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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삼하16:5-13]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6-04-13 07:02 조회 |3,488회

본문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삼하16:5-13] 5/ 다윗 왕이 바후림에 이르매 거기서 사울의 집 족속 하나가 나오니 게라의 아들이요 이름은 시므이라 저가 나오면서 연하여 저주하고 6/ 또 다윗과 다윗 왕의 모든 신복을 향하여 돌을 던지니 그 때에 모든 백성과 용사들은 다 왕의 좌우에 있었더라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10/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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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지난 금요일 잃은 양 한 마리에 관한 비유를 말씀 드리면서 여러분이 잘 알고 있고 외우다시피 한 말씀이라고 한 바 있습니다. 어느 분이 참으로 적절하고 때에 알 맞는 말씀이라고 하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제가 같은 본문을 선택하는 것은 소재가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다 그때에 그 말씀을 들을 사람이 있어서 하는 것이니, 마음 문을 열고 들으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한 두 번 살펴 보아서 알고 있는 내용입니다. 그러나 알고 있으면 무엇 합니까? 그대로 행동이 나오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그에 따른 행동이 나오지 않는 것은 이 말씀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 전에는 율법적으로 이해를 했기 때문에 행동이 따라 나오지 못했던 것이고, 이 말씀을 복음으로 이해를 하게 될 때쯤 되면 들은 대로 자신이 성장해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누구인지 모르지만 이제 오늘 이 말씀을 들을 귀가 열린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 속한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에 가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연단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연단의 과정이란 율법 아래서의 죄지은 행동의 대가로 받는 연단과 징벌이 아니라 예수에 이끌린 연단의 삶을 거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금 이 상황은 다윗이 바로 그 연단의 과정을 통과하는데 있어서 겪은 일인데 이것은 다윗에게서 뿐만이 아니라, 여러분이 제대로 주님의 인도하시는 길에 접어 들었다면 겪게 되는 일들입니다. 과연 여러분에게서는 이런 다윗과 같은 과정이 나타나는지요?

[개요]
다윗이 압살롬의 난을 피해 피신하는 중 사울 왕 족속의 시므이가 따라와 저주를 합니다
듣고 있던 군대장관 아비새가 죽은 개가 어찌 왕을 저주합니까? 내가 가서 머리를 베어 오겠다고 하니, 다윗은 말립니다. 저가 저주하는 것은 하나님이 시키심인데, 그것을 놓고 왜 그렇게 하였느냐고 할 자가 누구겠느냐? 내 아들인 알살롬이 나를 죽이려고 하는 판에 사울 가문의 사람이야 오죽하겠느냐? 하나님이 시키신 것이라고 합니다. 혹시 하나님이 저주 받는 나의 이 원통함을 선으로 갚아 주시지 않겠느냐? 합니다.
시므이는 산비탈을 따라 오면서 다윗을 향하여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렸다는 내용입니다.

[방향]
이 말씀으로 우리는 우리를 저주하는 환경을 보는 눈에 관해서 살펴 보는 시간이 되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2.1 시므이의 저주 (삼하16:7-8)
7/ 시므이가 저주하는 가운데 이와 같이 말 하니라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8/ 사울의 족속의 모든 피를 여호와께서 네게로 돌리 셨도다 그 대신에 네가 왕이 되었으나 여호와께서 나라를 네 아들 압살롬의 손에 붙이 셨도다 보라 너는 피를 흘린 자인고로 화를 자취하였느니라

[배경]
오늘 말씀의 배경과 내용은 이렇습니다.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을 하고 또한 그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에서 죽게 한 후에 나단선지자를 통해서 예언한 대로 다윗의 왕가에 칼이 떠나지 않고 큰 환난이 있을 것이 그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인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죽이려 하기 때문에 다윗은 자신의 신하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떠나 피난길에 올랐습니다. 이 피난길에 사울 왕 자손 중의 하나인 시므이가 쫓아 와 다윗 왕을 저주하고 비방합니다. 더럽고 천박한 자여 가거라. 네가 사울 왕 대신에 왕이 되었지만 하나님이 사울 왕의 가문의 피를 네게로 돌렸다. 그래서 압살롬이 네게 반역을 일으켜 네가 이 모양이다. 너는 화를 자초하였다 고 합니다.

수요일 우리가 살펴본 내용은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을 계기로 범죄를 저지른 이후 그는 매번 주님께 기도하고 응답을 받는 신앙에 한계를 느끼고 시편 51편에서 주님께 영원히 거두어 가지 않는 성령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즉 임마누엘 성령을 간구했고 이후 다윗의 삶은 그것을 받는 과정입니다. 그것은 곧 지금과 같은 연단으로 나타납니다. 크게는 압살롬이 반역을 해서 피치 못하게 도망가는 신세가 되었고 지금 우리가 살펴 볼 대목에서는 원통하게 미천한 자에게 저주를 받는 처지가 되었습니다.

율법 아래서의 우리가 겪는 연단은 지쳐 쓰러져 예수를 만나라고 이렇게 저렇게 겪는 것이고 예수를 만나서는 우리를 고치기 위한 주님의 의도 아래에서 연단 또는 시험문제가 오는 것입니다. 지금 다윗의 연단도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다윗의 마음을 연단하고 고쳐서 영원한 하나님의 처소가 될 수 있도록 인도하시는 손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주님을 만났다면 그리고 그 선하신 손길을 따라 나선 자라면 이런 일들을 기대하십시오. 예상하십시오. 공짜는 없는 법입니다. 예수를 따라 나선 우리 모두는 이런 연단의 환경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것들을 잘 견디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갈 수 있습니다.

제가 직장에 다닐 때에 제 부하 직원이었던 여직원이 있었습니다. 그 여직원은 자신이 영어도 잘하고 일에 능력도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는지 직장 내에서의 질서를 크게 의식하지 못한 듯 하였습니다. 어떤 결정 할 일이 있을 때 직속 상관인 저를 무시한 채 소장을 직접 대면하고 싶어 했고 부 소장이었던 저의 존재를 별 것 아닌 것으로 생각했는지 잡지사 기자가 부소장인 저만 찾는다며 못 마땅하게 여기곤 했었습니다. 심지어는 외국에서 손님이 오셔 호텔을 예약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직속 상관인 저를 제치고 소장에게 직접 자신이 호텔 알선을 하여 저를 아주 곤란하게 만들기도 하였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저는 그 여직원을 만나서 그러한 처사가 합당치 않음을 야단을 쳐 보았지만 그 마음이 그다지 개운하지는 않았습니다. 여직원은 울먹이며 자신이 그렇게 행동한 것을 죄송스럽게 생각한다며 자신은 그러한 것을 몰랐다, 진작 말씀하시지 그랬느냐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당시 그 여직원을 참을 만큼 참았고, 정말 참기 힘들어서 잠자리에 누웠을 때 그냥 이대로 죽어버렸으면..하는 마음이 들 만큼 힘이 들었습니다. 여직원의 그러한 행동에 제동을 건 것이 저의 시각으로 절대 그릇된 것이 아니라는 것 때문에 더욱 힘이 들었습니다. 그 일이 있은 후 주님은 저에게 더 참으라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참기 힘든 상황을 조성하셔서 저를 참을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시고자 그 여직원을 이 직장으로 보내신 것입니다.
다윗의 경우와 같이 이런 아픈 과정을 거치는 것이 나를 주 안에서 자라게 하는 것입니다. 나를 주안에서 내 기준이 아니라 하나님의 기준으로 볼 수 있는 눈을 키워서 선한 자로 변하게 하는 주님의 손길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2.2 아비새 (삼하 16:9)
9/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왕께 여짜오되 이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하리이까 청컨대 나로 건너가서 저의 머리를 베게 하소서

[내용]
이 저주를 듣고 있던 다윗의 군사들은 참을 수 없는 모욕감을 느꼈고 그래서 저 죽은 개가 어찌 내 주 왕을 저주할 수 있는가 건너가서 목을 베어 오겠다고 합니다.

주변에서 우리를 저주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에 대한 우리의 반응은 이 아비새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오히려 더 민감하게 반응을 하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괴롭히지 않아도 우리의 아비새는 반응을 합니다.
제가 아는 어느 분은 판단에 아주 능숙합니다.
거듭난 자가 어찌 저러냐? 저래가지고 어떻게 하겠느냐? 꼴도 보기 싫다.
조장들이 모여서 몰려 다니면서 뭐 하는 것이냐? 그 시간에 교회 청소나 하지... 하는 등등 매번 수도 없이 한도 끝도 없이 합니다. 아비새처럼 진짜 칼을 가지고 나서지는 않지만 마음 속으로 수 차례에 걸쳐서 판단의 칼을 빼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은 자신이 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판단하지 말라고 했는데 판단이 나온다는 것은 그런 상황을 조성하신 하나님을 판단하고 저주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형제의 어떤 행동에 대해서는 - 그것이 내 눈에 눈꼴이 시던지 아니면 보기가 싫던지- 당연히 하나님께서 그 행동에 대해서 책임을 지시고 나설 것인데 내가 뭔데 판단하고 심판을 하는가 말입니다.
그렇게 판단이 나올 때면 지금 다윗과 같이 주님께 물으세요. 주님 저가 저런 행동을 하는데 분명히 나의 옳은 판단으로는 꼴 보기 싫은데 주님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내가 너 하나만 고치면 이 세상 사람 다 고친다. 참고 너나 고쳐라.’ 이렇게 하실 것입니다.
내 안에서 아비새가 작동하려고 하면 참으시기 바랍니다. 훈련과정이니 잘 견디면 하나님이 선으로 갚아 주십니다.

2.3 하나님이 시키신 일 (삼하16:11-13)
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 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13/ 다윗과 그 종자들이 길을 갈 때에 시므이는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저주하고 저를 향하여 돌을 던지며 티끌을 날리더라

[내용]
다윗은 시므이의 저주에 원통함을 느끼고 모멸감을 느꼈지만 그러나 그의 저주가 하나님이 시키신 것을 알고 그의 입장을 이해하려 했습니다. 자신의 아들 압살롬도 자신을 죽이려 나서는 마당에 원수 집안 사람이 자신을 저주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니겠는가? 했습니다. 이것을 잘 지나면 하나님이 나에게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고 했고 그냥 저주하게 내버려 두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다윗은 영원한 생명을 구했고 그래서 그의 소원대로 하나님이 연단을 해서 그 생명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이 바로 지금과 같은 과정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에서 주님의 손길을 보기 시작한 분들은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믿는 다른 교회 분들과 달리 다윗과 같이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으며 우리가 겪는 모든 환경은 특히 주님께서 의도적으로 우리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변 환경을 그렇게 하나님이 주신 환경으로 보십시오. 그것이 그 환경을 이기는 지름길입니다.

먼저 앞서간 자들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고 판단이 나옵니까? 내 안에 있는 아비새를 출동시켜서 그들을 판단 대상으로 올려 놓고 압제하고 있습니까?
그들이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은 나름대로 주님과의 심각한 갈등과 고민 후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행동입니다. 같이 연단을 받고 있는 입장에서 상대를 이해하려고 하십시오.
그 행동으로 인하여 주님은 이미 그 당사자에게 말씀 하시고, 또한 그 행동으로 인하여 그 사람을 다루고 계십니다. 그것에 인간인 내가 개입하여 이렇게 저렇게 하려고 하는 것, 곧 월권 행위입니다.
형제의 행동을 놓고 판단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일을 판단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형제를 판단하게 되면 하나님을 판단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도 뒤틀리게 된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분명히 아셔야 할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 앞에서 자신이나 잘 자라면 그것이 하나님의 칭찬을 받을 것입니다.

3. 맺음말

3.1 참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이것은 율법 아래서 단순하게 참으라는 것을 말씀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나서 예수의 선한 손길에 이끌린 삶을 사는 자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필연적으로 있게 되는데 그때는 어떻게 행동하는 것이 합당한가 하는 길을 보이는 것입니다.

3.2 우리 모두 다윗과 같이 자신의 억울함과 원통함의 근본을 제대로 보고 그것을 잘 견디십시오. 그리고 다윗의 복을 받으시길 예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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