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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자기를 부인하고...[마16:24-2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6-04-14 06:25 조회 |5,120회

본문

자기를 부인하고...

[마16:24-28]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26/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꾸겠느냐 27/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2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여기 섰는 사람 중에 죽기 전에 인자가 그 왕권을 가지고 오는 것을 볼 자들도 있느니라

-------------------

1.들어가는 말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자 하나, 제대로 믿지 못하고 샛길로 빠지는 이유는 바로 주님이 말씀하신 이 내용 즉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원치 않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따라서 예수를 믿고 그 분을 따라서 하늘 영광에 실제로 이르는 사람들은 지극히 적습니다.
언젠가 어느 목사님이 여의도에 있는 큰 교회에 부흥회에 가신 적이 있으시답니다. 많은 교인들이 모인 가운데 하나님이 영의 눈을 열어 그들의 영혼을 보게 하셨는데 불과 7-8명의 영혼만이 살아 있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저는 그것이 괜한 이야기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대로 예수를 믿는다는 것 즉,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이 그만큼 힘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도 우리들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을 흉내는 내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우리에게 감동을 주셔서 건축헌금을 하라고 하면 그 물질을 내 놓기가 힘이 들어서 일부만하고 이만 하면 됐지, 이만 하면 됐지, 또는 주님의 감동이 아니었나 봐, 하면서 악착같이 내 놓는 것을 멀리하고 자신의 물질을 보존하고자 하곤 합니다. 
따라서 자기부인을 하라고 할 때, 자기부인 비슷하게 하는 것으로 끝을 내고 핵심적으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을 이리저리 회피하기 때문에 예수를 제대로 믿을 수 없고, 그 결과 하늘 영광을 맛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 있는가?]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의 말씀입니다. 한번 하신 말씀은 누가 변개할 수도 생략할 수도 없습니다. 예수를 믿겠다고 따라 나선 우리 모두에게 지금 하시는 말씀이 누구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합니다. 과연 여러분은 예수를 따르는 제자가 되기를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삶을 살고 있는가요? 그렇다면 하늘 영광을 죽기 전에 맛보게 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예수를 믿는다고 해도 예수를 믿지 않은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행한 대로 갚으시겠다는 주님의 말씀이요, 당연한 이치입니다. 

[방향]
오늘 말씀으로는 과연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는 우리의 현실 속에서 어떻게 다가오는지 그것에 관해서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2.1 드러남과 책망- 산 교회 (마16:24)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배경]
이 말씀의 배경은 제자들과 가이사라 빌립보라는 곳을 가시다가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고 질문하시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답을 합니다. 그 후 주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을 말씀하시니 한껏 고조된 베드로가 주여 그럴 수 없습니다. 그 일이 주에게 미치지 못할 것이라면서 만류하니, 주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사단아 물러가라 너는 나를 넘어지게 하는 자로다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못하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심한 책망을 하십니다. 주님이 베드로를 칭찬한 바로 직 후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하신 말씀이 바로 본문 말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믿음이 그냥 내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믿어 주는 것으로 이룩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은 자신의 옛사람이 하나님을 믿어 주는 것이고 이것에는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자신의 존재 자체가 죄인인데 죄인이 스스로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자신의 옛 생명을 악착같이 보존하고자 하는 상태에서 믿는 것이기 때문에 죄의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면에서 베드로도 유대교에 있을 때는 스스로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그 때 그는 그냥 평범한 어부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를 만나고 나서 지금과 같은 책망의 과정을 거친 후 진리를 전파하는 대 사도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베드로 혼자 하나님을 믿어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믿는데 예수의 도움이 필요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수는 우리에게 그냥 열심히 하나님을 믿으라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그런 면도 있지만 그보다 더 핵심적인 예수님의 사역은 우리의 옛사람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혈기, 집착, 욕심, 시기, 질투 등 이 세상 것을 드러내어 그것을 처리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베드로도 자신이 예수를 따라 나섰지만 그 예수를 세상적인 것을 가져다 줄 예수로 생각하고 따라 나섰기 때문에 예수님은 이 일을 통하여 베드로의 그런 옛사람을 드러내고 고치고자 하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보면 예수님의 주된 사역이 우리의 숨은 옛사람과 마음을 드러내어 고치시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경우는 어떨까요?
참된 예수의 말씀이 있는 교회는 이와 같이 우리의 숨은 옛사람의 드러남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드러나면 책망을 받고 고침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 차례 여러분들에게 말씀 드린 바 대로 교회는 옛사람의 드러남이 있어야 참다운 교회입니다. 그래야 고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일이 없는 곳은 참다운 교회가 아니라 할 수 있습니다.
지금 베드로도 보시면 드러남과 책망으로 그가 고쳐집니다. 그리하여 대 사도가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 내에서 아무 문제가 없고 드러남과 책망이 없는 것이 좋은 교회가 아닙니다. 그것은 죽은 교회입니다. 드러남과 책망이 있어야 산 교회입니다. 

그러면 이 옛사람의 정체를 드러내고 책망하는 일은 누가 할 수 있을까요? 
아무나 옛사람을 볼 수가 있고 드러내고 책망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말씀과 눈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자유교회 생활을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로 인하여 지적 받고 고치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음을 복되게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행한 대로 하늘 나라에서 갚음을 받을 것입니다.

2.2 자기 부인- 형제를 통한 주님의 손길 
  24/ 이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

예수를 따르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한다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자기 부인이란 무엇일까요? 여러분들이 주석 책을 사서 펴보면 여러 가지 자기 부인에 대한 해석이 있을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자기 자신의 욕심이나, 세상 애착을 내려 놓고 예수를 따르는 것으로 설명을 하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율법적 해석에 불과한 것이고 예수와 상관없는 해석인 것입니다. 자기 부인은 살아 있는 말씀이 있는 교회에서 신앙 생활하는 사람들이나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아주 깊은 뜻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기 부인이란 예수에 의해서 이끌린 삶의 과정에서 자기가 옳다 하는 것을 부인하고 예수의 손길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서 지금 베드로의 생각과 예수의 생각이 충돌이 되었습니다. 즉, 베드로의 생각으로는 예수가 죽으면 안되었고, 예수의 생각으로는 자신이 죽어야만 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이 둘이 충돌될 때 베드로에게 책망이 임하게 됩니다. 이 때 베드로는 ‘자기가 옳다는 그 시각을 버려야 하는 아픔’을 겪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자기 부인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부인이 있어야 하나님의 나라에 가는데 이 자기부인이 나에게 성립이 되려면 그 전제 조건이 바로 예수의 손길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야 따라 나설 수 있고, 그래서 그 손길과 내가 하려고 하는 것이 충돌이 일어 날 때에 나의 생각을 포기하고 예수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자기 부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만나지 않고서는 자기 부인이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만나 자기 부인을 하지 못한 사람은 애초에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우리 교회에 있으신 분들은 예수의 손길을 대부분 알고 따라 나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이 자기부인에 실패를 하는 이유는 예수의 손길을 따르지 않고 자신의 옳다함을 주장하고 나서기 때문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기 부인을 하지 않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우리는 다윗이 자기를 저주하는 시므이에게 저는 하나님이 나를 저주하라고 시켜서 나를 저주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아비새가 나가서 죽이겠다고 하니 말렸던 것을 생각하실 것입니다. 
[삼하16:10-12] 10/ 왕이 가로되 스루야의 아들들아 내가 너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저가 저주하는 것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심이니 네가 어찌 그리하였느냐 할 자가 누구겠느냐 하고 11/ 또 아비새와 모든 신복에게 이르되 내 몸에서 난 아들도 내 생명을 해하려 하거든 하물며 이 베냐민 사람이랴 여호와께서 저에게 명하신 것이니 저로 저주하게 버려두라 12/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 하시리니 오늘날 그 저주 까닭에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 하고..

다윗은 시므이가 자신을 저주할 때 그것을 단순한 시므이의 저주로 보지 않고, 하나님과 다윗 자신의 문제로 본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 저 시므이를 통해서 나의 찌끼를 제거하고 나면 하나님께서 나의 억울함 마저 선으로 갚아 주실 것이라는 그런 뜻입니다. 그냥 시므이가 저주할 때 막연하게 참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습을 하나님과 연계해서 자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하나님의 손길을 보았던 것입니다. 이것이 제대로 자기부인을 하는 모습입니다. 

우리 교회에서도 여러분이 형제를 판단하는 눈을 가지고 형제를 판단하고 자기 눈에 맞지 않음에 괴로워하는 분들을 봅니다. 그러나 참으라고 해서 참기는 참는데 참으면 얼마나 참겠습니까? 당사자 앞에서는 참고 말을 안 하지만 뒤를 돌아서 자신의 마음을 토로할 사람이 있으면 줄줄 흘러 나오게 되는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런 것은 올바른 자기 부인이 아닙니다. 
형제의 행동에 미움이 가고 판단이 간다면 그것은 형제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자신의 문제입니다. 다윗도 자신을 비방하는 시므이를 잡을 수 있었지만, 그것을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문제로 본 것을 기억하십시오. 마찬가지입니다. 형제의 행동이 자신에게 고깝게 보인다면 그것은 주님이 내 마음을 드러내어 고치고자 하심입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 자신을 보고 자신이 옳다는 생각을 버리고 자기를 부인하고 형제를 통한 주님의 손길을 따르려 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형제가 잘못인데 내가 참자 하게 되면 다른 곳으로 술술 판단을 흘리게 됩니다. 이것은 자기 부인을 하는 것이 아니라, 남을 부인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예수를 믿되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바로 이런 점들 때문에 예수 믿는다고 나섰다가 모두들 샛길로 빠지고 하나님의 나라와 상관없이 신앙 생활하게 되는 것입니다. 

정리해서 말한다면 자기 부인이란 예수의 생각과 내 생각이 충돌이 되었을 때 내 것을 부인하고 예수의 것을 따라 나서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예수의 손길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내 주위 형제들을 통해서 표현된다는 것을 분명히 아시기 바랍니다. 

2.3 자기 십자가
[사53:5-6]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 시키셨도다

십자가의 의미는 죄가 죽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죄를 예수님에게 얹혔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고 자신이 지신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것으로 끝나면 다행인데 주님은 제자들에게 너희는 너희의 십자가가 있다고 말씀을 하십니다. 2000년 전에 예수님의 십자가는 온 인류에게 죄 사함의 길을 열어 주셨고, 이제 우리 각 개개인은 그 예수님의 십자가에 연합할 우리 개인의 옛사람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합니다. 그 자신의 옛사람의 십자가를 잘 지고 견디게 되면 우리의 옛사람이 명실공히 십자가에 못박히고 그로 인해서 우리는 비로소 거듭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기 십자가는 자기 옛사람의 무덤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와 동행하는 과정에서 나의 모든 고칠 것을 드러내실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는 하나라도 남김이 없습니다. 대충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마 5:26]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네가 호리라도 남김이 없이 다 갚기 전에는 결단코 거기서 나오지 못하리라 
자기 십자가 거부하지 마시고 잘 지고 견디시기 바랍니다.  

3. 맺음말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기간은 예수에 이끌린 삶을 사는 동안입니다. 이때 자신의 옛사람이 수시로 드러날 것이며 또한 책망을 받을 것입니다. 이때 성질 내지 마시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기간 동안에는 철저히 자기 부인을 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과 자신의 뜻 어느 것이 현명할까요? 어느 것이 자신에게 더 유익할까요? 예수의 뜻과 상치된 자신의 뜻은 자신을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행한 대로 갚아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철저히 부인한 사람들에게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그리고 그 영광이 여러분이 살아 있을 때 이루어 질 것입니다. 이런 복을 받으시는 여러분들 되시기 바랍니다. 


자유교회
목 사
정 덕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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