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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창 9:20-2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6-13 18:55 조회 |4,207회

본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창9:20-27]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

1. 들어가는 말

[성경과 분리된 믿음]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 그냥 믿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지침이 있어야 믿는 것입니다. 그냥 예수 믿으라고 한다면 무엇을 믿는다는 말입니까? 성경은 예수에 관한 증거이며, 예수를 믿으려면 성경을 제대로 이해해야 합니다. 그 속에 예수가 어떤 분이라는 기록이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라는 단어마저도 성경에서 나온 단어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성경을 매 주일 가지고 다니면서도 성경을 읽지 않고, 보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저 성경에서 예수라는 단어만 외워가지고 예수 믿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믿게 되는 예수는 성경의 예수가 아니라, 자기 세상 생각과 관념으로 만들어 내는 예수입니다. 이런 식으로 예수를 믿는 사람은 참 예수를 만나게 되면 기필코 그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제대로 읽고 이해를 한다면 그만큼 성경에서 말하는 예수에 관해서 알게 되는 것이고, 예수를 제대로 아는 만큼 복을 받게 됩니다.
 
[바로 잡으시라]
오늘 이 말씀은 우리가 여러 차례 살펴 본 내용인데, 교회 내에서 일어난 사건과 연계해서 다시 한번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 말씀으로 선포되는 이 성경의 예수와 여러분 자신들이 생각하고 있는 관념 속의 예수가 얼마나 다른지 각자 확인하는 시간되시기 바랍니다.

[줄거리]
노아가 포도 농사를 짓고 포두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장막 안에 누웠는데 그것을 아들 함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본 것을 가지고 밖으로 나와서 자기 형제들 셈과 야벳에게 말하고 판단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체신 없이 술에 취해서 옷 벗고 누웠다고 말입니다. 이 말을 들은 셈과 야벳은 옷을 취하여 뒷걸음질 쳐서 얼굴을 돌려 덮어 주었습니다. 나중에 노아가 술이 깬 후, 자식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알고,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했고, 셈과 야벳은 축복을 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노아의 축복과 저주대로 그대로 이루어 지게 하셨습니다.
 
[생각할 점]
일반적으로 우리는 함의 입장입니다. 아비가 분명히 잘못을 했는데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도록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우리 생각이고, 성경을 보면 나중에 노아가 함을 저주했을 때 하나님은 노아가 말 한대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했습니다. 이것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일반적인 생각과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이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그것을 고쳐야 올바른 예수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기존에 알고 있던 윤리도덕의 하나님, 예수를 넘어서는 계시를 받아야 할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영적인 세상을 보는 영에 속한 자들과 그것을 보지 못하는 육에 속한 자들의 축복과 저주를 말하고 있습니다.

2. 본문해설

2.1 거듭난 노아 (창 9:20-21)
20/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 나무를 심었더니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노아의 잘못]
노아는 장막에서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고 누워 있었습니다. 노아의 이 행동은 자식들이나 일반 사람들로부터 비난 받아 마땅한 행동이었습니다. 술에 취한 것도 그렇고, 또 벌거벗은 모습 또한 그러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노아의 그런 행동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지적한 함의 아들 가나안을 노아의 말대로 저주했고, 노아의 잘못됨을 외면한 셈과 야벳을 노아의 축복대로 축복했습니다. 이것을 보면 지금 이 성경에서 나오는 노아의 술취함을 하나님은 전혀 개의치 않고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하나님은 그러면 안됩니다. 노아에게 합당한 징계를 내려야 속이 시원하고 그래야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과 같습니다.
그러나 아무튼 성경의 하나님은 그렇지 않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잘못 알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하나님은 성경의 하나님이 아니라, 자신의 윤리도덕 개념으로 만들어 낸 우상 하나님입니다.
 
[거듭난 노아]
먼저, 술에 취해서 하체를 드러낸 노아가 누구인지 말씀을 드려야 하겠습니다.
노아는 의로운 자였습니다. 그 시대에 홍수가 나서 온 인류가 다 멸절을 당하고 오직 노아와 그의 식구 8명 만이 살아 남았습니다. 이렇게 물 심판을 통과해서 구원을 받은 노아는 예수를 만나서 말씀의 물 심판을 받고 새로운 생명으로 부활한 자를 상징합니다. 그래서 이제는 죄가 노아를 주관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노아를 주관합니다. 알고 보면 여기 노아가 장막 안에서 벌거벗고 누운 것도 하나님이 그를 주관해서 일어 난 일입니다.
이와 같이 거듭난 자들의 삶을 인도하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들은 거듭나도 실수로 술 취하고 벌거벗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거듭난 자는 이 죄악세상을 떠났고, 하나님의 나라에 속했기 때문에 죄 문제가 더 이상 그런 자들을 지배하지 못합니다. 죄와 상관없이 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는 행동이 때로는 윤리 도덕을 어기고 또는 율법을 어기는 행동을 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이 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죄를 지은 것 같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보지 않습니다. 이것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나중에 노아가 함을 저주하고 셈과 야벳을 축복했을 때 그대로 이루어 준 것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다시 말씀 드립니다. 거듭난 자는 죄를 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들이 제대로 거듭남의 체험을 해 보시면 알 수 있을 것이지만, 하나님을 제대로 알고 거듭난 자들은 그 분을 떠날 수가 없습니다. 얼치기로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떠나는 것입니다. 아무튼 하나님을 떠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에 속해서 하나님의 지체로서 이 세상 삶을 산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그는 하나님이 인정해 주는 일만 하게 됩니다.

[거듭난 자들의 행동]
자, 이렇게 거듭난 자들은 하나님이 주관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듭난 자들이 세상 사람들의 시각으로 볼 때 율법과 윤리도덕을 어기는 것 같은 행동을 허락하실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지금 여기서 보는 바와 같이 거듭난 노아가 술 취해서 벌거벗고 누운 장면이 그렇고, 또한 모세가 이방 구스여인과 결혼한 것이 그렇고, 호세아 선지자가 창녀 고멜과 결혼한 것이 그렇고, 삼손이 딤나여인과 결혼한 것, 들릴라와 함께한 것, 그리고 예수님이 안식일을 어긴 것 등이 그런 예입니다.
이들의 이런 행동은 우리 눈에 분명 비방의 대상입니다만, 하나님은 위의 모든 경우에 거듭난 자들을 지원하셨습니다. 이렇게 보면 하나님은 거듭난 자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을 인정하고 또한 허락하고 계심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형제가 위와 같은 일을 했다고 함부로 손가락질하고 정죄하고 참소할 수 없습니다. 거듭난 자로 하나님이 허락하신 일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조심했을 노아]
하나님은 물론 거듭난 자를 정죄하지 않지만, 이 세상의 법을 어기면 세상 사람들로부터 정죄함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래서 거듭난 자들이라고 자기 멋대로 율법을 경홀히 여기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노아의 경우도 항상 행실에 조심을 했고, 자식들에게 책잡히지 않을 행동을 하기를 원했을 것입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더욱 더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기를 원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도 불구하고 노아가 술에 취하고 벗었다는 것은 결국, 하나님이 상황을 그렇게 조성하셔서 노아가 그렇게 행동할 수 밖에 없도록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왜 그렇게 하셨는지에 관해서는 밑에서 말씀 드리기로 합니다.
우선 노아가 술에 취해 벌거벗은 모습을 보고 그의 아들들은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이들의 각기 다른 반응을 보겠습니다.

2.2 두 가지 반응 (창9:22-23)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함의 반응]
함은 자신의 아비가 벌거벗은 것을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했습니다. 아비가 되어 가지고 술 취하고 벌거벗고 있다고 말입니다. 함으로 볼 때는 너무나 당연하고 그래야 아버지가 앞으로는 다시는 그런 짓 하지 않는데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아니면, 저런 꼴을 보고자 지금까지 아비 밑에서 말씀을 들었다는 말이냐?는 탄식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함은 참지 못하고 형제들에게 미주알 고주알 고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앞서 말씀 드린대로 함의 이런 반응은 노아의 거듭남을 이해하지 못했고 , 함의 눈은 율법의 옳고 그름의 세상만을 볼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거듭남의 세상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지도 못하면서, 그저 예수 믿고 하나님 믿은 것을 윤리도덕 차원으로 밖에 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육신에 속한 눈으로 육적인 것만을 찾아 나설 수 밖에 없었고 그래서 그런 삶이 이미 저주를 받은 삶인 것입니다.

[이번 교회 사건]
이번 교회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에 관한 헛된 소문을 듣고, 그것을 이곳 저곳으로 전화하고, 몸소 찾아가고 하면서 극성스러운 열심을 내면서 다닌 자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신판 함들입니다. 그들은 교회의 목사님에 관한 일에서 하나님의 손길을 보지 못하고 오직 옳고 그름의 법, 세상적인 차원에서만 보았습니다. 이것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어떤 사건에 숨어 있는 손길을 보지 못하고 오직 윤리도덕의 잣대로 목사님을 심하게 판단하고 다닌 것입니다. 들은 말로만 부족했던지 새로운 시나리오 각본까지 창조해 가면서 정말로 열심히 교회 형제들에게 고하고 다녔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복이 없는 자들입니다. 예수를 그렇게 오래 믿었지만 자신의 신앙은 그저 율법 아래서 칭얼대는 정도의 신앙을 소지하고 있느니 복음의 복과는 거리가 먼 어둠에 속한 자들일 수 밖에 없습니다.
노아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게 저주를 했지만, 그 저주는 이미 함에게 있는 것입니다. 그것을 재 확인한 것에 불과합니다. 노아가 저주했기 때문에 저주가 임한 것이 아닙니다.

[셈과 야벳의 반응]
반면 셈과 야벳의 행동은 달랐습니다. 그들은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않고 외면했고 뒤로 걸어 들어가서 그것을 덮어 주었습니다. 자, 이들의 이런 행동은 그들이 무슨 큰 아량을 베풀어서 자신의 아비의 잘못을 덮어 주었다고 생각한다면 너무 성경을 단순히 해석한 것입니다. 이들이 아비의 하체를 덮어 줄 수 있었다는 것은 아비의 하체 드러냄이 이들의 눈에는 아무런 잘못이나 흠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들은 윤리나 도덕을 어기는 것은 그럴 수 있는 것이고 그것이 그들에게는 하등의 관심사나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덮어 줄 것 뿐이었습니다. 이런 자들에게는 결국 거듭남이 있고 이런 자들은 형제를 정죄함이 없습니다. 자신의 눈에서 판단의 들보를 빼내어서 더 이상 형제의 눈에 티끌이 보이지 않는 그런 자들입니다.
 
함은 형제나 아비의 잘못을 지적하여 그것을 비방하고 정죄하는 재미로 인생을 사는 자들로 육에 속한 자이고, 셈과 야벳은 그런 정죄와 율법의 세상에서 나와 거듭난 자들을 말합니다. 당연히 셈과 야벳에게는 창대케 되는 복이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2.3 축복과 저주 (창9:24-27)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 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노아가 정신을 차리고 나서 아들들이 자신에게 한 일을 근거로 복과 저주를 선포합니다. 함의 아들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서 형제들의 종이 되리라고 했고, 셈과 야벳을 창대케 하시고 가나안을 그들의 종으로 삼으라고 하셨습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노아의 축복과 저주대로 그대로 이루어지게 해 주셨던 것을 아실 것입니다. 이것은 노아의 마음이 곧 하나님의 마음이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보는 눈, 사람의 문제]
그렇다면 셈과 야벳은 단순히 노아가 벌거벗은 것을 덮어 준 그 행동 하나 때문에 복을 받고 함은 그렇게 하지 못해서 저주를 받게 된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은 그 사건 하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사건을 보는 눈, 즉 사람의 어떠함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함은 영적인 눈이 어두워서 아버지의 행동 안에서 하나님을 보지 못하여 판단하고 비방한 것이고, 셈과 야벳은 영적인 눈이 있어 외면하고 덮어 준 것입니다. 함은 육에 속한 사람이었고, 반면에 셈과 야벳은 영에 속한 사람이었는데 이 사건으로 그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 행동의 문제가 아님
여기서 성경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것은 지도자의 잘못을 보았을 때 용서를 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용서하고 뭐하고 할 문제도 아니고, 그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음으로 볼 수 있는 자라남과 그리고 거듭남이 자신에게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자라남은 말씀 안에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어느 집사님은 자신이 예전에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을 할 때, 목사님의 그릇됨을 너무 많이 보아 왔는데 그때 이 말씀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때는 아무리 노력해도 여전히 자신의 마음 속에 목사님의 잘못으로 인한 불신을 지울 수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그때 느끼기에 잘못된 모습을 그대로 인정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교회 사건을 대하는 자신의 태도는 어느덧 셈과 야벳의 것이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집사님이 이럴 수 있는 능력자가 된 것은 복음의 말씀을 듣고 제대로 예수 믿은 결과입니다.

[노아에게 술취하고 벌거벗음을 허락하신 목적]
이제 하나님은 왜 노아에게 그런 행동을 허락하셨는지에 관해서 말씀 드립니다. 그것은 육에 속한 자들의 믿음의 실체를 드러내어 그들에게 영에 속한 자의 믿음을 주기 위함입니다.
노아의 행동으로 말미암아 함은 저주를 받을 자로 드러났습니다.
그런 그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아라, 너의 믿음이 이것이다. 윤리도덕, 율법의 한계를 넘어서지 못하고 있지 않는가? 이제 네 모습을 제대로 보고, 회개하고 셈과 야벳과 같이 올바른 믿음을 소유하여 복 있는 자가 되어라."
한번 쭉정이는 영원히 쭉정이가 아니고 한번 가라지면 영원한 가라지가 아닙니다.
  쭉정이가 회개하면 알곡이 되고, 가라지가 회개하면 곡식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자신들의 믿음을 성경 말씀에 의해서 명확히 드러냄을 받고 회개하면 그것이 바로 믿음이 자라나는 것입니다.
 
[노아의 아픔]
이렇게 보면 노아라고 자신이 술 취해서 벌거벗고 장막에서 누워있기를 원했겠습니까? 원치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환경을 조성하셨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 행동을 통해서 함에게 자신의 믿음의 위치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결국 노아는 자식들의 믿음을 굳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에 의해서 사용된 도구였습니다. 그것은 노아의 아픔이자 또한 기쁨이기도 합니다. 즉 비방 받는 아픔이고 그로 인해 자식들의 믿음이 굳어짐을 보는 기쁨입니다.
 
[노아에 대한 100% 믿음]
여기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세우신 거듭난 자들을 100% 믿고 신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비록 그들이 윤리도덕의 눈에 어긋나는 행동을 했을 지라도, 그것을 그 행동 자체로 볼 것이 아니라, 그의 그런 모습을 통하여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의 어느 부분을 드러내고 고치고자 하는지를 아는 기회로 삼는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손길을 안다면 노아의 육신적 잘못을 잘못으로 볼 이유도 없는 것이고, 오직 덮어 주는 것이 아들들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이런 셈과 야벳의 믿음을 소유하게 되면 예수가 막달라 마리아하고 결혼 했다는 설에 믿음이 흔들리지 않으며,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이라는 영화를 상영금지 해달라는 무익한 노력을 하지 않을 것입니다.

요즈음 보면, 교회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노아로 상징되는 목회자의 흠결을 찾아 내고자 하는 개인이나 단체가 적지 않은데, 모두가 저주 받은 '함'의 역할을 자진해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만일 자신의 목회자가 거듭나지 않았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감시하는 것이라면, 얼른 다른 교회의 거듭난 목회자를 찾아가서 자신의 영혼을 구원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현 목회자를 거듭난 자로 인정한다면 셈과 야벳과 같은 행함이 자신에게서 흘러 나와야 합니다. 어느 경우든 함과 같은 행동을 하는 자는 자신이 저주 받은 믿음을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증거할 뿐입니다.
셈과 야벳의 믿음은 이와 같이 노아를 100% 신뢰합니다.

3. 맺는 말

우리의 현 믿음은 사실 너무 초보입니다. 함의 믿음보다 나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함의 믿음을 가지고 있는 우리는 예수 믿기는 믿었지만 결국 저주 받는 믿음'일 뿐입니다.
우리는 예수를 제대로 믿어서 셈과 야벳 같은 믿음의 세상으로 들어가서 술 취하고 벌거벗은 노아를 넉넉히 바라 볼 수 있는 능력 있는 신자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는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어 주십니다. 그 동안 예수를 믿어 왔는데도 함의 시각과 행동이 나온다구요? 그것은 예수 잘못 믿어서 그런 것입니다.
하루 속히 여러분에게 셈과 야벳의 시각과 믿음이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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