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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범죄하지 아니하나니...(17-요일 3:4-6)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6-19 19:55 조회 |3,479회

본문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요일 3:4-6] 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

  처음 교회에 나오면 우리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회개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듣습니다. 이때 좀 순한(?) 사람들은 이렇게 답을 합니다.
     "제가 죄인이에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죄인이라고 하니까 죄인인 줄 알겠습니다. 저는 죄인입니다. 용서하세요 주님!"
  그러나 의심 많고 뺀질 거리는 사람은 이렇게 생각합니다.
     "내가 언제 남의 물건을 도적질 했느냐? 아니면 살인을 했느냐? 내가 무슨 죄를 지었다고 죄인이고 또 회개하라는 거야...?" 이러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저렇게 생각하는 것은 세상에서 말하는 죄와 성경에서 말하는 죄를 구분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둘은 서로 전혀 다릅니다. 세상에서 말하는 죄란 세상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한 법에 저촉되는 행동들을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자신의 마음 속에서 하나님을 두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한 행동을 말합니다. 즉 세상 죄란 세상의 법에 따르지 않은 것이고, 성경의 죄란 하나님의 법에 따르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서 요한이 말하는 죄란 물론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지 않게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탕자의 비유를 통해서 여러 차례 이 죄의 근원에 대하여 알아 보았습니다. 인간들은 탄생 이래로 하나님을 뗘나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날 때부터 죄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 행하는 모든 것이 죄입니다.
 
  우리가 이런 죄 문제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어떤 행함을 장려하고 금지함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하나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죄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시는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예수에 의해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을 때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게 됩니다.
    
  본문 말씀에서는 이 죄 문제가 주로 조명될 것입니다. 죄에 대한 이런 기본 인식을 가지고 함께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요한이 말하는 본문은 이렇습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는 자이고, 죄는 곧 불법입니다. 예수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되셨고 예수는 죄가 없습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 하지 않습니다. 만일 누가 범죄를 한다면 그는 예수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를 믿고도 죽을 때까지 죄짓고 회개하고 죄짓고 회개하는 삶을 정당화하는 사람들에게 아주 난해한 구절입니다. 여기서 분명하게 예수 안에 거하는 자는 범죄를 하지 않는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 말씀을 통하여 죄와 불법의 의미와 주가 나타나심으로 죄사함 받는 것과 주 안에 거하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않는 문제에 관해서 알아 보겠습니다.
 
죄와 불법

[요일 3:4]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

  바로 이전 절은 이렇습니다.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3)" 주님이 자신 안에 나타나서 자신도 주님과 같이 될 소망을 가지고 있는 자들은 주님의 인도함에 순종함으로 결국 주님과 하나 되어 온전한 깨끗함을 가지게 됩니다. 이어서 본절은 주님의 깨끗함을 가지지 못한 자들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들은 죄를 짓는 자들이고 불법을 행하는 자들입니다.
 
  서두에서 성경에서 말하는 죄란 하나님과 분리라고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하나님과의 분리는 실질적으로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요? 그것은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두지 않고 사는 것을 말합니다. 즉 하나님 없이 행하게 될 때 이 모든 것이 죄를 짓는 것입니다.

[롬 1:28]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반면, 하나님을 마음에 둔다는 것은 마음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분과의 교통함을 가지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과의 교통을 가지고 참 예수를 믿게 되면 결국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영광을 얻게 됩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됩니다. 꿈같이 들릴지 모르지만 이것이 참 예수 안에 있는 자들이 가지게 되는 소망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과 하나 되어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면 죄를 짓지 않게 됩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이 임하여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요한은 죄를 짓는 자는 곧 불법을 행하는 자라고 합니다. 죄와 불법을 동일시 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불법이란 무단횡단이나, 불법주차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죄를 말합니다. 헬라어로 "아노미아"로서 부정 접두어 '아'와 율법이라는 뜻의 '노모스'가 합하여 생긴 단어입니다. 여기서 '노모스'는 율법으로 결국 하나님의 마음을 뜻합니다. 따라서 불법이란 하나님의 마음이 아닌 행함인 것입니다. 이것은 곧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의 행함을 말하는 것으로 곧 죄입니다. 죄는 곧 불법입니다.

  결국 죄를 짓는 자나 불법을 행하는 자는 아직 자신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임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죄와 불법을 그치는 길은 행함의 문제가 아니라 예수를 만나서 하나님과 하나 되어야 합니다. 즉 자신 안에 하나님이 없던 존재에서 하나님이 임재하게 된 존재를 말합니다.
주의 나타나심과 죄사함

[요일 3:5] 그가 우리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을 너희가 아나니 그에게는 죄가 없느니라

  예수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되었다고 합니다. 앞 절에서 죄는 불법이라고 했으니 불법과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내신 바 되셨습니다.
  주의 나타나심이란 나 자신에게 있어서 재림을 뜻합니다. 초림이 아닙니다. 이 나타난다는 의미는 아래 절에서 이미 살펴 본 바가 있습니다.

[요일 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가 초림해서 우리를 다 고친 다음에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재림하는 때가 예수가 나타나는 때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나타났다는 것은 주님을 대적하는 내 안의 적그리스도를 물리치고 죄를 사함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본 절의 말씀은 예수가 나타나심으로 우리 죄가 사함을 받게 된 것이니까 예수는 우리 죄를 사하시려고 나타내신 바 된 것입니다. 예수가 왔으니 미래에 죄사함 받을 것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것은 예수의 초림입니다. 그러나 재림은 이미 주님이 우리의 죄사함을 완성시켰고 그 결과로 나타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예수의 나타나심은 우리의 죄가 온전히 사함 받은 것을 의미합니다. 초림은 죄사함을 위한 것이고 재림은 죄사함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따라서 "그가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나타나신 바 된 것"이라는 말씀은 "주님이 나타나셨다는 것은 우리의 죄가 온전히 사하여졌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뜻입니다.
  대부분 신자들은 예수님이 자신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예수님 따로 자신 따로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지만 자신은 죄인이니까 여전히 죄를 짓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미혹입니다. 예수는 죄가 없으신 분이시고 그 분이 우리 안에 임하시면 우리도 죄 없는 사람이 됩니다. 만일 예수님이 자신 안에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죄를 짓는 것은 예수님이 자신 안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수와 하나가 되면 예수와 죄 없음 같이 죄 없이 되고, 그분의 깨끗함 같이 우리도 깨끗하게 됩니다. 그 분이 거룩함 같이 거룩하고, 완전함 같이 완전하게 됩니다. 본문에서 "그에게는 죄가 없다"는 말은 죄 없는 그 분이 우리 안에 임함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그와 같이 죄 없이 된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입니다. 즉 죄가 없음은 예수 한 분에게 그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한 그 사람에게도 예수로 인하여 죄가 없게 됩니다.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죄를 범하지 않음

[요일 3:6] 그 안에 거하는 자마다 범죄하지 아니하나니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느니라

  예수 안에 거하는 자마다 죄를 짓지 않습니다. 죄를 짓는 자는 그를 보지도 못했고 그를 알지도 못했습니다. 예수 믿는 사람들은 자신이 예수를 보았고 예수를 알고 그리고 예수 안에 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도 이들은 죄를 범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죄를 범하는 자는 그 안에 있지도 않고 예수를 보지도 알지도 못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뭔가가 잘못된 것입니다.

  그래서 죽을 때까지 온전한 죄 사함이란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말씀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자마다, 계속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죄를 짓지 않는다."
  이렇게 해석하고 나면 예수 안에 있는 자는 가끔은 죄를 지을 수도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리고 이들이 "계속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라는 추가 단어를 삽입한 근거는 헬라어의 현재 시제의 의미입니다. 즉 현재 시제가 어떤 행동의 계속적이고, 습관적인 상태를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신약성경의 어느 현재를 나타내는 동사가 별도의 단어 없이 "계속적으로 또는 습관적으로" 라는 해석한 예가 없다고 주석가들은 말합니다. 결국 억지 해석인 셈입니다. 요한은 초지일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안에 있고,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은 자는 영원히 단번에 죄사함을 받은 것이다. 그 후로 다시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
  예수에 의해서 하나님과 하나된 자는 다시는 하나님과 분리가 일어나지 않으며, 그것이 바로 예수에 의한 죄사함입니다. 이런 사람은 예수의 죄 없음과 같이 다시는 죄를 짓지 않습니다.
  
  "범죄하는 자는 그를 보지 못했다"는 말씀에 관해서 말씀 드립니다.
  우리는 주님을 처음 만나고 고침을 받은 후에 우리 안에 나타나는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때가 우리가 주님을 보는 때입니다. 따라서 이때 이전까지의 우리는 여전히 죄를 짓고 회개하고 죄를 짓고 회개하는 생활을 반복입니다. 이 말씀대로 범죄하는 자입니다. 주님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만나고 그 분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게 되면 이제 주님을 보게 됩니다. 그때 우리의 마음이 청결해 집니다. 따라서 주님을 만나고(초림) 주님에 의해서 자신의 마음이 청결해 지면 주님을 보게 됩니다(재림). 주님을 보게 되는 것은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을 말합니다.

[마 5:8]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주님의 얼굴을 대면하여 보기 이전까지 우리는 범죄하는 자입니다. 범죄하는 동안 우리는 그를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어서 "범죄하는 자는 그를 알지 못했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주를 안다는 것도 우리가 일반적으로 안다는 의미가 아니고 주와 하나가 되어서 알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는 것은 우리가 일방적으로 주님을 아는 것이 아니라, 주님도 우리를 아는 것입니다. 쌍방이 서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당연히 주님을 알고 있고, 주님 또한 우리를 알고 있기 때문에 천국에 가면 주님이 버선 발로 나와서 마중해 줄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만 생각할 문제가 아닙니다.

[마7:22-23] 22/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23/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예수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사람에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 주님과의 동행하는 믿음을 가지지 않는다면 나중에 주님으로부터 내가 도무지 너를 알지 못하노라는 말을 듣게 될 것입니다. 아무튼 주님을 안다는 것은 주님과 하나된 것을 말하고 그것이 곧 죄사함입니다. 이렇게 죄사함은 받게 되면 당연히 범죄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범죄하지 않는 사람은 주님을 압니다.

  이와 같이 "그 안에 거한다" "죄를 짓지 아니한다" "그를 본다" "그를 안다"는 말은 다 같은 의미로 주님과 하나가 된 상태를 말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들 중에 하나라도 제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지 않았으면, 다른 모두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고, 또한 하나만 제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졌다면 다른 것 모두가 이루어 진 것입니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합니다 .
  "나는 주를 알고, 믿고, 본다. 그런데 가끔 죄를 짓는다."
  몰라서 하는 말입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성경에 맞추려다 보니까 죄를 짓기는 짓는데 상습적으로 습관적으로 짓지는 않는다는 식으로 변명하는 것입니다. 빨리 자신을 인정하고 회개하는 길이 살 길입니다. 안되면 그렇게 하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지혜롭습니다.

맺는 말

  죄는 불법입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고 사는 자들이 죄인이고 불법자들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고 거듭나게 되면 주님이 우리 안에 나타난 바 됩니다. 이렇게 우리는 죄사함 받은 사람이 됩니다. 이렇게 예수가 우리에게 나타나면 우리의 죄가 사함 받았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예수는 우리의 죄를 없이 하려고 (우리 안에) 나타나셨습니다. 이런 우리는 예수의 죄 없음 같이 죄가 없습니다.

  예수 안에 거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만일 죄를 짓는다면 예수 안에 있지 않다는 증거이고 예수를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한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 안에 거하고, 죄를 짓지 않고, 예수를 알고, 볼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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