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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삭개오1(눅19:1~7)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9-24 09:52 조회 |3,358회

본문

삭개오1

[눅 19:]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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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연단은 피할 수 없는 것이고, 이 연단의 세월이 있고 없고가 자신이 제대로 된 길을 갔는가 그렇지 않은 가가 결정이 됩니다.
성경의 거의 모든 부분에서 그것을 증거하고 있고 오늘 여러분이 잘 알고 있는 삭개오의 이야기도 또한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그러므로 연단을 받고 있는 분들은 그 연단은 필연적이고 성경적이며 그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위로를 받으시고, 그 연단이 없으신 분들은 곧 하나님의 나라로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한 것이기 때문에 잘 생각하여 방향을 제대로 잡는 시간 되시기 바랍니다.

[내용]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고자 여리고를 지날 때 세리장이 삭개오가 키가 작아서 예수를 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를 보고자 뽕나무(돌무화과sycamore-fig tree) 위로 올라갔습니다. 예수가 나무 위의 삭개오를 우러러 보고 내려 오라 오늘 네 집에 묵어야 하겠다고 하니, 삭개오가 기뻐 영접하니 사람들이 예수가 죄인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근 거리는 장면입니다.
  이 말씀이 주는 영적 의미와 아울러서 지금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되는지에 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2. 본문

2.1 예수가 보이지 않음 (눅19:1-3)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내용]
여리고에 삭개오라는 세리장이 있었는데 그는 부자였습니다. 키는 작고...예수를 보고자 했으나 사람들이 가려서 보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목에 있는 여리고는 세상의 상징입니다. 그 세상에 한 사람이, 삭개오가 살았습니다. 여기서 그가 부자였다는 것은 두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재산이 많이 있었던 사람이라는 의미와 영적인 뜻으로는 그가 율법을 지켜서 자기 스스로의 의로움이 많았던 사람이라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 그가 예수를 보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 물질적인 부자로 살고 있지만 역시 인생에는 만족이 없고, 허전하여 진리를 찾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사람이 삭개오 같은 사람이고, 또한 그는 사람들이 손가락질 하는 죄인이지만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는 나름대로 행함이 있는 영적 부자였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예수를 만나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부유한 삶이 그에게 만족을 주지 못하고 갈등의 인생을 살았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물질적인 부와 영적인 자기의 행함으로 인하여 만족을 하지 못하여 진리를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마치 밤에 예수를 찾았던 니고데모와 같이 인생에 어떤 형태로든 갈등이 있는 사람은 진리이신 예수를 찾아 나서게 되어 있습니다.

[사람에 가림]
그러나 삭개오는 키가 작아서 앞 사람들에 가리워서 예수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것의 의미는 우리가 예수를 만나고 예수를 영접하고자 할 때 사람들 때문에 가려서 예수를 보지 못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 사람들의 가르침, 윤리도덕이 이 삭개오가 예수를 만나는데 방해물이 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고 있는 것입니다.

사실 기존의 교회들을 보면 성경을 가지고 윤리도덕으로 가르치는 사람들 때문에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가 가리우는 그런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진정 참다운 복음전파자는 우리와 그리스도를 중매해 주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문제는 이 모든 것이 뭐가 뭔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알 때까지 그렇게 기다려야 하겠습니다.
아무튼 삭개오는 그런 상황에서 벗어나 다른 방법을 취하게 되는데 그것이 나무 위로 올라가는 것입니다. 다음 구절을 같이 읽습니다.

2. 돌무화과나무 (눅 19:4-5) 위로...
[눅 19:4-6]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내용]
삭개오는 예수를 보고 싶은 갈급한 심령에 돌무화과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예수를 마주보게 됩니다. 예수님은 그를 처다 보고 오늘 그의 집에서 머물러야 하겠다고 하십니다.

[십자가]
사람들의 머리를 통해서 예수를 알고 예수가 누구인지 알고자 했던 삭개오는 절대 그렇게 해서는 예수를 볼 수가 었없고 그 사람이 그 사람 같아 예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는 나무 위로 올라가서야 비로소 예수를 대면하여 볼 수가 있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하면 예수를 알고 예수를 제대로 볼 수 있으려면 나무 위로 여러분이 올라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합니다.

[신 21: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당일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 바 되 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 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삭개오는 나무에 올라가서야 예수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현재 우리도 예수를 제대로 대면하여 보고 그 분이 누구인지 알기 원한다면 각자가 자기 십자가의 나무로 올라가서 옛사람이 그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해야 여러분은 그때서야 비로소 예수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 나무 십자가 위로 올라가고 계십니까?
아니면 올라가기 싫어서 예수, 보아도 그만 못 보아도 그만하며 자포자기하고 있는가요? 이 나무에 올라가지 않으면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잘 생각해서 말하고 행동하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교회에서 보면, 서로가 서로를 그냥 보아주지 못하고 자신의 시각으로 형제를 판단하고 형제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아 자신의 속이 뒤집어 지는 경우를 많이 봅니다.
그러나, 형제가 그런 행동을 하고 그런 형제가 우리 주위에 있다는 것은 그 형제를 통하여 높아지고자 하는 우리를 오히려 낮추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입니다. 즉 우리에게 십자가를 지고 가라는 말씀이며, 이것은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히는 과정입니다.

[다 잘 났다]
우리 모두는 잘났습니다. 제 잘난 멋에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나는 저보다 달리기는 잘못하지만 묵 찌 빠는 더 잘 할 수 있다는 이런 자존심, 얼굴은 못생겼지만 학교는 좋은데 나왔다는 생각, 이런 모든 것들이 자신들에게 있고 이것을 한편으로 먹고 사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러나 여러분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그런 알량한 자존심 내세우면서 교회 다니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 갈 것 같으신가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런 교만함을 어떻게 해서든지 낮추실 것입니다.
 
  [순종하라]
교회에서 마음 아픈 일이 생기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목사님께 조장들에게 구역장들에게 복종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알량한 자존심을 세우기 위한 것 아닙니까? 어떻게 하면 저 형제를 고쳐서 내가 편할까?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자신이 그 형제를 보는 눈을 고치라고 주님께서 그렇게 상황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이런 과정을 통과하지 못하면 나무 위에 올라가는 것을 거부하는 것이고, 그러면 예수를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형제를 극복하고 참을 수 있는 힘은 형제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것입니다. 자신이 포기하십시오. 자신이 마음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나는 지렁이 같은 존재다 라고 마음을 먹으면 다 용서가 되고 형제가 달밤에 요강 들고 체조를 하던 뭐하던 그냥 그렇게 바라보게 됩니다.

어느 집사님도 제가 그를 낮출 때에 원망이 생긴 상태에서 ‘무릎치며 읽는 성경2’를 읽을 때 사사건건 부정적인 생각이 들었고 진도가 영 나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힘들게 읽다가 어는 순간에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니 순간 모든 말씀이 그렇게 잘 들어 왔다고 고백을 한 적이 있습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포기하세요. 자꾸 들고 일어나 내가 옳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냥 죽은 듯이 그런 상황을 보고 자신을 낮추세요. 저도 연단을 받을 때 얼마나 속이 뒤집어 졌는지 아십니까?
제가 순순히 저를 낮출 수 있는 위인이 되지 못해서 여러 차례 반발하고 나를 이렇게 대할 수 있느냐?고 말해도 아무도 나를 인정해 주지 않았습니다. 또한 주님은 그렇게 내가 완강히 버틸 때 마다 징계로 타이어 바퀴를 찢어지게 하신다든지 해서 이중으로 고통을 안겨 주셨던 분이십니다.
그렇게 서너 차례 하고 나니까, 제 자존심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멍청한 사람이 되어서 상대가 무슨 말과 행동을 한다 해도 잘 견디고 방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하면 내 인생 끝나는 줄 알았더니, 웬걸 하나님이 더욱 더 창대케 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 자기 자존심에 집착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붙잡고 있는 것 놓아라고 할 때 놓으십시오. 악착같이 붙잡고 있다가는 크게 혼나고 놓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낮추는 주님의 손길을 기뻐 받으십시오. 여러분을 말석으로 밀어 넣는 주님의 손길을 체험함에 오히려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삭개오도 이런 과정을 거쳐서 나무 위로 올라간 것입니다. 그 결과 주의 얼굴을 뵈었고 그 분을 영접할 수 있었습니다.

2.3 예수 영접 (눅 19:6-7)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내용]
삭개오는 예수를 보게 되고 예수를 영접합니다.
예수를 영접한다는 의미를 ‘내가 예수를 믿고 그를 나의 구주로 믿겠다’는 것이 영접이라고 말하고 있지만 천만의 말씀입니다. 그런 영접은 백날 해 보았자 예수를 영접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신 안에 예수의 원수인 옛사람이 들어 차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영접할 수 있으려면 삭개오와 같이 나무 위로 올라가야 합니다. 우리의 경우로 말하면 예수에 이끌린 삶을 살아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았을 때, 비로소 예수를 영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삭개오의 집에 유함]
예수님은 삭개오의 집에서 유하게 됩니다. 이것은 삭개오가 단순히 오픈 하우스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와 삭개오가 한 집에서 즉, 삭개오의 내면에서 하나된 것을 말합니다. 이것은 언제 우리에게 이루어 지게 되는 일일까요? 예수께서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내 안에 성령으로 임하게 되었을 때 예수와 하나되는 일이 일어나는데 그것이 곧 거듭남이 아니겠습니까?
삭개오에 관한 기사는 이와같이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단계의 믿음과정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3. 맺는말

이 삭개오의 기사에서 알 수 있는 것과 같이 우리 하나 하나가 나무 위로 올라가지 않으면 예수를 볼 수가 없습니다. 주의 얼굴을 볼 수가 없습니다.

[기뻐하라]
지금 십자가 나무 위로 올라가기를 거부하거나, 그것 때문에 인상을 찌푸리고 계신 분들은 다 미간을 펴시고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이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바로 그 나무위로 올라가서 예수를 보고 그 분을 영접하기 위함이 아닙니까? 그 올라가는 것을 기쁜 마음으로 올라가야 여러분의 몸이 쇠약해 지지 않습니다.
어떤 분들은 오만 인상 다 쓰면서 이 과정을 거치고 나니, 할머니가 되어 버린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왕이면 윤기 나는 얼굴로 거듭난 인생을 사는 자가 현명할 것입니다.그런 과정을 잘 거치시기를 바랍니다.
자존심, 집착 다 내려 놓으십시오. 그러면 더 좋은 것으로 주실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슬기롭게 거쳐 예수의 얼굴을 보고 그리고 그와 한 집에서 하나되는 역사가 여러분에게 속히 있기를 바랍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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