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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아비 청년 아이 (9-요일 2:12-14)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3-18 15:43 조회 |5,014회

본문

아비 청년 아이

[요일 2:12-14] 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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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믿음은 하나님-예수-성령의 순서로 자라납니다. 따라서 믿음의 성령 단계에 도달해야 비로소 예수를 제대로 믿은 것이고 그때 열매를 맺는다는 말씀이겠습니다. 이러면 이제 남들에게도 참된 예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 단계에 머물러 참 예수가 누구인지 조차 모르는 깜깜함 가운데 있습니다. 이런 시절이 없을 수는 없으나, 이제는 그런 시절은 지나간 때로 족합니다. 우리도 그런 믿음 생활에서 지쳤고, 이미 참 빛이 우리에게 비추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분이 이렇게 말씀 하십니다.
  "2000년도에 예수님이 재림을 하신다는 말이 있습니다. 하지만 구름 타고 하늘에서 천군 천사와 함께 내려오시는 것이 아니라, 참다운 말씀으로서 지금 우리 교회에 재림하신다는 의미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일단, 성령이 예수에 의한 과정을 거친 사람 안에 개별적으로 임하는 것이 재림입니다. 이런 개별적 재림은 그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 왔습니다. 그런데, 이제 이 시대에는 사도와 선지자의 바탕 위에 세워진 참된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에 재림하여 일하고 계신 것입니다.

  이천 년 전에 베드로가 만났던 예수님은 그에게 무슨 일을 하셨고, 어떻게 그를 사도로 만들었는지 매우 궁금합니다. 그러나 우리도 그것을 알 수 있는 기회가 있는데, 그것은 말씀으로 살아 계신 예수님이 있는 교회를 만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교회에서는 예수님이 그때 제자들에게 했던 그 일을 하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렇게 말씀이신 예수를 만남으로 믿음에 있어서 예수시대를 시작할 수 있습니다.
  지금 이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그동안 예수를 믿었지만 제대로 믿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참다운 예수 믿는 길은 시작됩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성령으로 인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는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로써 성령단계의 믿음을 소유하게 됩니다.

    지금까지 요한은 죄사함 받았다고 하는데도 죄짓고,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고, 빛 가운데 거한다고 하면서도 형제를 미워하는 자들의 믿음의 사이비성을 지적했습니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예수 제대로 믿고 온전한 죄사함을 받으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본문 말씀에서의 핵심은 믿음은 생명현상이고 그 생명이 자라는 과정에서는 아이-청년-아비의 단계가 있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어떤 사람이 믿음의 과정에서 아이이고, 청년이고, 아비인지를 살펴 보겠습니다. 이로써 각자 자신의 믿음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을 것이며, 자신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명확한 인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자녀들의 죄사함

[요일2:12] 자녀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 죄가 그의 이름으로 말미암아 사함을 얻음이요

  우선 여기서 자녀들아 라는 호칭의 문제에 관해서 살펴 봅니다. 12절에서는 자녀 (헬:테크니온teknion)가 나오고, 13절에서는 아비들과 청년들, 14절에서는 아이 (헬:파이디온paidion)가 순차적으로 나옵니다. 그리고 다시 아비가, 청년, 그리고 18절에서 아이가 나옵니다.

  정리하면 자녀-아비-청년-아이, 다시 아비-청년-아이의 순서로 반복합니다. 여기서 아비-청년-아이는 믿음의 성장 크기에 따른 호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요한은 교회 내의 믿음의 크기에 따라서 각자에게 맞는 말씀을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 설명해야 할 것은 맨 처음에 나오는 자녀들입니다. 이 자녀들은 믿음의 크기에 따른 호칭이 아니라 교인 전체를 총칭하여 "자녀들아" 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예를 보겠습니다.

[요13:33] 소자들아 내가 아직 잠시 너희와 함께 있겠노라 너희가 나를 찾을 터이나 그러나 일찍 내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나의 가는 곳에 올 수 없다고 말한 것과 같이 지금 너희에게도 이르노라
[갈4:19] 나의 자녀들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

  여기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제자들이나 교인들을 "소자들" 또는 "자녀들"이라고 부르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살펴 본 바 있는 요한일서 2장1절에서도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헬라어로 같은 "테크니온"입니다. 또한 자녀들이 전체 교인을 칭하는 것은 말씀의 내용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모든 사람들에게 공통 적용되는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면 자녀는 전체적으로 교인을 뜻하고, 아비-청년-아이는 믿음의 크기에 따른 호칭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또한 믿음의 크기는 아이-청년-아비로 자라난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다음 절에서 살펴 봅니다.
 
  먼저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얻게 되는 말씀을 살펴 봅니다.
  요한은 예수의 이름으로 우리가 죄사함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실질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죄사함을 받습니까? 그것은 예수를 따라 나서 고침을 받고, 그와 성령으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의해서 구원의 과정을 실질적으로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으로"라는 뜻은 명찰에 새겨진 이름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의 속성과 본질을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 이름으로 명하노니 죄사함을 받을 지어다."라는 의미도 아니고, 또는 예수의 이름으로 죄사함을 받는다고 인정한다고 해서 되는 것도 아닙니다.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요 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이 말씀에 근거해서 우리가 기도 끝에 "예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예수님은 기도의 마무리 형식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우리 안에 임하면 이제 예수의 이름 즉, 본질을 가지고 아버지께 구하게 됩니다. 이렇게 존재적으로 변화를 이루라는 말씀이고, 제자들의 경우는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이 일을 이루게 되기 때문에 지금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따라서 진정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자가 되려면, 십자가 사건을 통하여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영을 영접해야 합니다. 이 이전에는 아무리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고 구해도, 내 욕심으로, 내 생각으로 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영접한 이후에는 구하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으로 구하는 것입니다. 이때는 구태여 "예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라고 안 해도 예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예수 이름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요한은 말씀 앞에 나온 모든 사람들에게 그동안 죄 짓고 회개하고 또 죄 짓는 생활의 반복에서 벗어나 참 빛으로 온전한 죄사함을 받으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아비, 청년

[요일 2:13]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앎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쓰는 것은 너희가 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니라

  앞 절은 전체 교인들을 대상으로 썼지만, 이제 그 중에서 아비들과 청년들, 아이들을 대상으로 씁니다.
  먼저 아비입니다. 요한은 누구를 교회에서의 아비라고 말하는지 보시겠습니다.
  아비는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자라고 정의합니다. 태초부터 계신 이는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요한은 요한일서 1장 1절에서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고, 그 생명을 받은 자로서 이 말씀을 전하는 것을 보면, 태초부터 계신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입니다.
  
  아비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자란 예수가 구세주라는 것을 지식적으로 아는 자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만나고 그로 인하여 3년 반이란 세월을 거쳐 자신 안에 성령으로 임하시는 그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자를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고 그 예수를 알게 됩니다. 태초부터 계신 생명의 말씀을 알고 그와 하나된 아비들입니다. 사도 요한, 사도 바울, 사도 베드로 같은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의 교회 안에서 예수의 생명을 남에게도 나누어 줄 수 있는 장성한 사람들입니다.

  자, 그렇다면 이 아비는 맨 먼저 말씀 드린 하나님-예수-성령의 과정에서 어디에 해당될까요? 그것은 성령 단계에 도달한 최고 믿음의 소유자입니다. 성경 배열순서로 본 믿음의 단계는 요한복음에서 시작하여 사도행전에 이른 사람으로 이후 요한계시록까지 변함없이 나아갈 사람입니다.
 
  요한은 청년들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을까요?
  악한 자를 이긴 자라고 합니다. 우선 악한 자라 함은 잘 아는 대로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입니다. 손 댈 수 없고 고칠 사람도 없는 내 안에 있는 나의 원수입니다.

  살아 있는 말씀이신 예수님은 우리 안에 있는 이 악한 자를 드러나게 하시고 십자가에 못박으십니다. 예수님께서 하시지만, 우리는 이 모든 과정을 잘 견디어야 합니다. 이것이 고침 받는 우리가 할 일이라면 할 일입니다. 대부분 여기서 견디지 못하고 다들 도망가게 됩니다. 이 과정을 끝까지 견디는 자를 악한 자를 이기는 자라고 합니다. 자기가 싸운 것은 아니지만, 그 과정을 잘 견디어 내는 것이 싸움에서 자기의 몫입니다.

[계 21:7]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예수에 의해서 자신의 옛사람이 드러나지 않으면 고침을 받을 수 없고, 고침을 받지 못하면 영적 청년이 될 수 없습니다. 항상 아이로 남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생활을 하는 중 항상 자신이 드러날 기회를 간구하고 그것을 잘 견디는 지혜가 필요합니다.

  어느 분의 경우입니다. 이 분은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고 정직하게 신앙생활하기에 사람들과 부딪힘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자기는 왜 주님께서 옛사람을 드러내 고치지 않고 내버려 두시는가 라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고 '주님께서 계획을 가지고 계실 것이고 그 분이 기도 한 것을 들어 주시겠지...' 생각했습니다.
한편 교회에서는 그동안 "무릎치며 읽는 성경" 영어 번역자를 찾고 찾았습니다만, 마땅한 사람이 없어 최종적으로 이 집사님께 부탁하기로 했습니다. 원래 이 분은 회사 일로 바쁜 분이라 될 수 있으면 피하려고 했습니다만 다른 대안이 없었습니다.

  이 번역은 그냥 하면 되는 단순한 번역이 아닙니다. 우선 무릎치며 읽는 성경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고, 영어 실력도 좋아야 합니다. 물론 상업적으로 번역하는 사람들이야 돈을 보고 그런 일들을 감당해 나가겠지만, 그 쉽지 않은 일을 하나님만을 보고 해야 하는 봉사의 일입니다.
  저는 그 분 가족과 식사를 같이 했었습니다. 그 분은 번역을 시작해서 몇 페이지를 진행한 상태였습니다. 
  그 분이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번역이 쉽지 않네요. 예를 들어서 '우리가 지하철 안내도 입수해서 그것을 따라 나섰다가 이제 출구에 나가게 되면 나가게 된 그는 다시 들어와서 다른 사람을 인도한다'는 내용이 있습니다. 한국말에서는 어떨지 모르겠지만, 영어에서는 한 문장에서 주어가 '우리'가 되었다가 또 지하도에서 나갔을 때는 '그'로 바뀌게 되기 때문에 매우 난감합니다."

  저는 그 말 속에 원망이 배어 있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왜 이 따위로 문장을 썼지... 아이고 힘들다...'
  아무튼 그 분은 이렇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런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저 또한 속으로 생각했습니다.
  "아이고, 이거 번역시켰다가 나중에 무슨 소리를 들을지 모르겠다."
  물론 화기애애한 가운데 식사를 했기 때문에 그 분이 그런 느낌을 표출했으리라고는 본인은 꿈에도 생각을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그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 분의 그런 반응으로 제가 느낀 것은 이것입니다.
  '아하, 하나님께서 이 분의 이전 기도를 들어 주셨구나. 이 번역 건으로 이 분의 드러낼 부분을 드러내 고쳐주심으로 축복을 주시려고 하시는구나.'

  사실 하나님은 이 번역 건을 애초에 이 분에게 줄 계획을 가지고 계셨던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번역자를 접촉했지만 이러 저러한 이유로 부적절했고 지금까지 끌어 왔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번역이 이 분에게 맡겨지기까지 기다리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번역 일은 단단히 마음먹지 않으면 도중에 포기하기 안성맞춤입니다. 우선 그 분은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고, 저도 까다롭기 때문에 이것 저것 고쳐 달라고 요구할 것입니다. 고치는 정도야 하겠지만, 힘들여 고친 것을 고치지 말고 이전대로 그냥 하자고 할지도 모릅니다. 당연히 그래야 합니다.

그래야 번역은 번역대로 좋게 될 것이고, 무엇보다도 그 일을 통해서 이 분의 영적 성장이 이루어 질 것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그 분에게 맡겼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시간이 없는 것이나 저의 까다로운 요구는 오히려 긍정적인 측면이 있습니다. 그 분의 옛사람이 드러날 좋은 환경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하나님의 계획을 미리 그 분에게 알려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이것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입니다. 이 분은 소원대로 악한 자를 이기는 길목에 접어 든 것이고, 영적 청년으로 자라나는 과정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순종하고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복중의 복입니다.

  청년이 되면 예수에 이끌린 삶을 온전하게 마친 사람이고, 십자가 사건이 자신에게 일어난 자입니다. 청년은 하나님-예수-성령의 믿음 단계에서 예수 단계에 해당하고, 성경배열에 따른 믿음의 성장과정은 마태복음에서부터 시작하여 요한복음의 거듭남에 도달했을 때의 믿음에 해당됩니다.  

아이

[요일 2:14] 아이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아버지를 알았음이요 아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알았음이요 청년들아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강하고 하나님의 말씀이 너희 속에 거하시고 너희가 흉악한 자를 이기었음이라

  요한은 이제 아이를 정의합니다. 믿음 안에서 아이는 누구일까요?
아이는 "아버지를 아는 자"입니다. 일반적인 의미로는 아버지를 안다는 의미는 하나님과 하나 되었다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여기서 "아버지를 아는 자"와 아비 "태초에부터 계신 이를 아는 자"를 구분하고 있습니다. 먼저 살펴 본대로 태초부터 계신 이를 아는 자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죄사함의 과정을 온전히 거쳐서 하나님의 영과 실질적으로 하나된 자를 말합니다. 온전한 믿음을 이룬 사람으로 아비입니다.

  한편 아이는 하나님을 하나님과 하나 되는 과정을 깨닫고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아직 그 길을 다 가지는 않은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이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는 것을 반복하고, 빛 가운데 거하다면서 형제를 미워하고, 또는 하나님을 안다고 하면서 계명을 지키지 않는 자라는 것을 깨달은 자입니다. 이전에 하나님을 알기는 알았는데 복주고 천국 보내 주는 하나님 아버지로만 알았습니다. 우상 하나님으로 안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참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은 그런 단순한 분이 아니라, 예수를 통한 고침의 과정을 거쳐 자신의 마음 속에 임하실 분이라는 것을 알게 된 사람입니다. 아직 그것이 자신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평생을 두고 소망해야 할 것을 아는 자입니다.

  아이는 참다운 회개를 하고 순종할 준비가 되어 말씀이신 예수 앞으로 나오는 자입니다. 물론 율법 아래에서 신앙생활을 한 것도 그가 지금의 아이가 되도록 기여한 기간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아이는 그 이전에도 아이였지만, 이제서야 아이로 완성되었다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아이가 되면 참 예수의 생명 안에 편입되게 됩니다.

  반면 참 말씀 밖에 있는 사람들은 아직 생명의 순환 안에 편입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죄짓고 회개하고 또 죄짓는 생활을 감당하기에도 벅찬 사람들입니다. 아직 예수의 생명 안에 있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자신이 아이 청년 아비 이 셋 중에 속해야 생명의 말씀 안에서 영적 성장을 이루고 있는 자입니다.
  아이는 성경배열 순서에 따른 믿음의 성장과정에서 구약으로 시작하여 마태복음에 이른 자입니다.

  끝으로 아이-청년-아비로 믿음의 성장 크기를 구분 하지만, 이것은 두부모 자르듯이 확연하게 갈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 안에서 아이인 요소가 있는 동시에, 청년인 요소, 또는 아비인 요소가 공존하기도 합니다. 이 순간 이 모든 과정이 한꺼번에 우리 안에 진행되고 있습니다. 어떤 요소가 자신 안에 많으냐에 따라서 그것이 자신의 믿음의 크기를 대표해 줄 것입니다. 아이인지, 청년인지, 아니면 아비인지를...
 
  맺는 말

  '아이'는 예수 그리스도로 인하여 구원 받는 과정인 하나님-예수-성령의 단계를 아는 자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따라 나서기 위해 세상의 모든 것을 버려야 하는 것을 아는 사람입니다.
  '청년'은 그런 '아이'가 예수에 이끌린 삶을 거쳐서 그 훈련을 온전히 잘 견딘 사람입니다.
  '아비'는 그 '청년'이 더 장성하게 되어 예수 그리스도와 온전히 하나를 이룬 사람입니다.
    요한의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우리는 지금 옳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아비'가 되기를 소원합시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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