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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삭개오2(눅19:1~1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5-09-24 10:40 조회 |4,086회

본문

삭개오2

[눅 19:]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 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

1. 들어가는 말

[지난 줄거리]
지난 금요일에 이어서 삭개오에 관한 말씀을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삭개오가 예수를 보고자 하여 나갔으나 사람들로 인하여 예수를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앞서가서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 비로소 예수를 볼 수가 있었고, 이리하여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내려 오너라 오늘 너희집에서 묵어야 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영적의미
이 사건은 영적인 진리에 관한 계시를 해 주는 말씀으로, 삭개오는 나 자신이고, 삭개오는 예수를 보고자 하였으나 사람들의 말만을 듣고는 예수를 제대로 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아무리 예수에 관해서 들어도 예수가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모르는 상태에서 예수를 믿은 것이 아니라, 다시 생각을 하고 과연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예수를 알고자 하는 갈급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일반 교회의 가르침과는 달리 참 복음을 전하는 자유교회 같은 곳을 찾게 되었고, 그곳에서는 삭개오를 뽕나무 위로 올라가게 했습니다. 이 나무는 십자가를 상징하는 것이고, 이 십자가는 우리 모두 개개인이 져야 할 십자가로서 이 십자가 위에서 나의 옛사람은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뽕나무 위로 올라가서야 예수를 제대로 볼 수가 있었던 것처럼 우리도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은 후에야 예수를 제대로 볼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예수를 본다는 의미
예수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을 대면하여 본다는 뜻이고, 여기서 삭개오가 나무 위에서 보게되는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이신 예수를 보려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옛사람이 그곳에 못 박혀야만 예수를 볼 수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볼 수 있는 예수님은 말씀으로 육신을 입고 오신 예수님이시지만 이 육신을 입고 온 예수에 의해서 여러분이 십자가에 올라가게 되면, 여러분은 이제 그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만나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이 여러분의 마음에 임할 때 이루어 지는 일입니다.
 
[싫어하는 옛사람]
우리가 땅에서 들림을 받지 않고 그 차원에서 예수를 이해하고 보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올라가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십자가 위로 올리려는 목사님이 원망스럽고, 교회에 대해서 비방과 판단의 말이 나오고, 부정적인 말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사소한 것 같지만 자신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살리려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입니다. 땅의 것에 매여 십자가 나무 위에 올라가지 못하면 그냥 땅에 배를 깔고 사는 뱀처럼, 한 그릇 팥죽을 찾아 장자의 명분을 팔았던 에서처럼 땅의 것을 추구하다가 인생을 마치게 될 것입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는 사람은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차하는 순간 지금까지의 신앙생활이 물거품이 되어 버리고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 질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예수를 보지 못하고 죽게 되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는 땅의 것을 포기하고 끊는 과정에 순종하여 나무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예수를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미천한 인생이 자신 안에 하나님을 품게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를 보고 구원을 얻은 삭개오를 여러 방면에서 표현하는 내용입니다.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2. 본문
2.1 소유의 절반과 사배 (눅19:8)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내용]
예수를 자신의 집 안에 맞은 삭개오는 이렇게 말합니다.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고, 남의 것을 속여 취한 것이 있으면 사배로 갚겠다고 합니다.

- 일차적인 뜻
우선 자신의 전 재산의 반을 나누어 주고 또한 속인 것은 4배로 갚겠다는 뜻입니다. 실로 예수에 의해서 구원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이와 같이 세상의 물질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어느 불신자가 암에 걸려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교회 나와서 병을 고침 받자 자신의 재산의 반 이상을 교회에 헌금한 그런 간증을 들은 기억이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의 목숨이 죽었다 살았는데 재산이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육신의 목숨이 죽었다 살아도 그런데 여러분들 여러분의 영혼이 죽었다 살았다는 체험을 한 사람이면 그 기쁨이야 더욱 말할 나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인지 교회에서 영혼의 구원을 받은 어떤 분은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고 싶은데 없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몇 십 억 로또 당선이 되면 90퍼센트를 헌금하겠다고 하십니다.
로또를 사지도 않으면서 그런 말을 한다고 핀잔하는 것을 들은 바가 있었는데, 요즈음은 사는지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하면 삭개오와 같이 자신의 재산이 아까울 것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삭개오가 한 말에서 물질을 내어 놓겠다는 일차적인 의미보다는 영적인 의미를 우리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영적인 의미]
- 소유의 절반
삭개오가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는 말은 자신의 옛사람의 소유, 즉 자기의를 내어주고 심령이 가난한 자가 되었다는 고백입니다. 앞서 말씀 드렸지만 삭개오가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았지만 그는 부자라고 기록한 것에서 우리는 그가 영적인 면에서 자기의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얼핏 살펴 본 바가 있습니다.

부자청년과 예수님의 대화에서는 부자 청년에게 소유를 팔라고 말씀하신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마 19:2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온전하고자 할진대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

이 말씀을 살펴 볼 때 자기 옛사람의 자기 의를 십자가에 버려야 가난한 자가 되어서 나를 따를 수 있다는 그런 말씀이라고 살펴 보았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삭개오가 자신의 소유의 반이라고 말하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그것은 자기의를 반만 처리하겠다는 의미일까요? 그것은 하나마나 일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성경은 좀 더 자세히 우리의 내면을 계시합니다.
삭개오에게는 옛사람이 있고, 또 옛사람에 눌려 있는 새사람이 있습니다. 두 사람이 자신 안에 있습니다. 이 둘 중에서 옛사람이 만들어 낸 자기 의를 십자가에 버리고 가난한 자가 된 것입니다. 그러니까 나의 자기 의라는 소유는 항상 내 소유의 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삭개오가 말한 소유의 반을 내놓아 가난한 자에게 주겠다고 한 말의 영적 의미입니다.

[사기친 것은 사배로]
토색한 것이라는 말은 ‘사기쳤다’는 말입니다.
사기 칠 때는 진짜와 비슷한 것을 내 놓고 진짜라고 속이는 것이 사기입니다. 또한 사기는 모르는 사람에게 치는 것입니다. 언젠가 제가 부르네이에 있을 때 웅담 말린 것이라는 것을 사왔는데 알고 보니 곰 쓸개가 아니고 멧돼지 쓸개라라 뭐라나 해서 버린 기억이 있습니다. 웅담 뿐만이 아니라, 상품 중에도 그런 것이 많습니다. 삼성 애니콜을 애미콜이라고 N자를 M자로 바꾼 것 등이 바로 사기치는 것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짜와 아주 비슷한 가짜가 있습니다. 성경을 말하고, 예수를 말하고, 하나님의 선물임을 말하고… 정말 진짜같습니다. 구별하는 가장 쉬운 방법은 나무 십자가 위에 올라가는 과정 없이 당장에 구원을 주느냐 아니냐를 보면 됩니다.
  가짜 구원은 신앙고백 받는 그 사람에 의해서 '즉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토색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나중에 제대로 하나님을 알게 되고 거듭나게 되면 그가 그렇게 구원을 가르쳤던 사람들에게 무엇이라고 말하겠습니까?
4배로 갚아야 합니다. 4배라는 것은 한 사람이 아니라, 4 사람에 의한 구원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고 새로 가르치는 것을 말합니다. 4 사람이란 마태 마가 누가 요한의 단계를 거쳐서 거듭나고 예수를 만나게 되니까 4 사람입니다.

[막2:3-5] 3/ 사람들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에게 메워 가지고 예수께로 올새4/ 무리를 인하여 예수께 데려갈 수 없으므로 그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구멍을 내고 중풍병자의 누운 상을 달아내리니 5/ 예수께서 저희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환자에게 이르시되 소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이것은 한 중풍병자가 예수 앞으로 인도될 때 4 사람이 그를 침상에 메고 지붕을 뚫고 예수 앞으로 달아 내려 구원을 받게 하는 장면입니다.
이와 같이 한 사람이 예수 앞에 나와 구원 받기까지 4사람에 의해서 인도되는 과정이 필요한데 4명이란 단계별 믿음을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을 그냥 한 사람의 눈 앞에서 거듭나고 구원 받게 했으니, 이것이 남의 영혼을 토색한 것입니다.
이전에 삭개오는 그것을 몰랐는데 이제 예수를 만나 눈을 뜨고 보니 자신이 남의 영혼을 토색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4배로 갚아야 하겠다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참다운 구원이라는 것은 단계가 필요하다는 것을 말합니다.
삭개오가 자신 재산의 반, 토색한 것은 4배를 갚겠다는 고백은 자기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예수를 만난, 거듭난 자의 공통된 고백을 말하는 것입니다.

2.2 아브라함의 자손 (눅 19:9-10)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내용]
삭개오의 고백을 듣고 예수님은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다라고 하십니다.
삭개오가 고백을 하게 되는 것과 예수의 구원이 임한 것은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삭개오가 나무 위로 올라가 예수를 보니 예수가 자신의 안에 즉 자기 집에 임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과정을 거쳐서 우리 안에 임하는 성령을 의미합니다.
 
- 연단의 결과로
여러분들도 삭개오처럼 나무위로 올라가는 연단을 잘 받으면 그것을 다 마치는 날, 예수님께서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저는 교회에서 많은 분들이 땅의 것을 놓지 못하고 땅의 것으로부터 인정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끊지 못해서 힘들어 하는 것을 자주 봅니다. 이 과정에서 교회를 판단하고 외곽으로 도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런 중에도 기도하고 그럴 때 일 수록 악착같이 하나님 앞에 나오는 사람들을 봅니다. 후자의 경우가 저 보기에도 기쁘고, 하나님 보시기에도 아주 아름답습니다.

[아브라함의 자손]
구원 받은 삭개오를 놓고 예수님은 그를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육신적으로 삭개오는 유대인이므로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그러나 육신의 아브라함의 자손이 모두 그의 자손이 아닙니다. 삭개오와 같이 자신 안에서 그리스도의 영이 임해서 그리스도와 하나된 사람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창세기에 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시고 죄악이 관영하자 그들을 물로 심판하여 노아 일가만 남겨 놓습니다. 그 후에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 가나안으로 인도하여 그의 후손으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민족을 창조하십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나님이 이렇게 의도적으로 창조한 민족입니다. 그러나 이런 육신적인 이스라엘은 영적인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그래서 노아 이전의 사람과 노아 이후 아브라함의 후손에서 아브라함의 후손이라함은 하나님이 몸소 빚으신 거듭난 자들 말합니다.
삭개오는 진정으로 하나님의 영이 임함으로써 영적인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우리도 십자가의 연단을 잘 참고 견디면 아브라함의 자손이 됩니다.

[잃은 자]
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은 죄인으로 손가락질 받던 삭개오의 집에서 묵었습니다. 삭개오는 나름대로 힘든 삶을 살았고, 그 힘든 삶은 그를 나무 위로 올리우는 원동력으로 작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를 만나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잃은 자란, 이와 같이 사회에서 충분히 절망하여 자신의 자존심이나 교만함을 다 내려 놓을 준비가 된 사람이 바로 잃어 버린 자입니다. 소위 말해서 한 마리의 잃은 양이고, 이런 사람들은 연단을 잘 견디고 그리하여 예수를 볼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은 바로 이런 사람들을 기다리십니다.
잃은 양의 비유에서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안고 집으로 와서 친구와 이웃을 불러 잔치를 베푸는 그 모습은 바로 주님께서 자신의 십자가 사건을 마다 않고 감당하는 사람을 보고 기뻐하여 구원하는 것과 같습니다.

3. 맺는말

우리는 무척 단순하게 보았던 이 삭개오의 기사에서 많은 진리의 세계를 볼 수 있었습니다.

재산의 반을 가난한 자에게 준다는 말을 통하여 우리에게 새사람과 옛사람 둘이 공존하고 있다가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을 통하면 나의 재산의 반이 소멸되는데 그것은 곧 옛사람이고 그 지분이 소멸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토색한 것의 사배를 준다는 말은 구원 아닌 것을 구원이라고 했던 것이 토색입니다.
그것은 한 사람에 의해서 구원 받았다는 것은 그릇된 것을 말해주며, 제대로된 구원은 4단계 4 사람의 단계를 거쳐야 한다는 것을 계시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하나님이 직접 연단하여 창조를 완성하신 거듭난 자들이 아브라함의 참 후손으로 복받을 자라는 것을 말합니다.

 잃어 버린 자는 율법 생활에서 지쳐서 나무 십자가로 올릴 때 순순히 받아 들이는 자들로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의 친구이고 그들의 집에 유할 것입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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