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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8-요일 2:7-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3-04 22:21 조회 |3,321회

본문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

[요일 2:7-11] 7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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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에게는 너무나도 단순하고 고귀한 진리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예수에 의해서 십자가의 고침을 받으면 우리 안에 성령이 임함으로 하나님과 하나되는 그것입니다. 이 지극히 단순한 진리가 기존의 예수 믿는 사람들과 우리와의 차이를 비 진리와 진리의 차이가 있게 만듭니다. 더욱이 이런 말과 고백은 듣고 누구나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핵심은 과연 예수를 만나 지금 고침을 받고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는 매일의 삶에서 이것을 겪고 있습니다. 그래서 매일의 삶이 더 더욱 소중합니다. 이런 삶은 결국 우리를 예수의 생명을 가진 자들로 만들 것이며, 하나님의 사랑을 가진 자들로 거듭나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삶을 이 세상의 그 어느 것보다 더 귀중하게 생각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정말로 그러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죄사함을 받았는데 가끔 죄를 짓는다는 이상한 방식으로 믿어 왔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이 어디가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예수 믿어 왔습니다. 요한일서에서 요한은 맨 먼저 하나님은 빛이시고 그 안에는 어두움이 조금도 없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빛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두운 가운데 행하면 거짓말 하는 자", "저를 아노라 하고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거짓말 하는 자" 그리고 여기서는 "빛 가운데 있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눈 먼 소경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 믿고 죄사함을 받았는데 가끔 죄를 지으면서 최종적 성화를 이룬다고 하는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십자가에서 옛사람이 죽게 되면 진리이신 하나님과 하나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빛 가운데 거하게 되고, 말씀을 가지고 지키게 되고, 진리 안에 거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함을 받습니다.
  본문은 하나님과 하나되면 하나님의 사랑과 빛을 받게 되어 제대로 보고 행할 수 있게 됨을 말합니다. 그 세상으로 우리를 초대를 하는 것입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형제를 미워하는 자

[요일2:9]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요

  이전 8절에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췸이니라"

  여기서 참 빛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전까지는 빛은 빛인데 참 빛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즉 참 빛이 아니니까 그 빛으로 죄사함을 받아도 계속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 빛은 율법의 빛입니다. 온전한 죄사함이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한의 권면은 이제는 그런 신앙생활을 청산하고 참 예수를 믿고 온전한 죄사함을 받으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권면은 지금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에게도 동일합니다.

  "빛 가운데 있다 하며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우리는 이런 말을 접하면 당장 자신을 빛 가운데 있는 자로 대입을 시킵니다. 왜냐하면 그동안 예수를 믿었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기 때문에 명실공히 빛이신 예수 안에 있고, 그 분의 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는 것은 자유이지만 그러나 문제는 그 다음에 발생합니다. 즉 형제를 미워하지 않고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에게 없다는 것입니다.

어쩔 수 없이 원치 않게 형제를 미워할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는 회개하고 다시 시작합니다. 또 다시 실족하고 회개하고... 반복하게 됩니다. 이것을 지금 우리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정당한 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그런 생각과는 달리, 요한은 그런 사람들은 어두운 가운데 있는 자라고 단언합니다. 당연합니다. 제대로 빛 가운데 있다면 형제를 사랑합니다.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것은 제대로 빛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고, 그러니까 아직 어두움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은 이런 사람들에게 지금 참 빛이 벌써 비추이고 있으니 예수 제대로 믿으라는 것입니다.
  옛 계명에서 우리는 교회에 나와서 앉았다 일어서서 예수를 구주로 시인하고 맞아 들인다면 죄사함 받고 하나님의 아들이고 천국에 이미 들어 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빛 가운데 거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가끔 죄를 짓고 형제를 미워합니다. 이것은 앞서의 예수를 구주로 믿고 시인한 것이 아무런 효능을 주지 못했다는 것의 증거입니다.

  진정 빛 가운데 거하려면 참 빛을 만나야 하고, 이 참 빛은 우리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과정 (참 예수에 의해서 십자가를 거쳐 하나님과 하나되는 것 : 자유교회의 용어로 FaSS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그러면 명실공히 예수 믿는 자가 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빛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이러면 하나님의 속성인 사랑을 우리가 받게 됩니다.

[요일 2:5]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하나님과 하나되어 사랑의 형상으로 거듭난 자가 된 것입니다. 이제 이 사랑의 존재가 된 사람은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 오직 사랑만 할 뿐입니다. 사랑은 하는 모든 일이 사랑입니다. 비록 그의 행동이 세상 사람의 눈에 미움으로 보이거나, 나쁘게 보일지라도 그 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일인 것입니다. 이런 사랑의 존재는 형제를 미워할 수 없습니다.만일 그렇다면 그는 빛이신 하나님과 아직 하나 되지 못하고 어두움에 거하는 자입니다.

사랑하는 자는 거리낌이 없으나...

[요일2:10]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계속해서 사랑하는 자에 관해서 더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형제를 사랑하려고 무진장 노력을 합니다. 평생 동안 그렇게 노력을 해왔지만 그럴 수가 없다는 것을 우리는 좀처럼 깨닫지 못합니다. 조금만 노력하면 될 것 같은 그 사랑은 우리 일생에 있어서 잡을 수 없는 그런 신기루와 같은 것입니다. 예수를 열심히 사랑(아가페) 하고자 했던 베드로도 예수를 따른 삼 년 반의 세월 후에 최종적인 고백이 자신은 사랑(아가페)을 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는 고백을 합니다. 할 수 있다면 오직 세상적인 사랑(필로스) 밖에 할 수 없다는 것을 고백합니다(요 21:15-17).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합니다만, 이 사랑은 신적 사랑인 사랑(아가페)을 말하고, 이것은 이 세상에서 구할 수 있는 사랑이 아닙니다. 다시 말해서 훈련이나, 노력이나, 교육으로 우리에게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로서 와야 하는 것이고 이것은 오직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된 자 만이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하늘로부터 오는 사랑입니다.

[요일 4:16]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 안에 거하시느니라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되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이제 그렇게도 불가능하던 사랑(아가페)이 자신에게서 흘러 나오게 됩니다. 이런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사랑은 우리가 하는 행동이 아니라, 사랑은 우리의 존재 자체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욕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하고자 하는 욕망입니다. 이 사랑의 존재는 미움을 행할 수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빛 가운데 거하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것입니다.
 
  그리고 이 빛 가운데 거한다는 것은 일시적이나 한시적인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부터 영원토록 하나님과 하나된 관계를 말합니다.
 
▶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다

  하나님과 하나되어 빛 가운데 거하고 사랑의 존재로 변한 자에게는 거리낌이 없습니다. 여기서 거리낌이란 '장애물' 또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헬라어 원어는 '스칸달론(skandalon)'입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모든 것을 명확히 볼 수 있습니다. 빛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두움에 거하는 자와 같이 보지 못하여 걸려 넘어지지 않습니다. 빛 가운데 있는 자는 장애물이 그를 넘어지게 하지 못합니다. 거리낌이 없습니다.
 
  엠비시 '뉴스후'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걸려 넘어졌습니다. 그들의 옳다함은 진리를 떠난 어두움의 옳다함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는 진리이신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당연히 그들에게는 진리가 없습니다. 진정 그들이 추구하는 옳고 그름이 진리라면 그 시청자들은 이미 진리에 도달했을 것이고, 이 세상에도 평화가 임했을 것입니다. 그렇지 않은 것은 그들에게는 하나님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고 옳아도 비 진리인 세상의 산물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프로그램에서 엠비시는 하나님을 전하는 교회와 목회자들을 거의 범죄자 수준으로 보도 했습니다. 많은 교인들이, 일부 목사님들마저도, 그 방송이 하는 말이 옳다고 엠비시를 두둔했습니다. 이들은 세상의 옳고 그름이 곧 하나님인 것으로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옳고 그름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아무튼 그들은 비 진리인 세상의 옳다함의 장애물에 걸려 넘어진 것입니다.
 
  저는 어느 분에게 상담을 하면서 이렇게 말씀 드렸습니다. 혹시 그런 프로그램을 다시 보게 될 경우, 한 가지 지침이 있을 수 있는데, 그것은 교회 또는 목회자를 중심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아무리 세상 언론이 세습이 나쁘고 목회자가 좋은 스포츠카 타는 것이 나쁘다고 정죄해도, "그래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교회가, 그래도 하나님을 전하는 목회자에게 무슨 하나님의 뜻이 있겠지..." 하는 것이 지혜로운 생각의 방향입니다. 왜냐하면 세상 언론은 어쨌든 하나님이 없기에 어두움이고 비 진리일 수밖에 없습니다만, 그래도 세상보다는 교회나 목사님들이 하나님을 더 알기 때문입니다.

  다윗이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사울 왕을 긴 세월에 걸쳐 피해 도망 다닐 때, 다윗에게는 두 번씩이나 그를 죽일 수 있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기름을 부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사울 왕을 죽이지 않았습니다. 그때는 외형적으로 그에게서 이미 하나님이 떠났습니다. 또한 사울 왕은 다윗의 원수로서 그의 목숨을 노리고 있었습니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께서 이전에 기름을 부었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다윗은 그를 죽이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엠비시나 세상이 하나님의 교회나 목사님들이 잘못했다고 하면 동조하여 비판하고 돌을 던집니다. 언론이 얼마나 옳은지 몰라도, 그것과 상관없이 교회와 목사님들은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나 목회자들이 우리 자신들에게 무슨 해를 그렇게 끼쳤을까요? 아무렴 사울왕처럼 우리를 죽이려고까지 했겠습니까? 우리는 다윗의 지혜로운 처신을 잘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세상 언론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있는 있음직한 쪽을 택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저도 목사이기 때문에 편들어서 하는 말이 아닙니다. 저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라는 것을 알려 주는 사람입니다. 제가 권면한대로 살아 보십시오. 그것을 기뻐하시고 지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실로 우리가 어두움에 있을 때 걸림돌 역할을 하는 것은 '자신의 옳다함' 인데 이것은 세상의 윤리도덕과 자신의 육신의 소욕으로 형성된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하나됨으로 하나님의 빛으로 변경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모든 것을 진리의 눈으로 보고 자기 옳다함에 걸려 넘어지는 예가 없습니다.
 
형제를 미워하는 자

[요일 2:11]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운 가운데 있고 또 어두운 가운데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니라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두움에 있고 갈 길을 알지 못한다. 어두움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여기서 형제를 미워하는 자를 세상적인 기준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세상에서의 사랑하고 미워한다는 것은 인간이 만든 윤리 도덕의 잣대이며, 각자의 욕심을 충족시켜주면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미워하는 것이라고 정의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랑 또는 미움에 미혹되지 마십시오. 그 안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여기서의 사랑과 미움은 하나님의 사랑과 미움을 말합니다. 우리가 FaSS의 과정을 온전히 거쳐서 하나님과 하나되면 하나님의 사랑을 가지게 됩니다. 이제 이런 사람은 형제를 사랑합니다. 역으로 아직 이 과정을 거쳐지지 못하여 하나님과 하나되지 못한 사람은 형제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사랑이나, 미움이나 공히 한 두 가지 행위를 놓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존재 자체를 놓고 말합니다.

  내 안에 하나님이 임했으면 나는 형제를 사랑하는 자요, 아직 임하지 않았으면 나는 가만히 있어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입니다. 이런 사람이 혹 형제를 사랑한다고 나서도 그것은 종국적으로 자기 만족과 욕심을 이루기 위한 세상 사랑입니다. 이것도 또한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엠비시가 형제의 돈을 아껴 준다고 교회나 목회자에게서 변칙 세습을 고발하는 일을 의롭다고 행합니다. 그 결과 사람들은 교회와 목회자에게 불신을 가지게 되면 이들은 결국 하나님을 포기하고 떠나게 됩니다. 이 경우 과연 엠비시가 이들을 사랑하는 것일까요? 그들을 미워해서 생명에서 멀어진 사망의 늪에서 돈 쓰다가 죽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사람을 더 미워하는 다른 방법이 있을까요? 그들은 그렇게 어두움으로 눈이 가린 자들입니다.
  
  빛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빛이 우리에게 임해야 우리는 빛 가운데 진리가운데 행하고 하나님의 나라를 살게 됩니다. 아직 FaSS의 과정을 거치지 않은 사람들은 이전 눈으로 살 수 밖에 없는데, 이 이전 눈이 곧 어두움입니다.

  물론 그들이 생각할 때 그것은 어두움이 아닙니다. 밝게 보는 눈이고 기가 막히게 잘 보는 눈입니다. 세상 사람은 선악과를 먹어서 눈이 밝아졌고 스스로의 옳다함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반면 그만큼 하나님에 대해서는 눈이 멀었습니다. 그래서 그 어두움을 빛 삼아 형제를 판단하고 돌을 던지면서 이 세상을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어두움이 눈을 가린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어두움의 실체는 세상의 윤리도덕과 자신의 육신의 소욕을 바탕으로 형성된 '자기 옳다함' 입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한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들이 어디서 와서 무엇을 하다가 어디로 가는 존재인지를 모릅니다. 그리고 매사에 자신이 무슨 일을 하는지, 무슨 짓을 하는지 왜 하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그냥 귀신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고, 배부르면 웃고, 배고프면 으르렁 거리는 짐승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갈 곳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 우리는 매 순간, 나의 옳다함을 내려 놓고, 하나님의 빛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이것은 참 빛이 우리에게 이루어 줄 일입니다. 참 빛을 따라 나서십시오.

맺는 말

  우리는 예수 믿어서 빛에 거하고 빛에 거하는 자가 되어 형제를 사랑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이 빛이 없으면 형제를 원치 않게 미워할 수밖에 없고 인생 전체가 그런 식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표류하게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우리 인생에 종지부를 찍게 해 주실 것입니다. 이 참 빛을 따라 나서 형제를 제대로 보고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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