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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26-요일 4:7-11)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8-07-22 18:38 조회 |4,125회

본문

사랑이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요일 4:7-11]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

  그동안 우리는 삶에서 예수를 만나고 고침을 받고, 그 후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우리 안에 영접되는 과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이것은 구원의 과정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약자인 FaSS과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 과정을 통과하면 하나님과 하나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나 온 죄인이 예수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화목하여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우리는 아직 하나님과 분리되어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는 생명의 풍요로움이 없습니다. 물론 형제를 사랑하고, 형제를 낫게 여기고, 판단하지 말라고 해도 그것들을 행할 수 없습니다. 사랑한다고 해도 위선적인 것일 수밖에 없고, 낫게 여기라고 해도 앞에서는 웃고 뒤에서는 우습게 여깁니다. 판단이 샘솟듯 올라오는데 어떻게 판단을 금할 수 있겠습니까? 당연히 이런 상태에서 하나님의 명령들을 제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그런 명령을 주신 하나님께 속으로 '왜 나만 이렇게 못살게 하고, 왜 나만 틀렸고 잘못했다고 하느냐'는 원망이 자신도 모르게 흘러 나오게 됩니다.  
  이런 우리가 하나님과 하나가 되면, 이제 생명의 풍요로움이 넘치게 됩니다.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사랑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게 되고, 그 많은 하나님의 명령들을 행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길은 오직 예수를 만나 고침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의 영을 우리 안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주신 모든 계명들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오직 예수에 의해서 이 엄청난 일이 우리에게 가능해 지는 것입니다.

  요한은 본문을 통하여 하나님과 하나 되는 것, 바로 이것을 말하고 합니다.  
  본문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한다. 이와 같이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다. 
  하나님의 사랑은 이렇게 우리에게 나타난다. 즉 독생자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시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여 아들을 보내셨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셨은 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서로 사랑할 수 있는 길을 보기를 원합니다. 

서로 사랑하자

[요일 4:7-8] 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은 그의 교인들을 보고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도 설교를 듣다 보면 자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라는 말을 듣습니다. 때로는 "저는 여러분을 진정으로 사랑합니다" 라고 하기도 합니다.
  다, 진심으로 진정을 가지고 사랑한다고 하는 말씀이십니다. 그러나 과연 그 말이 요한이 말과 같은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같은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만 천지차이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요 13장 34-38절 이하에서 베드로는 예수님으로부터 서로 사랑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이때 그는 자신은 사랑할 수 있고 주를 위해서 목숨을 버리겠다고 합니다. 물론 이것은 그의 진심이고 진정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베드로가 닭 울기 전에 세 번 예수를 부인하리라고 하셨고, 과연 그 말씀대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당시 베드로가 가지고 있던 사랑은 하나님의 아가페 사랑이 아닙니다. 인간에게서 나는 자기식 사랑이었던 것입니다.

  지금 요한은 오순절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으로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베드로도 오순절 성령세례 때 요한과 같이 참다운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똑같은 사랑이라는 말이지만 말하는 당사자가 FaSS의 과정을 거쳤으면 아가페 사랑으로 말하는 것이고, 아니면 세상의 필로스 사랑으로 말하는 것입니다. 물론 성경은 항상 아가페 사랑이 우리에게 임하여야 할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요한이 아가페 사랑을 받은 자로서 교인들을 사랑하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어서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서로 사랑하자 왜냐하면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은 곧 하나님이 사랑이심을 알고 하나님으로부터 난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다는 것은 거듭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육으로 나서 이 세상에 왔고, 예수에 의해서 다시 한번 영으로 나야 합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됩니다. 이런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또한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에 의해서 하나님을 자신의 마음 속에 영접하여 하나님과 하나 된 사람을 말합니다. 이래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람이 사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 하나님을 아는 자는 공히 아가페 사랑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었기 때문에 이제 그 하나님의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얻게 됩니다. 사랑은 능력입니다.

  반면 사랑하지 않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우리가 사랑하려고 해도 안 되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해도 안 된다고 핑계를 댈 것이 아니라, 현실적으로 지금 사랑하지 않고 있으니 사랑하지 않는 자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사랑하고자 하는 마음과 진실성이 결여되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께로서 나지 못하고,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과 하나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 안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고 그래서 사랑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이 말씀의 뜻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하나님은 사랑이 풍성하시고 은혜로우시다라는 감상적인 의미가 아닙니다. 존재적인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존재이십니다. 따라서 사랑의 존재에게서는 사랑의 행함이 흘러 나옵니다. 우리도 사랑을 할 수 있으려면 사랑의 존재로 하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합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형상을 받은 존재가 되고, 사랑을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는 말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에 감격할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을 영접하여 우리도 사랑의 존재로 거듭나야 합니다.

  자 요한은 서로 사랑하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고자 한다면 먼저 하나님으로 나고 하나님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요한은 그 답을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오는 길

[요일 4:9-10]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10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이제 요한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 오는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세상에 보내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심으로 이루십니다.
  
  먼저 "하나님의 사랑"이란 하나님이 사랑하신다는 동명사적 의미가 아니라, 명사로서 하나님 자신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하나님의 영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우리에게 나타나신 바 될까요? 여기서 나타난 바 된다는 것은 우리 안에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나타난다는 의미는 이전에 예수의 나타내심을 통해 살펴 본 바 있습니다.

[요일2:28] 자녀들아 이제 그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 바 되면 그의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그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

  예수의 나타나심은 우리 안에 성령의 나타나심이고, 하나님의 나타나심이고, 하나님의 사랑의 나타나심이고, 거룩함의 나타나심입니다. 이것은 결국 하나님이 보내신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서 고침을 받고 그 분이 우리 안에 성령으로 임하게 됨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헬 :코스모스)이란 어떤 의미일까요?
  세상이란 우선 우리 눈에 보이는 이 피조된 삼라만상의 세상을 말합니다. 사람들의 눈에 공통적으로 보이는 객관의 세상입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는 피조된 객관의 세상을 보고 '나'의 마음 속에 투영된 세상을 말합니다. 이것은 '나'의 주관의 세상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주관의 세상은 곧 '나'라는 존재에 의해서 해석된 '나' 만의 세상이고, 이것은 곧 '나' 자신입니다. 따라서 세상이 이 세상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각자 개개인을 지칭하는 '나' 자신을 뜻합니다.
  요한복음 3장 16절도 지금 이 내용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따라서 여기서 "예수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말씀은 예수가 이천 년 전에 이 세상에 오셨다는 의미가 아니라, '나' 자신의 세상에 임하도록 하신 것을 말합니다. 
  이 예수가 결국 '나'를 구원하시고 살리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고치고 연단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게 하고 하나님과 하나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고 새 생명을 받아서 영원히 살게 됩니다. 또한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 우리가 그 사랑을 나타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사랑은 하나님께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대가로 무엇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떠나 온 우리에게는 애초에 사랑이라는 것이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의 죄를 없이하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여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이 계획하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대가가 아닙니다.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이같이' 란 어떻게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주심으로 살리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입니다. 요한은 우리가 이런 방식으로 사랑을 받았으니 우리도 또한 (그런 방식으로)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형제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고 그로 인하여 형제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산 자로 만드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흔히 형제를 사랑하는 것을 그들에게 빵을 나누어 주고 옷을 나누어 입고 감정적으로 애틋한 마음을 가지는 것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생각해 왔습니다. 그래서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는 물질적 구제와 봉사, 나눔을 최선의 목표로 삼고 그것을 자랑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사랑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전하고 그로 인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하여 살리는 것이 사랑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우리 교회에 와서 이 교회는 사랑이 없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생각하는 사랑이라는 것이 육신적인 의미에서의 사랑을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을 주고 받고 하면서 세월 보내는 교회는 참 진리의 교회가 아닙니다. 참다운 말씀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하고 그로 인하여 교인들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하나되는 역사가 일어나야 합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교인들에게 전이되는 역사를 일으키는 교회가 사랑을 실천하는 교회입니다.

  우리들은 인간적인 따뜻함과 배려를 사랑으로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에 미혹되지 맙시다.
  지금까지 예수에 의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게 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자는 이제 자연스럽게 형제에게 예수를 전파함으로 그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이런 사랑은 이제 의무감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포도나무가 포도열매를 맺는 것처럼 자연스럽고 또한 당연한 행함입니다.

맺는 말

  서로 사랑하자고 요한은 말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고 하나님을 알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래서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로서 난 자입니다. 하나님은 곧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를 보내셨습니다. 이 예수를 따라 나서면 죄사함을 받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새생명을 받습니다. 이 새생명이 곧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결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사랑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예수를 보내주심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보내 주십니다.

  그 사랑을 받으면 우리도 형제를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 사랑이란 육신적인 것을 나누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것처럼 동일하게 우리도 예수를 형제들에게 전하여 그들을 살리고,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자, 이렇게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이 됩시다. 



정 덕 영
목 사
자유교회

http://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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