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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2-요일1:1-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1-29 21:56 조회 |4,103회

본문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요일 1:1-4] 1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2 이 생명이 나타내신 바 된지라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았고 증거하여 너희에게 전하노니 이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내신 바 된 자니라 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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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 의미는 예수 믿는 자들을 말합니다. 성경의 이스라엘 백성은 처음에 이 지구 상에 없었던 민족입니다. 그런데 노아의 홍수 이후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있던 아브라함을 불러서 가나안으로 인도하시고 그 뒤 이삭을 거쳐, 야곱의 12 아들 및 그 가족 70인을 애굽에서 생육하고 번성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룹니다. 이후 이들은 가나안 지역에 정착하게 되었습니다. 이들은 한 민족으로서 같은 사상과 언어와 문화를 공유하는 하나님이 이끄시는 민족입니다.

  이것은 영적 이스라엘인인 예수 믿는 우리들의 모형이기도 합니다. 이 땅에는 예수의 생명을 가진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성육신하여 이 세상에 온 후, 제자들에게 자신의 생명을 나누어 줍니다. 제자들은 그 예수의 생명을 자신들의 제자들, 교인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이렇게 해서 이 땅에는 없었던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참다운 의미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이고, 이들은 하늘로부터 난 민족입니다. 땅에서의 교훈, 훈련, 교육으로 만들어진 종류가 아닙니다. 이들은 서로 언어가 통합니다. 같은 생각과 같은 목적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삽니다. 이들을 하나로 묶는 것의 이 세상의 민족적 감정이나, 동질적 요소들이 아닙니다. 오직 이들을 하나로 만드는 것은 생명의 힘입니다. 이들은 집합적으로는 한 몸이고, 개별적으로는 몸의 각 지체들입니다.

  요한이 태초에 있던 생명의 말씀이 자신 안에 와서 그 생명을 보고 만진 사람이고, 그것이 영원한 생명이라고 말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생명을 증거하여 우리에게 전한다고 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그 이유는 교인들과 사귐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그 사귐은 곧 하나님과 예수 안에 있는 것이며, 이 글을 쓰는 것은 요한 자신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제 이 말씀을 통해서 성경에서 말하는 사귐의 의미를 살펴보고, 요한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데 왜 그것이 그들의 기쁨을 충만하게 하는 요소인지에 관해서 보겠습니다.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요일 1:3]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함이니 우리의 사귐은 아버지와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 보고 들을 바를 전하는 것

  우선 요한은 자신이 보고 들은 바를 전한다고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요한이 예수를 지근(至近)거리에서 따라 다녔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를 전하려면 예수에 관한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하고, 그래서 좋은 신학교에 신학박사 신학교수 등의 학위가 있으면 더욱 더 예수에 관해서 좋은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적 요청 때문에 목회자들은 어떻게 해서라도 해외 유명신학교에 가서 학위를 받으려고 유명한 목사님과 사진도 찍고 그것을 액자에 담아 보이기를 원합니다. 이전에는 큰 교회의 목회자들이 그런 학력이 많았는데, 너도 나도 열심히 신학을 해서 그런지 요즈음 집으로 오는 교회 개척 전단지를 보면 외국에서 신학 하지 않은 분을 찾기 힘들 정도입니다.
 
  그런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만, 핵심이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전하는 것은 곧 생명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에 외국의 신학박사 석사 학위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중시하는 이유는 아직도 예수가 생명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단순히 예수를 통해서 들은 진리에 관한 지식을 전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이 전하는 것은 이 세상에 없는, 즉 이 세상에서는 구할 수 없는 하늘로부터 생명을 전하는 것입니다. 생명을 전한다는 말은 곧 예수의 생명의 말씀으로 그것을 듣는 자들이 잉태되고 해산하여 예수의 생명을 가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이것이 영적으로 교인들을 낳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생명을 전하는 것이고 어떤 것이 지식을 전하는 것일까요? 둘 다 말하고 전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인데...

  그렇습니다. 요한도 예수의 생명을 전하면서 예수를 이야기하고, 예수를 가르치는 스승들도 예수를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생명의 말씀을 듣게 되면 실제로 자신의 영혼이 소생케 되고, 몰랐던 영적 세상과 하나님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됩니다. 반면 지식의 말씀은 영혼은 여전히 곤고한 채 이것도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분주한 삶을 계속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도 그렇다는 말이지 이 말로도 구분할 수 없습니다. 생명의 말씀을 들어 본 사람 이외에는 지식의 말씀을 분별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유일한 방법은 어떻게 해서든지 생명의 말씀을 자신이 들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분별을 못하는데 어떻게 생명의 말씀을 접할 수 있을까요? 간절한 마음으로 생명을 사모하면 그 말씀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요한이 전했던 것은 바로 이런 예수의 생명입니다. 말씀 안에 담겨 있는 생명입니다.
 
▶ 너희로 우리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요한이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이유는 듣는 너희들과 우리가 사귐이 있게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서론적인 말씀에서 이스라엘 후손이 한 민족이 되는 과정을 보았고, 예수 믿는 자들이 영적 한 민족, 즉 한 몸이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한 민족이 된다는 것은 어떻습니까? 서로 언어가 같고 생각하는 방식도 같고 같은 것을 느끼고 아주 친밀함을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언어가 통하지 않고 풍속이 다른 민족 중에 섞여 살다가 한국사람을 만나면 반갑고 서로 이해가 가능하고 말이 통하는 것도 같은 민족이기 때문입니다. 이들에게는 서로 사귐이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끼리 영적으로 한 민족 되는 것도 이와 같습니다.
예수를 따라 나섰던 제자들과 예수님의 대화가 서로 통하지 않았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그런데 이들이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고 십자가 사건 이후 오순절에 이르러서 비로소 예수와 영적으로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로 거듭났고, 그들은 영적인 이스라엘 백성인 것입니다. 이후로 이들은 예수님과의 갈등이 없고 오히려 예수와 한 마음이 되어서 예수의 일을 했습니다.

  예를 들어서, 사도 바울의 사울 시절에 그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언어가 통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예수를 만나고 변화가 되자, 베드로는 그 사도 바울을 인정하고 그와 한 언어를 쓰고 한 마음이 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벧후3:15]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우리 사랑하는 형제 바울도 그 받은 지혜대로 너희에게 이같이 썼고

  우리도 요한이 전하는 생명을 받은 자들이 되면 같은 영적 민족으로 태어나게 되는 것이고 서로 언어가 통하고 마음이 통하는 한 민족이 됩니다.
이것이 요한이 지금 말하고 있는 사귐입니다.
  요한은 교인들과 사귀고 싶다고 하고 그 사귐의 정의는 아버지와 아들 예수와 함께 하는 것이고 합니다. 요한이 원하는 사귐은 회식하고, 엠티에, 등반대회를 통해서 만드는 세상적인 의미의 사귐이 아닙니다.
     우선 여기서 사귐이라는 이 단어는 헬라어로 "코이노니아"이며, 영어로는 Fellowship, Communion 이고, 우리 말로 다른 곳에서는 '교통'이라고 했습니다.

[고후13: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너희 무리와 함께 있을지어다

  교통이란 교제이며, 서로 벽을 허물고 같은 말을 쓰고 한 마음 한 뜻이 된다는 뜻이겠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가지고 있는 예수의 생명의 세상으로 들어가 함께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면 영적인 세상과 교통이 열리고 그곳의 모든 것과 사귐이 있게 됩니다. 이 사귐은 예수의 생명을 우리가 받게 되었을 때, 예수의 생명을 가지고 있는 형제들 그리고 예수님 그리고 하나님과의 사귐이 동시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분들이 "하나"로 연결되며, 이런 연합은 곧 "함 몸"의 연합입니다. 요한은 이것을 사귐이라고 말합니다. 

  그럼 어떻게 이 사귐의 세상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그것은 교인들도 요한이 전하는 말씀으로 새로운 생명을 받아서 요한이 속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이 유일한 길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그 사귐은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그 날"에 이루어집니다.
 
[요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7: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여기서 그날이란 언제를 말하는 것일까요? 그날은 마지막 날을 말합니다. 그 마지막 날이란 우리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고 그 안에 성령이 임하는 때입니다. 이때가 되면 우리 안에 내주하는 성령으로 인하여 우리는 하나님 안에 있고, 예수 안에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되면 하나님과 사귐이 있고 예수님과 사귐이 있고, 동시에 요한 일행과도 사귐이 있게 됩니다. 이들 모두가 결국 한 몸으로 연결되어 서로 한 마음과 한 뜻으로 사귐을 나누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요한은 자신의 생명을 교인들에게 전하고, 그 생명이 교인들의 마음에 자리를 잡게 되면 성령이 그들 안에 임하게 된 것인데, 그때 하나님과 예수 안에서 요한과 교인들이 서로 하나가 되고, 서로 사귀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생명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은 그 말씀을 받는 자를 변화시켜 생명을 받게 함으로써 사귀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일은 말씀을 받는 자들이 새 생명으로 거듭나게 되면 이루어집니다. 이렇게 되면 듣는 자들은 이제 하나님 안에 있고, 예수 안에 있게 됩니다. 이때 이들은 예수의 생명을 가진 하늘 백성으로 변하게 되는 것입니다. 새로운 영적 하늘 나라의 민족이 되는 것입니다.
 
기쁨을 충만케 하기 위함

  [요일 1:4] 우리가 이것을 씀은 우리의 기쁨이 충만케 하려 함이로라

  요한은 자기가 받은 생명을 남들에게 전하는데 그 이유는 남들과 사귐을 갖고자 하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자기가 받은 생명을 써서 전하는데 그 이유는 그로 인하여 자신들의 기쁨을 충만케 하려 함이라고 합니다.
  이 말씀도 그냥 쉽게 생각하기는 요한이 이 글을 쓰는데 기쁜 마음으로 쓰는구나 라고 쉽게 해석하고 나면 그만이지만, 이것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말씀입니다.

  여기서 충만케 한다는 단어는 '플레로오'라는 헬라어의 번역으로 '채우다', '완성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글을 써서 자신들이 받은 생명을 전하지 않으면, 기쁘기는 기쁜데 그 기쁨이 아직 완성되지 않고, 꽉 채워지지 않은 기쁨이라는 의미를 읽을 수 있습니다.

  무슨 말일까요?
  요한은 예수의 생명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예수의 생명을 받은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생명을 이제 남들에게 전파하고 옮겨 줌으로서, 자신이 받은 생명의 기쁨이 완성이 되고 온전케 됨을 말합니다.
  예수의 생명을 받은 자들은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사랑은 이제 사랑할 대상을 찾아 나서게 됩니다. 그래서 상대를 찾아서 사랑하게 될 때, 즉 말씀을 씨를 줄 때, 비로소 그 사랑의 순환이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로 생명이 낳고 낳고 과정을 통하여 온 세상에 퍼지는 원리입니다.
 
[마 22:37-40] 37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38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39 둘째는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성경 전체는 이것을 말합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예수께 순종하고 따라 나섬으로써 예수의 생명,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이제 그 사랑으로 우리 몸과 같이 사랑하는 이것입니다. 따라서 이웃 사랑은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 즉 예수의 생명이 임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그런 사랑을 가진 사람은 이웃을 사랑하여 그들을 생명의 세상으로 이끌어야 비로소 자신의 사랑이 온전하게 되고, 완성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예수의 생명을 받으면, 그 생명을 남에게 전파하지 않고는 배길 수 없는 그런 열망이 있습니다. 그 생명을 남에게 전하여 그 듣는 자들이 일어날 때 비로소 생명을 얻은 기쁨은 완성이 되고, 온전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생명의 원리에 의해서 하늘에 속한 백성은 생육하고 번성하게 됩니다.

맺는 말

  예수의 생명은 이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서 온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바로 이 생명이 우리의 것이 되게 하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예수의 생명을 가지게 되면 그 생명을 자연적으로 이웃에게 전하게 되고, 그 사람들도 같은 생명을 가지도록 인도합니다. 그로 인하여 이들과도 하나님과 예수 안에서 사귐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이웃들을 그 생명의 세상에 동참시켜 사귐이 있게 함으로, 비로소 먼저 생명을 받은 자들의 기쁨이 충만 해지고 완성이 됩니다.
  이 생명의 순환 사이클에 어서 들어 오시기를 바랍니다.

 요한의 의도

  지금까지 살펴 본 요한일서 1장 1-4절까지에서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것입니다.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던 생명의 말씀을 우리가 가진 바 되었는데, 이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너희도 하나님과 예수 안에서 우리와 사귐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로 인하여 우리의 기쁨을 완성하고자 합니다. "
  이것이 요한일서의 서론격이고 자신이 받은 생명을 남에게도 전하는 이웃사랑의 표현으로 성경 전체의 주제입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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