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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반 세겔

페이지 정보

작성자 |정덕영 작성일 |11-01-11 02:25 조회 |4,114회

본문

반 세겔


[마17:24-27]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


  베드로는 사도행전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행 4:12)"
  이 말에 힘입어 예수 믿는 사람들은 더욱 힘을 얻고, 교회 밖에 구원이 있느냐 없느냐가 논쟁의 주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으로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의 구원을 논하고 그로 인한 논문을 계획할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것을 읽는 우리에게 구원을 받으라고 준 것이기 때문입니다. 먼저 자신의 구원을 생각하는 것이 현명한 처사입니다. 
  이런 말을 하면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할지도 모릅니다.
  "그럼 교회 안에 있는 사람이 당연히 예수 믿지 부처를 믿는다는 말이냐?"
  교회 안에 있는 사람도 별의 별 신을 다 믿습니다. 아마도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종류의 신을 믿고 있을 것입니다. 단지 포장만 예수로 되어 있지 그 본질에 있어서 그러하다는 말입니다.
  예수 이외에 구원이 없다는 말은 성경에서 말하는 참 예수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베드로는 참 예수를 지목하여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도 이런 말을 합니다.
  "만일 누가 가서 우리의 전파하지 아니한 다른 예수를 전파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영을 받게 하거나 혹 너희의 받지 아니한 다른 복음을 받게 할 때에는 너희가 잘 용납하는구나 (고후 11:4)"
  베드로와 바울은 자신들이 전하는 예수가 참 예수이며, 이와 다르면 '다른 예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말하는 예수는 지금 이 영혼의 닻에서 말씀 드리고자 하는 이 예수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말하는 예수와 다른 예수를 전하고 받아 들이면 교회 안이건 밖이건 그곳에는 구원이 없습니다. 
  예수는 지금 나에게 오셔서 나의 옛사람을 십자가에 못박으시는 분입니다. 그래야 내가 구원을 얻게 됩니다. 이 예수를 저 2000년 전의 십자가에 놓아 두고 믿는다고 찬송하거나, 또는 앞으로 심판 주로 오실 것을 기대하면서 자신을 갈고 닦거나, 또는 자신과 지금 동행한다고 관념 속에서만 생각하고 있다면 이 예수는 전부 사도 바울이 말하는 '다른 예수'입니다.
  이제 이 반 세겔의 말씀을 통하여 '지금 여기서' 자신이 예수와 연합하지 않으면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가버나움에 이르렀을 때, 반 세겔 받는 자들이 예수는 왜 내지 않느냐고 합니다. 베드로를 통하여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은 세상 임금도 세금을 받을 때 타인들에게 받는다. 그렇다면 아들은 면세가 되리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그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바다에 서 고기를 잡아 그 입에서 한 세겔을 취하여 예수와 베드로 몫으로 내라고 하십니다.
  신기한 내용입니다. 이것이 실제냐 아니냐를 가지고 논한다기 보다는 이 말씀이 상징하는 바가 무엇인가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함께 살펴 보겠습니다.

주님의 드러내심

[마17:24-25] 24 가버나움에 이르니 반 세겔 받는 자들이 베드로에게 나아와 가로되 너의 선생이 반 세겔을 내지 아니하느냐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율법에 의하면 20세 이상의 사람들은 반 세겔을 내게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흔히 성전세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것을 내지 않고 있던 예수와 제자들에게 하루는 세금 받는 자가 물었습니다.
  "너희 선생은 반 세겔을 내지 않느냐?"
  이때 베드로는 얼떨결에 대답을 했습니다.
  "낸다."
  나중에 예수님과의 대화에서 알 수 있듯이 내지 않아도 되는데 잘못 대답한 것입니다. 베드로는 집에 돌아와 반 세겔에 관하여 예수께 질문을 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전에 먼저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반 세겔에 관하여 질문을 하십니다. 이것은 베드로가 잘못된 대답을 하고 왔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서는 그 상황은 예수님이 조성하신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의 실수를 의도적으로 조성하시고 그에 걸려 넘어지자 말씀으로 고치시는 것입니다. 물론 예수님의 어투는 책망조일 수 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몰랐거나, 아니면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는 알지 못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역사하심은 성경 전체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장면입니다. 아담과 여자가 선악과를 따 먹고 난 후에야 하나님이 나타나신 일, 사울왕이 사무엘을 기다리다 지쳐서 제사를 막 드리고 나니 사무엘이 도착했던 일, 다윗이 밧세바와 간음 후 우리아 까지 죽이고 나서야 하나님이 개입하신 일 등입니다. 이 모든 경우에 그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책망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실수나 잘못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을 의도적으로 드러내고 그것을 통하여 가르치기를 원하십니다. 

  베드로는 반 세겔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은 우선 베드로가 반 세겔의 문제에 있어서 무지하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하고 깨달을 기회를 마련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행동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드러난 이상 그는 자신의 무지를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이런 토대 위에서 예수님은 반 세겔의 참 의미를 계시하여 베드로를 고치십니다. 이런 예수님이십니다. 반 세겔의 의미는 차차 말씀 드리겠습니다.
  우선 여러분은 의도적으로 실수를 유도해서 그 바탕 위에 고침을 주시는 이런 예수님을 만나셨습니까? 

- 전도사와 축도

제가 목사 안수를 받기 이전 전도사 시절에도 교회에서 말씀을 전했습니다.  전도사는 축도권이 없었기 때문에 당시 함께 계시던 목사님이 예배 끝에 나와서 축도를 해 주셨습니다. 그러다가 그 목사님이 다른 곳으로 가시게 되었습니다. 이제 주일 예배 때 누가 축도를 할 것인가가 문제가 되었습니다. 제 마음 속에는 전도사라도 축도를 해서 크게 잘못 될 것은 없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 축도가 문제라면 아래 민수기 6장 24-26절의 내용을 축도 대신 선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로 네게 비취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저는 생각 끝에 축도권이 없는데 억지로 끌어다가 할 필요가 없이 함께 일하시는 다른 목사님에게 축도를 부탁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정리했습니다. 겸손한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제 그렇게 하려고 마음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생이 함께 식사를 하러 갔다가 이렇게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축도해 주시던 목사님이 가셨는데 앞으로 누가 하지요?  형님도 축도할 충분한 자격이 있습니다. 예배 중간에 내려 오고 딴 목사님이 축도하러 올라가는 것이 복잡하니까, 이 기회에 축도까지 해도 무리가 없을 것 같습니다."

  사실 동생은 교회 일에 크게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 아니었기에 이 말은 참으로 의외였습니다. 동생의 이 말을 듣고 저는 축도를 다른 목사님에게 맡기겠다고 한 생각을 다시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저는 '이러 저러한 이유로 축도를 제가 해야 하겠습니다' 라고 함께 사역하시는 목사님에게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분은 기도를 해 보아야 하겠다면서 다음 날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주님이 그러는데 전도사님이 교만하시다 합니다. 그러면서 그 목사님이 축도를 하시겠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목사님의 말을 들을 때 어디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마음이었습니다. 감히 바라지 못할 것을 취하려 손을 내밀었다가 "어딜....?" 하면서 하나님께 한 대 맞은 듯한 느낌이었습니다.   

  저는 이 일이 그냥 그렇게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압니다. 주님의 의도적인 손길이었습니다. 겸손한 자세로 축도권이 부여될 때까지 견디자라고 생각은 했으나, 주님은 동생을 보내서 제 마음 속 깊은 곳에 있는 교만을 끄집어 낸 것이었습니다. 사실 이 일은 주님이 동생을 시켜서 저의 마음을 미혹하지 않았더라면 그냥 그렇게 겸손하게 지나갔을 것입니다. 결국 저의 교만은 주님의 계획에 의해서 밖으로 드러나게 됨으로 겸손은 생각 속의 겸손일 뿐이라는 것이 증명된 셈입니다. 

  저에게는 어렸을 때 시골에서 개구리 낚시를 재미 삼아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핀을 구부려 낚시를 만든 후, 파리를 잡아 낚시에 끼고 실을 매달아 개구리 앞에서 천천히 흔듭니다. 개구리는 그것이 파리인 줄 알고 튀어 올라 물게 되고 이때 잡아 채면 묵직한 느낌의 개구리가 낚이게 됩니다.
  저는 이런 의도적인 드러내심을 겪을 때마다 개구리 낚시가 생각이 납니다. 주님이 제 안의 교만을 낚기 위하여 미끼를 가지고 눈 앞에 어른거리게 하고, 그것을 취하려고 뛰는 순간 여지없이 낚시에 꿰고 마는 그런 느낌입니다.  
  당시야 마음이 쓰리고 아프지만 사실 이렇게 해서 고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와 같이 주님의 낚시에 의해서 내 안에 있는 교만, 혈기, 집착, 시기, 질투 등이 낚여 밖으로 드러나야 고침을 받게 됩니다. 지금 제 2 부에서 말하고자 하는 핵심은 바로 이런 예수님을 소개하고자 함입니다. 이 예수가 참 예수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과 다니던 3년의 기간은 이런 연단과 훈련의 기간이었습니다. 주님에 의해서 계속적으로 그들의 태생적이고 인간적인 시각들이 드러나고, 그로 인한 질책과 책망으로 점철된 삶이었습니다.
  여기서도 주님의 선한 계획에 의해서 베드로의 무지가 낚여 밖으로 드러나 고침을 받는 장면입니다.

아들은 면하리라

[마 17:25-26] 25 가로되 내신다 하고 집에 들어가니 예수께서 먼저 가라사대 시몬아 네 생각은 어떠하뇨 세상 임금들이 뉘게 관세와 정세를 받느냐 자기 아들에게냐 타인에게냐 26 베드로가 가로되 타인에게니이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그러하면 아들들은 세를 면하리라

예수님은 자신이 반 세겔을 내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한 나라의 왕이 세금을 거두어 들일 때 누구에게서 거두어 들이느냐고 묻습니다. 베드로가 타인에게 받는다고 하니까 예수님은 그렇다면 아들은 낼 필요가 없을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이해를 했습니다.
  '아, 반 세겔은 하나님께 드리려고 걷는 것인데,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니 당연히 낼 필요가 없는 것이구나.' 

  이런 이해는 예수님은 특별한 아들이시니까 세금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롯데시네마 극장 소유주의 아들이 그곳에서 상영하는 '아일랜드'를 보러 무료 입장할 수 있다고 하는 것과 같은 논리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십일조나 이 세상의 세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우리들도 하나님의 아들들이니까 당연히 이것들로부터 면세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그런 뜻으로 말씀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예수님이 하신 말씀의 뜻은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자들은 영적으로 이미 반 세겔을 지불했기 때문에 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지금 예수님은 물질의 반 세겔이 아니라 영적 반 세겔을 말하십니다.
  "아들은 (반 세겔을) 면하리라"는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하여 먼저 반 세겔의 영적 의미을 살펴 보겠습니다. 

- 반 세겔의 실체

[출30:12-16] 12 네가 이스라엘 자손의 수효를 따라 조사할 때에 조사 받은 각 사람은 그 생명의 속전을 여호와께 드릴지니 이는 그 계수할 때에 그들 중에 온역이 없게 하려 함이라 13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마다 성소에 세겔대로 반 세겔을 낼지니 한 세겔은 이십 게라라 그 반 세겔을 여호와께 드릴지며 14 무릇 계수 중에 드는 자 곧 이십세 이상 된 자가 여호와께 드리되 15 너희의 생명을 속하기 위하여 여호와께 드릴 때에 부자라고 반 세겔에서 더 내지 말고 가난한 자라고 덜 내지 말지며 16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서 속전을 취하여 회막의 봉사에 쓰라 이것이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기념이 되어서 너희의 생명을 속하리라

 이스라엘 백성은 생명의 속전을 드려야 합니다. 속전 반 세겔을 드릴 자는 이십 세 이상 된 남자가 드려야 하고, 그것은 "온역이 없게 하고,생명을 속하기 위해서"입니다(15절). 
  성경에서 20세 이상 된 남자는 대적과 싸울 수 있는 군사를 말합니다. 이들은 곧 거듭나서 성령을 받은 사람을 말합니다. 이들은 그 자체로 새 생명을 받았기 때문에 생명의 속함을 받았고, 또한 하는 모든 일들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행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의 온역을 면하게 된 자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무엇을 드렸기 때문에 이런 새 생명을 얻게 되고 온역이 없는 삶을 살게 될까요?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분이 아니고는 우리는 생명의 속함을 받을 수도 없고(마 20:28), 하나님의 온역으로부터도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어 줄 수 있는 일입니다. 이 반 세겔은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상징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반 세겔을 안내도 된다고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거듭난 자이고, 거듭난 자는 이미 생명의 속전인 반 세겔을 하나님께 지불한 자들입니다.
  이미 지불한 아들들은 또 지불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들은 이미 반 세겔을 냈거나, 아니면 그 신분 자체로 내고 있는 것입니다. 물론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 반 세겔은 영적 의미로의 반 세겔을 말하는 것이지, 물질의 반 세겔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이 "아들은 면하리라"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물질의 반 세겔을 내는 것은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나는 것을 뜻하는 상징 언어입니다.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마17:27]  그러나 우리가 저희로 오해케 하지 않기 위하여 네가 바다에 가서 낚시를 던져 먼저 오르는 고기를 가져 입을 열면 돈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가져다가 나와 너를 위하여 주라 하시니라
 
  아들은 반 세겔을 낼 필요가 없다고 하신 후에, 예수님은 그들로 오해를 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한 세겔을 구할 방법을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그것은 바다에 낚시를 던져 처음 잡히는 고기의 입을 열면 한 세겔을 얻을 것이니, 그것을 예수님과 베드로의 몫으로 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질의 반 세겔을 드리라고 하신 것에는 여러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째는 그 행함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대속물로 바쳐야 새 생명을 얻을 수 있고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날 수 있다는 상징 언어로서의 목적입니다. 둘째는 그것으로 하나님의 성전 봉사에 필요한 비용을 충당할 목적입니다. 셋째는 그것을 근간으로 백성들을 축복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물질에 민감한 육신에 속한 사람들은 이런 반응을 보이게 되어 있습니다. 
  '아, 반 세겔은 영적 의미를 지니고 있구나. 그렇다면 물질의 반 세겔은 내지 않아도 되겠구나.'
  예수님의 말씀을 오해하고 걸려 넘어지게 된 경우입니다. 이들은 반 세겔을 계속 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예수의 말씀을 내지 않을 빌미로 삼는 것입니다. 이에 예수님이 물질의 반 세겔을 냄으로써 이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아들은 면한다고 한 것은 영적 반 세겔이지 물질의 반 세겔이 아니다. 너희가 내는 물질의 반 세겔은 계속되어야 한다."
  율법 아래에서 물질의 반 세겔은 계속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거듭난 사람들은 물질의 반 세겔을 내야 하느냐 아니면 면하게 되느냐는 여기서의 주제가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물질에 소망을 두고 있는 육신에 속한 사람들의 관심사일 뿐입니다. 그것 가지고 고민하기보다 그런 사람이 되십시오. 그러면 새로운 물질관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반 세겔을 내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라고 고민하던 자신 자체를 하나님께 드리게 될 것이니, 그 고민 자체가 무의미합니다. 
  아무튼 어떤 연유에서이건 예수님은 내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과정을 통해서 또한 추가적인 사실을 계시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반 세겔에서 반(半)의 의미입니다.

왜 하필 반 세겔?

 한 세겔이면 한 세겔이지 왜 하필 반 세겔 일까요?  반 세겔이란 당시 화폐의 표시가 아닙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한 세겔을 내면서 두 사람 분을 계산했던 것입니다. 지금의 예를 들면 5,000원이 성전세라면  10,000원짜리를 내고 두 사람 분을 함께 치르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서도 물고기 입에서 나온 한 세겔로 베드로와 예수님의 성전세를 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속전으로 바치게 되면 예수 그리스도와 나의 옛사람이 연합하여 십자가에 죽고, 또한 연합하여 부활한 후 한 생명으로 하나님께 바쳐지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반 세겔은 나의 몫이고 나머지 반 세겔은 예수 그리스도의 몫입니다. 즉 내가 하나님께 드릴 때 보이지 않는 나머지 반 세겔은 예수 그리스도가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결국 하나님은 온전한 한 세겔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볼 때 우리의 거듭난 생명에는 그 안에 그리스도의 영이 반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롬6:5-9] 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6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7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9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예수에 의해서 구원을 받으려면 그와 연합하여 죽고 부활하는 과정을 꼭 거쳐야 합니다. 이것이 없으면 구원이고 거듭남이고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와의 연합은 삶 속에서 그 예수를 직접 체험함으로 만나는 것으로 시작되고, 십자가에 죽고 부활함으로 완성이 됩니다. 이렇게 함으로 나의 반 세겔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채워 주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나의 반 세겔에 예수 그리스도의 반 세겔이 더하여 져서 한 세겔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입니다. 

  나 혼자는 반 세겔을 하나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꼭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이 있어야 나의 반 세겔이 드려질 수 있습니다. 주위를 보면 어떤 분들은 자신의 옛사람을 자기 혼자 대항하여 싸우고 처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 옛사람이 처리되지를 못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가 이끄는 손길을 체험하고 그에 믿음으로 화합함으로써만이 옛사람의 처리가 가능합니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는 과정입니다.  스스로 독학을 하거나 혼자 도 닦지 마십시오. 예수를 만나 그 분과 연합을 해야 합니다.
  이런 연합이 없으면 생명의 속함도 없고 그래서 속전 반 세겔도 드릴 수 없습니다.

- 첫 고기에 있는 한 세겔

 낚시에 낚인 첫 번째 물고기에 관해서 말씀 드리겠습니다. 바다는 이 세상의 비유이고 물고기는 그 세상 속에 사는 사람들의 비유입니다. 바다 속의 물고기들은 바다를 떠나면 죽는 것을 알고 악착같이 물 속에서만 살려고 합니다. 그러나 물고기는 그 바다 속을 빠져 나와야 그에게 새로운 생명이 주어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세상을 떠나면 죽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실상 그것을 떠나면 하나님의 나라에 가서 새 생명을 얻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드시겠다고 말씀 하셨습니다(마 4:19). 즉 세상 바다에서 살고 있는 우리 인생을 낚아서 그 밖으로 끄집어 내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어부에 의해서 바다 밖으로 나와야 그 물고기는 구원을 얻게 됩니다.    

  본문에서 베드로가 바다에서 처음 낚게 될 물고기는 초태생이고 하나님께 드릴 성결한 것입니다. 곧 이 물고기는 거듭난 자의 상징입니다. 그 입에는 한 세겔이 있는데 이것은 그 사람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의 반 세겔이 합쳐진 한 세겔입니다. 예수님도 성전세를 낼 때에 이 한 세겔을 베드로의 것 반 세겔과 예수님의 것 반 세겔로 나누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반 세겔에서 반이 의미하는 바는 구속 받은 자신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염두에 둔 반(半)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맺는 말
 
  '예수에 이끌린 삶'의 과정에서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우리의 숨겨진 옛사람을 드러내어 고치십니다. 이 과정 중에서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가 연합을 하게 되고 십자가와 부활을 체험하게 됩니다. 이러면 예수의 반 세겔과 우리의 반 세겔이 한 세겔로 하나님께 드려지게 됩니다. 이후 우리는 역병이 없는 자이고, 영적으로 20세 이상 된 자이고,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얻은 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이러한 연합을 이루어 반 세겔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정덕영
목사
자유교회



"영혼의 닻"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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