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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눅 4:16-19]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7-06-25 00:07 조회 |12,264회

본문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눅 4:16-19] 16/ 예수께서 그 자라나신 곳 나사렛에 이르사 안식일에 자기 규례대로 회당에 들어가사 성경을 읽으려고 서시매 17/ 선지자 이사야의 글을 드리거늘 책을 펴서 이렇게 기록한 데를 찾으시니 곧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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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기존의 성령이해]
우리가 기존의 신자들과 말을 나누어 보면 가장 큰 차이점을 느끼게 되는 것이 성령에 관한 문제가 아닌가 생각합니다. 즉, 성령을 받았다 또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았다는 말들을 그냥 뜨거운 체험을 하면 다 그렇게 성령을 받은 것이고, 성령이 자신에게 임했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기도원에 가서 금식을 하고 열심을 내면 이런 체험을 하나님께서 주시면, 너도 나도 성령을 받았고 세례를 받았다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초창기에 전도사로서 말씀을 전할 때 당시는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하니까, 모두들 의아한 눈초리를 주며 아니 말씀을 맡은 전도사가 아직 성령세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며 따가운 눈총을 받았던 것을 기억합니다. 혹자는 혹시 전도사님 이단아니에요? 하는 것이었습니다.

[참된 성령의 임함]
지금 여기서 예수님께 성령이 임했다는 것은 우리의 경우 이렇게 임하는 성령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그분에 의해 고침을 받고 그 후에 우리 안에 임하는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믿음 성장에 있어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과정을 거쳐서 임하는 나와 하나된 성령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공생애 사역을 성령으로 인하여 일을 시작하심을 알 수 있습니다. 공생애를 할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예수 자신에게 임한 성령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하신 일은 여기에 나타나는 바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신 일, 또는 예수로 인하여 거듭나서 성령을 받은 자들이 하는 일에 관해서 말씀을 나누고자 합니다.

2. 본론
2.1 가난한 자(눅 4: 18)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가난한 자]
여기서 가난한 자란 돈이 없는 자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먹을 것이 없고, 집이 없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난한 자란 예수를 믿건 안 믿건, 물질적으로 부자이건 가난한 자이건, 건강하건 병들었건, 권세를 가졌든 그렇지 않든, 그런 것과 상관없이 지난 자신의 삶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하고 혼돈하고 공허함을 느끼게 된 자들을 말합니다. 오직 이들에게 복음이 전해지게 됩니다. 그래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부자인 자들에게는 복음이 전해지지 않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부자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기는 하지만 그들은 복음을 복음으로 듣지 못합니다. 자신들의 인생에 있어서 영적인 가난함을 체험하지 못했으면 아무리 복음이 그들에게 전해진다 해도 그들은 복음을 복음으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서 복음이신 예수가 이천여 년전에 유대 땅에 오셨습니다. 그때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많은 무리들은 복음인 예수를 배척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들은 가난한 자들이 아니었고 부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 영적 가난한 자들이었던 예수의 제자들은 복음을 들을 수가 있었고 그래서 종국적으로 인생에 희년을 맞고 자유함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마 3: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여기서도 심령이 가난한 자란 이 인생에서 지쳐 쓰러져 탕자의 체험을 한 사람을 두고 말합니다. 그들이 가난한 자들입니다. 이들은 복음을 듣고 따라 나서서 종국에는 천국에 들어 갈 것이기 때문에 복이 있다고 주님은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천국이 우리 것이 된다는 것은 예수님에게 임했던 성령이 우리 가난한 자에게도 임한다는 뜻입니다. 복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2.2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자유케.. (눅 4:18)
18/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예수님께 성령이 임해서 사역에 나서는데 그것은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는 그 뒤에 구체적으로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로 표현되고 있고, 예수님은 이들을 자유케하기 위해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십니다.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란?]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를 자유케 하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고, 이들은 한마디로 죄인들이고 이들을 구원하여 자유케 하게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포로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는 이 세상을 살 때 일이 잘 안 풀리고 압제 당하는 자라는 생각을 가지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자신의 처지를 알고 그곳에서 건져 줄 예수로 생각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유대 땅에 오셨을 때 백성들이 바랐던 것은 로마의 압제를 받고 있던 유대민족의 해방, 배고픈 민중들을 배불리 먹게 해 주는 것, 질병으로 고생하는 자들의 치유 등 이 세상을 사는데 힘이 드는데 그것을 해결해 줄 예수로 생각을 했습니다. 이런 예수관은 지금 우리들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래서 밥을 퍼주는 예수, 독재정권에 압제 받는 민중을 그곳에서 해방시켜 주는 예수로 또는 이 세상의 원만한 가족관계를 유지시켜 주는 예수로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하는 '다른 예수'입니다.

중앙 일간지를 우연히 보니까 어느 교회에서 전면광고를 주기적으로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창세기에 관한 말씀을 쓰고 있었는데 그 내용 중에 맨 처음에 하는 이야기는 이것입니다.
어떤 부인이 이혼을 했는데 자신의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죄사함을 받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이전에 자신이 남편에게 무엇을 원하기만 했던 모습을 회개하고 다시 결합하게 되었고, 지금은 행복한 생활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 믿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를 믿고 가정의 평화가 있을 수 있고 더 좋은 일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목적이 아닙니다. 과연 예수님이 이런 가정생활을 원활하게 하러 이 세상에 오신 분일까요? 예수 이전에는 원활한 가정생활이 없었던가요?

예수님은 분명히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이루고 견고케 하시고자 하는 나라는 이 세상나라가 아닙니다. 그러니 이 세상 나라의 축복의 일로 예수를 인용할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는다는 것이 그렇게 교회 집회 몇 번 참석한다고 이루어지는 일일까요? 예수님이 제자들의 죄사함을 받게 하기까지 3년 반이란 세월과 부활 후 40일이라는 기간이 필요했는데 말입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포로된 자란 하나님을 떠나서 죄의 종노릇하는 자들을 말하고, 눈먼자도 진리를 떠나서 거짓 것을 믿고 옳다고 주장하고 따르는 영적 소경들을 말하고, 눌린 자도 죄와 사단의 종노릇하여 눌린 인생을 사는 우리들을 말합니다.
사실 예수를 전하되 '다른 예수'를 전하고 있는 자들이 포로된 자요, 눈먼 자요, 눌린 자들입니다.
이들은 물질적으로 풍요로워도, 건강해도 포로 되었고, 독재정권 타도하여 민주정권에서 살아도 눌려있는 것이고, 가족이 화목해도 인생의 참 의미를 찾지 못해 눈이 먼 것이고, 예수를 전해도 포로된 자입니다.
우리 인생은 그 가정이 이혼을 하였건, 아니면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건, 자신에게 돈이 있건 없건, 병이 들었건 건강하던, 그런 것과 상관없이 인생 본연의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난 문제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를 하나님과 다시 하나되게 하심으로 우리를 그 문제로부터 자유케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이고, 자유케 됨이고, 죄사함입니다.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육신의 양식과 육신의 물로 인한 갈함이 아니라,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인생의 근원적 갈증을 가진 자들이 포로된 자요, 눈 먼 자요, 눌린 자인 것입니다. 예수는 인생의 근원적 갈증을 해결해 주러 오셨습니다. 그러니 예수 믿고 육신의 양식과 물을 충분하게 얻었다는 간증은 예수를 아직 제대로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자유케 하시는 길]
포로 된 자, 눈먼 자, 눌린 자들은 스스로 자유케 될 수 없습니다. 다만 주님께 의지하고 끝까지 주님을 따라 나설 때 주님께서 이 일을 이루어 주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어렵사리 복음을 접하고 주님의 자유케 하시는 손길을 따라 나서는 도중에 도주를 합니다. 그래서 천국에 가지 못하게 됩니다.
처음 복음을 접하게 되면 말씀이 너무 합당하여 무릎을 치고, '이 말씀 이외에 다른 복음은 없다'라거나, '나는 절대 이전 삶으로 돌아갈 수 없다', '이제야 내 인생에서 참된 길을 찾았다'는 고백을 연발합니다. 그리고 말씀시간에도 계속해서 눈물을 흘리며 감동 속에서 말씀을 듣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서 자신의 옛사람을 고치는 주님의 손길을 볼라치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교회에 불평불만이 생기고, 목사님의 말씀이 예전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렇게 자신의 불평 불만을 제때 해소하지 못하고 가지고 있으면, 종국에는 그것에 자신의 몸을 실어 주게 되고 복음의 말씀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의 숫자가 많습니다. 그래서 천국으로 가는 길은 좁은 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가 이 과정에서 낙망하지 말고 항상 기도할 것을 말씀하시고 (눅 18:1) 히브리서 기자는 이 과정에서 우리가 어떠해야 할 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히 3:14]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끝까지 잘 견디면 주의 은혜의 해를 맞게 됩니다.

2.3 은혜의 해 (눅 4:19)
19/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하였더라

[은혜의 해]
'주의 은혜의 해'는 레위기 25장에서 말하는 '희년'(year of iubilee)을 말합니다. 매 50년마다 빚진 자들의 빚이 탕감되고, 노예들이 해방되고 땅의 경작을 쉬게 하고 모든 거민들이 자신의 고향으로 돌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정하신 해방의 해를 말합니다.

[레 25:8-12] 8/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 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구 년이라9/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 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10/ 제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11/ 그 오십 년은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다스리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12/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가 밭의 소산을 먹으리라

[40에서 50으로...]
이것은 곧 복음에 의해서 우리 인생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나라의 안식에 들어가는 때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때를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떠나 사단에게 사로 잡혀 생 고생하며 살던 시절 영적 40년을 끝내고 50년째에 해방시키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40은 인생이 나름대로의 삶에 고난 받고 지쳐서 가난한 자가 될 때까지의 기간을 말하고, 50은 그 다음,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고 죄 사함 받은 때를 말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오순(50)절'과도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제자들도 예수님에 의해서 고침을 받는 최종과정이 부활 후 40일이고, 이제 50일이 되는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여 제자들은 온전히 죄에서 해방되고 영적 희년을 맞게 된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떠나 사단의 종노릇하면서 허전하고 공허한 삶을 살던 우리에게 해방의 해를 맞게 해 주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런 예수를 모르고 자신은 여전히 사단의 종노릇하는 삶을 살테니 먹을 것이나 충분히 주고, 독재 정권이나 타도해 달라고 예수를 찾는다면 예수님의 마음이 어떻겠습니까? 심히 안타까울 것입니다.

3. 맺는말

예수님은 성령을 받았기에 우리에게 오실 수 있습니다. 우리도 과정을 거쳐서 성령을
받으면 예수님이 했던 일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이 했던 일이 무엇입니까?
포로된 자, 눈먼자, 눌린 자, 인생에 있어서 행복한 가정이 있어도 만족이 없고, 돈이 있어도 만족이 없고, 건강해도 만족이 없는 그런 인생에게 와서, 그들을 자유케 하셨습니다.
이런 예수를 끝까지 잘 따라 나선다면 우리 인생에서 자유함을 맞게 됩니다. 희년을 맞게 됩니다. 해방을 맞게 됩니다.

예수 제대로 믿어 영혼의 자유함을 얻고, 희년을 맞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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