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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바로의 꿈 - 일곱 살찐 암소와 일곱 파리한 암소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09-08-31 10:17 조회 |6,228회

본문

바로의 꿈 - 일곱 살찐 암소와 일곱 파리한 암소

[창41:25-36] 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28/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35/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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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는 말 [인생의 허무함]
우리 인생은 큰 꿈을 가지고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인생의 눈에는 모든 것이 신기하고 좋아 보이고, 할 것도 많고 이뤄야 할 것도 많습니다. 자신을 마음껏 표현하고 실현해 보고 싶은 마음을 갖게 되며 그것을 이룰 자신도 있고 힘도 있습니다. 그야말로 우리 인생의 좋은 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인생을 살다 보면 삶이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고 또한 세월이 흘러 갈 수록 마음 속에는 허전함과 부족함과 불만족이 있다는 것을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이런 허전함을 잊기 위해서 열심히 인생을 살고 즐긴다 하더라도 이런 허전함은 가시지 않습니다. 돈이 없어도 그렇고 재물을 많이 축적해도 그렇고, 많이 배워도 그런 허전함과 불만족을 치유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종국에는 이 세상에서 이룬 것이 무엇이든 상관없이, 회한과 공허함을 가지고 이 세상을 하직하게 됩니다.

나 하나만이 그런 것이 아니라 모든 인생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 모든 인생이 이런 비참한 종말을 맞아야 하는지에 관해서 궁금증을 가지고 그것을 해결하고자 책도 읽고 수도도 하고 진리를 찾아 나서기도 합니다. 그러나, 누구도 그런 인생에 대한 해답이 있는 진리를 찾지 못해서 지금도 방황하고 있습니다. 인생은 왜 이런 것일까요? 그리고 어떻게해야 이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다행히 이런 인생의 문제와 그 해결책은 이미 몇천 년 전부터 성경에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단지 그동안 우리가 그것을 이해하지 못했을 뿐입니다.
창세기에 나오는 바로의 일곱 암소의 꿈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배경]
하루는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아름답고 살찐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있는데 흉악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하수에서 올라와 그 아름답고 살찐 일곱 소를 먹었습니다. 바로가 깨었다가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후에 또 세약(細弱)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그 세약한 일곱 이삭이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켜 버렸습니다. 바로는 그 마음이 번민하여 애굽의 술객과 박사를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 꿈을 고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습니다. 이에 술 맡은 관원장이 함께 감옥에 있던 요셉을 생각해 내고 그가 이제 바로 앞에 와서 그 꿈의 해석을 말하는 장면이 본문입니다. 이 해석으로 말미암아 요셉은 일약 애굽의 총리대신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개요]
요셉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일곱 좋은 암소는 7년 풍년을 말하고 일곱 흉악한 암소는 7년 흉년을 말하고, 7년 흉년으로 말미암아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미 정하신 일입니다. 그러므로 왕은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를 세워서 풍년 때 곡물의 오분의 일을 저축하여 흉년에 대비한다면 흉년으로 인하여 멸망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에 바로는 요셉을 세워 자기 집을 치리하게 합니다. 자기 백성이 다 요셉의 명을 복종하게 하고 자신은 요셉보다 높은 것이 오직 보좌뿐이라고 하였으며 또한 요셉으로 하여금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였습니다. 그 결과 애굽은 흉년에도 잘 견디어 내어서 멸망을 당하지 않았습니다.

[방향]
우리는 이 바로의 꿈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 이 바로의 꿈이 진정 무엇을 의미하는 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우리는 이 꿈에대해 요셉이 하나님의 지혜를 받아 좋은 일곱 암소는 7년 풍년, 그 뒤의 흉한 일곱 암소는 7년 흉년으로 해석하여 애굽을 기근에서 구했다는 사건으로만 이해합니다. 만일 그렇게 이해한다면 성경이 과거 요셉의 지혜로운 꿈 해석을 소개한 서적으로 끝나고 말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인생에게 진리를 계시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 성경에 등장하는 이 바로의 꿈은 과연 무엇을 계시해 주시는 것일까요?
이제 이 꿈이 지금 여기서 살고 있는 우리와 어떤 상관이 있는지를 보겠습니다.

2. 본문내용

2.1 바로와 일곱 좋은 암소와 일곱 흉한 암소 (창 41:25-28)

25/ 요셉이 바로에게 고하되 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26/ 일곱 좋은 암소는 일곱 해요 일곱 좋은 이삭도 일곱 해니 그 꿈은 하나이라 27/ 그 후에 올라온 파리하고 흉악한 일곱 소는 칠년이요 동풍에 말라 속이 빈 일곱 이삭도 일곱 해 흉년이니 28/ 내가 바로에게 고하기를 하나님이 그 하실 일로 바로에게 보이신다 함이 이것이라

[바로는 우리 자신]
애굽의 왕 바로가 꿈을 꾸었습니다. 애굽은 세상의 상징입니다. 그러므로 바로는 세상의 왕입니다. 그렇다면 세상은 무엇일까요? '세상' 하면 우리는 눈에 보이는 이 객관의 세상을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객관의 세상을 인식하는 방식이 주관의 '나'입니다. 따라서 객관의 세상은 그 세상을 보고 이해하고 인식하는 주관의 '나'가 없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객관의 그 세상을 이해하고 인식할 다른 방도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세상이라 함은 그 세상을 보는 그 사람 '자신'을 말합니다. 따라서 세상이라면 그 세상을 보는 우리 인생 '자신'을 말합니다.

그렇다면 그렇게 '나' 자신이 보는 세상의 왕은 누구일까요? 그것은 하나님도 아니고, 예수님도 아니고, 자신 나라의 대통령도 아닙니다. 자신이 자기가 보는 세상의 왕입니다. 왜냐하면 자신에게는 자신이 세상을 보고 느끼는 모든 것에 대한 결정권을 행사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세상에 예수가 나타나서 말한다 할지라도 그 예수님의 말씀을 받고 안 받고는 자신의 결정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은 자신의 세상에 있어서 무소불위의 권한을 가지고 있는 왕입니다. 따라서 여기서 애굽의 왕 바로가 상징하는 실체는 각자 자신의 세상을 통치하는 자기 자신입니다.

[바로의 꿈은 우리 인생]
요셉의 해석에 의하면 바로가 꾼 두가지 꿈은 하나입니다. 일곱 살찐 암소의 때는 일곱 충실한 이삭의 때이고 이것은 애굽의 7년 풍년의 때입니다. 또한 일곱 야윈 암소의 때는 일곱 세약한 이삭의 때이고 이것은 애굽의 7년 풍년 후에 연이은 7년 흉년의 때입니다. 과연 요셉의 해석대로 애굽에는 7년 풍년에 이어서 7년 흉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말대로 해서 애굽은 7년 흉년의 때에 멸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바로의 꿈은 이것으로 끝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성경이 당대 사람들에게만 적용되었던 역사에 그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언제 어느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되는 불변의 진리의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바로의 꿈과 요셉의 해석은 과연 지금 이 시대를 사는 우리에게는 어떤 의미를 지니게 되는 것일까요?

+ 일곱 살찐 암소의 때
바로의 꿈은 곧 우리가 가지고 있는 꿈이고, 우리는 지금 그것을 해석하지 못해서 번민하고 무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은 일곱 살찐 암소의 때로 시작합니다. 이 세상에 와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성취해 보고 싶은 소망을 가지고 있을 때입니다. 큰 사업도 해 보고 싶고, 큰 권좌에 오르기를 원하고 세상에서 성공하여 이름을 후대에 남기고도 싶습니다. 또한 이때는 마음 먹은 대로 되는 것에 큰 성취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교회도 다녀보고, 믿음이 좋다는 칭찬도 들어 보고 정말 인생에서 풍요롭다고 생각할 때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 있어서 풍요로운 일곱 살찐 암소의 시절입니다.

+ 일곱 흉한 암소의 때
그러나 우리의 인생은 그렇게 장미빛이지만은 않습니다. 점차 나이가 들어갈수록 힘든 인생을 체험하게 되고, 자기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아 좌절하고 극심한 우울함을 체험하게 됩니다. 물론 인생에서 돈을 벌고 높은 자리에 앉게 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나름대로 자신이 원하는 구제를 한다든지, 또는 유명해져서 이름을 후대에 남기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돈을 많이 가지고 있든, 아니면 찢어지게 가난하든, 명예가 있든, 비천한 자리에 있든, 건강한 자이든, 병약한 자이든, 모든 인생에게는 허전함과 허무가 있고 불만족과 공허함이 항상 마음 속에 깔려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살다가 그런 공허함을 간직한 채 쓸쓸하게 인생을 하직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생무상이고 회한에 찬 인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의 꿈에서 나타난 흉한 일곱 암소의 때입니다.
이와 같이 바로가 꾼 일곱 암소의 꿈은 결국 우리 인생의 비참한 종말을 계시하고 있습니다. 

2.2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 (창 41:29-32)

29/ 온 애굽 땅에 일곱 해 큰 풍년이 있겠고30/ 후에 일곱 해 흉년이 들므로 애굽 땅에 있던 풍년을 다 잊어버리게 되고 이 땅이 기근으로 멸망되리니31/ 후에 든 그 흉년이 너무 심하므로 이전 풍년을 이 땅에서 기억하지 못하게 되리이다32/ 바로께서 꿈을 두 번 겹쳐 꾸신 것은 하나님이 이 일을 정하셨음이라 속히 행하시리니

요셉은 일곱 암소의 때를 애굽에서의 일곱 해 풍년과 일곱 해 흉년을 예언합니다. 그리고 흉년의 때가 너무 심하여 풍년을 다 잊어 버리고 기근으로 결국 멸망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우리 인생에서 일곱 살찐 암소의 때가 아무리 풍요롭고 좋다고 할지라도 그 뒤에 오는 일곱 흉한 암소의 때에 의해서 완전히 삼켜져 버릴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처음 인생에서 아무리 큰 성공을 거두고, 어떤 큰 업적을 남겼을지라도 뒤에 오는 흉년의 때를 이겨내지 못하고 허무와 회한과 후회 속에 속절없이 죽어갈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우리의 인생은 왜 이런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 올 때 하나님을 떠나 죄인으로 오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는 모든 인생은 심판을 전제로 세상에 태어납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집을 떠난 탕자처럼 하나님 아버지의 속박을 떠나서 해방된 느낌으로 인생을 시작합니다만, 그러나 하나님을 떠난 그 시작은 이미 심판을 안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인생의 모습은 창세기에서 볼 수 있습니다.
[창 6:5-7]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7/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신 후 인생은 생육하고 번성했습니다. 그러나 노아 시대에 이르러서 그들의 모습은 하나님 보기에 죄악이 관영한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을 물로 심판하여 멸절시키십니다. 이것은 한 개인의 인생이기도 합니다. 노아 이전의 인생은 이 세상에 온 우리 인생의 일곱 살찐 암소의 때에 해당됩니다. 그때 생육하고 번성해도 그것은 심판을 앞둔 죄인의 모습일 뿐이고, 결국 일곱 흉악한 암소의 때, 즉 심판을 맞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치입니다.

2.3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창 41:33-36)

33/ 이제 바로께서는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애굽 땅을 치리하게 하시고 34/ 바로께서는 또 이같이 행하사 국중에 여러 관리를 두어 그 일곱 해 풍년에 애굽 땅의 오분의 일을 거두되35/ 그 관리로 장차 올 풍년의 모든 곡물을 거두고 그 곡물을 바로의 손에 돌려 양식을 위하여 각 성에 적치하게 하소서36/ 이와 같이 그 곡물을 이 땅에 저장하여 애굽 땅에 임할 일곱 해 흉년을 예비하시면 땅이 이 흉년을 인하여 멸망치 아니하리이다

[내용]
요셉은 바로왕에게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예언하고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을 두어 애굽을 치리하게 하여 풍년의 때에 오분의 일을 거두어 7년 흉년의 때를 예비하면 이 땅이 흉년으로 인하여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결국 우리 인생의 일곱 살찐 암소의 때에 오분의 일을 거두어 일곱 흉한 암소의 때, 즉 심판의 때를 예비하면 심판을 잘 견디고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인생을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허무한 죽음으로 끝나게 되는 그 근본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금 이때에 오분의 일을 저축하여 그 심판의 때를 예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인생이 멸망으로 끝나지 아니하고, 심판을 이겨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오분의 일은 무엇인가?]
그렇다면 우리가 인생을 위해서 저축할 오분의 일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그것이 우리를 심판에서 구원할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오분의 일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레 27:13] 그가 그것을 무르려면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할지니라
우리는 마귀에게 팔렸습니다. 그렇게 이 세상에 죄인으로 오게 되었고,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었으나 지금은 마귀가 우리의 주인입니다. 우리가 마귀의 소속에서 벗어나려면 즉 원래 주인인 하나님께서 무르시려면 오분의 일, 즉 예수 그리스도를 더해야 합니다. 이것은 마귀 소속이었던 우리가 예수그리스도의 영을 마음에 영접하게 되면 우리는 예수 소속, 하나님 소속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분의 일을 주고 무르는 것입니다. 

[레 27:27] 부정한 짐승이면 너의 정가에 그 오분 일을 더하여 속할 것이요 만일 속하지 아니하거든 너의 정가대로 팔지니라
여기서도 부정한 짐승은 죄인의 상징입니다. 부정한 우리가 부정함에서 속함을 받으려면 오분의 일,즉 예수 그리스도가 속죄 제물로 드려져야 합니다. 그것이 부정한 우리가 오분의 일을 더하여 속함을받는 것입니다. 오분의 일을 더하지 않고 정가대로 팔면, 다시 말해서 예수 그리스도가 더해지지 않으면, 속함을 받지 못합니다.

[민 5:7] 그 지은 죄를 자복하고 그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그가 죄를 얻었던 그 본주에게 돌려 줄 것이요
죄인되었던 우리가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 죄사함을 받으면 우리는 원 주인인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이것이 죄 값을 온전히 갚되 오분지 일을 더하여 본주에게 돌려 준다는 말의 영적 의미입니다.

이와 같이 오분의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으로 쓰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참고로, 여기서 요셉도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이고, 오분의 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요셉은 우리 외부에 나타나서 우리를 인도하는 사람 예수 그리스도이고, 오분의 일은 그 외부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 형성되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 인생의 일곱 살찐 암소의 때에 예수 그리스도를 내 안에 모아 두어야 할 것입니다. 모아 둔다는 의미는 우리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야 그 생명의 양식으로 인하여 일곱 흉악한 암소의 때를 통과할 수 있고 우리가 땅에서 멸절 당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노아 시대의 심판에서도 드러납니다. 노아시대의 물 심판으로부터 노아의 8식구를 구원한 것은 방주였고, 이 방주는 곧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합니다. 본문의 표현으로 한다면 노아 가족은 일곱 살찐 암소의 때에 오분의 일을 저축하여 심판을 무사히 통과하여 멸망하지 않고 새로운 세상에 살게 된 것입니다.

이것은 구원의 과정으로 우리가 잘 암기하고 있는 요한복음 3:16절의 말씀의 내용입니다.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여기서 세상이란 앞서 말씀드린대로 우리 인간 개개인을 말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일곱 흉한 암소의 때를 잘 견디어서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됨을 말하고 있습니다.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
끝으로 요셉은 바로에게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택하여 오분의 일을 비축할 일을 맡기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누가 명철하고 지혜 있는 사람일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요셉입니다. 바로는 명철한 자를 달리 애굽에서 구한 것이 아니라, 꿈을 해석해 준 요셉 자신을 지혜자로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일체 관여하지 않았습니다. 만일 바로가 시시로 때때로 간섭했다면 요셉은 제대로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고 결국 바로는 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모든 것을 요셉에게 위임했습니다.
[창 41:40-41] 40/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자,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습니까?
우리에게도 바로가 꾼 꿈이 있고 그로 인하여 인생 문제에 대해서 심각하게 고민하고 번민하지 않습니까? 만일 그렇지 않다면 예수 믿을 필요도 없고, 이 글을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냥 그렇게 인생에 대한 고민없이 살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런 번민을 가지고 있던 사람이라면, 이제 그 꿈이 이 글로 말미암아 명쾌하게 해석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 꿈의 해석이 다가 아닙니다. 이제는 자신이 통치하고 있는 세상(애굽)을 치리할 명철하고 지혜 있는 자를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에게 자신의 세상 통치를 모두 위임해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자신 안에 오분의 일을 쌓게 되고 그로 인하여 자신이 통치하는 세상, 즉 자기 자신이 기근의 때에 멸절 당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꿈을 해석한 요셉이 명철하고 지혜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모든 것을 위임해야 할 명철자는 누구일까요? 일곱 암소의 꿈을 하나님의 지혜로 제대로 해석해 보이는 그 사람일 것입니다. 그를 자신의 총리로 임명하고 그가 하는 일에 일체 간섭을 하지 말고 그를 따라 나서십시오. 그러면 심판의 때에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3. 맺는 말

[약4:13-14]13/ 들으라 너희 중에 말하기를 오늘이나 내일이나 우리가 아무 도시에 가서 거기서 일 년을 유하며 장사하여 이를 보리라 하는 자들아14/ 내일 일을 너희가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인생에 있어서 바로의 꿈을 꾼 자들은 명철하고 지혜있는 사람을 세워서 그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따라나서야 합니다. 그러면 자신 안에 예수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어 질 것이고 그러면 일곱 흉한 암소의 때에 멸망하지 않고 오히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입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www.jayu.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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