다는 의미는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게 하심으로 이루시는데, 그 과정에서 예수님은 우선 우리에게 철저히 율법을 지키게 하십니다. 율법을 대충 지키는 것이 복음이나, 예수를 제대로 만난 모습이 아니니, 지금이라도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아 열심과 정성껏 신앙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아무튼 불의한 청지기는 복음을 접하고 더욱 더 편리한(?)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이것은 복음에 의해서 사람이 변한 것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으면서 위치만 조금 변경시킨 모습입니다. 이들은 결국 복음에 의해서 오히려 전보다 더 못한 믿음을 소유한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일곱 귀신]
이 모습을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마12:43-45] 43/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44/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45/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율법 아래 있을 때는 새벽기도하고, 봉사하고, 헌금하고, 사랑하려 하고 했다가 그래서 그것은 그래도 자신 속에 있던 귀신을 한 마리 가지고 있다가 내어 보내는 역할을 한 것입니다. 물론 기도 안하고, 봉사 안하고, 금식하는 열심이 없으면 다시 한 마리가 들어 올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의 말씀을 듣고 불의한 청지기와 같은 반응을 보이면 율법의 행위마저 져버리기 때문에 더 악한 귀신 일곱이 자신 안에 들어와 앉게 되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제 복음에서 말하는 깊은 의미도 알고, 성경도 곧잘 새로운 시각으로 읽어 냅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말씀으로도 그들에게 회개의 기회를 주지 못합니다. '나도 그만큼 알고, 그 뜻은 그런 의미가 아니고...' 하면서 오히려 목사님을 판단하려고 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처음 형편보다 나중 형편이 더욱 심하게 된 경우입니다. 이곳에서 나올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자신이 그런 모습에 처해 있다는 말씀의 조명을 받고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것 이외에는 없습니다. 자신이 그런 불의한 청지기라는 깨우침이 있으면 그 구렁텅이에서 비로소 빠져 나올 수 있게 됩니다.

3. 맺는 말
불의한 청지기는 율법에 지쳐 쓰러지지 않은 상태에서 복음을 접한 자이고, 그래서 그의 눈에 복음도 율법의 한 종류로 인식하게 되는 믿음의 한 과정을 계시합니다. 그래서 열심이 식어지게 됩니다. 처음에 말씀 드린 대로 누구나 이 과정을 거칩니다. 자신이 이런 모습이라는 것을 제대로 보고 말씀에 의해서 수시로 이런 부분을 고침 받을 때 온전한 복음의 세상에 진입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율법적 열심이 없으면 예수 믿을 수 없습니다. 대충 믿고 복음으로 오자고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닙니다. 율법 아래 있을 때 그 율법에서 열심인 신앙생활을 해야 복음의 세상이 그에게 주어질 것입니다.

지금 교회의 많은 분들은 율법과 복음 사이에 끼어서 율법적 열심도 부족하고 그렇다고 복음도 제대로 체험하지 못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합니다. 곤고한 신앙생활일 수 밖에 없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에 의해서 자신의 모습을 제대로 보고 그 어정쩡한 세상에서 빠져 나오기를 바랍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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