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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눅18:1-8)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4-07-26 14:13 조회 |6,576회

본문

  불의한 재판관과 과부

[눅 18:1-8]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

1. 들어 가는 말

[견딤- 그것이 모든 것]
우리가 예수를 믿는데 있어서 꼭 필요한 것은 낙심하지 않고 기도하고 견디는 것입니다. 저는 교인들과 자주 상담을 합니다. 상담의 주된 내용은 물질적으로 부족해서 힘들고 또는 사람과의 관계가 악화되어서 마음 아픈 내용 등 다양하지만 상담 중에 그것을 물리적으로 해결해 드리지를 못합니다. 단지 그런 환경이 그냥 온 것이 아니라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알려 드리고 그러니 잘 견디라는 내용의 상담을 합니다. 외형적으로 볼 때는 해결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알게 된 사람은 이제 그 상황을 견딜 수 있는 힘을 받게 됩니다. 우리가 어려울 때 상담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그래서 그것을 견디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 믿는데 있어서 아주 중요한 사안은 견디는 것입니다.
이 견딤은 하찮은 것 같지만 모든 믿음을 이룰 수 있는 원동력이며, 이것이 없으면 믿음을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도 없습니다.
지금 주님께서 비유로 주시고 계시는 이 말씀도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는 의미로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은 어렵고 힘이 들더라고 주님의 선한 손길이 있으니 잘 참고 "견디라"는 그 뜻입니다.

[강청기도?]
그런데 견디라는 이 말씀을 어떤 분들은 강청기도라는 제목을 달아서 우리도 이 과부처럼 끈질기게 받을 때까지 기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합니다. 즉 한 두 번 기도해서 하나님이 들어 주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말고 또 낙망하지 말고 수시로 기도하라는 내용으로 말씀을 전합니다.
제 친구도 이런 말씀 해석의 영향을 받았는지 자기가 마음에 둔 집 지을 땅을 놓고 시간 있을 때마다 그 주위를 여리고성 돌듯이 돌면서 이 땅을 자기에게 허락해 달라고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출근하기 전에 그렇게 하고 또 퇴근할 때도 그렇게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땅의 친구의 소원대로 하나님이 허락해 주시지 않았습니다.

물론 하나님은 때때로 그렇게 기도하는 사람의 소원을 들어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경에 강청기도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그것에 입각해서 이루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이루어 주실 별도의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말씀은 우리 인간의 본질에 관한 기록으로 모든 인간에게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강청기도로 무엇이 이루어 진다는 것이 정말 성경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이라면 누구든지 그런 식으로 기도하면 다 얻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는 것은 그것이 성경이 뜻하는 바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개별적으로 적용되는 진리의 말씀이고, 생명에 관한 말씀이고, 인간의 본질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명령으로 쓴다면 진리의 말씀을 달리 이용하는 것입니다. 바람직 하지 않습니다.
  
[말씀의 개요]
같이 살펴 볼 말씀의 개요는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는 의미로 한 비유를 들어 주셨습니다.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이 있었습니다. 또한 그곳에는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 재판관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달라고 조릅니다. 재판관은 얼마동안 과부가 하는 말을 듣지 않다가 속으로 생각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 주어야 하겠다.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 뻔하지 않은가?"
주님께서는 이 불의한 재판관이 한 말을 들으라 하시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는 내용입니다.

[방향]
이 비유를 제대로 살펴 봄으로써 과연 이것이 우리에게 강청기도를 하라는 말씀인지 조명해보겠습니다. 또한 맨 나중에 예수님이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는 앞의 내용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것 같은 말씀을 하셨는데 이것의 의미를 알아 보겠습니다.

2. 본문설명

2.1 비유가 의미하는 한 도시의 재판관과 과부 (눅18:1-3)
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될 것을 저희에게 비유로 하여2/ 가라사대 어떤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는데3/ 그 도시에 한 과부가 있어 자주 그에게 가서 내 원수에 대한 나의 원한을 풀어 주소서 하되

비유를 통하여 주님은 우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을 하십니다. 한 도시에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는 한 재판관이 있었고 또한 한 과부가 있었습니다. 그 과부가 자주 그 재판관에게 가서 자신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합니다. 단순한 이 비유에는 깊은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재판관은 누구인가?]
여기서 어떤 도시는 세상 비유로서 우리가 살고 있는 이곳을 말합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예수그리스도입니다. 우선 하나님이 심판하는 권세를 예수님께 주셨으니 예수님의 비유로 재판관은 합당합니다. 그럼에도 이 재판관이 예수그리스도라는 비유해석에 선뜻 동의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 재판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다가 사람을 무시하는 무지막지하고 몰상식한 재판관으로 그려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비유가 다 끝나고 예수님은 이를 불의한 재판관으로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이 재판관을 예수그리스도라고 보는 것은 큰 무리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이것은 성경만이 할 수 있는 아주 지혜롭고, 우리 상식의 허를 찌르는 절묘한 표현입니다.

-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
여기서 재판관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자신의 안중에 하나님이 없다는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사랑을 주시는 아버지로 알고 있기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성경 로마서에서 바울은 그것을 우리에게 말해 줍니다.
[롬 8:15]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아직 율법 아래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종의 영을 받아서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이제 복음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된 사람들은 더 이상 하나님이 두려운 존재가 아닙니다. 자신을 아껴주시는 사랑의 아버지이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그리스도는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 사람을 무시하는 자
또한 비유의 재판관이 사람들을 무시한다고 했는데 그 의미는 멸시 천대한다는 뜻이 아니라,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인생을 믿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요2:23-25] 23/ 유월절에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계시니 많은 사람이 그 행하시는 표적을 보고 그 이름을 믿었으나24/ 예수는 그 몸을 저희에게 의탁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친히 모든 사람을 아심이요 25/ 또 친히 사람의 속에 있는 것을 아시므로 사람에 대하여 아무의 증거도 받으실 필요가 없음이니라
요한복음의 이 말씀에서도 예수님이 표적을 행하자 사람들이 믿었으나 예수님은 그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사람의 본성을 익히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사람들이 예수를 믿겠다는 그런 신념적 믿음은 절대로 믿을 것이 못되기 때문에 무시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그렇게 예수를 위해서 죽겠다고 소리치다가 십자가 사건 때 예수를 부인하고 저주하고 도망갔던 것과 같이, 사람의 의지나 열심은 믿을 것이 못 된다는 것을 예수그리스도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사람들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보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은 곧 예수그리스도임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한가지 남은 것은 예수님이 비유 속의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으로 말씀을 하신 것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이것에 관해서는 조금 있다가 말씀을 드리기로 하고 우선 비유의 재판관을 예수그리스도로 보고 계속 진행하겠습니다.

[과부란?]
과부의 사전적 의미는 현재 남편이 없는 여자입니다. 남편이 없다는 의미에서 우리들은 참된 남편이신 그리스도가 아직 우리 안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에 과부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한 과부란 예수 믿는 우리들을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 과부가 재판관에게 가서 자신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 달라고 자주 가서 조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교회 나와서 예수그리스도께 기도하고 조르는 모습을 상징합니다.

조금 미리 보자면 이 과부의 끈질긴 요구로 말미암아 결국 재판관은 과부의 원수에 대한 원한을 풀어주게 되는데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 볼 문제가 있습니다.

- 과부의 원수는 누구?
과부의 원수란 누구일까요? 과부에게 큰 해를 끼친 어떤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이 과부의 원수는 과부의 옛사람입니다. 과부는 우리 믿는 자의 비유라고 했으니 우리의 원수도 또한 우리의 외부에 있는 어떤 존재가 아니라, 내 안에 있는 나의 옛사람이 바로 원수인 것입니다. 이 원수가 내 안에서 왕노릇하기 때문에 나도 모르는 사이에 하나님이 원치 않는 일, 내가 원치 않는 일을 언제인지 모르게 하게 되는 것입니다. 나를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해서 모든 고통과 고난을 겪게 하는 그 원흉이 바로 내 안에 있는 옛사람인 것입니다. 이것이 죄인의 모습입니다.
결국 이 과부는 재판관인 예수그리스도에게 무엇을 매일 졸랐는가 하면 자신의 원수인 옛사람을 처리하여 원수를 갚아 달라고 기도하는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자신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고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해 달라는 탄원입니다.

- 과부가 구한 것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
비유에서 과부는 자신이 구하던 것을 결국은 받아내게 되는데 그것을 받게 된 원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과부가 밤낮없이 끈질기게 재판관을 찾아가 귀찮게 했기 때문에서가 아니라, 구할 사람에게 구할 것을 구했기 때문에 그것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서 과부는 재판관에게 먹을 것을 달라, 또는 입을 것을 달라고 끈질기게 구한 것이 아닙니다. 과부는 재판관에게 재판하여 원수를 갚아 달라고 했습니다.

- 우리는 지금 무엇을 구하는가?
이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너무 큰데 우리는 과연 구할 사람에게서 구할 것을 구하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에게 기도할 때, 집 지을 땅을 놓고 기도한다거나, 먹을 것을 놓고 또는 입을 것을 놓고 끈질기게 기도하며 귀찮게 한다고 해도 들어 주실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예수님의 사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마6:31-33] 31/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32/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33/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예수님의 이 말씀은 하나님은 우리의 지금 이 상태로 집 지을 땅과 먹을 것과 입을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다 알고 계시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에게 땅이 없고 먹을 것이 없고 입을 것이 없는 것은 그래야만 하는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와 의를 구하기에 가장 합당한 환경이기 때문에 그렇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지금 먹을 것이 없다고 먹을 것을 구하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과 전혀 다른 방향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쉽게 이야기 해서 "너는 배가 많이 고파야 하나님을 생각하고 그 의를 구하게 된다 그래서 너에게 배고픔을 허락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과부가 재판관에게 먹을 것을 구하지 않고 원수 갚음을 원했다는 것을 통해서 나는 과연 원수 갚음을 예수께 기도하고 있는지 다시 한번 점검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선 예수가 누구인가?에 관해서 합당한 인식이 있어야 예수가 주실 것을 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원수 옛사람을 심판하여 십자가에 못박는 일이고 그것은 곧 죄사함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먹을 것 입을 것을 주시는 분으로 착각하고, 그것을 주요 기도제목으로 삼고 있다면 번지수가 잘못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하면 자신은 이미 죄사함 받았고 구원 받았기 때문에 먹을 것 입을 것을 구해서 받으면 된다고 은근히 생각하는 분들이 많을 것입니다. 자신이 성경이 말하는 대로 죄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다면 먹을 것 입을 것을 달라고 주야로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기도하기 전에 이미 채워주셨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 올바른 과부의 기도
이 과부가 재판관에게 입을 것을 달라, 먹을 것을 달라고 아무리 강청을 해 보았자 재판관은 들어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과부는 재판관이 당연히 해야 할 재판에 관해서 과부가 강청을 했고 나중에는 들어 주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예수께 구할 때 구할 것을 구해야 합니다.

2.2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눅18:4-5)
4/ 그가 얼마 동안 듣지 아니하다가 후에 속으로 생각하되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 아니하고 사람을 무시하나5/ 이 과부가 나를 번거롭게 하니 내가 그 원한을 풀어 주리라 그렇지 않으면 늘 와서 나를 괴롭게 하리라 하였느니라

[내용]
재판관이 얼마 동안 듣지 않다가 하나님과 사람을 두려워 하지 않는 자기가 과부가 자꾸 번거롭게 하니 그 원한을 풀어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내일도 또 와서 괴롭게 할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원한을 풀어 준다는 말씀입니다.

[얼마 동안 듣지 않았던 이유]
재판관이 얼마 동안 과부의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일반적으로 우리는 예수를 믿으면 예수 편이 되었으니 영이 천국에 바로 입장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쉽게 천국백성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드리는 말씀은 그런 잘못된 생각을 고칠 것입니다. 천국백성이 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의 삶 속에서 예수를 만나야 하고, 그리고 얼마 동안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이 기간은 우리 안에 있는 옛사람을 처리하는 기간에 해당됩니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보면 얼마 동안은 예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 주시지 않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상은 그것은 꼭 필요한 기간이며 옛사람을 심판하기 위한 연단의 과정입니다.
제자들의 경우를 보면 그들도 예수를 따라다녔지만 즉시 그들의 옛사람이 처리가 되고 원수를 갚음을 받은 것이 아니라, 3년 반이란 세월이 걸렸습니다. 즉 3년 반 동안 제자들이 기도함에도 들어주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이것이 비유에서 얼마 동안의 기간에 해당됩니다.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
누가복음 18장 1절에 보면 예수님이 이 비유를 들으신 이유가 우리들이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권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 과부의 끈질김과 그로 인한 원수 갚음을 말씀하셨습니다. 과부가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않은 기간은 바로 재판관이 그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던 "얼마 동안" 이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예수를 만나서 따라 나섰을 때, 우리의 옛사람이 처리 받기 시작을 했으나 아직 온전히 처리되지 않은 기간에 해당됩니다. 이때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라는 권면을 주시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왜 이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이 기간이 우리들에게 매우 아픈 체험으로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베드로도 이 기간 중에 자신의 옛사람이 처리 받는 과정에서 '사단아 물러가라'는 심한 책망을 받기도 했고, ''누가 크냐?"라는 문제로 제자들끼리 논쟁할 때도 책망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책망이라고 기록되어서 책망이지 사실상 마음이 갈기갈기 찢어지는 아픔들입니다. 당해 본 사람들은 압니다.
그리고 이런 과정들은 주님이 주관이 되어 인도하시니 제자들처럼 그냥 주님의 연단계획에 맡기고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는 이제 말씀을 깨닫기 시작하고 그래서 예수를 제대로 따라 나선 분들이 많이 계신데 이 분들에게도 얼마 동안의 세월이 필요합니다. 이 기간 동안 우리의 옛사람을 드러내어 치료하시기 때문에 아픔도 있고 어려움도 겪게 됩니다. 그래서 기도할 때이고 또 견딜 때이고 낙망하지 말아야 할 때입니다. 이때 참지 못하면 그만큼 원수를 갚아 줄 세월이 연장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 뻔히 알고 소망하는 자에게는 속히...
이렇게 예수가 원수 갚아 줄 때까지 거듭나게 해 주실 때까지 견디고 기다리는 것이 바로 기도하고 낙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믿음의 성장과정에서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알고, 십자가 사건을 기대하고 '얼마 동안'의 연단을 참고 견디는 그 태도가 낙망하지 않고 깨어 기도하는 모습입니다. 이런 우리를 보고 재판관이신 예수께서는 "내가 빨리 저의 원수를 갚아 주어야지... 그렇지 않으면 원수를 갚아 줄 때까지 저렇게 뻔히 기다리고 있을 것 아니겠느냐?"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구원의 길을 모르면 속여도 모르고 구원을 안 주어도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의 길을 뻔히 알고 잘 참고 기다리고 있는 자들에게는 그 구원을 빨리 주시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2.3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눅18:6-8)
6/ 주께서 또 가라사대 불의한 재판관의 말한 것을 들으라7/ 하물며 하나님께서 그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저희에게 오래 참으시겠느냐8/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속히 그 원한을 풀어 주시리라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시니라

[내용]
비유가 끝나고 이제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하나님도 불의한 재판관과 같이 택한 자의 원한을 속히 풀어 주실 것이고 오래 참지 않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 하십니다.

[불의한 재판관- 그는 과연 불의했던가?]
앞서 비유해석에서 재판관은 예수그리스도라고 했는데 여기서 예수님은 그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재판관이 불의 하다고 한 이유는 과부의 재판을 계속 지연시키는 그 점이 불의 하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말씀 드렸다시피 얼마 동안 재판이 미루어지고 과부의 소원을 들어 주지 않았던 것은 과부 자신의 옛사람을 처리하기 위한 꼭 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과부의 입장인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로서는 그것을 모르고 "왜 이렇게 더디 거듭나게 하는가? 힘들어 죽겠는데...", "믿으면 바로 구원을 주고 원수를 소멸시켜 버리지 왜 이렇게 원수를 늦게 갚아 주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러니 우리 눈에는 재판관이 이유 없이 심판을 뒤로 미루는 불의한 재판관으로 보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보는 시각에 동조(?)해서 예수님은 그 재판관을 불의한 재판관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우리 자신들이 불의하기 때문에 공의로우신 예수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그 재판관이 불의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가 심판을 연장한 것은 과부가 준비가 되지 않아서 기다린 것뿐이지 재판관 자신의 직무유기나 태만이 아니었기에 그에게 불의한 면은 조금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맨 나중의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말씀에서 재판관이 불의해서 심판이 늦어진 것이 아니라 과부가 준비가 덜 되어서 그렇다는 것을 드러내십니다.

[택함 받은 자들]
지금 이 말씀을 받을 자들은 예수 믿는 모든 사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택함받은 자들을 말합니다. 택함 받은 자들이란 누구를 말하는가 하면 예수를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난 사람들을 말합니다. 이제 말씀을 이해하고 말씀을 따라 나선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고, 믿음의 성장단계에서 보면 공관복음단계를 시작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마22:14] 청함을 받은 자는 많되 택함을 입은 자는 적으니라
예수 믿으라고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으나, 그 중에서 택함을 받아서 예수의 말씀으로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서 따라 나선 사람들은 많지 않다고 합니다. 이렇게 예수를 따라 나선 사람들이 잘 견디고 기도하고 낙망하지 않는다면 그들에게 속히 원한을 풀어 주어서 죄악 세상에서 구원해 주실 것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여기서 갑자기 인자가 올 때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말씀이 왜 나오는 것일까요?
예수님은 택함 받은 자들의 원한을 풀어 주는 것을 인자가 오는 것으로 말씀을 하십니다. 이것은 우리가 배운 대로 믿음의 성장과정에서 요한복음 단계로 예수가 성령으로 우리 안에 임하는 시점입니다. 인자가 내 안에 성령으로 재림하는 것이고 이것이 심판의 날이며 내 원수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는 날입니다. 과부가 그렇게도 기다리던 심판의 날이며, 과부는 이날 이후로 예수그리스도를 남편을 모시고 영원히 함께 살게 되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빨리 속히 원수를 갚아 주시고 우리 안에 오기를 원하지만, 그러나 인자가 올 때 그때 믿음을 보겠느냐? 라는 말씀을 하심으로 그것이 호락호락하지 만은 않다는 것을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인자이신 예수가 내 안에 오려면 내 안에 믿음이 완성되어야 즉 옛사람이 십자가에 죽을 때가 되어야 오실 수 있는 것입니다. 아직 때가 되지 않았으면 인자가 오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상'이란 '우리 각자의 안'을 말합니다.
이것은 결국 아직 인자가 오지 않고 너희 원수를 아직 갚아 주지 않는 것은 너희가 때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불의한 재판관이 과부의 심판을 연기하는 것은 재판관이 불의한 것이 아니라 과부의 문제라는 것을 다시 지적하시는 것입니다.

3. 맺는 말

이 말씀은 우리에게 세상 것을 놓고 강청기도 하라는 내용이 아닙니다. 세상에서 참 예수를 만나서 동행하는 기간 중에 항상 기도하고 낙망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기도도 그냥 우리가 알고 있는 통성기도나 또는 새벽기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자신의 믿음의 길을 제대로 인식하여 깨어 있고 그리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그렇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렇게 하시려면 우선 예수를 자신의 삶 속에서 만나야 할 것입니다.

주 예수가 주시는 평강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자유교회
정 덕 영
목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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