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1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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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admin 작성일 |23-01-20 17:03 조회 |909회본문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뇨?
[고전 1:13-15]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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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세례란 침례라고도 하며,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대로 집례자의 인도에 따라 자신의 몸을 온전히 물에 잠기도록 했다가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런데 세례를 줄 때 항상 침례탕이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약식으로 머리에 물을 뿌리는 것으로 대체하기도 합니다. 정식교인이 되려면 이러한 세례식을 거쳐야 하고 임직도 세례를 받아야 맡을 수 있는 것이 교회의 일반적 규정입니다.
이러한 물 세례는 그 자체로 어떤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행위로 우리에게 그것의 실체를 보여주기 위한 모형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례 집례자에 의해서 물 속에 잠겼다가 다시 일어나는 이것은, 우리의 죄악된 옛사람, 즉 옛생명이 예수가 주시는 말씀의 물에 잠겨서 죽고 다시 일어나 새 생명으로 부활하여 살 것을 보여주는 그림자입니다.
요한복음의 기록에서도 보면 예수께서도 이러한 세례를 베풀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요 3:22] 이 후에 예수께서 제자들과 유대 땅으로 가서 거기 함께 유하시며 세례를 주시더라
[요 3:26] 저희가 요한에게 와서 가로되 랍비여 선생님과 함께 요단 강 저편에 있던 자 곧 선생님이 증거하시던 자가 세례를 주매 사람이 다 그에게로 가더이다
예수께서 이러한 물세례를 주신 것은 말씀으로 제자들의 세상생각, 죄의 생각들을 십자가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진리의 생각으로 바꾸어 구원하실 것, 즉 영적 세례를 미리 보여주는 예표입니다.
지금 우리는 실체의 세례 과정 중
지금 여기에 있는 우리는 물 세례의 실체적 과정이 진행되고 있으며, 말씀의 물에 의해서 세례를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매번 말씀으로 인한 세례를 받을 때마다 그만큼 우리 자신의 생각이 바뀌고 새롭게 되는 과정에 있습니다. 이러한 영적 세례는 각자의 구원의 때, 즉 그리스도의 생각이 자신 안에 온전히 나타날 때에 완성됩니다.
물세례와 영적 세례
성경에서는 이러한 물세례와 영적 세례가 교차적으로 사용되고 있으며, 오늘 바울의 말씀을 이해하려면 이러한 물리적 물세례와 영적 말씀 세례를 구분할 수 있는 바탕에서 가능합니다.
개요
13/ 너희가 바울파, 아볼로파, 게바파, 그리스도파로 파당을 짓고 있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가 나뉘었다는 의미이다. 바울이 어찌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다고 생각하고 행하느냐?
14/ 내가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세례를 주지 않았다.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도 셰례를 준 기억이 없다.
15/ 이들 이외에는 내가 세례를 주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
16/ 왜냐하면 이로써 아무도 내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기 때문이다.
나눌 말씀의 주제
1) 지난 시간 말씀을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를 간단히 정리하고,
2)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는 말씀의 의미를 볼 것이고,
3) 바울이 왜 소수의 사람에게 세례를 주어서 감사하다는 의미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2. 본문
2.1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 (고전 1:13)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지난 주일 말씀을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뉨
그리스도가 나뉘었다는 것은 한 그리스도를 보는 각 교인들의 눈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자신이 생각하고 알고 있는 그리스도가 각각 맞다고 주장하게 되고 그래서 서로 분쟁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고린도교인들이 분파를 지어서 다투는 일을 그치려면, 분당의 행위를 하지 말고, 그리고 서로 다투지 말라고 한다고 해서 될 일이 전혀 아닙니다. 바울은 오직 이들 각자가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제대로 알도록 자라면, 각자가 같은 한 그리스도를 알게 되고, 그렇게 되면 분파와 다툼이 없어진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라나?
그렇다면 이 고린도교인들은 어떻게 자라나게 되는 것일까요?
그것은 지금 바울이 하는 이 말씀을 잘 듣고 분쟁의 문제의 본질을 깨달아 알게 되는 자들은 스스로 분쟁에서 빠져나 올 것이며 그만큼 더 장성한 분량으로 그리스도를 알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바울이 고린도교인들에게, 또는 우리 교인들에게 자라도록 해주는 생명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울의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바울은 “너희가 생각하고 알고 있는 바울은 육신대로의 바울이기 때문에, 너희는 필경 바울파를 만들고, 아니면 아볼로나, 게바파를 만들게 되어 있다. 즉, 너희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육신의 바울만을 알지 그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잘 알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이렇게 바울을 육신의 바울로만 알고 있는 너희의 모습은 ‘바울이 너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 바울을 따를 때, 육신의 바울대로 따르지 말고,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믿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점차 너희도 바울이 전하는 그리스도의 말씀, 즉 지금 이 말씀에 의해서 너희 어두움이 빛으로 변화되는 일이 일어나며, 그렇게 깨닫고 알고 변화된 만큼 너희는 그리스도의 생명 안에서 자라고 종국에는 너희 중에 각각의 그리스도가 한 그리스도로 통합되고, 그러면 분쟁 또한 자연스럽게 없어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이 ‘바울과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가 하나인데, 바울만 보고 있는 교인들이 바울파를 만들어서 당을 짓고 있는 것며, 정작 바울 안에서 고린도교인들을 키우고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로 인도하는 그리스도를 놓치고 있다는 깨우침을 주어 이들을 자라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서의 일
실제로 우리교회에서 지난 주일 이 말씀을 후, 화강, 목강을 통하여 다시 이 말씀을 같이 나누며 제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이 저를 보는 시각은 육신의 눈으로 보는 것이고, 그래서 저로부터 세상 것을 얻기 위해서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실로 저를 통하여 좋은 직분을 얻으려 한다거나, 저와 친밀해서 다른 성도 위에 군림하려고 한다거나, 저의 기도를 받고 세상 일이 잘되기를 바라는 목적을 가지고 열심을 내어 따르는 것이라고 했으며, 이런 열심은 구원의 필수적인 요소이지만 그러나 거기에서 그친다면 여러분은 육신의 제가 여러분을 위해서 십자가를 졌다고 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저를 올바로 보려면, 저와 여러분이 서로 생각이나 행동에서 상호 충돌이 일어나는 점이 있다면, 그 충돌부분이 바로 여러분에 제 안에 역사하시는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는 부분이니, 그 부분에서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어야 제가 소개하는 그리스도를 알게 되며, 그만큼 여러분을 위하여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이 말씀에 의해서 성도들이 자라는 것이며 이렇게 말씀으로 점차 우리는 장성한 그리스도를 알게 되는데, 이렇게 되면 우리 사이에는 한 그리스도만 있게 되어서 분파와 분쟁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지금 여기서 선포되는 이 생명의 말씀이 우리를 살리고 키우는 것임을 깨닫는 자들은 복됩니다.
이것이 지난 주일에 선포된 말씀의 정리된 내용입니다
2.2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 (고전 1:13)
13 그리스도께서 어찌 나뉘었느뇨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십자가와 세례는 같은 의미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는 이전의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박혔느냐?”와 같은 의미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우리를 새사람을 만들기 위하여 우리 옛사람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고 부활한 것과 우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분과 함께 옛사람이 세례를 받고 새 사람으로 부활하게 된 것은 같은 의미로 둘 다 예수에 의한 구원을 뜻합니다.
다음 성경 구절들에서도 세례를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말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골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롬 6:3-4]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이와 같이 바울은 우리가 예수와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는 것을, 우리가 예수와 연합하여 세례를 받고 다시 사는 것과 동일한 의미로 말합니다.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바울이 여기서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는 질문을 한 것은 이미 설명한 바와 같이 고린도교인들이 분파를 이루고 분쟁을 하는 것은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제대로 알지 못한 상태에서 ‘육신의 바울’, 즉 ‘우상바울’을 붙잡았기 때문입니다. 즉, 바울만 알고 바울이 중매하는 그리스도를 몰랐기 때문에 분파가 생긴 것입니다.
이런 이들의 모습은 바울을 자신들의 구세주로 알고 붙잡고 매달리는 것이기 때문에, “너희가 그렇게 분파를 이루었다는 것은 나 바울을 그리스도로 잘못 알고 따르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은 것이 아니지 않느냐?”고 깨우치는 것입니다.
제자들의 경우
이것은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이 육신의 에수의 인도함을 받던 3년 반의 기간 동안에 모두가 예수를 육신의 예수로만 알고 따랐습니다. 그래서 노중에서 자기들끼리 누가 크냐고 분파를 지어 논쟁을 했던 것을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막 9:34] 저희가 잠잠하니 이는 노중에서 서로 누가 크냐 하고 쟁론하였음이라
[눅 22:24] 또 저희 사이에 그 중 누가 크냐 하는 다툼이 난지라
제자들도 3년 반 동안 육신의 예수만 알았지 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했고 십자가 사건 이후 그들 안에 임한 그리스도의 영은 제자들이 육신의 예수만을 알고 분쟁하던 시대가 끝이 나고 그리스도의 영의 시대가 도래하여 새롭게 구원 받고 거듭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된 자들이 된 것을 뜻합니다.
지금 육신의 바울, 우상바울로 알고 따르는 고린도교인들에게 바울이 “너희가 알고 있는 우상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하는 이 말씀은
예수께서 육신의 예수만을 알고 따르던 제자들에게 “너희가 생각하는 육신의 예수, 우상 예수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고 말씀하시는 것과 동일합니다.
우리의 경우
저도 여러분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영적 세례를 주고 구원을 줍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세례를 받으려고, 그리고 구원을 받으려고 이 자리에 오셨고, 저의 말씀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아직 저를 ‘육신의 저(우상)’로서만 알고 ‘그리스도를 가진 저(참 실체)’로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 결과 제가 여러분을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책망하면, 마음 속으로 “목사님이 나만 미워한다”고 생각하고 원망하거나 앙심을 품거나 또는 개중에는 집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자신들은 인지하지 못하겠지만, 제 안의 그리스도를 구원자로가 아니라, 육신의 저를 구원자로 인식하고 하는 행동이며, 또한 그것은 곧 저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려는 시도입니다.
그래서 저도 바울식으로 묻자면 “여러분이 저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습니까?” 입니다.
저는 당연히 여러분이 그런 길을 가는 것을 원치 않고, 여러분도 깨닫고 나면 그런 길을 가지 않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여기서 깨닫고 돌이키면 그만큼 생명이 자라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바울
바울은 고린도교인들에게 세례를 주어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그것은 바울의 이름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물세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세례 즉, 구원의 세례를 주는 것입니다.
모든 예수의 사도들은 세례를 주는데 그들은 복음을 전파하여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마 28:19-20]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예수께서 제자들을 다 가르치시고 보내실 때,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경의 이름,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서 예수가 분부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한 이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하십니다.
바울도 이러한 세례를 고린도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주었고 지금도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들이 온전히 이 세례를 받으면 그리스도 안에서 장성한 자가 되고 온전히 구원 받은 자들이 됩니다.
2.3 바울이 실제 세례를 준 사람들 (고전 1:14-16)
14 그리스보와 가이오 외에는 너희 중 아무에게도 내가 세례를 주지 아니한 것을 감사하노니 15 이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말하지 못하게 하려함이라 16 내가 또한 스데바나 집 사람에게 세례를 주었고 그 외에는 다른 아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 알지 못하노라
바울이 물세례를 준 사람들은 나열합니다.
14절에서 그리스보와 가이오, 그리고 16절에서 스데바나 집사람에게 세례를 주었다고 합니다. 그리스보는 유대교 고린도의 회당장으로서 바울에 의해 개종한 사람이고(행 18:8), 가이오는 바울이 고린도에서 로마서를 쓸 때 그에게 도움을 준 인물입니다(롬 15:23).
스데바나는 아가야에서 회심한 첫 열매라고 말합니다(고전 16:15-16).
바울의 감사 이유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 외에는 내가 세례를 준 사람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소수의 사람들에게만 물세례를 준 것에 감사하는데, 그 이유는 아무도 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고 말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바울의 물세례
말씀드린 바와 같이, 바울의 물세례는 바울이 실제로 현재 주고 잇는 영적세례, 즉 옛생각을 죽이고 새로운 그리스도의 생각으로 바꾸어 주는 이 세례의 모형이므로, 바울의 물세례는 교인에게는 있거나 또는 없어도 자신들이 받아야 할 영적세례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바울이 이것을 여기서 언급하는 것은 고린도교인들이 아직 바울에게서 숨겨진 그리스도를 보지 못하고 바울의 육신적인 모습을 보고 따라 나서기 때문에 어린 이들은 바울의 말씀 표현이나, 인물과 세상적 지식과 지금과 같이 내가 바울로부터 세례를 받았다는 것에서 남들보다 우월성을 찾는데, 그런 너희에게 내가 물세례를 많은 사람들에게 베풀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실로 바울은 모든 고린도교인들에게 물세례를 줄 수도 있지만, 바울의 시간과 다른 여러 이유와 목적상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이고, 물세례는 있어도 없어도, 온전히 자라나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생명이 자라서 이들이 온전한 영적세례를 받는 것 뿐입니다. 그러므로 영적 세례는 바울이 전하는 말씀에 순종하고 또 순종함으로 온전한 세레가 이루어지는 것이니 오직 이것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지금 영적세례를 받고 있는 우리에게도 지극히 합당한 말씀입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같지만 서로 다른 영적세례와 물세례
이로 보면 13절의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느냐?”는 말씀에서의 세례와 14절의 “그리스도와 가이오 외에는 세례를 주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에서의 세례는 같은 단어이지만, 13절의 세례는 말씀으로 인한 영적 세례를 뜻하고, 14절의 세례는 영적세레의 모형인 물세례를 뜻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 오늘 말씀을 정리합니다.
3. 맺는 말
3.1 분쟁의 원인과 치유
고린도교인은 육신의 바울만 보고 따르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놓쳤고 그래서 각자가 다른 그리스도관을 가져서 그리스도를 놓고 서로 분쟁이 생긴 것이라고 영적 진단을 합니다. 그래서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지금 이 바울의 말씀을 들음으로 깨달아 바울 안에 있는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며, 이 말씀을 잘 듣고 깨닫게 되면 너희 생각과 행동이 같은 그리스도의 것으로 바뀌고 그만큼 자라면 분쟁이 없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3.2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냐?
마찬가지로 분쟁이 생기게 된 것은 너희가 바울을 그리스도를 빼고 이해했기 때문에 너희가 생각하는 우상 바울을 따르고 있는 것이니, 그것이 바로 바울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기를 원하고 그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잘못된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 말씀을 듣고 너희가 생각하는 기존 바울관을 버리고, 참 바울이 말하는 분쟁이 없게 하는 이 그리스도의 말씀을 깨우치면 너희 가운데 분쟁 또한 자연히 사라질 것이다라고 합니다.
3.3 소수에게 준 물세례
아직 어린 신자들은 바울에게서 물세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도 그렇지 못한 사람들 위에 군림하려는 교만함에 빠져 당을 지을 수도 있는데, 다행히 나,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소수의 사람들 이외에는 물세례를 주지 않았으니, 그나마 너희들이 당 짓는 것에 빌미를 제공하지 않은 것에 감사한다고 합니다.
우리도 지금 이 말씀 잘 들으시고, 분파와 분쟁이 없는 교회생활을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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