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곧 보게 되어 예수를 쫓으니...[눅 18:3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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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11-01-20 21:04 조회 |5,654회본문
[눅 18:35-43] 35/ 여리고에 가까이 오실 때에 한 소경이 길 가에 앉아 구걸하다가36/ 무리의 지남을 듣고 이 무슨 일이냐고 물은대37/ 저희가 나사렛 예수께서 지나신다 하니38/ 소경이 외쳐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39/ 앞서 가는 자들이 저를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저가 더욱 심히 소리 질러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42/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쫓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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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한 해 동안 뿌리고 가꾸고 해서 그 결실을 맺어 추수의 기쁨을 맞보게 되는 절기입니다. 추수감사절의 유래는 유럽에서 신대륙 미국을 찾아 건너 온 이들이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그곳에 씨를 뿌리고 갖은 고초와 난관을 거치고 돌본 후에 수확을 처음으로 거두게 되었습니다. 그 수확에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으로 절기를 정하여 지키게 된 것입니다. 모진 역경과 고난을 겪은 후의 수확이라 더욱 더 값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든 수확이라는 것은 그것을 거둘 때까지의 우리의 노력과 견딤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봄에 씨를 뿌리고 심은 것이 자라는 것은 자라는 것이지만, 물이 끊이지 않게 대주어야 하고 돌을 골라내고, 잡초를 뽑아 주어야 하고 가시덤불을 제거하는 수고를 해야 비로소 가을에 추수를 기대할 수 있고 수확의 기쁨을 맛보게 됩니다. 뿌린 후 내 버려 두고 다른 곳에서 잠자고 있다가 와 보면, 염소가 뜯어 먹어버렸거나 벌레가 먹었거나, 또는 잡초가 무성해서 어디에 자기가 심은 씨가 자라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열매도 거두어 들일 수 없습니다.
우리도 한 때 주말 농장에서 고구마를 심었었는데 그냥 심어 놓으면 혼자 스스로 자라려니 생각했는데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고구마보다 잡초가 더 자라서 고구마는 보이지 않았고 한번 심어 보는 재미로 간 사람들이라 실제로 가서 잡초를 뽑아 주지도 않았습니다. 제대로 고구마 수확이 될 수 없었던 것은 당연합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영혼의 추수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마음 땅에 예수그리스도의 씨가 뿌려지면, 우리는 모든 정성과 힘을 다해서 그 생명이 자라서 열매를 맺게 해야 그 결과로 추수의 기쁨을 누릴 수 있고 그리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씨가 마음에 뿌려져서 생명이 약동하는데도, 말씀을 들으려 열심을 내지 않고, 따뜻한 집 안에서 누워 잠자거나 자식들 하고 놀다 보면, 남들은 추수하느라고 기뻐할 때에 자신이 심었던 씨는 무성한 잡초에 가려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 없을 것입니다. 이와 같이 오늘 자신의 생명을 잘 가꾸고 소중히 여기는 자만이 내일의 추수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개요
이 여리고의 소경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만나기 위해서 모든 열심을 내었습니다. 그는 지나가는 예수를 놓치지 않고 나사렛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소리쳤고, 그 소리에 앞서가던 자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니 더욱더 큰 소리로 예수를 불렀고, 그결과 그는 예수 앞으로 와서 질문을 받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그가 보기를 원한다고 하니,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니, 곧 보게 되어 예수를 따랐고, 백성들이 이를 보고 다 찬양하였다는 기록입니다.
이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은 영적으로 보면 구걸의 세상에서 죄인으로 살던 자가 자신의 죄악 된 인생에서 벗어나기를 원했고 그래서 그는 핍박과 연단을 견디어 낼 수 있었습니다. 그 결과 거듭나서 새로운 시각으로 세상을 살게 되고, 그로 인하여 주위 사람들이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도 소경처럼 눈을 뜨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또한 나의 한 영혼이 추수되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 이어서 오늘 말씀을 같이 보시겠습니다.
2. 본문 강해
2.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눅 18:40-41)
40/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명하여 데려오라 하셨더니 저가 가까이 오매 물어 가라사대 41/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가로되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자, 우리는 여기서 이 소경이 예수를 만나 예수와 하나가 되는 과정을 한번 봅니다. 이 소경이 나사렛 예수가 지나신다는 소문을 듣고, 그 예수에 모든 것을 걸고 몸을 움직여 따라 나섰습니다. 다시 말해서 자신 인생의 모든 것을 예수 만나는 것에 건 것입니다. 지체하다가는 예수가 지나가고 놓칠 수 밖에 없다는 급한 마음에 자신의 밥벌이 수단인 깡통이 발에 차이든 뭐하든 그냥 그렇게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예수를 찾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이 여리고 소경이 소문을 듣고 예수를 따라 나설 때, 그는 자신의 눈이 예수로 인하여 떠질지 아니면 그렇지 않을지를 모릅니다. 왜냐하면 아직 자신이 예수에 의해서 눈을 뜨게 된다는 사실이 자신에게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소문을 듣고 눈을 뜰 수 있다는 소망과 믿음으로 모진 풍파와 핍박을 무릎 쓰고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선 결과입니다. 그리고 예수 앞에 서게 되면 신앙고백을 하게 되는데, 그것이 자신의 눈을 뜨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가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 소경이 “내가 옆 안마사에게서 꾼 돈이 있는데 그것을 갚고, 내가 이제 구걸하는 삶 그만 살게 물질을 허락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다른 각설이들한테 핍박을 많이 받았는데 그들이 나를 괴롭히지 못하도록 해 주십시오.” 이렇게 말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찾아 나서는 동안에는 그럴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만, 핍박과 연단을 거친 후에 예수 앞에 왔을 때는 오직 하나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라는 대답을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의 모든 것 중의 모든 것인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이 그것입니다.
지금 소경의 이런 모습은 제자들의 경우로 치면 언제이겠습니까? 그것은 제자들이 예수를 처음 만나서 그 예수를 고기를 잘 잡게 하여 먹고 입을 것을 해결해 줄 사람, 원수를 갚아 줄 사람등 여러가지 목적으로 모든 것을 버리고 따라 나섰을 때입니다. 바로 소경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따라 나서고자 할 때입니다.
[눅 5:8-11] 8/ 시몬 베드로가 이를 보고 예수의 무릎 아래 엎드려 가로되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니9/ 이는 자기와 및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고기 잡힌 것을 인하여 놀라고 10/ 세베대의 아들로서 시몬의 동업자인 야고보와 요한도 놀랐음이라 예수께서 시몬에게 일러 가라사대 무서워 말라 이제 후로는 네가 사람을 취하리라 하시니 11/ 저희가 배들을 육지에 대고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쫓으니라
보시는 바와 같이 제자들도 자기들의 생계 수단인 배와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를 급히 따라나선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들은 예수께서 자신에게 무엇을 줄지를 몰랐습니다. 무작정 좋은 것을 줄줄 알고 따라 나섰습니다. 그리고 삼 년 반이란 세월 동안 예수에 의해서 연단 받고 훈련을 받고 예수가 주는 환경에 핍박을 받았을 때에 잘 견디고 예수를 놓지 않고 따라 나설 때입니다. 마치 소경이 잠잠하라는 주위 사람들의 제지를 받고 집으로 뒤돌아 가고 싶은 마음을 꾹 누르고 예수를 끝까지 따라 나선 모습이고, 이들도 결국은 최종적으로 “내가 네게 무엇을 해 주기를 원하느냐?”는 주님의 질문을 받습니다.
이것은 베드로 자신이 죽기까지 예수를 따르고 예수님이 말하는 아가페 사랑을 할 수 있다고 강력하게 말할 때, 주님께서는 네가 나를 죽기까지 따르겠느냐? 네가 오늘 닭이 울기 전에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에 과연 예수가 십자가에 잡히시던 그 날 밤 한 비자의 다그침에 의해서 자신도 모르게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합니다.
[마 26:6375] 73/ 조금 후에 곁에 섰던 사람들이 나아와 베드로에게 이르되 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74/ 저가 저주하며 맹세하여 가로되 내가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닭이 곧 울더라75/ 이에 베드로가 예수의 말씀에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이때 베드로는 자신이 진짜 소경이라는 것,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 예수를 따라 나서,“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했을 때는 뭐가 뭔지 몰랐었고, 예수에 의해서 연단 받고 지적 받고 하다 보니 최종적으로 죄인으로 드러나게 되고, 이때에서야 예수께서 질문하십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때 베드로는 주여 내가 소경이요, 죄인입니다. 주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하는 것입니다.
우리 중에도 여러분이 예수의 말씀의 소문을 듣고 따라 나선 것입니다. 자신이 소경이고 못났고 주님이 나를 고쳐 주어야 한다고 우선 인정을 하고, 소문에 따라서 움직일 때입니다. 그러나 이때 예수가 우리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하면 우리는 교회를 건축 해야 하겠으니, 물질 축복을 바랍니다. 내가 전도할 때 능력과 힘을 받아서 듣는 사람이 내 말씀을 듣고 회개하는 역사가 일어나게 해 주시고, 남들 위에 귀한 종으로 세워 주십시오. 이런 기도가 나올 것입니다.
아직 자신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은 이런 말을 들으면, 내가 예수 믿고 자유교회 나오면서 예상했던 것과 상당히 다르네요 하면서 마음의 보따리를 싸고, 자기 멋대로 신앙생활하며 더 이상 말씀을 따르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직 자기 잘났다고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주님에 의해서 연단을 받고 그래도 참고 다음 연단을 받고 또 견디어 내고 다음 연단을 받고 해서 고침을 받는 과정에서 고치고 또 고치고 드러나고 또 드러나면 종국적으로 우리는 정말 밑도 끝도 없는 무저갱에 갇힌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최종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친 다음에 우리가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소경 된 모습을 보게 된 그때에 예수께서 묻습니다.
“내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이때서야 비로소 우리는 “주여 내가 보기를 원합니다” 이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순수한 위선 없는 고백입니다. 결국 주님을 멋모르고 따라 나서고 보면, 최종적으로 하는 고백이 바로 “나는 죄인중의 괴수이다”는 고백이 나오고, 그 시점이 우리가 구원 받는 시점입니다.
이렇게 온전히 고침을 받기 이전에는 죄인이요, 소경이라고 해도 저 마음 한구석에는 “내가 죄인이냐? 힘을 내면 예수를 도울 수 있고 교회를 도울 수 있다. 이 정도까지 한 것도 내가 얼마나 교회를 도왔느냐?”이렇게 생각하는 것이고 이런 자들이 아직 하나님 앞에서 교만하고 오만하고 거만한 자들인 것입니다. 자기가 오만한 자인 것을 모르는 것이 이들입니다. 주님의 인도함을 받고 더 열심을 내어 따르다 보면 주님이 너는 죄인이라고 안 해도 스스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라는 고백을 하게 됩니다. 그때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2.2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눅 18:42)
42/ 예수께서 저에게 이르시되 보아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매
예수께서 소경의 눈을 뜨게 해 주시면서 하시는 말씀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십니다. 자 예수께서 생각하시는 소경의 믿음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소경에게 어떻게 해서든지 더 좋은 삶을 살고자 하는 소원이 있었고, 그 소원을 찾아서 예수를 따라 나선 것입니다. 도중에 좌절과 아픔이 있고 슬픔과 연단이 있지만, 그래도 지금 보다 더 나은 삶을 살고자 열심히 주를 따른 것입니다.
제자들도 마찬가지로 처음 예수를 만난 이후 모진 아픔과 마음이 찢어지는 소리를 들어도 그래도 돌이켜서 예수를 따랐습니다. 알아서 따른 것이 아니라 그냥 예수 곁에 있기를 원했고 책망 받으면 돌아섰다가도 또 회개하고 따랐습니다. 그 결과 이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들에게 너희 믿음이 너희를 구원하였고 눈을 뜨게 했다는 것은 이들이 처음에 잡은 것을 놓지 않고 끝까지 따라 나선 결과로, 주님께서 그들을 고칠 수가 있었고 그들은 눈을 뜨고 죄 사함을 받았고 그래서 믿음의 소유자들이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말씀이신 예수의 인도함에 따라 물질도 자기의 능력 범위를 넘어 드리고, 아픈 소리를 들어도 다시 와서 고침을 받기를 원하고 해서 지금까지 따라온 사람은 따라온 그만큼 자신이 고침을 받고 눈을 조금씩 뜨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따라 나섬의 길이 온전히 마칠 때, 그 사람의 눈은 온전히 뜨게 되고 온전한 죄 사함을 받고 참된 믿음의 소유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 모든 과정을 순종하는 것이 주님의 말씀의 씨를 마음에 받아 그것을 열심히 가꾸는 모습입니다. 마음 밭에서 돌과 자갈을 제거하고, 공중의 새에게 빼앗기지 않고 헛된 생각하지 않도록 마음을 지키고,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이 스며들지 못 하도록 하며, 또한 스며 들어서 주님을 배반하였으면 다시 회개하고 따라 나서는 것이 바로 이 소경과 예수의 제자들과 예수의 제자들이 될 우리들이 가고 있는 길이고 보이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 종국은 구원이고 눈을 뜨는 것이고, 그것이 곧 우리의 영혼이 추수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려야 할 추수 감사는 바로 이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예수가 지나가는 길목에 있는 소경들이 다 예수를 만나서 고침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여리고 소경이 우리에게 보이는 본은 이렇게 해야 고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따라 가는 길에 자신에게 연단이 있고, 물질적 손해가 있을 것 같으면 오래 생각할 것 없이 불평에 불만을 하면서 그 장애물을 탓하고 있는 많은 소경들을 봅니다. 이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뿌려진 생명의 씨앗을 자라게 하지 않고, 가꾸고 돌보지 않는 자들입니다. 돌보라고 그렇게 말을 해도 스위치를 꺼놓고 정신 나가서 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참으로 말씀이 이렇게 폭포수 같이 쏟아 부어지는데 어떻게 그렇게 귀를 막고 있는 것인지... 어떻게 그럴 수 있는 지 논문을 쓰면 박사학위 감일 것입니다. (논문제목: 생명의 말씀을 기껏 듣고도 죽는 법) 이들은 나중에 남들이 다 추수할 때, 그들에게 곡식 하나 얻어 먹으려고 찾아가야 할 형편일 것입니다. 같이 출발했는데 남들은 추수해서 기쁨을 누리고 먹는데, 그 자리에 또 다시 거지꼴을 하고 찾아 다니며 구걸해야 하는 입장이라는 것입니다.
2.3 곧 보게 되어 예수를 쫓으니... (눅 18:43)
43/ 곧 보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를 쫓으니 백성이 다 이를 보고 하나님을 찬양하니라
소경은 예수의 소문을 듣고 따라 나선 것을 시작으로 고침 받기 시작했고 예수 앞에 왔을 때는 이미 완전히 고침을 받은 때이므로 이때 이가 만나서 고침을 받는 예수는 성령이시고, 이는 결국 소경에게 예수의 재림에 해당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를 만났을 때 그에게 예수가 믿음을 본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눈을 뜨게 되어 새로운 세상, 곧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됩니다. 이렇게 되니 그는 하나님을 제대로 볼 수 있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존재가 된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유일한 길은 예수를 따라 나서 순종하여 우리가 눈을 뜸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로 드리는 것입니다. 어떤 행위 하나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씨를 받아서 가꾸고 온전한 열매를 맺어 수확하게 되었을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무슨 이상한 짓 하려고 하지 마십시오. 지금 여러분께 말씀 드리자면 주님의 인도함을 받아 온전히 순종하고 고침의 길로 가는 것이 영광 드리러 가는 것입니다. 오직 제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소경은 고침을 받고서 예수를 쫓았습니다. 처음 소문을 듣고 예수 앞에 올 때는 물론 예수를 쫓았지만, 그것은 자신이 눈을 뜨기 위한 과정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과정에 있다면 있는 것인데, 그저 남을 어떻게 가르치고 훈계하려고 하다가 세월 만 보내는 사람이 있습니다. 고침을 다 받고 예수가 자신 안에 성령으로 임해서, 즉시 보게 된 후에야 예수를 이 소경처럼 따를 수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따른 다는 것은 졸졸 따라다닌다는 의미 이외에, 예수가 살았던 삶, 예수의 생명으로 자신의 영혼이 거듭났기 때문에 그 생명으로 사는 삶 자체가 바로 예수를 따르는 삶입니다. 이것이 영혼이 수확된 자들의 모습입니다.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은 제자들이 예수가 죽고 부활 승천했는데도 이들은 오순절 이후에야 제대로 예수를 쫓았던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도 이제 예수에 의해서 고침을 받는 이 길에 모든 것 무릅쓰고 잘 견디어 이 길을 다 가게 되면, 예수의 생명으로 예수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우리 마음 속에 씨앗으로 떨어져서 예수의 열매를 우리 안에 맺게 된 결과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예수로 인하여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 수확하게 하신 것입니다.
3. 맺음말
예수를 만난 후 우리의 입에서는 눈을 뜨기를 원하고 죄사 함 받기를 원한다는 고백이 나옵니다.
그런 사람으로 우리를 만들어 가실 텐데 이 과정에서 온전히 딴 생각하지 말고 주님을 따라 나서 고침을 받으면,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하실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 바울, 요한과 같이 이때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나라에 추수되는 때이고, 이때 우리는 남은 인생 비로소 예수를 따르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소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초대교회의 역사가, 죽은 자가 살아나는 역사가 이 자유교회에서 지금 일어나고 있습니다. 물리적 추수 감사절에 먹을 것과 입을 것 주신 주님께 감사 드리십시오. 그리고 동시에 영혼의 추수를 위해 우리를 이끄시는 주님께 더욱 더 순종하여 영혼의 추수감사를 속히 드릴 수 있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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