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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벨탑1[창 11:1-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6-04-17 14:21 조회 |3,987회

본문

바벨탑 1

[창 11:1-9] 1/ 온 땅의 구음이 하나 이요 언어가 하나 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 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3/ 서로 말 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4/ 또 말 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 하셨더라 6/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이 무리가 한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 이므로 이같이 시작 하였으니 이후로는 그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수 없으리로다 7/ 자,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 하게 하자 하시고 8/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성 쌓기를 그쳤더라 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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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성경 말씀은 하나님을 대적하기 위해서 바벨탑을 쌓다가 심판을 받고 온 지면에 흩어진 사건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헛된 공사를 하는 자들 또는 헛된 노력을 하는 자들을 놓고 소위 바벨탑을 쌓고 있다고 말합니다.

적어도 교회 안에 있는 우리들은 하나님을 대적할 생각을 꿈에도 하지 않습니다. 오직 열심히 하나님께 순종하고 있을 뿐 입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중에서도 바벨탑은 안전하게 쌓아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사람들과 달리 교회 나왔 겠다 또한 열심히 기도와 봉사와 찬양으로 하나님을 위한 공든 탑을 쌓겠다 하니까 자기 스스로의 위안과 남들의 칭찬을 보게 될 때에 그 탑은 한층 더 높이 쌓이게 되는 것입니다. 

이단이란 한자로 다를 이(異) 끝 단(端)입니다. 이것은 처음은 같다가 끝에서 다르다는 의미로서 우리도 예수를 믿는 것에 있어서 이름은 예수로 시작하기 때문에 안심을 하기 쉽고 안도의 숨을 내 쉬지만 과연 내가 믿는 그 예수가 어떤 예수냐에 따라서 이단과 정통이 구분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단이 되지 않으려면 자신이 어떤 예수를 믿고 있는 지 끝까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개요]
오늘 말씀은 인간들이 바벨탑을 쌓고 있으며 하나님을 대적하고 있다가 하나님이 내려와서 다 흐트러뜨리셨다는 내용의 말씀입니다. 

[방향]
바벨탑을 쌓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열심히 바벨탑을 쌓게 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가 이런 행동을 하고 있다는 것을 조명해 주고, 들을 귀 있는 사람들은 듣고 그 탑 쌓기를 그치는 것입니다. 오늘 저도 말씀을 듣고 자신의 바벨탑 쌓기를 그치는 사람들이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 말씀을 전합니다. 분명히 그런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계속해서 주님은 이 말씀으로 전하라고 감동을 주셨으니까 말입니다.

2. 본문
2.1 시날 땅의 의미 (창11:1-2)

[창 11:] 1/ 온 땅의 구음이 하나이요 언어가 하나 이었더라 2/ 이에 그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 거기 거하고

[내용]
노아 시절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의 자손들이 온 땅에 퍼졌습니다. 이들이 진행해 나아가다가 시날 땅에 이르러 돌 대신 견고히 구운 벽돌을 쓰고, 진흙 대신 역청을 써서 탑을 쌓기 시작합니다. 

[상징]
-시날 땅
성경에서 시날의 위치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으로 알려져 있고 바벨론 지역입니다. 그리고 이 시날이 의미하는 것은 인본주의적 생각과 세상을 의미합니다. 
이런 예로 여호수아와 그의 백성들이 가나안을 정복해 나갈 때 큰 나라들을 다 이기었지만 아이라는 조그만 성을 치려 하다가 실패를 하게 됩니다. 그 이유는 백성 중에 죄를 범한 자가 있었기 때문에 그런데 그는 아간 이었고 그가 시날 산 외투와 은과 금을 탐내어 감추었기 때문에 하나님이 진노하셔서 그렇게 되었습니다. 
[수 7:21] 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 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오십 세겔 중의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보소서 이제 그 물건들을 내 장막 가운데 땅 속에 감추었는데 은은 그 밑에 있나이다
곧 시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상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동방으로 옮기다가 시날 평지를 만나고 거기서 탑을 쌓게 되는 것은 마치 아브라함이 가나안으로 이동하다가 하란에서 정착하려 했던 것과 흡사 합니다. 예수를 믿으러 나섰던 많은 사람들이 세상적인 풍요로운 생각에 빠지는 것을 상징합니다. 여기서 풍요로움 이라 함은 물질적 풍요로움도 포함되고 정신적, 사상적 풍요로움을 말하기도 합니다. 물질적 풍요로움이란 잘 먹고 잘 입는 것을 말하고, 사상적 풍요로움이란 사랑, 겸손, 온유함을 추구하는 철학적,인본주의적 풍요를 말합니다. 이것은 율법적 신앙생활에 빠질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의 본성에 대한 조명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흔히 예수에 대해서 열심을 내게 될 때가 언제인가 하면 잘 안되던 사업에 축복을 받고, 병 고침을 받았을 때 미지근 하던 신앙에 열심을 낼 수 있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들은 있는 힘 없는 힘을 다 해서 예수를 남에게 전하게 되고 또한 교회 안에서 열심을 내게 됩니다. 우리에게 이런 열심이 없으면 예수를 믿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런 열심만을 가지고 이전과 비교하여 믿음이 완성 되었다 고 생각하게 되고 그 자리에 머물게 되기 쉽습니다. 곧 시날에 자리를 깔고 머물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부귀 영화가 최종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향하여 계속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그런 열심의 방향을 자기 중심적 열심에서 주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 열심히 순종해야 하는 것으로 연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시날 땅을 거치기는 하지만 거기에 정착하지 않고 계속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나아가고 있는 모습이고 제대로 방향을 잡은 것입니다. 

저도 자주 간증을 드립니다만, 제가 주님으로 부터 병 고침을 받고 예수를 전하기에 열심을 내었을 때, 주님은 그 열심을 기뻐 하셨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는 이 정도의 예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선하신 뜻이 계셔서 저에게는 그 너머의 세상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저에게 그런 단계 넘어서의 믿음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 주지 않았더라면 저는 그냥 평범한 신자들과 같이 오직 하나님께 대한 열심을 좋은 믿음으로 생각 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바벨탑을 쌓고 있는 모습입니다.
그것을 계시해 주셨다는 것은 저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이었고, 또한 어떤 과정을 거쳐서든지 저의 이런 말씀을 듣고 있는 여러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아무튼 우리들은 예수를 믿으러 나서서, 세상적인 복락에 머무르면 시날 땅에 머물게 되는 것임을 제대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물론 성경에 비추어 볼 때, 자비를 말하는 부처와 인을 말하는 공자 등이 모두 정신적 풍요에 매료된 바벨론 백성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2 돌 대신 벽돌, 진흙 대신 역청 (창12:3)
3/ 서로 말하되 자, 벽돌을 만들어 견고히 굽자 하고 이에 벽돌로 돌을 대신하며 역청으로 진흙을 대신하고 

[내용]
이들은 그 시날 땅에서 벽돌과 역청으로 탑과 성을 건축하기 시작합니다. 

[상징]
성경에서는 두 개의 도시를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성인 새 예루살렘과 인간의 노력의 산물인 바벨론 도성입니다. 지금 말하고 있는 시날 땅에 있는 바벨론 도성과 그 탑입니다. 
이 둘의 공통점은 도시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는 하나님의 쓰임을 받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이 내려와서 흩어 버리는 바벨탑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인정받는 것은 하나님의 인도함으로 말미암은 예루살렘인 것이고, 인정받지 못하는 것은 바벨론 도성입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마7:24-27] 24/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25/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26/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27/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둘 다 집을 짓습니다. 하나는 무너질 집을 짓고 하나는 견고한 집을 짓는 것입니다. 
이것의 결정요인은 그 집이 반석이신 예수그리스도에 이끌린 결과로 지은 것이냐? 아니면 여러 인간들이 모래알같이 모여서 만든 지식으로 짓는 것이냐의 차이입니다.

바벨 사람들은 벽돌과 역청으로 성을 쌓습니다. 
여기서 벽돌과 역청이 상징하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과 규제와 법의 상징입니다. 벽돌이라 함은 불에 구워서 만든 규격화된 제품을 말합니다. 
이것의 상징은 우리 인간들이 우리 인간 개개인을 법을 통하여 획일화 시키고자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과연 교회에 나와서 여러분이 추구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획일화된 인간의 삶이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니까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만드는 사람들이 바로 획일화된 사람들입니다. 기계적으로 주일 성수하는 인간, 기계적으로 봉사하는 인간, 기계적으로 구제하는 인간... 인간 본연의 고유함을 법의 불에 구워서 똑같은 사람들을 만들어 내고 그 바탕 위에 도시를 건설하고 공동체를 만들려는 노력을 말합니다.
지금 너무나 많은 교회들이 이런 인간 벽돌 공장 역할을 하고 그 바탕 위에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려고 노력하는 것을 많이 봅니다. 
그러나 이런 성읍은 하나님께서 내려와 보시고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말씀의 불로 구움]
이런 바벨탑과는 달리 하나님의 교회에서는 여러분도 느끼시겠지만 여러분 고유의 색깔을 존중해서 하나도 버리지 않고 쓸모 있게 만들어 나가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크면 큰 대로 작으면 작은 대로 넓으면 넓은 대로 좁으면 좁은 대로 쓰시는 하나님이시고, 지금 자유교회가 바로 그런 교회라는 것을 아실 것입니다. 
그러나 작으면 작은 대로 작은 것을 쓰시기 위해서는 마찬가지로 불에 연단을 받아야 합니다. 그냥 자기 멋대로 나는 작으니까 이러면서 이렇게 저렇게 통과하려고 한다면 어림없는 일입니다. 어느 분은 하늘에 상달 되기 까지 기도하라니까, 나는 기도를 잘 못하는 성품이라서 안 해도 될 것이라는 편안한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다가 큰 코 다칩니다. 

성령의 불에 의해서 연단을 받을 때, 나는 고칠 곳이 왜 이렇게 많으냐? 하고 자신을 쓸데 없는 자로 비하하기 쉽지만 그러나 그렇게 불순물을 다 제거하고 나면, 자신이 무척 사랑스럽고 쓸모가 대단하다는 것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고친 후의 모습을 보고 기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고침은 우리를 벽돌처럼 획일화 시키지 않습니다. 고유의 모습을 바로 보게 하고 고유의 특징을 그대로 살리면서 굽기 때문에 우리는 그 고침 속에서 자유 함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 되어서 움직이게 되면 그 교회는 바로 살아서 움직이는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2.3 이름을 내고...(창11:4-5)
4/ 또 말하되 자, 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온 지면에 흩어짐을 면하자 하였더니 5/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 하셨 더라

[내용]
성과 탑을 쌓아 하늘에 닿게 하고 자신의 이름을 내려 하고 그리하여 하나로 뭉치자고 합니다. 
이들이 성을 건축하고 탑을 쌓는 이유는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게 하기 위함이고 그리하여 하나로 뭉쳐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이름보다 정작 자신의 이름을 내세우기를 원하는 인간의 또 다른 속성입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믿음의 모습을 보고 예수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마 6:1] 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그렇지 아니하면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상을 얻지 못하느니라

우리가 의로움을 행할 때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행한다면 그것이 이름을 내려고 하는 것이고 곧 바벨탑을 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 탑은 하나님이 내려와 보실 때 무너뜨려지는 것이고 상을 얻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내 이름을 내기 위해서 힘을 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여 이름 내 주기를 기다려야 현명한 자이고, 하나님의 생명의 흐름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곧 반석 위에 집을 짓는 모습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름을 내게 되면 자신의 노력 없이 이름이 내게 된 것이니 자랑이 있을 수 없고 오직 그 이름 낸 것을 즐기는 것 뿐입니다. 
[고전 15:10]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사도 바울은 큰 이름을 가지게 되어 인류 역사가 계속 되는 동안 그의 이름이 기억될 것입니다. 그는 열심히 일을 했지만 그 일의 근원이 자기 스스로 이름을 내기 위해서 열심을 낸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인도하신 결과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책도 쓰고 뭐도 하고 했지만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이 이렇게 저렇게 은혜로 가져다 주신 것이지 내가 뭐 특별히 별도로 노력한 것이 없습니다. 
복음 아래서 하는 일은 쉽고, 또 자신은 내가 이렇게 일을 쉽게 해도 되는 것인가? 의아해 할 정도로 주님께서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3. 맺음 말

3.1 시날 바벨론에 머물지 말아야 합니다. 

3.2 참다운 교회에서는 사람을 벽돌과 같이 규격화시키지 않습니다. 그런 교회는 인간이 세운 교회입니다. 

3.3 이름은 하나님이 내 주시는 것입니다. 자신의 노력으로 성취하려 하지 마십시오.

모든 것을 하나님께 의지함으로 여러분의 이름을 하나님이 내 주시기를 예수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자유교회
목 사
정 덕 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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