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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5-요일2:1-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2-17 16:22 조회 |3,895회

본문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6]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3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4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6 저 안에 거한다 하는 자는 그의 행하시는 대로 자기도 행할지니라 
 
------------
 
  지금까지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우리 손에 잡히지 않던 예수의 생명을 요한이 자신 안에 가지게 되었고, 그 생명을 우리에게 전하여 하나님과 사귐이 있게 하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요한이 그 생명에 관해서 전하는 첫마디는 하나님은 빛이라 어두움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빛인데도 어두움이 있다고 한다면 우리는 거짓말 하는 자입니다. 
 
  우리는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어두움에 속한 일을 가끔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예수께 죄사함을 받았지만 때때로 죄를 짓고 회개한다는 인식이 바로 그것입니다. 그런데 요한은 이런 사람은 진리가 그에게 있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라고 단언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자신이 참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이고, 아직 진리가 그들 안에 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만일 누구든지 자신이 참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하나님이 그의 죄를 사해 줄 것이라고 합니다. 결국 요한은 이 말씀을 지금 이 시대의 우리에게 주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를 믿고 죄사함 받았어도 죄를 여전히 자백해야 한다는 말을 하는 우리 말입니다. 그런 우리는 거짓말하는 자들이고, 진리가 그들 안에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하면 죄사함을 받고 진리와 예수의 생명에 이르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1장의 이런 내용에 이어서 요한은 말씀을 계속합니다. 1-2절을 먼저 살펴 봅니다. 
    요한이 이 글을 쓰는 것은 너희들이 죄를 범하지 않게 하려 하기 위함이고, 누가 죄를 범하면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다고 합니다. 그 예수는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신 분이라고 합니다. 
 
  요한은 여기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가 완전히 죄사함 받는 길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알고 있던 죄사함을 주었는데 또 죄 짓고 회개하는 그런 반복적 죄사함을 주는 우상 예수입니다(요일 5:21). 요한은 이 서신을 통하여 영원히 그리고 단번에 죄사함을 주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고 있습니다. 
  같이 이 말씀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요일 2:1] 1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치 않게 하려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면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 말씀에 대한 우리의 일반적 이해는 이렇습니다. 
"내가 이것을 쓰는 이유는 너희들에게 죄를 덜 짓게 하려고 쓰는 것이다. 혹시 누가 죄를 지으면 예수님께서 계신데, 그 분은 우리를 위한 화목제물이시다.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예수께서 용서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요한이 이 말씀을 우리게 전하는 것은 그런 내용이 아닙니다. 그렇게 읽는다면 그것은 율법적인 명령으로 이해하는 것입니다. 누가 죄 짓고 싶어서 죄를 짓나요? 어쩔 수 없이 먹고 살다 보면 짓게 되는 것이 죄입니다. 그리고 죄 짓지 말라는 말은 요한이 아니라도 유치원에서부터 그리고 교회 나온 이후로 지금까지 평생에 걸쳐서 듣던 내용입니다. 그런데도 죄가 계속 흘러 나오니 어쩔 수 없어서 그런 것입니다. 요한이 우리가 이렇게 본질적으로 죄인인 것을 모르기 때문에 죄 짓지 말라고 한 마디 더 한 것일까요? 아닙니다. 
 
  요한이 이 말씀을 우리에게 하는 것은 우리가 죄를 범치 않게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영원히 다시는 범죄하지 않는 길로 인도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해도 해도 되지 않는 죄 짓지 말라는 말을 다시 한번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죄 짓지 않는 길로 우리를 인도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그 관문이 바로 자신이 진정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인데 이렇게 되면 예수께 순종하여 따라 나설 수 있고 그로 인하여 영원한 죄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죄를 범하면...."
  이 말은 우리가 어떤 특정한 잘못한 것을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탕자의 체험을 하여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런 탕자의 체험을 하기 이전에는 우리 각자는 하나님 없이 자기 잘났고 자기 잘 안다고 돌아다니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 삶이 힘들고 어렵고 바람에 날리는 겨와 같은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도 깨닫게 됩니다.
  
  이것은 지금 이 말씀 앞에 나온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느 정도 자신의 옳다함이 수그러들고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어느 정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온전히 다 변화 받은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는 과정을 통하여 남은 것이 온전히 다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 중에 어떤 분들은 아직도 교회에서의 일에 자신의 고집을 부리고 자기 의견이 받아지지 않으면 성질 내는데 익숙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그대로 자기 옳다함을 주장할 수밖에 없고 그냥 자기 좋은 대로 주장하면서 세월이 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런 삶이 점차 힘이 들고 결국 무의미하다는 것을 깨닫게 될 때, 비로소 특정 사안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내려 놓게 됩니다.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이렇게 자신이 범죄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이제 우리는 예수의 인도함을 받게 되고, 이 예수가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되도록 인도하십니다. 소위 말해서 예수에 이끌린 삶이 시작되는 것이고, 지금 우리는 이렇게 예수에 이끌린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이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우리는 지금껏 자라왔고, 이 점이 다른 교회에서의 신앙생활과 다른 점입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이 세상에서 힘든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전하는 사람들도 또한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지친 사람들이 제대로 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지 못합니다. 왜나 하면 예수를 전하는 많은 사람들이 우상 예수를 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그들은 지금도 이 요한일서도 읽어내는 방식이 우상예수를 만드는 그런 방식으로 밖에 읽지 못하는 것 아니겠습니까? 죄사함 받았는데 또 죄를 짓는다는 모순적 예수를 전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목사님이 지향하는 것이 거룩하고 겸손하고 넉넉하고 인자하고 자비로운 이런 것입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세상 선이고 참 예수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는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만들어 주고 우리의 죄를 영원히 그리고 단번에 사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화목제물 
 
[요일 2:2]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
 
  예수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는 제물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족한 것이 없으셨으나, 우리를 구하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 예수님은 우리와 연합하여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와 연합하여 부활하심으로 우리에게 예수의 생명을 주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지금 말씀에 의해서 죄없는 세상으로 인도함 받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제 때가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하나를 이루어 화목하게 되고 죄사함 받는 영광이 주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이 예수는 우리 만을 위한 예수가 아닙니다. 기독교인들만 위한 예수가 아닙니다. 온 세상 사람들을 위한 예수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예수에 의해서 먼저 고침을 받고 이 예수를 남에게 전해야 할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예를 들어서 불광동에서 구기동으로 넘어가는 터널이 있습니다. 구기터널입니다. 그곳을 통과하면 불광동에서 구기동으로 넘어갑니다. 비유적으로 불광동은 빈촌이고 구기동은 부촌이라면 불광동은 세상이고, 구기동은 천국입니다. 그 구기터널이 예수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터널을 다 빠져 나오기 직전에 있습니다. 그러면 구기동에 적을 두고 다시 불광동으로 와서 구기터널을 전하는 것입니다. 
 
  이 터널은 누구나 들어 올 수 있습니다. 입장료도 없습니다. 이 터널은 이미 통과한 우리에게만 유효한 것이 아닙니다. 모든 사람들에게 유효합니다. 몸집이 커서 터널에 끼이는 사람도 없고, 갈비씨라고 통과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불광지역에 살다가 지친 사람들에게 인종의 구분 없이 빈부의 귀천 없이 터널을 통과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터널의 존재를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야 합니다. 그 모든 사람들이 구원의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금 전하는 예수는 바로 이 요한이 말하는 참 예수입니다. 화스 세미나를 개최하는 목적도 때가 된 자들에게 예수를 전하기 위함이며, 무릎치며 읽는 성경1을 영어로 번역하고자 하는 것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참 예수를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목적은 이 예수를 전하고, 그들도 예수와 하나님 안에서 하나되어 우리와 사귐이 있기를 원함입니다. 
 
맺는 말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예수게 순종하고 그 예수가 우리를 영원한 죄사함의 길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이런 예수는 아직 가리워져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우리가 가진 이 귀한 그리스도의 복음을 요한처럼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 예수는 강한 자나 약한 자나 모든 자에게 복음이고, 믿는 모든 자들을 하나님과 화목을 이루게 할 분이십니다.
    우리가 온전히 회개하여 이 예수의 생명을 받고, 그것을 이웃에게 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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