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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 23: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7-07-09 09:40 조회 |5,129회

본문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 23:1-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2/ 그가 나를 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 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3/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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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믿음은 길 떠남]
우리는 흔히 예수 믿는 것을 지금 이 상태에서 교회에도 나오고, 전도도 나가고, 봉사도 하고, 구제도 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믿는다는 것은 우리가 이 자리에서 이 모습 이대로 그런 식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그에 대한 댓가로 좋은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떠나서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로 간다는 것은 생명 안에서 자라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도중에 머물러 있으면서 열심히 교회생활을 한다고 해도 그것은 죽음일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가장 큰 특징은 쉼 없이 자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꽃이 꽃을 피우는 과정에서 도중에 멈추어 선다면 그것이 꽃의 죽음이 아니고 또 무엇이겠습니까?
저는 여러분들을 볼 때에 예배에 다 참석하고 열심을 보인다 할지라도, 영적으로 그 자리에 머물고 있는 분들을 보면 심히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흔들어 깨웁니다. 이런 영적인 모습을 보지 못하는 분들은 아니 열심히 예수 믿는데 왜 뭐라고 하시는 것일까? 하고 의아해 합니다. 그러나 일어나서 계속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것이 사는 길입니다. 머무름은 곧 죽음입니다.

[주님을 따라 나서라]
하나님의 나라는 평생 겪어 보지 못한 새로운 보지 못한 새로운 세상입니다. 그 길을 가는데 낯설고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익숙한 이 세상이 좋지만 그러나 예수 믿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만족을 느끼지 못해서 순례를 시작한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 길은 우리 혼자 가는 길이 아닙니다. 아니 혼자는 그 길을 갈 수도 없고 갔다고 해도 다 다시 돌아와서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그런 길입니다. 오직 말씀이신 주님의 인도함에 따라 가야하고, 주님이 함께 그 길을 인도하십니다. 그러니 주님을 제대로 만나면 그 분의 인도함을 받을 수 있기에 그 길은 어려운 길이 아닙니다.

[배경과 개요]
지난 금요일에 시편 23편 말씀의 전반부 1-3절까지를 살펴 보았습니다. 1절에서 여호와는 나의 목자라고 다윗은 고백을 하는데 여기서 여호와는 예수님을 상징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무난한 인생 때우게 하기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를 인도하여 이 세상을 떠나 하나님의 나라로 이끄십니다. 따라서 목자가 양을 인도하는 구도인 시편 23편은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인도하시는 주님의 손길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흔히 알고 있는 대로 우리가 이 세상에 머무는 상태에서 평안한 삶을 주시고 또 고난과 역경의 골짜기를 지날 때마다 건져 주신다는 것보다 더 깊은 뜻을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의 인도함을 받아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과정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시 23:1-3]
지난 시간의 내용을 간단히 생각해 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은 주님을 많은 기회와 긴 시간 동안 동행을 했고 그 주님에 대해서 믿음을 체득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 주님을 따라 온 그의 삶이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는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 우리들은 주님의 말씀을 제대로 좇지 않습니다. 주저 주저하고 힘들여 한걸음씩 갑니다. 혹시 주님이 나의 좋은 것을 내놓으라고 할까봐 걱정해서입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주님이 나의 목자고 내가 그분을 따랐더니 부족함이 없다는 고백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을 좀 더 깊이 체험해야 다윗의 고백이 나올 것입니다.
다윗은 주님을 제대로 체험하고 그래서 그 만족스러운 주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신다"

푸른 초장은 말씀의 양식을 뜻하고 쉴만한 물가는 말씀의 체험부분인 음료에 속합니다.
[요 6: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즉 주님은 우리에게 생명의 양식인 말씀을 공급하시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다윗이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데 필요한 율법이 아니라, 우리를 이 세상으로부터 떠나게 하고 하나님의 나라로 가게 하는 복음을 말합니다. 요즈음 말씀이 넘쳐나지만 복음의 말씀은 흔하지 않습니다. 율법은 속성상, 우리를 푸른 초장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지 않고, 불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로 인도합니다. 그러니까 예수 믿는 것이 그렇게 힘들고 부담이 되는 것입니다.

"내 영혼을 소생케 하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다윗은 주님의 말씀을 듣고 체험하게 되니 자신의 영혼이 살아나는 역사가 있음을 고백하고 또한 주님이 자신이 구세주라는 이름대로(여호와라는 이름은 하나님은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자신을 의의 길(구원의 길 = 하나님의 나라의 길)로 인도하신다는 고백입니다.
우리도 참 말씀을 들으면 다윗과 같은 고백이 나오게 됩니다. 말씀을 제대로 들으면 영혼이 새롭게 살아나는 역사가 일어납니다. 영혼이 소생케 된다는 것은 보지 못하는 하나님과 영적 세상에 대해서 보게 되어서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또한 말씀을 듣게 되면 자신이 하나님의 나라로 향해서 인도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말씀을 들으면 당연히 나타나는 현상입니다만, 우리는 그렇지 못합니다. 매번 교회에 나가서 말씀을 들어도 그때만 반짝하지 영혼이 회복되고 소성케 됨과 의의 길로 인도됨을 체험하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듣는 말씀이 율법이기 때문에, 즉 성경말씀을 윤리도덕 차원으로 가르치고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는 다윗의 고백이 우리 입에서 나올 수가 없습니다.
이어서 시편 본문 말씀을 계속 살펴 보겠습니다.

2. 본론
2.1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 (시 23:4)
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다윗은 하나님의 나라로 가는 길에 있어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해로움을 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주님이 함께 하시고 주의 능력이 자신을 위로하기 때문입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우리도 주님의 말씀을 듣고 체험하게 되면 영혼이 소생케 되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서 계속 자라나게 됩니다. 이런 과정에서 필연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만나게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예수를 만나 그 분을 온전히 따라 나서기 이전에 우리에게 있는 고난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나라로 이끌린 삶을 살게 될 때 지나게 되는 사망의 골짜기입니다.
예를 들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인도 아래 애굽을 떠나서 새로운 세상인 광야로 나아갑니다. 이들은 천신만고 끝에 애굽을 나와 광야로 들어가기 전에 홍해바다를 만나게 됩니다. 뒤에서는 애굽의 군대들이 추격을 하고 앞에는 홍해 바다가 가로 막고 있어 이들은 절대절명의 위기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런 상황이 바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입니다. 그리고 이 사망의 골짜기는 애굽에서 그냥 힘든 노역을 하면서 종노릇하고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는 지날 필요가 없는 골짜기입니다. 오직 새로운 세상 가나안을 갈망하는 사람들이 모세의 인도 아래 따라 나설 때 겪게 되는 골짜기입니다.
그러나, 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하나님께서 모세의 지팡이의 능력을 통해서 홍해바다를 가르심으로 일거에 해결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안위를 받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어느 성도]
어느 성도님은 교회에 나와서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나라를 향해 자라나고 있는데 불신자 남편이 말씀을 듣는 것을 시기하여 교회에 나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말씀을 들으려 가려면 이혼하고 가라고 합니다. 부모와 자식 그리고 자신의 육신의 생계마저 걱정해야 하는 진정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분은 자신이 정말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 세상에서 출애굽하여 새로운 세상에서 하루라도 살기를 원한다는 마음으로 다른 것은 다 양보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양보할 수 없다고 심지를 굳게 했습니다.
그랬더니 주님은 남편의 마음을 바꾸어 주어서 그 골짜기를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주님의 살아 계심을 체험하며 안위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로 갈 때에 우리 혼자 가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이 동행하여 우리를 보호하고 무사히 건너게 해 주십니다. 주님은 우리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도 주님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통과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님께 보이는 믿음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살아계신다는 체험이 부족한 사람들은 여기서 다 도망갑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좁은 문인 이유는 이런 연유입니다.

[연합하여 죽음]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난다는 것은 우리가 예수와 연합하여 이 세상 것에 대해서 죽는 과정입니다. 언젠가 말씀 드렸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죽어야 가는 곳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죽을 수 있을까요? 혼자 죽으면 자살하는 것이고 다시 오지 못합니다. 우리는 산채로 죽어야 하는데 그 유일한 길이 바로 예수와 연합하여 이 세상을 떠나는 것입니다.
[롬6:4-5]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실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럼 그 뒤에는 무엇이 올까요?
자신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다.

2.2 내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심과 기름 바름 (시 23:5)
5/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원수란 누구인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면 우리는 원수에게서 승리를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원수는 누구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로 내 안에 있는 옛사람입니다. 이 옛사람은 세상에 늘어 붙어서 세상 것으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우리 자신의 옛생명입니다. 결국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가지 못하도록 붙잡고 늘어지는 '내 안에 있는 또 다른 나'입니다. 이 원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들을 지날 때 죽게 됩니다. 이렇게 통과하게 되면 나와 주님과 함께 식사를 하는 상이 원수의 목전에서 마련되게 됩니다. 원수의 목전이란 표현은 다윗의 외부에 있는 존재가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옛사람이기 때문에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목자와 양, 주인과 손님]
상을 베푸신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함께 하나가 되었다는 뜻입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에서..." 다윗은 주님과 우리를 목자와 양으로 비유를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양은 죽었다 깨나도 양이지 목자가 될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목회자도 인도자도 양 중에서 어미 양정도가 되는 것이지 목자는 될 수가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렇지 않습니다. 양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면 목자로 거듭나게 됩니다. 지금 여기서도 4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까지는 목자와 양과의 관계로 비유되고 있지만, 5절에서는 주인과 손님의 관계로 비유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양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목자로 거듭납니다.
요한복음 21장에서 주님은 베드로에게 그를 보내면서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면서 목자의 권한을 위임하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양이 말씀을 먹고 죽었다가 깨나면 사람으로 거듭나게 됩니다.

[기름을 바름과 잔이 넘침]
주님과 함께 죽고 부활하면 성령을 받게 됩니다. 기름은 성령을 뜻합니다. 구약에서 기름부음의 대상은 왕이나, 제사장, 선지자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음으로써 영적 왕, 제사장,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잔은 다윗의 자신을 말합니다. 그 다윗의 존재의 잔에 성령이 임함으로 그의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차고 넘치는 것의 표현입니다. 인생에서 참 진리와 만족을 찾은 것입니다.
일전에 전도지에 이런 글을 썼던 기억이 있습니다. 커피잔은 커피를 담을 때 가장 행복합니다. 왜냐하면 애초에 그렇게 만들어 졌기 때문입니다. 돈이 좋고 금이 좋다고 해서 그 커피잔에 돈과 금괴를 담는다면 제대로 담기지도 않을 뿐더러 그릇이 깨지는 불상사가 생기게 됩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인생은 우리 안에 하나님을 담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여기서 돈과 금괴 명예를 담아도 만족이 없고 항상 잔이 빈 것 같은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허무하고 허전합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하나님이 담길 때 비로소 우리 인생의 잔은 넘치게 될 것입니다.

2.3 선하심과 인자하심 (시 23:6)
6/ 나의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정녕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말씀을 듣고 길을 떠나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서 주님과 한 상에서 먹고 기름 부음을 받게 되면 거듭난 자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님이 우리 안에 임해서 함께 거하게 되고 이것이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영광된 모습입니다. 다윗은 이 내용을 말하고 있습니다.

[선하심과 인자하심]
우리가 평생에 선하고 인자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습니까? 그런데 안됩니까? 이제는 그 일이 이루어졌습니다. 선함과 인자함(은혜, 사랑)이 항상 우리를 따를 것입니다. 이것은 선함과 사랑의 근본이신 하나님의 성령으로 마음 속에 임했기 때문에, 우리에게서도 이것이 평생에 흘러 넘치게 되는 것입니다. 노력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냥 흘러 나오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 육신에 말씀이신 성령이 임하게 되면 그 말씀의 속성인 은혜와 진리가 흘러 나오는 것과 같습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의 경우이지만 우리도 이런 예수를 받게 되면 평생 은혜와 진리, 선하고 인자함이 우리를 따르게 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런 사람이 되고자 얼마나 많고 힘든 노력을 해 왔습니까? 국민윤리도 배우고, 소양교육도 받고, 세미나도 참석하고, 면벽 생활도 해 보고, 예수도 믿어보고 (율법적인 예수를 말합니다), 해 볼 것은 다 해보았습니다. 그런데 아무 것도 이루어지는 것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말씀을 만나고 그 말씀과 동행하면 이런 영광된 일이 더 이상 꿈이 아닌 현실로 다가 오게 됩니다.

[여호와의 집]
여호와의 집은 하나님의 집이고 하나님이 거주하시는 곳입니다. 그곳이 어디일까요?
성전일까요? 교회일까요? 물론 그곳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무소부재하시니까.
그러나 진정 하나님이 거하시고 하는 특정한 장소가 있으니 그곳은 손으로 지은 곳이 아니라고 하십니다.
[행 7:48] 그러나 지극히 높으신 이는 손으로 지은 곳에 계시지 아니하시나니 선지자의 말한 바
손으로 지은 곳이 아니라는 그 곳은 바로 우리 마음 속입니다. 우리 마음 속의 성전에 계십니다. 그리고 이 마음 속의 성전은 하나님이 예수를 통해서 지으신 성전입니다.
다윗이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한다는 것은 다윗에게 하나님의 성령이 임해서 다윗 자신이 하나님의 집이 된 것입니다. 이것이 다윗과 하나님이 함께 하는 모습이고, 임마누엘(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심)이 성취된 모습입니다. 성경 전체가 이 임마누엘을 말할진대 다윗에게는 이때 성경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것은 이룰 수없는 꿈이 아닙니다. 우리도 다윗이 될 수 있습니다.
우리도 이러한 임마누엘의 영광으로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3. 맺는 말

정리를 합니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 자리에서 열심을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로 길을 떠나는 것입니다. 길을 떠날 수 있으려면 영혼을 소생시키는 복음의 말씀을 듣고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나가게 됩니다. 이때 주님을 믿고 죽으면 죽으리라는 마음으로 이 골짜기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우리에게 상을 베푸시고, 머리에 성령의 기름을 바르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 도달한 것입니다. 그리고 그때 이후로 우리에게는 선함과 인자가 흘러 넘치고,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있게 될 것입니다.
이 영광이 여러분에게 임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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