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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롬6:5-7]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 |06-05-06 23:27 조회 |3,762회

본문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

[롬6:5-7]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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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기독교의 가장 두드러진 큰 특징은 부활이라고 합니다. 공자도 죽은 다음에 부활하지 못했고 석가도 그랬고 마호메드도 그랬습니다. 예수님은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부활 하심으로 사망 권세마저도
예수를 가둘 수 없음을 증거 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는 가장 우월한 진리라고들 합니다.
예 그렇습니다. 부활은 옛 것이 죽고 새 것이 거듭나는 것을 말하는 것으로 이 부활 이야 말로 우리를 새롭게 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그러나 단순히 2000여 년 전에 예수께서 무덤에서 부활한 사건만을 가지고 예수가 최고다 라고 한다면 그것은 단지 역사적 사실에 불과합니다.
그렇게 최고의 예수를 바라만 보고 있을 때 예수의 부활은 나와는 전혀 상관 없고 오직 부활하신 예수님만 존경스럽게 바라보고 있을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 과거에 있었던 예수의 부활이 어떻게 해서든지 나와 연관이 있을 때, 비로소 그 부활은 참다운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매 년 부활절 행사 때 십자가에 고난 받은 예수님의 아픔에 동참 한다고 십자가를 지고 행군하거나, 아니면 실제로 십자가에 달림으로 아픔을 느끼기도 합니다.
이 모든 시도들이 어찌 보면 예수와 연합하고 그 분의 부활과 하나 되고자 하는 소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무튼 정말 우리가 예수와 연합하여 죽고 예수와 연합하여 부활할 수 있다면 그때는 이 모든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원하고 원하던 진리를 찾게 되는 것이고 죄악 세상에서 벗어나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예수는 이 일을 우리에게 이루기 위해서 왔고, 성경은 이 일이 지금 우리에게 일어나게 하려고 기록된 것입니다.
 
[개요]
바울은 이와 같이 우리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연합하면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또한 부활하여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고 의로움의 종이 되어서 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방향]
이 말씀을 통하여 소위 말해서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어떻게 예수와 연합하여 죽고 살아서 하나님의 의로움에 이르게 되는지를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2. 본문
2.1 예수와 연합하여 죽고 부활하는 문제
(롬 6:5)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내용]
바울은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당연히 예수의 부활과 연합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와 연합하여 죽고 부활하게 된다면 그야말로 예수 부활이 내 부활이 되는 것이고, 이러면 예수와 함께 죽음으로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 꿈에도 그리던 하나님의 의에 이르게 됩니다.
여기서 우리가 살펴 볼 문제는 예수와 연합한다는 의미입니다. 흔히 믿지 않는 남편들은 자신의 부인이 여 선교 회장이고 교회에 무척 열심이니 나는 부인의 치마 끈만 잘 잡고 있으면 자신도 천국에 갈 수 있다고 농담 삼아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라 자신이 은근히 그런 것에 기대를 하고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자기는 바쁘기 때문에 가지는 못하지만 아내는 교회까지 데려다 주기도 하고 교회 나가는 것을 지원하기도 합니다. 설마 천국에 가는 아내가 남편인 자신을 놓고 가기나 하겠는가? 하는 심리인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천국에 가는 것은 아내가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니고, 남편이 데리고 가는 것도 아닙니다. 철저히 자신 개인적인 문제이며 이것은 자식들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육신적인 가족의 끈, 친구의 끈, 안면이 우리를 연합시킬 수 없습니다. 오직 이런 연합이 가능한 것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와 연합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예수 따라서 천국에 갈 수 있는 것이고, 이것이 곧 유일한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는 길입니다. 그러나 예수와 연합한다는 것을 예수의 옷자락만 잡고 있으면 천국에 가겠지 하는 것으로 이해한다면 부인의 치마 끈을 잡고 천국 가려는 마음과 대동소이합니다.
그래서 예수의 부활을 믿어주고,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믿어 주면서, 헌금하고, 금식하고 봉사하고 고난 주간에 십자가를 지고 가시면류관을 쓰고 고난 체험을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행동을 한다고 해서 또한 연합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럼 어떻게 예수와 연합을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연합의 대상인 예수를 먼저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그에 의해서 옛사람을 처리 받아야 비로소 연합이 되는 것입니다.

-바울의 예
사도바울은 예수를 육신적으로 만나서 따른 바가 없는 사람입니다. 그런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승천 했던 예수를 만나서 아라비아로 가 변화를 받고 예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런 후 바울은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된 자들은 예수의 부활과 연합한 자가 된다고 고백을 합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도 바울처럼 예수를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야 그 예수와 연합하여 죽고 살 수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서 부활의 문제는 예수와 연합하여 죽은 것의 당연한 결과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다는 의미가 무엇인지를 잘 알고 그 길을 가야 예수의 부활의 영광에 동참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예
여러분들은 지금 모두 말씀이신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리저리 연합을 피해서 도망 다니는 사람이 있고 때로는 연합했다가, 그 연합에서 분리되기도 하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큰 흐름에서 모두 다 예수와 연합하는 과정에 있습니다. 회피하는 사람들은 죽는 시간을 연장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기 손해입니다.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다는 의미는 그 죽음의 길을 예수와 동행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예수에 의해서 이끌림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에 이끌린 삶이란 주님이 우리의 옛사람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우리 눈에 보임으로써 우리가 고침을 받고 그것을 부인하고 내어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 길로 인도하시는데
자신은 그 길을 갈 수 없다, 예수 혼자 가라고 하면 그것은 예수와 연합한 것이 아닙니다.
예수 혼자 가라고 떠밀어 버린 상황이고, 예수와 연합이 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서 리모델링 공사에서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라고 할 때 우리가 살펴 본 바가 무엇입니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대치 그 이상의 감동을 주시고 믿음이 없으면 하지 못할 그런 수준으로 인도하심을 느끼셨을 것입니다. 이때 자기의 최대치에서 그치는 사람은 여기서 예수의 죽으심과 분리되는 것이고, 죽으면 죽으리라고 그 말씀에 순종해 나가는 사람은 예수와 연합하여 죽음의 십자가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에 죽으심은 곧 자신의 뜻을 굽히고 죽기까지 순종하심입니다.

[빌2:6-8]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예수님은 십자가를 앞에 두고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마 26:39]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이것이 예수의 옳다함을 포기하는 자기 부인이고 자기 십자가를 지심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자기 부인을 한 결과 십자가에 죽게 되었습니다. 이런 예수와 연합된다는 것은 우리도 시마다 때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를 따라 나섰을 때 그때 우리는 예수의 죽음에 연합하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 만이 예수의 부활에 연합될 수 있는 것이고, 이렇게 내가 예수의 죽음과 연합한 결과가 예수의 부활을 내 것으로 만들게 되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예수의 죽으심과 연합함이란 우리 믿음의 성장과정에서 예수를 만나고 그 예수에 이끌린 삶을 사는 기간 동안이고, 이제 그 과정이 끝나면 예수가 부활하여 성령으로 우리 마음 속으로 임하게 되니 이것이 예수가 내 안에서 부활 한 것이고, 내가 예수의 부활에 연합한 것이라는 표현을 하는 것입니다. 예수의 죽음에 연합하는 과정은 공관복음단계의 믿음이고, 연합하여 부활하는 과정은 요한복음단계의 거듭남을 말하고 있습니다.

2.2 죄의 몸이 멸하여...

(롬6:6)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우리가 예수에 이끌린 삶을 잘 견디면 이제 우리는 다시는 죄의 종 노릇을 하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죄의 사슬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죄악 세상에서 죽음으로 탈출을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를 엑소도스라고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를 따라 광야로 탈출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도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죽음으로 죄가 없는 새로운 세상으로 대 탈출을 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은 우리의 죄의 몸을 멸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이 몸 육신의 몸을 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이 몸을 멸하면 우리의 존재는 이 세상을 떠나고 맙니다. 바울이 말하는 죄의 몸은 죄의 지시를 받고 있는 몸을 말합니다.
우리의 몸은 죄의 지시대로 움직이거나 아니면 하나님의 지시대로 움직입니다. 죄의 지시대로 움직이고 생활 할 때의 우리 몸이 죄의 몸입니다. 그 죄의 몸을 멸하려면 이 몸을 어떻게 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몸을 움직이고 지시하고 있는 죄를 멸해야 합니다. 이 죄라는 것은 하나님과 분리된 내가 바로 죄인데, 우리는 이런 상태에서도 헌금하고 봉사하고 교회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런 모든 것을 죄의 몸이 하는 행동이고 그것도 죄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우리를 의롭게 만드시는 법은 의로운 행동을 해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옛사람을 멸하여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몸이 의로운 행동을 하게 하심으로 존재적으로 변화를 시키시는 것입니다.  

[롬 6:13]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산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다시 말씀 드리지만 우리 모두는 피조물로서 스스로 있는 존재가 아니라,
누구의 지시를 받는 존재입니다. 옛사람의 지시를 받느냐 아니면 하나님의 지시를 받느냐입니다.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것은 나를 조종하는 존재를 몰아 낸다는 뜻이고 그러면 나에게는 부활하신 예수의 영이 임하게 되어 하나님과 하나가 되게 됩니다. 이때 나는 비로소 의로운 자가 되는 것이고, 거듭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먼저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함을 소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옛사람의 소욕이 죽어야 합니다. 이것은 곧 우리가 예수에 이끌린 삶의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을 체득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에 순종해 나가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이것을 과격하게 표현해서 하나님의 앞에 자신의 뜻을 굽히고 무조건 순종하라고 합니다. 일단은 맞는 설정입니다. 하나님의 뜻에 결론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런 순종도 기계화되고 율법화 되면 그런 사람들은 충직한 로봇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잘 생각해서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이 어디에서 충돌이 되는지 그것을 보고 자신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되지 못하는 부분을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몸을 멸하는 길입니다.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앞에서 말씀 드린 대로 예수와 연합하여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못박히는 것입니다. 알고 보면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은 다른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과 하나도 다름이 없습니다. 예 그렇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모든 일에서 하나님의 뜻을 찾아내어 영적인 이해를 하는 것이고, 다른 교인들은 보이는 육신의 일로 육신적인 해결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리모델링을 하는데 어느 집사님이 제가 한 말에 상처를 받았습니다. 저도 그것을 압니다. 제 앞에서는 아무 말도 안하고 속으로 저를 원망하고 있었던 것을 압니다. 그러나 저는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오직 교회와 교인들을 위해서 고칠 것을 고치라고 한 것뿐 입니다.
다른 교회 같으면 이런 상황에서 그 사람을 위로하고 회유할지 모르겠지만 저는 기다렸습니다.
왜냐하면 그런 것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역시 그 분은 제게 오셔서 자신의 혈기가 드러나고 옳다함을 주장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고 오히려 그런 자신의 모습을 회개했습니다.
바로 이것입니다. 제대로 자신의 옛사람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버리게 하는 것이 바로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 것입니다. 같은 사건을 놓고 어떤 교회에서는 육신적으로 무마하려는데 비해서, 자유교회는 그 안에서 영적인 손길을 보고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하지 않게 합니다.

2.3 죽은 자가 의롭다함을 얻었다

(롬6:7)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내용]
여기서 죽은 자란 자신의 옛사람을 예수와 연합하여 죽이게 된 자를 말합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에 이끌린 삶을 제대로 견디어 낸 사람들은 비로소 죄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흔히들 예수에 이끌린 삶이 힘이 든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런 힘든 삶은 세상에서도 흔히 있고 더 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잘 견디어 내면 죄로부터 벗어나게 됩니다. 이 단순한 문구 ‘죄로부터 벗어난다’는 것은 죄와 완전히 결별한다는 뜻입니다. 법은 그 사람이 살아 있을 때만 지배합니다. 죽은 자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살던 우리가 예수에 이끌린 삶을 살아서 이 세상에서 옛사람이 죽게 되면 법에서 벗어나고 의로운 사람이 됩니다. 죽는다는 것은 완전히 포기한다는 의미입니다. 제가 주님에 이끌림을 받는 시절에 "왜 나만 재수없이 악한 신에 걸려서.. 이렇게 생고생한다고 투정을 부린 적이 있습니다. 또한 회사 부하직원이 불손하게 해서 밤에 잠을 못 자고 이대로 죽어야지... 하는 상황까지 이르러 참지 못하고 직원을 불러 야단을 쳤던 것을 간증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앞으로는 더 참아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여직원은 그렇게 야단을 맞고 그 뒤로는 슬슬 피했고 조심을 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러다 그는 다른 회사로 갔습니다. 그러니까 이 여직원으로 인해서 밤에 잠 못 이루면서 이대로 죽어야지... 하는 상황은 이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끝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또 다른 부하 직원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는 먼저보다 제가 볼 때 더 악했고 그가 아무리 불손하게 해도 참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을 조성하셨습니다. 그때의 아픔은 너무 컸고 그렇게 저는 예수와 함께 그 문제로 십자가에 못박혔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렇게 부활의 영광을 누리고 하나님께 쓰임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3. 맺음말

3.1 부활은 죽음을 전제로 합니다.
그 죽음은 우리가 예수와 연합하여 예수에 이끌린 삶을 살 때, 죽음이 우리에게 올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만이 예수와 함께 부활하게 되는 것이고, 새 생명을 자신 안에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3.2 이것은 곧 우리의 옛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는 과정이고 다른 표현으로는 예수를 따르는 삶이고, 자기 부인과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입니다.

3.3 이렇게 나의 옛사람이 예수에 의해서 죽으면 예수의 부활이 내 부활이 되고, 예수의 생명이 내 안에 임하게 되어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부활절을 맞이하여, 속히 여러분 안에서 예수의 부활이 일어나기를 소망합니다.


자유교회
목 사
정덕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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