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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적그리스도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0-05-09 13:20 조회 |4,816회

본문

적그리스도

 

[요일 2:18-23] 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
 

  적그리스도라는 말에서 적(敵)이라는 말은 "대적한다", "대항하여 싸운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러므로 적그리스도는 그리스도를 대적하여 싸운다는 문자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어로는 '안티크리스토스' 라고 하여 '반(反)그리스도'라는 의미입니다. 현재까지 알려진 적그리스도의 정체는 모든 악을 형상화한 총괄적인 실체라는 정도입니다.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는 알 수 없기 때문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하는 정의입니다. 기독교 역사상 아직 적그리스도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명확히 밝혀 내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닙니다. 온 기독교인이 싸워야 할 대상인데 아직도 그 정체를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반대 개념인 적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그 동안 적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몰랐던 것입니다. 그 동안 믿음이 힘을 받지 못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제 기독교 역사상 지금까지 베일에 가리워져 있던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물론 들을 수 있는 사람만 들을 수 있습니다.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적그리스도

[요일 2:18] 아이들아 이것이 마지막 때라 적그리스도가 이르겠다 함을 너희가 들은 것과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일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마지막 때인줄 아노라  

 적그리스도라는 용어는 요한일서에서 나옵니다. 인용된 말씀에서 알 수 있는 것은 적그리스도는 마지막 때에 일어난다는 사실입니다. 마지막 때라고 하니까 사람들은 우주 종말을 생각하고 요한계시록의 해석에 이 적그리스도를 대입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마지막 때란 우주 종말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의 인생에 있어서 자기 옛사람의 마지막 때를 말합니다. 

  옛사람의 마지막 때란 이런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 와서 나름대로의 자신들의 인생을 꾸려갑니다. 예수를 믿어도 자기 식으로 믿습니다. 오직 자신이 왕이 되어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혹 예수님이 필요하다면 왕인 자신이 곤경에 빠졌을 때 도움을 주실 존재로서의 예수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으로 인하여 삶의 곤경에서 빠져 나오는 은혜를 입게 되면, 그에 대한 사례(謝禮)로 교회에서 열심을 내기도 하고 헌금을 넉넉히 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자신이 이 세상에서 풍요롭게 살아 가기 위해 예수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예수 믿는 것은 참 예수와 상관이 없고, 그런 인생은 결국 한계상황을 맞게 됩니다. 이때 진실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게 되면 그때 그는 참 예수를 만나게 됩니다. 이 예수를 만나게 됨으로 그 동안 베일에 감추어져 있던 적그리스도가 드러납니다. 죄의 원흉인 적그리스도가 드러남으로 그에 의해서 지배 받던 지난 날의 자신의 삶은 마지막 때를 맞게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에 의해서 그 적그리스도가 최후를 맞이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참 예수를 만나서 적그리스도를 보게 되면 그는 곧 자기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이 적그리스도였지만 꿈에도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안에서 머리 역할을 하기 위해서 오신 것입니다. 그런 그 분을 밖에다만 모셔 놓고 자신 안으로 영접하지 않고 있었으니, 아무리 예수 믿는다고 해도 예수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예수를 거절하는 자가 바로 적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이 자신의 왕 노릇 하는 동안에는 이치적으로 우리는 예수를 배척하고 대적하는 적그리스도일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 안의 적그리스도를 본다는 것은 참 예수를 만났다는 반증이기도 합니다. 적그리스도는 오직 그리스도 예수에 의해서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이제 참 예수에 순종하여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르면 적그리스도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영접될 것입니다. 그렇게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 영접되면 그는 더 이상 적그리스도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입니다.  
 
*  배도(背道)

 사람들은 흔히 적그리스도를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나오는 불법의 사람과 동일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습니다. 둘 다 거듭나기 전의 자기 자신을 말하고 있습니다.   

[살후 2:1-4] 1 형제들아 우리가 너희에게 구하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우리가 그 앞에 모임에 관하여 2 혹 영으로나 혹 말로나 혹 우리에게서 받았다 하는 편지로나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 아니할 그것이라 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4 저는 대적하는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 하느니라 

 1-2절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과 주의 날이 이름에 관해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이 날도 마찬가지로 옛사람이 보는 옛 세상의 마지막 때입니다. 이 마지막 때에 배도하는 일이 있습니다. 배도(背道)란 헬라어로 '아포스타시아' 입니다. 사도행전 21:21절에서는 '배반한다'는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해당 성구는 다음과 같습니다.   

[행21:21]네가 이방에 있는 모든 유대인을 가르치되 모세를 배반하고 아들들에게 할례를 하지 말고 또 규모를 지키지 말라 한다 함을 저희가 들었도다  

 할례를 행하지 말고 율법을 지키지 말라는 것을 모세를 배반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가르침을 듣지 않고 버리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마지막 때의 배도도 이와 같습니다. 즉 자신이 지금까지 옳다고 믿어 왔던 자기 식 예수를 배반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생명의 원리상 누구든지 처음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는 율법적으로 믿고 접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믿음 생활은 긴 세월 동안 계속됩니다. 

평생을 그렇게 믿다가 죽는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입니다만, 택함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이런 믿음의 마지막 때를 맞게 됩니다. 그 동안 열심히 가꾸었던 믿음이 예수의 믿음이 아니라 자기에게서 난 헛 믿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이때 우리의 입에서는 다음과 같은 탄식이 절로 나옵니다. 
  "여태 예수 헛 믿었다!"
  "정말 나는 그 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내가 만들어 낸 예수를 믿고 있었다."

  이것을 계기로 이전 믿음에 대한 배도가 일어나게 됩니다. 이전에 자기가 주인이 되어 믿던 것을 버리고, 예수에 이끌려 고침을 받아 그리스도의 강림을 마음속에 맞이 하게 됩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이 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림하심 또는 주의 날이 도래함입니다.    
 생각해 보면, 그 동안 믿음의 방향을 엉뚱한 곳으로 돌리게 했던 장본인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이었습니다. 결국 자기 자신이 불법의 사람이고 멸망의 아들이고 적그리스도입니다. 이런 사실은 자신이 마지막 때에 도달해야만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배도를 나쁜 의미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어느 것을 배도하느냐에 따라서 오히려 진리의 길을 갈 수 있게 됩니다. 들을 귀 있는 사람은 지금까지 따랐던 그릇된 예수의 가르침을 배도할 것입니다.    

*불법의 사람

  불법의 사람이란 헬라어 원어로 '죄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기 자신'을 말합니다. 언뜻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만, 우리 안에는 단순하게 '나 자신'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로마서 7장에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롬 7:18-20] 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바울은 자신이 선을 행하고자 원하나 오히려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을 행하게 된다고 합니다. 이어서 악을 행하게 하는 자는 자신이 아니라 자신 안에 있는 죄라고 합니다. 바울은 여기서 악행의 탓을 죄에게 떠넘기고자 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자신이 악행을 하게 되는 근본 원인을 말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죄의 지배를 받아서 원치 않게 항상 악을 행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와 같이 우리 안에는 우리를 움직이는 지휘부에 '죄의 지배를 받는 자신'이 있고 '선을 향하는 본연의 자신'이 있습니다. 이 지휘부에서 어느 쪽이 힘을 얻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이 악을 행하기도 하고 선을 행하기도 합니다. 물론 죄인인 우리는 죄에 의해 완벽하게 잡혀 있어 스스로는 절대 그곳에서 빠져 나올 수 없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전인적(全人的)으로 죄의 종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경우 ‘전인적인 나'는 내 안의 '죄에 사로 잡힌 나'에 의해서 대표됩니다. 여기서 내 안의 '죄에 사로 잡힌 나' 가 '죄의 나'이며, 곧 '불법의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불법의 사람을 모르다가 주의 강림하실 때, 즉 마지막 때에야 비로소 그 정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역으로 말하자면 그 정체를 보게 됨으로 이제 불법의 사람의 마지막 때가 이르는 것입니다. 
죄는 '나와 하나님과의 분리'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죄는 인격이 아니라 그냥 '분리' 또는 '분리됨'입니다. 그러나 이 죄가 사람의 마음에 자리 잡게 될 때 그 사람의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예컨대 내 안에 죄가 있다면 그 죄는 '나'라는 인격을 통해서 의인화 됩니다. 이 경우, 죄는 곧 '나'입니다.  
이 문제에 관해서는 앞서 악과 마귀에 관해서 말할 때 다루었고, 저 아래 '죄'라는 소제목에서 다시 말씀드릴 기회가 있습니다.  

*  자기를 하나님이라 한다

  데살로니가후서를 통해 한 가지만 더 말씀 드리겠습니다.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경배하는 모든 것들을 대적하고 자신을 높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하나님 행세를 합니다. 
  누가 감히 이런 짓을 하겠습니까? 그것은 바로 죄의 종 노릇을 하는 우리 인간이 그렇게 합니다. 기도, 금식, 헌금, 구제, 봉사, 주일 성수, 교회부흥 등 이 모든 것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하기는 하는데. 그 속을 깊이 들여다 보면 모두 자신의 욕망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합니다. 그러므로 명색만 하나님과 예수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서 이런 일들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누가 하나님이고 누가 예수님이고 누가 주님입니까? 바로 자기 자신입니다. 
 
그리고 이 '죄의 나', 즉 불법의 사람은 하나님의 성전 안에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다른 곳이 아닙니다. 우리 마음속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성전에 하나님을 모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분리'인 죄가 자리잡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아무리 열심히 예수를 믿어도 그 모든 것이 자신 안에 있는 '죄의 나'를 위한 믿음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곧 하나님을 대적하며 자기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4장 종말 장에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마 24:15]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진저) 

 마지막 때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게 됩니다.  여기서 거룩한 곳이란 하나님이 계실 자신 안의 성전을 말합니다. 지금까지 그 성전에 하나님이 계신다고 생각을 했지만 알고 보니 '죄의 나'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이 '죄의 나'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멸망의 가증한 것'입니다. 그것이 나를 예수 믿게도 하고, 사랑, 전도, 구제 한답시고 돌아다니게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위한다는 이 모든 것이 오직 한 가지 '나'의 욕심을 충족시키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때가 되어서 그 정체가 드러나면 그 '죄의 나'도 종말을 맞게 됩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 안에 있었으나 정체가 감추어져 있었고, 오직 마지막 때에야 드러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이때서야 그가 우리 마음에 서 있는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다시 요한일서로 돌아와서 적그리스도의 또 다른 특징들을 살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리에 속하지 않은 적그리스도

[요일 2:19-21] 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21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들이 자신들에게서 나갔고 그것은 그들이 자신들에 속하지 않음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 구절에서 전반부에서 저희와 우리가 나옵니다. 저희는 적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에 속한 자들입니다. 한 개인의 내면의 세상에서 저희와 우리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 안에 있는 적그리스도가 드러나면, 우리와 적그리스도 사이에 분리가 일어나고 우리는 그 적그리스도를 밖으로 내보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조화를 이룰 수 없고 진리와 비 진리가 함께 할 수 없듯이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함께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분리가 되어야 합니다.  

  물론 이런 현상은 이 세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나게 됩니다. 이 경우는 적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들이 그리스도의 영을 가진 자들의 모임인 교회 공동체로부터 분리되어 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요한이 이 글을 쓰는 것은 요한과 함께 하는 자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진리를 이해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요한의 입에서는 거짓이 나오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와 진정한 의미에서 교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기야 자신에게 기름부음이 없어 진리를 모르는 사람들은 이런 말을 해도 무슨 소리인지 이해를 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진리가 없어 무엇이 거짓인지 진리인지 조차 모르기 때문입니다. 오직 진리를 아는 자들만이 요한의 말을 제대로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

[요일 2:22-23] 22 거짓말하는 자가 누구뇨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부인하는 자가 아니뇨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그가 적그리스도니 23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또한 아버지가 없으되 아들을 시인하는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  이제는 아시겠지만, 이 말씀이 2000 년 전의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시인하느냐 부인하느냐에 따라 거짓말 하는 자와 진리를 말하는 자가 구분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는 진리입니다. 이 진리가 내 안에 임해야 나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진리를 말할 수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는 아직 예수가 자신 안에 임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런 자는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입니다.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시인하게 되는 때는 그 예수에 의해서 자신이 거듭났을 때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실을 시인할 수 있으려면, 그 사실이 이루어 진 다음에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예를 들어, 주님께서 올 해에 진급시켜 주시겠다고 했습니다. 그 말씀을 꼭 믿고 미리 당겨서 진급 턱을 냈다고 하더라도 아직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일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시인할 수 없습니다. 오직 실제로 진급이 되었을 때 그때서야 진급 사실을 시인할 수 있습니다. 그 이전까지는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를 그리스도, 즉 구세주로 시인하는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구원을 받고 나서야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을 "나의 구원자이라"고 시인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시인하는 사람이란 예수의 인도함에 따라 구원이 이루어 진 사람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한 사람은 예수로 인해서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반대의 경우,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는 자는 예수에 의한 구원이 자신에게서 이루어지지 않은 사람입니다. 구원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그는 예수를 그리스도로 시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사람은 자신 안에 진리이신 그리스도가 없기 때문에 거짓말하는 자이자 적그리스도입니다.   

  적그리스도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합니다. 아들을 부인하면 아버지가 없고, 아들을 시인하면 아버지도 함께 있게 됩니다. 물론 여기서 아버지는 하나님을 말하고 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아들을 부인하고 시인하는 문제는 입술로 고백하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들을 시인한다는 것은 '나' 자신이 말씀으로 잉태하여 아들을 낳게 되어 거듭나게 된 것을 말합니다. 아직 아들을 낳지 못했다면 '나'는 아들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내가 아들을 낳게 되면 하나님도 아들과 함께 내 안에 임하게 되고, 그렇지 못하면 하나님도 아들도 임하지 않게 됩니다. 
  이것이 다음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 아들 예수가 있는 곳에 아버지도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요19:21]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간단히 말하면 거듭난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시인하는 자이고, 거듭나지 못한 자는 아버지와 아들을 부인하는 자요 적그리스도입니다. 

  한가지 더, 여기서 시인한다는 말의 헬라어는 '호모로게오' 입니다. 일반적으로 '고백한다', '시인한다'는 의미이지만 어원적(語原的)으로는 '같은 것을 말한다'는 뜻입니다. 어떤 일이 자신에게 이루어졌을 때 이루어진 실제와 자신의 말은 같은 것을 말하게 됩니다. 아들이 내 안에 임하여 '나'와 하나가 된 상태라면, 내가 말하는 아들과 실제의 아들이 합치됩니다. 이때 나는 실제로 이루어진 상황인 아들과 그 아들에 관한 나의 말이 같게 되며, 이것이 곧 같은 것을 말하는 것이고 시인하는 것입니다.

  또한 아들을 부인한다는 것은 아들이 '나'와 분리되어 있는 상태에서 아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러면 나의 말은 실제 이루어진 아들과 합치되지 않습니다. 즉 같은 것을 말하지 않는 것이고 이것이 아들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시인하는 자는 그리스도께 속하고, 아들을 부인하는 자는 적그리스도입니다.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하는 적그리스도

[요일 4:2-3] 2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지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3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오리라 한 말을 너희가 들었거니와 이제 벌써 세상에 있느니라 

 이 내용도 적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라 추가로 살펴 보고자 합니다. 이 말씀도 예수님이 2000여 년 전에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면 예수께 속하고 그것을 부인하면 적그리스도가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예수께서 2000여 년 전에 성육신하셔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 승천하신 후 오순절 성령으로 120문도에게 임했습니다. 이 오순절의 성령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임한 것이 아니라, 오직 120 문도에게 임했습니다. 그 120문도의 대표격 되는 사람이 12제자 중의 하나인 베드로입니다. 

  이 베드로의 경우를 예로 들어 말씀 드립니다. 그는 고기를 잡다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모든 것을 버리고 그 예수를 따랐고 때가 되자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 후 예수님은 다른 보혜사로서 베드로의 몸을 성전 삼아서 영원히 그와 함께 거하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오순절 성령강림 때입니다. 이때 예수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베드로의 육체에 임하게 됩니다. 베드로는 이때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육체로 온 것을 시인하게 됩니다. 이것이 베드로의 거듭남이자 구원입니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이란 베드로가 겪었던 과정을 마치고 자신의 육체 안에서 그리스도를 영접하여 하나된 사람(영)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육체는 예수님의 것이 아니라 우리 각 사람의 육체를 말합니다. 육체란 헬라어로 '사르크스' 인데 여기서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의 그 자신을 을 말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에게 임한 사람은 예수가 육체로 온 것을 시인하는 영입니다. 이 사람은 이제 하나님께 속하게 됩니다. 물론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육체 안에 임하지 않은 사람은 예수를 부인하는 적그리스도 또는 적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이들에게는 예수 그리스도가 그들의 육체를 성전 삼아 임하지 않았습니다.   

맺는 말

 

 

  지금까지 살펴 본 바에 의하면 적그리스도는 다른 존재가 아닌 우리 안에 있는 '죄의 나'를 말합니다. 이는 또한 마귀의 정체에서 살펴 본 바 있는 인간 속의 마귀, 즉 "인간 안에 있는 반 하나님적인 자기 자신"입니다. 
  적그리스도의 특징들은 이렇습니다. 
  첫째, 마지막 때에 나타나고
  둘째, 진리에 속하지 않고
  셋째,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부인하고
  넷째, 예수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부인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은 항상 우리와 함께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믿는 자들은 너무 지혜로워서(?) 그리스도를 거부하며 혼자 왕 노릇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곧 이런 사람들 자신이 적그리스도인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때입니다. 마지막 때가 임해야 이 예수의 말씀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마지막 때가 된 분들은 적그리스도의 정체에 관한 말씀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듣는 자는 거짓 예수를 배도하고 참 예수를 따라 나설 것입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무릎치며 읽는 성경3 - 선과악 그리고 부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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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탕자의 비유 (3/3) - 율법과 복음의 차이 정덕영 2008-05-25 6853
3 탕자의 비유 (2/3) - 참다운 회개의 본 정덕영 2008-05-25 5744
2 탕자의 비유 (1/3) - 인간이 죄인으로 태어나는 이유 정덕영 2008-05-25 5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