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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마 5:21-24]

페이지 정보

작성자 | 작성일 |07-07-24 21:54 조회 |4,122회

본문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마5:21-24]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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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가장 소중한 것]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것이 무엇일까요? 재산, 명예, 자식? 이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의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한번 가면 오지 않고, 인간이 다시 만들 수 있는 것이기에 온 세상을 다 주어도 한 생명과 바꿀 수 없다고들 합니다. 지금 분당의 어느 교회 청년부원들 20여명이 아프칸에 억류되어 있고, 탈레반이 그들이 살해하겠다고 위협을 하여 온 국민이 마음을 조리며 안타까워하고 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생명이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것이 우리의 생명이라는데 이의를 달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도 세상 것을 다 얻고도 목숨을 잃으면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고 하십니다. 따라서 성경에서 살인하지 말라는 이런 우리의 기존 생명 존중 의식에 딱 맞는 말씀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있는 것 중에 영원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영광과 권세도 모두 사라지게 되어 있고 우리가 그렇게 이 세상에서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이 육신의 생명마저도 각자 때가 되면 사라져 버리게 되어 있습니다. 육의 생명이 소중하기는 한데 그 나름대로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과연 그 한계를 가지고 있는 생명을 위해서 우리 인생을 다 투자해야 할까요?

[그림자와 실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보이는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상의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실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모형인 이 세상의 일을 통해서 실체의 세상을 생각하고 그것을 소망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보이는 이 세상을 그런 의미에서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고후 4:18] 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바울이 말하는 보이는 세상은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고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말합니다. 보이는 이 세상의 일들을 통해서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이라는 것은 보이지 않는 실체의 세상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입니다. 이것은 '영원한 생명(영생)'이라고 부릅니다. 이렇게 본다면 모형의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영생이 중요하고, 보이지 않는 세상에서의 은사나, 영적 능력 등보다 더 주 중요한 것이 영생입니다. 즉 보이는 세상(그림자)과 보이지 않는 세상(실체)의 세상을 통 털어 우리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이고 진리의 말씀인 성경은 무엇을 기록한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영원한 생명'에 관한 기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개요와 방향]
여기서 예수님은 십계명의 제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시작하십니다. 옛사람에게 모세가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했는데 나는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또한 예물을 드리려고 할 때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거든 먼저 화목하고 와서 예물을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의문사항]
우선 모세가 한 말과 예수님이 한 말이 그 내용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모세의 말을 강화시킨 것이 예수의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즉 모세는 살인하지 말라는 말을 했지만 예수님은 형제에게 노하는 자도 살인죄에 포함된다는 뜻으로 말씀하셨다는 것이나, 모세는 간음하지 말라고 했는데 예수님은 여자보고 음욕을 품으면 이미 간음했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 등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산상수훈은 우리가 행할 수 없는 하늘의 계명이라고까지 말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이 말씀을 이렇게 이해한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식의 지옥불을 피할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아무런 가책이나 회개 없이 또는 대책이 없이 예수를 믿고 있는 것이 용감하게 생각될 뿐입니다.
예수님은 모세가 말한 살인치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지 한번 살펴 보겠습니다.

2. 본론

2.1 살인치 말라 (마 5:21)
21/ 옛 사람에게 말한 바 살인치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옛사람]
옛사람이란 우선 시내산에서 모세로부터 율법을 받던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옛사람은 나에게 있어서 예수를 만나지 못했던 시절, 즉 율법 아래 있는 '나'를 말합니다. 나는 이전에 옛사람이었을 때 살인하지 말라를 이렇게 들었습니다. 즉, 이웃의 육신의 생명을 끊지 말라는 것입니다. 당연한 말씀입니다. 앞서 말씀드린 대로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생명인데 이 생명을 짓밟고 끊어 버리는 자들은 정말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즈음에는 동물의 생명도 중요하게 생각하여 보호하려고 노력하는 단체들도 있는 것을 보면 사람의 생명은 더더욱 보호되어야 합니다. 이것이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옛사람이 읽어내는 방식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맞는 이해입니다.

[살인의 실체적 의미]
그러나 조금 더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의 생명은 이렇게든 저렇게든 종국적으로 사라질 운명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보이는 이 세상에 관한 내용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에 관한 말씀입니다. 따라서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도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에 관한 내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의 실체적 의미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생명을 끊지 말라는 뜻입니다.
그럼 어떤 것이 영의 생명을 끊고 영적 살인을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의 생명을 살릴 말씀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그 말씀을 제대로 전하지 못하는 자들이 영적 생명을 끊고 살인하는 자들입니다.

[요 8:44]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을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예수님은 여기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보고 살인자 아비 마귀에게서 났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진 자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 말씀으로 영적으로 죽은 백성들을 살리지 않고(못하고), 구제와 봉사와 금식과 선교 등의 일을 시키기만 한다면 결국 그들을 죽이는 것입니다. 하기야 이미 영적으로 죽은 자를 죽이는 것이지만, 그러나 그들을 살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들을 살리지 않기(못하기) 때문에 살인하는 것입니다.

[출 23:19] 너의 토지에서 처음 익은 열매의 첫것을 가져다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전에 드릴지니라 너는 염소 새끼를 그 어미의 젖으로 삶지 말지니라

후반부 말씀에서 염소새끼는 어미의 젖을 먹고 살아야 합니다. 상징 면에 있어서 염소새끼는 신자들을 말하고 어미 젖은 말씀을 뜻합니다. 말씀인 젖을 새끼 염소들에게 먹여야 하는데 그 말씀을 가지고 신자들을 생명을 주는 것이 없이 일시키고 봉사하게만 하는 것이 젖으로 신자들을 삶는 것입니다. 결국 신자를 죽이는 것이고 이것이 살인입니다. 물론 모르니까 그렇게 하는 것임은 두 말할 것도 없습니다.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문제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옛사람의 눈으로 읽으면 살인하지 말라는 뜻이고,
예수님의 눈으로 읽으면 영적 살인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근본적으로 모세가 한 말의 뜻은 예수님이 지금 말씀하시는 영적 살인을 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예수님이 하시는 말씀이나 모세가 한 말이나 그 본질은 하나입니다. 다른 것도 아니고 또한 예수님이 모세의 말을 강화(强化)한 것도 아닙니다.

2.2 심판과 지옥불 (마5:22)
22/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히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이제 예수님은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에서 옛사람이 읽어내는 의미가 아니라, 위에 말씀드린 참 뜻(양적 살인)을 가지고 다음 말씀을 하십니다.

[옛사람의 시각]
계속 옛사람의 시각으로 보게 되면 여러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모세는 살인하면 심판을 받는다고 했는데 예수님은 형제에게 분을 내거나 라가라고 하면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고 합니다. 살인한 것이나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나 동일하게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들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형법으로 보면 살인하는 자는 무기징역이나 사형이고, 형제에게 성질 내는 자는 증거불충분이나, 기껏 명예훼손으로 벌금 형일텐데, 예수님은 이 모든 것이 동일하게 심판을 받는다고 말씀합니다. 이해하기 힘든 사안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자]
예수님은 모세가 한 말과 같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노하고, 라가라고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한다면 이것이 곧 살인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형제에게 노하고 라가라고 하고 미련한 놈이라고 하다는 것은 형제를 판단의 눈으로 본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자신 안에 들보가 있다는 뜻이고 그래서 형제 눈에서 티끌을 찾아 내는 것입니다. 자신 안에 들보가 있다는 것은 자신이 아직 예수를 만나서 온전한 죄사함을 받지 못한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말씀을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 말씀에 의해서 형제를 죽일 수 밖에 없는 처지입니다. 이들이 곧 위에서 살펴 본대로 영적 살인을 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과 같은 계열의 사람들입니다.

[심판, 공회에 잡힘, 지옥 불]
이런 사람들은 심판에 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은 우리가 살아 있을 때 받는 것이 복됩니다. 아무튼 지금 이렇게 형제를 판단하는 눈을 가진 사람들은 이제 예수님의 말씀의 불에 의해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야 말씀의 불에 의해서 들보를 제거하고 새롭게 거듭나야 합니다. 이것이 심판을 받고 지옥불에 처해지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형제들에게 노하고 판단하는 일을 하지 않게 됩니다. 참다운 복음을 알게 되어 형제에게 생명을 줄 수 있고 영혼의 살인을 그만둘 수 있습니다.

[지옥불]
지옥불이란 우리 안에 있는 바리새인근성, 하나님을 대적하는 근성을 태우는 불을 상징합니다.
[마 3:12]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막 9:43]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케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살아 있을 때]
성경에 나오는 천국이나 지옥이나, 음부나 낙원이나, 죽음이나 삶이나, 무덤이나 부활이나 모두 우리가 살아 있을 때 겪어야 할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기 나오는 심판, 공회에서의 재판, 지옥불 등도 살아 있을 때 통과해야 사후(死後)에 그것들로 인한 해(害)가 없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죽었을 때 만나게 되는 이런 심판의 도구들 가지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지금 우리에게 지나가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사후 심판으로부터 자유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형제를 판단하게 되면 자신이 아직 사람들을 살릴 수 없는 자입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말씀의 불에 의해서 연단을 받아야 비로소 사람을 살릴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당연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형제를 판단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이고 그는 아직 거듭나지 못했으니까 예수의 말씀에 의해서 심판을 받고 새 사람으로 거듭나야 하는 것입니다.
실체적인 뜻에 있어서 살인하는 자나 형제에게 노하는 자는 공이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자, 죄 사함을 받지 못한 자로서 예수에 의한 심판을 지나야 산 자가 되는 것입니다.

2.3 예물과 화목 (마5:23-24)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우리가 헌금을 주님께 드리려다가 형제와 싸운 일이 있으면 먼저 가서 화해하고 그 뒤에 예물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좀 더 깊이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물]
우리가 예물을 드리는 것과 그 행동이 지시하는 실체를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예물을 드리는 것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의 그림자요 모형입니다. 따라서 나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참 예물입니다. 구약시대의 모든 제사, 우리가 예수 믿을 때 드렸던 모든 예물들은 바로 나라는 존재를 예물로 드릴 것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를 드릴 수 있느냐? 내가 열심히 헌신하고, 주님을 위해서 아프카니스탄도 불사하고 가겠다는 것이 자신을 예물로 드리는 것 아닌가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의 어떤 특별한 행동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라, 오직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거듭난 것을 예물로 받으십니다. 이것이 자신을 산제사로 하나님게 드리는 것입니다.
[롬 12:1]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어떻게 나 자신을 예물로 드릴 수 있나?]
자기 자신을 하나님 앞에 예물로 드릴 수 있으려면,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를 만나서 그 예수에 의해서 자신 안에 잇는 세상적 속성, 바리새인 근성, 집착 등을 꺼지지 않는 말씀의 불에 태워 버려야 합니다. 그후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하면, 이제 자신을 하나님께 산 제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된 사람이 참된 예물을 하나님께 드리는 자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FaSS(화스-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과정을 거치면 자신을 참 예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형제와 화목이 우선]
그런데 나 자신을 예물로 드리려고 생각을 하니, 형제와 감정이 상해있고 화목하지 못한 것이 생각납니다. 그렇다면 먼저 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어느 분은 자신이 거듭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형제가 자꾸 눈에 거슬리고 판단이 되었습니다만 그래서 그 형제가 나쁜 사람이고 나는 좋은 사람이다라고 생각하고 자신을 하나님께로 나아갔습니다만, 마음은 곤고하고 힘이 들고 기쁨과 희락이 없었습니다. 당연합니다. 먼저 형제와 화목해야 합니다. 그래야 자신을 예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형제와 화목한다는 것은 내가 당신을 판단했으니 "미안하다, 나에게 원한 없지 나도 없다"하며 서로 악수하는 것이 화목이 아닙니다. 형제와 화목한다는 것은 자신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임함으로서 거듭나 형제 눈에 티끌이 보이지 않는 것이 화목하는 것입니다. 형제 눈에 티끌이 보이는 것은 아직 형제와 서로 다투는 상황이고 그런 사람의 영적 위치는 아직 이 세상에 있어 거듭나지 못한 상태입니다. 당연히 하나님께 드릴 예물로는 아직 부족할 뿐입니다.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운 다음에 온전해지면 자신을 예물로 드릴 수 있습니다.

[형제와 화목과 자신을 예물로 드리는 것은 동격]
형제와 화목하기 위해서는 결국, 예수에 의해서 내 안에 있는 세상적인 요소들이 다 제거된 다음에야 가능합니다. 형제와 화목하는 것, 자신을 예물로 드리는 것은 모두 같은 것입니다. 자신이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은 결과로 주어지는 모습입니다.

3. 맺는말

살인이란 자신이 거듭나지 못해서 남의 영혼을 살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자신의 눈에 들보가 있기 때문에 형제를 라가, 미련한 놈이라고 부르고 노하게 됩니다.
이것을 해결할 수 있는 한가지 길은 예수를 만나서 자신이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살인하지 않게 되고, 형제를 어리석은 자라고 하지 않게 되고, 형제로부터 원망들을 일도 없이 화목한 삶을 살게 됩니다.

이렇게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아, 이런 사람들로 거듭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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