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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4-요일1:5-10)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2-09 17:04 조회 |5,181회

본문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요일 1:5-10] 5 우리가 저에게서 듣고 너희에게 전하는 소식이 이것이니 곧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6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치 아니함이거니와 7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
 
    지난 시간에 빛에는 어두움이 없다는 말과 방수가 제대로 되면 비가 새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았습니다.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얻게 되면 영원히 그리고 단번에 죄의 문제를 해결 받습니다. 기존 죄악 세상에 그대로 있는 채로 사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 죄악 세상에서 아예 나오게 됨으로 죄 문제를 원천적으로 해결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한국에 살던 사람이 미국으로 이민을 가면 더 이상 한국법에 의해서 죄정함을 받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로마서 8장의 바울의 말대로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건져 내어 생명의 성령의 법의 세상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일서의 이 말씀을 요한의 뜻과는 정반대로,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를 합니다. 온전한 죄사함을 말하는 구절이 그릇된 죄사함을 정당화시키는 근거로 인용되고 있는 것입니다.
  
    살펴 볼 말씀은 8-9절입니다. 내용은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하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진리에 속하지 않은 것이며, 만일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들고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은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빛에는 어두움이 없다", 즉 "죄사함 받으면 죄가 없다"는 전제에서만 읽을 수 있는 말씀입니다. 이 감추었던 만나를 함께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요일 1:8]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단순하게 읽으면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았다 해도, 죄가 있는 것이고 만일 죄 없다고 한다면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우리 안에 있지 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흔히 어떤 사람이 자신은 죄 없다고 한다면 교만하고 잘난 척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전에 홈피에 온 어느 학생도 자신의 교회 목사님은 '나도 목사지만 때때로 죄를 짓고 하나님께 회개한다'고 하셔서 자신은 그 목사님을 굉장히 겸손한 분으로 존경한다고 말 했습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온전히 죄사함을 받은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다고 하는데 그 말을 받기가 힘들다고 말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마음 속으로 온전한 죄사함을 예수가 준다 하면 절대로 인정하지 못합니다.
    "죄 없는 분은 하나님이시고 예수님뿐이신데 사람이 어떻게 죄가 없다고 할 수 있느냐? 참람 하도다."
    뭐 이런 생각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았어도 차차 성화되어 나는 것이지, 죄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깨닫고 나면 아시겠지만, 이런 생각은 자신들이 죄 짓는 것을 죽을 때까지 정당화시키는 것입니다. 결국 사단의 전략에 말려 든 것이고 죄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가서 심판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온전하게 죄사함 받을 수 있도록 예수를 보내주셨습니다. 그 예수를 믿고 죄사함을 받았는데도 여전히 죄가 있다면, 그런가 보다 하고 미련하게 신앙생활 할 일이 아닙니다. 자신이 과연 예수에 의해서 제대로 죄사함을 받았는지 점검해야 할 것입니다.

▶ 죄인으로 인정하기까지의 긴 세월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만일 이 말씀을 예수 믿고 죄사함 받아도 죄가 있을 수 있다는 식으로 읽으면 지금 요한이 말해 온 방향과 전혀 다른 곳으로 나가는 것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은 빛이시라,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함으로 " 죄사함을 받으면 죄가 그 안에 없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 그럼 이 말씀은 어떤 의미일까요? 여기서 죄가 없다고 한다는 것은 예수에 의해 죄사함을 받은 후에 죄가 없다고 하는 경우가 아니라, 죄사함 받기 전에 죄가 없다고 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우리 인생들은 자신이 하나님을 떠난 죄인인줄 모릅니다. 그런 채 긴 세월, 나름대로 자기 옳다함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은 예수를 믿으러 교회에 나와서 교회 생활하는데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기 식으로 예수를 믿고 자기 옳다함으로 예수를 믿습니다. 물론 입술로는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고백을 하고 예수를 믿습니다. 그러나 이런 고백은 삶을 바탕으로 한 존재적 고백이 아니기 때문에 입술의 말과 다를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사이비 죄인이라고 정의한 바가 있습니다. 따라서 이런 사람들은 반복적으로 죄짓고 회개하는 삶을 살 수밖에 없고, 그것이 예수의 죄사함으로 착각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탕자의 체험으로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했을 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로 인하여 예수를 만나서 영원한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따라서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았는데 계속 죄짓고 회개한다는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죄가 없다고 하는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이 참으로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참 예수를 만나서 온전한 죄사함을 받고 죄짓고 회개하는 순환에서 완전히 벗어 났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한다'는 말을 한다는 자체가 이미 다음과 같은 신앙고백입니다.
 
    "나는 우상 예수를 만나서 엉터리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러니까 죄사함을 받아도 여전히 죄를 짓고 또한 회개를 해야 합니다. "
     이들은 자신이 죄인임을 입으로 시인해도, 또는 자신이 죄인임을 부인해도 자신은 존재적으로 죄가 없다고 하는 사람입니다. 아직 참다운 회개이 때가 그들에게 임하기 전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지금 자유교회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우리는 큰 흐름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하나님 없이 살았던 이전 생활에 무의미하고 만족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많은 생각의 편린들은 아직도 옳다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주님의 인도하심에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옳다함을 주장하고 나섰다가 결국은 힘이 들고 만족과 기쁨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주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매 순간의 고백인 것이고 이런 고백은 예수님께 순종하여 우리를 죄사함의 길로 따라 나서게 합니다.
  
    죄 없다 하는 사람들이란 결국 자신이 죄인이지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죄가 없다고 합니다.
    
    이것은 지금 자유교회 말씀을 듣고 있는 우리들도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일단 우리는 큰 흐름에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식했고 하나님 없이 살았던 이전 생활에 무의미하고 만족함을 느끼지 못했기 때문에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 안에 남아 있는 많은 생각의 편린들은 아직도 옳다함을 주장하기 때문에, 주님의 인도하심에 다른 생각, 다른 의견을 가지고 불순종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기 옳다함을 주장하고 나섰다가 결국은 힘이 들고 만족과 기쁨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서야 주님께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이것이 자신이 죄인이라는 매 순간의 고백인 것이고 이런 고백은 예수님께 순종하여 우리를 죄사함의 길로 따라 나서게 합니다.
  
    죄 없다 하는 사람들이란 결국 자신이 죄인이지만, 자신의 모습을 스스로 보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말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죄인인 줄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이들은 죄가 없다고 합니다.
   
  ▶ 스스로 속이고 진리가 우리 속에 없다
 
    자, 이들이 죄 없다 하는 자들인데 이들은 스스로 속인다고 합니다. 자신이 죄인이지만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까 죄인이 아니라는 인식 속에서 살아갑니다. 스스로 속이는 삶인 것입니다. 입술로야 죄인이라고 말할 수도 있지만,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하는 말이니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도둑이 자신이 도둑이 아니라는 인식을 가지고 살게 되면 하는 모든 일이 스스로 속이는 것입니다. 자신이 도둑이라는 사실을 깨달을 때까지 자신을 속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또한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사람은 진리가 그 안에 없습니다. 당연합니다. 진리가 우리 안에 임하려면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의 성령이 우리 안에 임할 것입니다. 그러나 아직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예수를 만나지 못하고, 예수를 만나지 못하니까 진리가 자신에게 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정리하자면, "자신이 참다운 회개를 하여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전에는, 자신의 모든 삶이 스스로 속이는 삶이고, 또한 예수를 만나지 못하기 때문에 진리가 자신 안에 임할 수 없다는 내용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예수를 만나 참된 진리의 삶을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요일 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이 말씀도 외형적인 뜻은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은 자가 다시 죄를 지을 경우, 그 죄를 자백하면 사함을 받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천주교에서는 고해성사를 통해서 자신의 죄를 신부에게 고백하는 형식이 있는 것도 이 말씀으로 인함이고, 기독교에서도 죄를 짓고 회개하면 용서 받는다고 하는 근거가 되는 성경구절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이 말씀을 읽고 나면 빛에도 어두움이 있다는 말이 되고, 완전한 방수를 해도 비가 샌다는 모순된 말을 하는 것입니다.
    참 뜻은 무엇일까요? 이전 7절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기 까지는 자신이 죄인이 아니라고 스스로 속이는 것이고, 진리가 아직 자신에게 임하지 않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제 8절은 7절의 반대되는 경우를 말합니다.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면 죄 사함을 받는다는 내용입니다.
 
    여기서 자백한다는 것은 시인한다는 "호모로게오"라는 헬라어 단어입니다. 참다운 회개를 한 사람을 말합니다. 즉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진정 깨닫게 된 사람을 말합니다.
    자신이 죄가 있다고 하는 자들은 이런 사람들입니다. 인생에서 낙오자가 되고 성경에서 말하는 잃은 양 한 마리나, 탕자의 체험을 가지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자신들의 인생의 막바지에 도달해서 돼지 치는 쥐엄열매를 주는 자가 없어서 "내가 하나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구나 하는 고백을 한 사람들입니다.

[눅15: 17-19] 17 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고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18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19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나를 품꾼의 하나로 보소서 하리라 하고
  
    이런 사람들이 바로 자신이 죄인이라고 고백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자기 옳다함이 없습니다. 그것을 내세우고 그것대로 산 결과가 뭡니까? 돼지 밥으로 사용되는 쥐엄 열매를 먹게 되었고, 그것마저도 얻어 먹지 못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의 말로입니다. 인생에서 완전히 실패한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바로 이런 사람에게 임합니다.
    이런 사람이 죄를 자백한 사람입니다. 빵 한 쪽을 훔친 것을 자백하는 그런 내용이 아니라, 자신의 인생 전체의 삶을 놓고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 죄를 사하고 깨끗게 할 것과 모든 죄
 
    이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께서 죄를 사하시고 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탕자의 체험을 하고 하나님께 진정으로 손을 내민 사람들은, 이제 예수에 이끌린 삶을 온전히 겪을 수 있고, 그래서 십자가를 거쳐 죄사함을 받게 됩니다. 결국 우리가 죄사함을 받게 되지 못하는 이유는 예수님께 온전히 순종할 만큼 지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깨끗하게 되는 것이 죄와 모든 불의라고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예수를 따라 나서서 십자가를 거치면 죄 사함을 받고,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됩니다. 한 두 가지 지은 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죄들과 모든 불의입니다.
     참다운 회개를 하고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게 되면 이런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예수를 꼭 믿어야 할 이유입니다.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요한일서 7절과 8절 말씀을 살펴 보았는데, 요한이 한 이 말과 똑같은 의미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기록이 있습니다. 어디일까요?

[요9:40-41] 40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가로되 우리도 소경인가41 예수께서 가라사대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여기서 소경은 죄인의 상징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이 소경인가 합니다. 그들이 죄인이지만 죄인이라는 인식이 아직 없는 자들입니다. 이전 우리들처럼 우리보고 죄인이니까 회개하라고 하면 우리는 내가 뭘 훔치고 누구를 죽였는가 하고 생각했던 때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소경 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이것은 우리가 탕자의 체험을 통해서 진정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더라면, 예수를 따라 나서 십자가를 거쳐 죄사함 받게 되었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요한일서 1장 9절의 의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우리 죄를 사하고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또한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이 소경(죄인)인데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까 소경인데도 소경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죄인인데도 죄인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직 탕자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죄인인줄 모르는 자들입니다. 그 결과 예수를 따르지 못하고 자기들 식으로 믿으니까 예수에 의한 죄사함 받지 못합니다. 그래서 죄가 그저 있습니다.
    이 말씀은 곧 요한일서 1:8절의 내용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 하면 (소경이 아니고 본다고 하니),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않다 (죄가 그저 있다)."

만일 범죄하지 않았다 하면...
 
  [요일1:10]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이것도 일반적으로 우리가 죄인이 아니라고 하면 큰일 나니까 어서 죄인이라고 인정하라는 말씀으로 들립니다. 그래서 우리는 죄사함 받았는데도 죄 짓고 있다고 해야 겸손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뜻은 8절의 내용과 같습니다. 우리가 아직 탕자의 체험을 하지 못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인식이 없을 때는,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고 말씀이 우리 안에 있지 않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든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우리에게 무슨 큰 능력이 있어서 하나님을 거짓말 하는 자로 만들 수 있을까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는 것은 아직 죄사함을 받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그는 비진리요, 거짓이요, 죄인인 상태에 있습니다. 이런 거짓인 존재의 눈에는 진리인 하나님이 오히려 거짓으로 보입니다. 상대적입니다. 거짓인 사람은 자신이 맞고, 하나님 틀린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를 들어서 헌금을 하면 하나님께서 갑절의 축복을 주십니다. 이것은 하나님 말씀입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은 그런 하나님이라고 하면 믿지 않습니다. 믿지 않는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않다."
    하나님과 하나되려면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체험을 하고 예수를 따라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온전히 예수에 의한 고침이 이루어지면 우리 안에 말씀이 새겨집니다. 성령이 임하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깨달음이 없으면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은 후 주님께 순종하면 말씀이 우리 안에 임합니다.

[렘 31:33]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이것이 말씀의 우리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고, 그 말씀과 우리가 하나되는 것입니다.

맺는 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 안에는 어두움이 전혀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귐이 있고 빛 가운데 행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인생에 지쳐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한 자는 자신이 죄 없다 하는 것입니다. 그런 그는 스스로 속이는 삶을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를 만나는 조건인 죄인이라는 깨우침이 없으니 예수에 의한 진리가 그 안에 임할 수 없습니다.
    반면 온전히 탕자의 체험을 한 사람은 예수께 순종할 수 있고 그 예수로 인하여 죄악 세상에서 완전히 나오게 됩니다.
     만일 우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면, 예수를 만날 수 없기에 진리가 우리 안에 없고, 그래서 진리의 하나님을 오히려 거짓말 하는 자로 보게 됩니다. 또한 그런 자의 마음에는 말씀이 임하지도 않습니다.
 
    죄사함 받았는데도 여전히 죄를 짓는다는 예수는 우상 예수입니다. 이제는 우리도 인생에서 진정한 탕자의 체험을 하고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 예수에 의해서 온전한 죄사함을 얻을 때입니다.
    이 예수를 요한은 전하고 있습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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