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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눅 18:18-23]

페이지 정보

작성자 |admin 작성일 |10-10-23 18:38 조회 |4,106회

본문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눅 18:18-23] 18/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가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쫓으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인고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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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일전에 홈피에 ‘나는 내가 아닌 딴 사람’이라는 글을 올렸습니다. 아마도 많은 분들이 나는 나지 왜 나 아닌 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했고, 지금 이 순간에도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보다 거대한 자(사단)의 손에 잡혀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합니다
. 그래서 나는 항상 똑바로 본다, 완전하지는 않지만 나름대로 의롭다, 나는 사랑하려고 하면 사랑할 수 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교회 다니며 신앙생활도 하고 또 그런 삶을 살아갑니다.
요한복음에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과 대화할 때, 예수가 그들이 보지 못하는 소경들이라고 하니, 그들이 우리도 소경인가? 라고 말하는 장면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이 바리새인들은 곧 지금 예수 믿는 우리의 마음을 대변합니다. 내가 이렇게 선한 마음을 가지고 교회 나와서 주님을 믿는데, 내가 선을 알지 못하고 악을 행한다는 말이냐, 사단에 사로잡힌 자라는 말이냐 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계시한 대로 우리 인생은 이 땅에 소경, 즉 죄인으로 옵니다. 그리고 이것은 진리이기 때문에 여기서 예외인 사람은 하나도 없습니다. 날 때부터 소경이기 때문에 자신이 소경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합니다. 소경인 채로 선행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고침 받아 눈을 뜬 내가 나의 본 모습이고, 소경인 나의 모습이 바로 내가 아닌 딴 사람으로 사는 나입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하기 이전에 눈을 뜨는 것이 우선입니다.
우리는 교회 나왔을 때 이미 예수를 주로 고백했으니 구원 받았고 죄 사함 받았으니 천국도 갈 것이고 눈을 떴으니 잘 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제 남은 것은 주님을 위해서 열심히 봉사만 하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소경이 눈뜨고 거듭나는 것이 그렇게 ‘마법처럼 일순간’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참다운 주님을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야 하고 그 분으로 인하여 긴 세월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자신이 소경인 줄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 반면 앞서 말씀드렸던 세리와 같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고 주님께 인도함 받는 과정에서 죄에 사로 잡힌 모습이 드러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자기자신은 선한 일을 하려 했으나 행동이 악하게 흘러나오는 것에 대해 알지 못하다가 지적을 받고서야 알게 되는 현상이 반복됩니다. 실로 우리를 잡고 있는 자는 얼마나 거대한지 처음에는 자신이 원치 않는 행동을 한다는 것 자체를 알 수도 없습니다. 말씀에 의해 지적 받고 깨달아야만 조금이나마 자신의 악한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자신의 모습을 조금이라도 보게 된 자는 스스로 어찌 할 수 없는 더러운 죄에 매인 자신의 모습에 갈등하고 곤고해 합니다.
이렇게 보게 된 자는 그래도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를 고치시기 위한 과정에서 드러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하고, 자신은 아름답고 잘났고 내세울 것이 있다는 교만한 자는 벌거벗은 모습 그대로 많은 형제들 앞을 휘젓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런 자들은 주님의 긍휼을 입어서 하루속히 자신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개요

이번 말씀은 잘 아시는 내용입니다. 한 부자가 예수께 와서 선한 선생이여 내가 무엇을 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까? 질문을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 보고 선하다고 하지 말라, 선한 분은 오직 하나님뿐이시라고 하신 후, 생명을 얻고자 하면 율법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청년은 그런 율법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지켰다고 합니다. 그랬더니 예수님은 네가 한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라. 그러면 하늘 보화가 네게 있을 것이니, 그리고 나를 쫓으라 하시니, 이 사람이 큰 부자인 고로 심히 근심 하였더라 는 내용입니다.
 
이번 편에서는 눅[18:18~22]의 전반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전반부만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한마디로 소경이 제대로 된 선을 행할 수 없고, 죄인이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영생을 얻을 수 없다는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함께 보시겠습니다.
 
2. 본문 강해

2.1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눅 18:18)
18/ 어떤 관원이 물어 가로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어떤 관원이 예수께 여쭈었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이것은 모든 인생이 가지고 있는 질문입니다. 이 세상은 자신이 원하는 대로 되는 일이 별로 없고 물질의 어려움과 육신의 질병 때문에 슬픈 일이 많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었길래 이런 세상에 태어났는가 하는 한탄을 합니다. 이처럼 이 세상은 누구에게나 힘들게 다가옵니다. 이러하니 모든 인생들은 마음 속에서 새로운 세상을 사모하는 마음을 가지게 됩니다.
지금 이 관원이 말하는 영생도 새로운 세상을 말하는 것입니다. 지금의 이 삶이 만족스럽지 못하니 온전한 삶을 찾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온전한 삶의 세상은 영생의 세상이고, 곧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자, 무엇을 하면 이 힘든 세상에서 벗어나서 저 새로운 영생의 세상으로 갈 수 있을까요? 그에 대한 답을 우리는 이미 잘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말을 믿고 교회에 나와서 예수를 믿습니다. 열심을 낸 사람들은 자신이 열심을 냈으니 그로 인하여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런 식으로 영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습니다.

언젠가 신학교에 가서 세미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잃은 양의 비유에 대해서 한 두 시간에 걸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잃은 양은 교회 다니다가 안 나오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잃은 양이 되어야 천국에 간다고 했습니다. 듣고 있던 한 분이 말씀이 끝난 후에, 분에 찬 목소리로 “성경을 왜 그렇게 어렵게 해석하느냐?” “그냥 읽히는 대로 쉽게 읽으면 되지 않느냐?”고 하시면서,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내가 잃은 양이 될 수 있느냐?” 하고 질문했던 분이 생각납니다.
이 질문은 바로 이 관원의 질문과 같습니다. “내가 무엇이든지 할 수 있으니까 말만 해라, 내가 그렇게 하겠다”는 아주 솔직 담백한 표현입니다. 그러나 이런 행동으로, 또는 이런 말로 자기 자신이 표현되는 동안에는 잃은 양이나, 세리나, 어린 아이가 될 수 없습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라는 말에는 근본적인 모순이 있습니다. 흔히들 “무엇을 하여야...”라고 생각합니다. 틀린 답은 아니지만, 그것보다 더 근본적인 모순이 되는 표현은 “내가” 입니다. 그 무엇을 하려는 “내가” 누구입니까? 사단에 잡혀 있는 자로서, 거라사의 귀신들려서 벌거벗고 자신의 몸을 해하는 자이고, 중풍병자로서 들 것에 실려갈 일 밖에 없는 사람이, 무슨 선행을 하고, 구제를 하고 봉사를 한다는 것입니까? 사단에 사로잡힌 자신의 실상을 몰라서 이런 질문을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치기 위해서 우리를 드러내실 때, 죄에 찌든 자신의 모습을 본다면 그 흉악함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보지 못 할지라도 영적인 눈이 뜨여 이런 모습을 볼 수 있는 사람은 그 더러움과 추악함을 차마 입으로 표현하지 못 할 지경입니다. 어떤 분은 그런 모습을 보고 몸 져 눕기까지 합니다. 보는 차원은 다르지만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 할 때, 주님께서 은사 자들의 눈을 열어서 사람의 속마음을 잠깐 보여주실 때, 그 마음이 심히 부패한 것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으실 것입니다.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이런 이들이 스스로 무슨 성경 말씀을 행하고, 선을 행하겠다는 것일까요? 우리가 영적으로 눈이 멀어서 모르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자신이 눈을 떠야 하고 고침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를 고칠 때 필연적으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의 죄인 됨입니다. 수술할 때 그 암세포가 드러나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 원리입니다. 주님은 우리를 보이지 않게 뚝딱 처리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에 의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하게 되는 과정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즉, 예수 믿었다고 하루 이틀 만에 의롭게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큰 착각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예수 제대로 믿으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철저히 깨닫게 되고, 이런 죄인 된 체험을 전제로 고침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입니다. 아직 자신이 쓸만하고 아름답고 교양 있고 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 할 때는, 주님이 고치려고 손도 대지 못했을 때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고침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모든 것을 버리고 고침에 순종해야 진행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에 의해서 고침을 받고 죄사함을 받으려면 긴 시간이 걸립니다. 자기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다고 돌아 다니는 것에 지쳐서 황폐케 될 때까지 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자, 이 관원은 아직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을 때가 되지 않은 사람입니다. 자기가 무엇을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즉, 자신의 죄인됨을 아직 체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이제 이 관원이 질문을 함으로써 예수님과 대화가 진행되는데, 이 대화는 서로 소통이 되는 대화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관원의 육신적 질문과 예수님의 영적 대답이 평행선을 그리며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말씀을 잘 따라 나서서 육과 영을 구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2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눅 18:19)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자, 그 동안 제가 여러분에게 힘주어서 말씀 드리던 내용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선 선에 관해서 말씀 드립니다.

예수님은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다고 하십니다. 우선 선이란 무엇인가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선이란 단어를 자주 씁니다. 구제는 선하다, 헌금은 선하다, 사랑은 선하다, 평화는 선하다, 무소유는 선하다, 술 취해서 벌거벗고 있지 않은 것은 선하다는 등의 선을 정의해 놓고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이런 행동을 하면 그 사람은 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칭찬하고 표창장도 주고 기념관도 세워 줍니다. 이것은 결국 세상 선을 기준 삼아 그 행동을 한 사람을 선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 이것은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구제, 봉사, 헌금, 평화, 박애, 사랑을 행함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고 영생을 얻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 관원처럼 말입니다.
  이 관원은 예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불렀는데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불렀을까요? 그것은 세상 방식으로 생각해서, 예수가 죽은 자를 일으키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켜 사람들에게 밥을 먹이고 문둥병자 중풍병자를 고쳐 일으키는 선행을 했기 때문에 선한 선생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사고방식은 비 진리이고, 거짓이라는 것은 조금만 생각하면 명확히 드러납니다. 예를 들어서 바리새인들은 구제했고 도적질 하지 않았고, 기도했고 금식했고 세리와 같지 않았고 악한 짓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 예수님은 이들을 선하다고 했을까요? 화있을 자요, 독사와 마귀의 자식이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이 정해 놓은 선에 의해서 행동을 한다고 그 사람이 선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는 선한 행동이란 세상에 있는 선의 기준에 맞추어서 그것을 행했기 때문이 아니고, 오직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야 한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선을 행하고 선한 사람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행할 때에라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이 말씀이 이해가 가리라 생각합니다. 바리새인들의 구제와 금식과 기도와 헌금을 비롯하여, 세상 사람들이 선행이라는 이름 아래 얼마나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악한 행동을 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입니다. 정치인들이나, 종교인들이나, 가르치는 선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모든 사람들의 선행에는 그것을 빌미로 다른 더 큰 세상 것을 챙기려는 계산이 숨어 있는 것입니다. 이런 종류의 선행을 욥기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욥이 까닭 없이 여호와를 경외하리이까?” 욥이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그 경외 자체를 위해서 그런 행동을 하는 것이겠습니까? 그것으로 인하여 세상에서 자손의 번창과 부귀영화를 마음에 두고 그러는 것 아니냐고 하는 것입니다.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지 않은 선행은 다 흑심이 숨겨져 있을 수 밖에 없고, 그것은 이 세상의 선 즉, 비 진리의 선이고 악입니다.

부자 관원이 예수께 선한 선생이라고 하니까, 예수님은 자신이 선하지 않은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선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예수 안에 선이신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이 선하지 않다고 하신 것일까요? 그것은 육신을 입고 있는 자신 안에 선이신 하나님이 계셔서 선한 이가 되었음을 우리에게 계시하는 것입니다. 이 계시는 “너희 안에 선이신 하나님을 가지게 되면 스스로는 선하지 않지만 선이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하다”는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예수 안에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선하셔서 그에게 하나님의 영광이 보이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것입니다.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예수님은 이 말씀을 하심으로 관원에게 영생을 위해서 선한 일을 찾아 헤맬 것이 아니라,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찾으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물론, 그 하나님은 관원 스스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께서 그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선을 행하려고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보고 따라 나서면 최종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그래서 선한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임하는 것이 영생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한 말은 다음 부자 관원의 말로 확인이 될 것입니다.

2.3 계명을 지키라 다 지키었나이다 (눅 18:20-21)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선한 분은 하나님 한 분이라고 하심으로 선의 근원을 하나님으로 말씀하시고 이어서 계명을 지키라고 관원에게 말합니다. 우선 예수님은 이 말씀을 통하여 선행을 하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이것의 비 진리성은 이미 말씀 드렸습니다. 그렇게 선행을 한다고 해서 선해지고 영생을 얻는 일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의 기록인 성경 말씀도 계명 그대로의 겉 뜻을 전하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숨은 뜻이 있는 것입니다.
그 숨은 뜻으로 주님은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숨은 뜻은 무엇일까요?

모든 성경 말씀이 그러하듯이 이 말씀도 하나님과 우리 관계에 관한 내용입니다.
간단히 말씀 드리자면,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살아 계신 주님의 인도함을 받고, 하나님 아닌 다른 씨인 세상의 윤리도덕을 받지 말라는 의미이고, 살인하지 말라는 것은 영혼을 살리는 능력을 가진 복음을 율법으로 전함으로 죽은 자를 살리지 못하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도적질이란, 복음의 말씀을 율법으로 전하여 사람의 마음을 하나님께 돌리지 못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빌어 자신에게로 돌리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또한 거짓 증거하는 것입니다.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 곧 영의 부모이신 하나님을 공경하지 않는 것입니다. 결국 이 모든 말씀은 선이신 하나님과 하나 되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말씀을 세상 법처럼 인간 계명으로 쉽게 읽고 행하려 하는 것입니다. 세상 법은 당연히 그렇게 지켜야 하겠습니다만, 하나님의 말씀을 인간 계명으로 변개 시키는 자는 바로 간음하는 자요, 살인하는 자요 도적질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이 관원은 우선 세상에서 선한 일을 하면 그로 인하여 선하게 된다는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그냥 율법적인 의미로 이해를 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그는 자신의 세상 선행을 자랑하고자, 확인 받고 칭찬을 받고자 예수께 나왔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께서 계명을 지키라고 하니까, 나는 그것을 어려서부터 지켰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는 서로 동문서답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계명을 지키라는 말씀을 “예수를 따라 순종하여 네 안에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임하게 하라”는 의미로 말했습니다. 그러나 이 관원은 “열심히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 이렇게 알아 들은 것입니다.
자 우리는 이 대화를 보면서 예수님이 뜻하는 바, 즉 말씀의 영적 의미를 제대로 따라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이 관원의 말만 이해가 됩니까? 아니면 이 둘이 서로 혼돈이 되고 있습니까?
이후의 말씀은 다음 편에 계속해서 말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3. 맺음말

우리 인생은 무엇이든지 행동을 하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는 우리가 아닌 딴 사람이기 때문에 이 상태로는 무엇을 하긴 하지만, 그것은 악합니다. 따라서 우리 자신이라는 존재를 제대로 보아야 하고, 그래서 고침을 받는 것이 우선입니다. 그래서 예수로 인하여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남은 인생을 살 때 우리는 선한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 말씀은 우리에게 무슨 선행을 하라는 기록이 아닙니다. 우리가 선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에 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과 하나되는 길은 구원자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우리를 인도할 것이고 오직 우리는 그 인도함에 순종하여 따라 나서는 것입니다. 그러면 영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 주님을 만나서 인도함을 받고 이 영광의 나라에 들어가실 수 있기 바랍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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